소설리스트

내 아기곰이 너무 강함-138화 (138/300)

EP.138 흑암을 잡아라(5) 잡았다, 요놈

“고, 고미!”

“고미님!”

“곰 선생님!”

고미가 튕겨 나가는 것과 동시에 자리에 있던 모두의 입에서 급박한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걱정하지 말거라. 이 몸이 그대로 맞받아치면 너희가 다칠까 걱정되어 뒤쪽으로 물러난 것뿐이다!”

고미가 솜방망이를 움켜쥐며 허공을 붙잡자, 물결치듯 거대한 발톱 모양이 생겨나며 녀석의 몸이 빠르게 멈춰 섰다.

‘뭐, 뭐야, 어떻게 하면 허공을 붙잡았는데 멈출 수 있는 건데? 저것도 기곰술의 응용인가?’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나는 저게 왜 가능한 건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하는 걸 보니 되는 건 맞는데······. 대체 왜 되는 걸까?

내가 넋을 잃고 있는 사이, 커다랗게 부풀어 올랐던 흑암의 몸이 조각칼로 다듬은 듯 점점 또렷한 형태를 갖추었다.

날카로운 발톱을 가진 네 개의 팔, 상대적으로 짧은 두 다리, 비대한 상체에 두더지의 머리까지······.

‘대체 무슨 괴물이야 저건.’

우리가 그 생경한 비주얼에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지 몰라하고 있을 때, 고미가 팔을 휘두르며 숲속 친구들을 손에 쥔 채 하늘을 날고 있는 두 마리의 드래곤에게 명령을 내렸다.

“딸기! 검은콩! 친구들을 데리고 최대한 멀리 피해라! 딸기 너의 결계라면 이 몸이 만들어 낸 충격파 정도는 상쇄할 수 있을 터! 이제부터 저 음침한 녀석에게 진정한 곰이 무엇인지를 알려주어야겠다!”

고미의 명령이 떨어지기 무섭게 제르보나와 이유찬 씨는 숲속 친구들을 데리고 가장 멀리 떨어진 산봉우리로 날아갔다.

“휴, 잠깐이지만 깜짝 놀랐습니다.”

제르보나 씨가 안도한 듯 피식 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이어서 드래곤 어로 무언가 중얼거리며 팔을 내밀자, 평소보다 훨씬 더 진하고, 두꺼운 빛의 막이 우리의 주위를 둘러쌌다.

“어······. 그러고 보니, 제르보나 씨, 평소보다 훨씬 더 커지신 것 같네요.”

나는 그제야 제르보나 씨도, 이유찬 씨도, 평소보다 훨씬 더 커져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게다가 제르보나 씨의 황금색 뿔과 이유찬 씨의 은색 뿔에는 이전에는 보이지 않았던 은은한 빛이 감돌고 있었다.

“모두 고미님과 수다르님 덕분입니다. 두 분 덕에 유진의 마력이 훨씬 더 강하고 진해졌고, 덕분에 유진과 연결된 저희의 마력도 점점 더 성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음······. 그렇구나.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이것도 드래곤 라이더 스킬의 영향이라는 건가.

고미한테 ‘수하 라이더’ 스킬 같은 게 생기면 굉장하겠군.

내 어깨 위에 올라타면 더 강해진다던가······.

어차피 맨날 올라타 있잖아.

아니지, 여기서 더 강해지는 건 상상이 안 가는군.

차라리 내가 고미 라이더가 되는 편이 낫겠어.

“간닷, 대력곰강장!”

그때, 고미의 우렁찬 함성이 나의 생각을 끊어냈다.

동글동글한 솜방망이를 펼쳐 앞을 향해 내밀자, 허공에 산만한 젤리 모양의 파문이 일어났다.

‘저게 진짜 대력곰강장이구나······. 나하고 합을 맞출 때 썼던 건 몸풀기 수준밖에 안 됐어.’

쿠우웅-!

이어서 산이 무너지는 것만 같은 굉음이 울리고, 산과 대지가 무너져 내리며 반투명한 젤리가 거대 두더지의 몸을 강타했다.

“크아아악!”

고미의 일격에 새하얀 뼛조각과 암석, 끈적끈적한 액체가 한데 엉켜 만들어진 흑암의 육체가 무너져 내리며 처절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죽어라! 이 괴물 곰 자식이!”

분노한 흑암이 두 팔을 휘두르자, 거대한 열 개의 손톱이 비수처럼 고미를 향해 날아들었다.

“흥, 유치한 기술이구나. 위대한 이 몸이 발톱을 어떻게 쓰는 것인지 알려주마! 웅조수!”

고미가 손을 휘두르는 순간, 산마저 찢어발길 것 같은 다섯 개의 커다란 발톱 모양이 생겨나 흑암의 검은 발톱을 산산이 부숴버렸다.

“이, 이······. 유치하게 매번 기술 이름을 외치지 말란 말이다!”

자신의 공격이 허무하게 막히자, 흑암의 눈에서 붉은빛이 흘러나오며 부서졌던 몸이 수복되고, 다시 칼날 같은 열 개의 발톱이 돋아났다.

괴, 굉장하군. 감히 고미한테 그런 걸 지적하다니······.

배짱만큼은 높이 산다만······.

왜 자꾸 매를 버는 거냐.

“죽어라!”

지금 흑암의 크기는 확실히 굉장했다.

공격을 받을 때마다 몸이 회복되는 것도, 두더지 발톱 미사일도 꽤 강력해 보이고.

하지만······. 숲속 친구 중 누구도 두려움을 느끼지 않았다.

그러기는커녕, 흑암이 입을 열 때마다 안쓰럽다는 표정을 지을뿐이었다.

“흠, 흠······. 얼마 전 저를 바라보던 여러분의 마음이 이랬겠군요.”

멍하니 이 광경을 바라보던 토생원이 민망하다는 듯 헛기침을 하며 입을 열었다.

고미의 표현을 빌자면, 가장 최근에 ‘혼쭐이 난’ 사람(?)이 바로 토생원이니까.

“흠······. 자랑은 아니지만, 저는 고미님의 꿀 주먹을 직접 맛본 적이 있습니다.”

토생원의 말을 들은 이유찬 씨가 흐뭇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고미의 주먹을 맞고도 살아있다는 게 자랑이라는 듯, 약간의 자긍심마저 느껴지는 표정이었다.

“정말이십니까?”

토생원이 약을 끊고 한결 보송보송하고 귀여워진 커다란 귀를 쫑긋거리며 되묻자,

“네, 보기와는 다르게 전혀 폭신하지 않더군요. 미스릴이나 아다만티움, 오리할콘으로 맞는다면 이런 기분일까 싶었습니다.”

이유찬 씨는 지그시 눈을 감은 채 꿀 주먹의 맛을 회상했다.

“으음······.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군요. 기왕 혼쭐이 나는 김에 고미님의 주먹에 직접 맞았다면 대대손손 자랑이라도 할 수 있을 텐데······.”

말을 마친 토생원은 아쉬움과 두려움이 반반씩 묻어나는 표정으로 새하얀 털을 곤두세운 채 온몸을 바르르 떨었다.

대체 뭐냐······. 이 자랑도 뭣도 아닌 한심한 대화는······.

“그럼 고미님의 힘을 직접 맛본 것은 저희 둘뿐입니까?”

토생원이 자랑스러운 듯 커다란 귀를 빳빳하게 세우며 그렇게 묻자,

“아, 저는 고미님의 초코소드에 당한 적이 있습니다.”

원조 호구가 ‘갓-고미 파워 체험단’에 슬그머니 발을 들이밀었다.

“오, 설마 초코바로 당한 겁니까?”

이유찬 씨가 ‘그 정도면 대우가 괜찮은데?’라는 표정으로 이강혁 씨를 바라보며 물었다.

이쪽은 초코바를 녹였다가 꿀주먹 맛을 본 거니까.

“네, 초코바로 A급 검을 한 번에 부러뜨리시더군요.”

“얘기 들으니까 괜히 나도 한 번 맞아보고 싶네.”

세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던 봉식이는 남자들이 왜 평균수명이 짧은지 몸으로 증명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고,

“에휴······.”

네 얼간이의 대화를 듣고 있던 제르보나 씨는 한심하다는 듯 혀를 차며 한숨을 내쉬었다.

사실 고미가 발에 차여 날아간 줄 알았을 때는 나도 모르게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지만, 나 역시 고미가 질 거라는 생각은 손톱만큼도 하지 않는다.

쿵, 쿠궁······.

그 사이, 결계 밖에서는 천지가 격렬하게 뒤흔들리며 산만한 흑암의 몸이 빠른 속도로 무너졌다가 원형을 되찾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역시, 상대가 안 되는군요.”

그 광경을 바라보던 ‘갓-고미 파워 체험단’ 멤버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숲속 친구들의 기대에 부응하듯, 싸움은 일방적이었고, 흑암의 공격은 고미에게 닿지도 못했다.

중간중간 맹독을 머금은 검은 액체 덩어리를 뱉어내기도 하고, 녀석의 몸에서 떨어져 나간 검은 덩어리의 일부가 강력한 몬스터로 변해 고미에게 달려들기도 했지만······.

“이놈이! 순순히 항복하란 말이다! 이 몸은 어서 놀이 공원에 가야 한다!”

저항하면 저항할수록 고미의 분노를 살 뿐이었다.

“놀이공원!? 감히 나를 모욕하는 것이냐!?”

음, 저쪽도 고미가 자신을 조롱한다고 느껴서 화가 난 모양이군······. 어린아이의 순수한 꿈을 몰라주는 사악한 녀석 같으니.

하지만 벌써 수십 번이나 고미의 공격을 받았음에도, 녀석의 몸은 여전히 재생을 멈추지 않고 있었다.

과연 바락바락 대들만한 맷집은 있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드는 재생력.

사실 목적이 죽이는 거라면, 진즉에 끝났을 거다.

내 눈에도 흑암의 본체가 어디 들어있는지 보이는데, 고미가 그걸 눈치채지 못할 리가 없지.

‘음······. 설마 더 이상 재생을 못할 때까지 파괴하려는 건가.’

‘대체 어쩌려고 이러나’하는 생각을 하는 순간, 조금 전까지만 해도 쉴 새 없이 움찔거리던 고미의 꼬리와 귀가 빳빳하게 서는 것이 보였다.

‘결정했군.’

저건 고미가 무언가 결심했을 때 보이는 몸짓이지.

아니나 다를까, 정신없이 흑암의 거체를 파괴하던 고미가 돌연 뒤쪽으로 훌쩍 몸을 날리며 녀석과 거리를 벌렸다.

“수하, 안 되겠다. 이 녀석이 생각보다 너무 강하구나!”

응? 무슨 소리야. 일방적으로 때리고 있잖아 지금.

“이제 방법이 없다!”

이건 또 무슨······.

고미의 말에 숲속 친구들은 모두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심지어 신나게 얻어터지던 흑암 본인마저 어이가 넋이 나간 표정으로 말을 잇지 못했다.

“필살기를 사용하겠다!”

설마······. 우리가 수다 떨고 있다고 극적인 연출로 주의를 끌어보려고 하는 건 아니지?

“간닷!”

말을 마친 고미는 사뭇 비장한 표정으로 두 손을 모았고, 그 동작을 본 이강혁 씨와 봉식이, 나, 세 사람은 녀석이 무엇을 하려는 건지 단박에 알아차렸다.

“드디어 쏘는군요.”

이강혁 씨의 한마디에 아직 ‘고미 빔’의 존재를 모르는 다른 친구들의 눈빛이 의아함과 기대감으로 물들었다.

“쏘다니요?”

“마법인가요?”

“장풍입니까?”

제르보나와 한유진 씨, 토생원의 질문에 이강혁 씨는 피식 웃음을 지으며 미소로 답을 대신했고,

우우우우웅-

묵직한 소리와 함께 고미의 손에 새파란 빛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간닷! 필살, 웅왕빔!”

······.

웅왕빔이라니, 한문이나 영어, 둘 중에 하나로 하라고.

고미 빔, 웅왕포, 아니면 그레이트 베어빔 이라든가······.

콰아아앙!

다음 순간, 고미의 손에서 뻗어 나간 새파란 빛줄기가 흑암의 몸을 꿰뚫었고, 빔이 닿은 곳이 흔적조차 남기지 않고 깨끗하게 사라져 버렸다.

“이, 이게······.”

“어······.”

고미의 ‘빔’을 본 숲속 친구들은 귀신에 홀린 듯 입을 벙긋거리며 말을 잇지 못했다.

특히 제르보나 씨는 거의 까무러칠 듯 놀라 눈조차 깜빡이지 못하고 있었다.

평소 성격으로 보나, 지금 반응으로 보나, ‘빔’에 놀란 것 같지는 않고······. 설마 뭔가 알고 있는 건가?

“제르보나 씨, 왜 그러시죠?”

“수, 수하님······. 저것이 고미님의 새로운 기술입니까?”

“네.”

나의 대답에 그녀는 연신 마른침을 삼키며 흑암과 고미를 번갈아 가며 바라봤다.

“아, 아닙니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전투가 끝나고 고미님과 얘기를 해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제가 잘못 본 것이 아니라면, 흑암은 절대로 회복할 수 없을 테니까요.”

그리고, 이어지는 장면은, 제르보나의 눈이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했다.

여태 영원히 쓰러지지 않을 것처럼 계속해서 회복하던 흑암의 몸이 더이상 재생하지 못하고 그대로 무너져 내리고 있었으니까.

“아, 안 돼! 어떻게 이럴 수가!”

공포에 질린 흑암은 허겁지겁 다시 땅굴을 파고 달아나려 했지만,

“잡았다, 요놈!”

날카로운 손톱이 땅에 닿기 무섭게 고미가 달려들어 녀석의 뒷덜미를 덥석 움켜잡았다.

“어딜 달아나려 하느냐!”

“놔라, 놔! 나는 인간들을 모두 죽이기 전에는 결코 죽을 수 없다!”

하지만 놈은 끝까지 악다구니를 써대며 고래고래 소리를 쳐댔고,

“에이잇, 이놈이!”

화가 난 고미가 녀석의 뒤통수에 꿀밤을 한 방 먹여주자, 까무룩 잠이 들어버리고 말았다.

“딸기! 검은콩! 이제 됐느니라! 결계를 거두고 이리 내려오거라!”

고미가 손짓을 하자, 제르보나 씨는 결계를 거두고 우리를 등에 태운 채 천천히 날개를 펄럭이며 지상으로 내려갔다.

한편, 달달한 꿀밤에 취한 흑암은 죽은 것처럼 축 늘어진 채 고미의 손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

‘설마 숙면이 아니라 영면에 든 건 아니겠지? 그럼 안 되는데······.’

잠시 그렇게 걱정 아닌 걱정을 하고 있을 때······.

‘꿀태창’이 반짝 반짝 빛을 발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도저히 무시할 수가 없었다.

지금 꿀태창은 평소같은 황금색이 아니라······. 붉은색으로 반짝이고 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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