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아기곰이 너무 강함-136화 (136/300)

EP.136 흑암을 잡아라(3) 의외의 원군

칠흑처럼 검은 산봉우리 위에는 새하얀 뼈를 드러낸 드래곤들이 줄줄이 늘어선 채 섬뜩한 포효를 내뱉고 있었다.

‘드래곤 시체는 대체 어디서 구한 거야.’

피부의 대부분이 풍화되어 사라진 거대한 사체가 산봉우리 위에 줄줄이 도열해 있는 모습에, 토생원 때처럼 간단하게 일이 끝날 것 같지는 않다는 예감이 뇌리를 스쳤다.

하지만 고미의 결계에 생긴 커다란 구멍을 보는 순간, 입가에 슬며시 미소가 번졌다.

나도 아는 용 있거든.

그것도 저런 뼈다귀 말고, 진짜 살아있는 용으로.

‘타이밍 좋네.’

뼈만 남은 드래곤들이 흉물스러운 날개를 펼치며 하늘로 솟구치는 찰나, 위엄이 넘치는 거대한 블랙 드래곤과 우아한 붉은 빛을 내뿜는 레드 드래곤이 번개 같은 속도로 녀석들을 향해 달려들며 불꽃을 내뿜었다.

- 크오오오오!

[ 하늘은 저희가 맡을게요! ]

한유진 씨의 목소리가 낭랑하게 귓가에 울리고, 뼈만 남은 드래곤들과 삼룡이 패밀리가 공중에서 어지럽게 뒤엉키기 시작했다.

한유진 씨의 품 안에는 기진맥진한 알틴이 안겨 있었다.

게이트를 여느라 힘을 다 써서 전투에는 참여하지 못할 것 같지만, 알틴이 없으면 이 계획은 실행조차 못했을 테니, 사실 가장 큰 공을 세운 사람이라고도 할 수 있지.

공중전이 시작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허공을 가르고 십여 개의 그림자가 몬스터의 바다 위로 떨어졌다.

응? 자, 잠깐? 열 개? 하나, 둘, 셋, 넷······. 왜 열 개야?

계획하고 다르잖아. 대체 누굴 데리고 온 건데?

“갓 베어 크래쉬!”

생각보다 많은 숫자에 당황하고 있을 때, 가장 커다란 그림자에서 상당히 남사스러운(?) 소리가 터져 나오며 포탄이 떨어진 것처럼 지면에 있던 몬스터들이 하늘로 비산했다.

“웅혼참!”

이어지는 창피한 이름의 향연.

- 크르르!

그때, 분노한 삼돌이가 나를 향해 시뻘건 불꽃을 토했고,

나는 화염 망토를 활성화한 뒤 삼색 영지버섯을 들어 놈의 화염을 막아냈다.

‘생각보다 뜨겁지는 않네.’

영지버섯과 화염 망토의 효과가 합쳐지자, S급의 소환수가 뿜어내는 불꽃이 주위를 뒤덮고 있는데도 찜질방에 들어와 있는 수준의 열기밖에 느껴지지 않았다.

이에 나는 느긋하게 영지버섯을 충전시키며 동료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 이놈은 제가 맡을게요! 잔챙이들 처리 좀 부탁해요! ]

꿀태창을 사용하지 않아도 웅톡방의 음성 통화(?) 기능은 여전히 사용할 수 있으니, 혼란한 와중에도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 곰 선생님은 어디 계십니까? ]

지상조의 대장을 맡은 이강혁 씨는 파도처럼 밀려드는 몬스터들을 앞에 두고도 고미의 안부부터 물었다.

[ 땅속이요! ]

[ 따, 땅속이라니, 땅속에도 적이 있는 것입니까? ]

표정을 보지 않아도, 적잖이 당황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목소리와 말투.

뭐, 흑암의 정체를 직접 눈으로 본 나도 놀랐으니까.

말만 들으면 이게 무슨 상황인가 싶겠지.

[ 아니요, 곧 알게 되실 거예요. 일단 잔챙이들부터 처리해 주세요. ]

얼핏 보기에도 A급 이상으로 보이는 몬스터가 몇 있었으니, 가급적 빨리 정리하는 게 좋을 것 같았다.

대화를 나누는 사이, 케르베로스는 미련하게 계속해서 불꽃을 토해냈고, 영지버섯이 선명한 붉은 색을 띠기 시작했다.

“감사합니다.”

충전이 완료된 것을 확인한 나는 곧바로 주위의 몬스터들을 향해 삼돌이의 불꽃을 폭발시켰다.

쾅!

- 끼에에에엑!

- 끼이이익!

그러자, 처참한 비명과 함께 수십 마리의 스켈레톤이 일제히 뼛가루조차 남기지 못하고 불타버렸다.

“오, 생각보다 더 세네.”

장비 덕분에 나는 그 온도를 느끼지 못했지만, 한때 만수왕의 오른팔이었던 분의 불꽃답게 아주 화끈한 화력이었다.

- 크, 크릉!?

불꽃을 완벽하게 막아낸 것으로도 모자라 자신의 입에서 나온 화염에 의해 아군들이 죽어버리자, 늑대 머리는 당황한 듯 두 눈을 치켜떴고,

- 크, 크르르!

나머지 두 개의 머리는 적의에 찬 눈빛으로 늑대 머리와 나를 번갈아 가며 노려보았다.

말을 할 수 있다면, ‘이 멍청한 놈아!’라고 외칠 것만 같은 눈빛.

잠시 서로를 향해 으르렁거리며 작전 회의를 하는 듯하던 가짜 삼돌이는 이내 나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세 개의 눈동자가 빙글빙글 돌아가는 모습에 저도 모르게 등줄기에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정신 지배 스킬에 영향을 받지는 않지만······.

‘생긴 게 너무 무섭다고. 생긴 게.’

사실 우리에게 가장 껄끄러운 것은, 삼돌이의 전투 능력이 아니라, 정신지배 능력이었다.

추정 S급의 정신 지배 능력.

정신 방벽 스킬이 아예 없는 봉식이는 말할 것도 없고, 이강혁 씨는 세이렌의 노래에도 영향을 받았던 전력이 있으니, 이 녀석에게 맞서면 어떤 결과가 나올지는 불을 보듯 뻔했다.

한유진 씨는 동이님에게 정신 방벽 스킬을 받을 수 있지만, 숲속 친구들 중 유일하게 공중전 능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니 가짜 삼돌이와 놀아줄 수는 없다.

즉, 이놈은 내가 맡아서 처리해야 한다는 말이지.

- 크르르!

불꽃이 먹히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차린 삼돌이는 곧바로 집채만 한 몸을 날려 나에게 달려들었다.

쾅!

“컥!”

녀석과 부딪히는 순간, 전신의 뼈가 비명을 지르며 발이 공중으로 뜨는 것이 느껴졌다.

마치 덤프트럭에 부딪힌 것 같은 충격.

삼색 영지버섯이 아니었다면 일격에 몸이 으스러졌을 거라는 생각이 절로 드는 무시무시한 힘이었다.

“안 되겠네.”

나는 곧바로 인벤토리에 안에 넣어두었던 ‘특제 청심환’ 하나를 꺼내 들었다.

산신령님과 토생원의 공동 연구의 결정체, 휴대용 청심환.

아웅이, 다웅이에 대한 연구를 기반으로 만든, 고미의 기가 담긴 특제 버프 단약이다.

“욱······.”

특제 청심환이 목구멍을 타고 넘어가는 순간, 치약 한 통을 아낌없이 짜 넣어 만든듯한 강렬한 민트초코의 향기가 온몸을 관통했다.

“으으······.”

초콜릿도 별로 안 좋아하는데, 민트까지.

맛은 정말 아니군.

-크, 크르륵!

나의 가슴에 전에 없이 밝은 빛을 내뿜는 젤리 원자로가 생겨나자, 가짜 삼돌이가 주춤거리며 발을 멈추었다.

이어서 민트초코의 향기가 전신의 혈관을 타고 흐르며 온몸의 기(氣)가 금방이라도 폭발할 것처럼 팽창했다.

“자, 빨리 끝내자.”

‘약점간파’를 사용하자, 놈의 옆구리와 척추에서 은은한 붉은 빛이 흘러나오는 것이 시야에 들어왔다.

‘머리가 약점이 아니구나.’

하긴, 머리가 셋이나 되니 하나하나 처리하는 사이에 다른 머리에 공격을 당하면 그대로 끝이겠지.

셋 중 하나에게 검을 물리기라도 하면 그대로 게임 오버.

운이 좋아도 칼 정도는 뺏길 가능성이 높다.

‘그럼 가볼까.’

허곰답보를 사용해 가볍게 바닥을 박차는 순간, 눈앞의 풍경이 바뀌며 가짜 삼돌이의 옆구리가 그대로 노출됐다.

쉭!

갑작스럽게 폭증한 나의 속도에 당황한 삼돌이는 빠르게 몸을 돌려 대응했고,

깡!

놈의 날카로운 이빨과 흑염대웅신검이 맞부딪히는 순간, 새빨간 불꽃이 허공에 흩날렸다.

이어서 사선으로 한번, 수평으로 한번, 검붉은 화염이 묻어나는 칼날이 허공을 갈랐다.

-크륵!

지금 흑염대웅신검은 결코 화려하게 타오르지 않았다.

지난 삼일 간, 특제 청심환을 먹고 훈련을 거듭한 끝에야 깨달았다.

흑염대웅신검의 진짜 위력은, 불꽃을 폭발시키는 게 아니라, 대량의 기를 압축해서 만들어낼 때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을.

- 크, 크르르르······.

칼날에 담긴 섬뜩한 파괴력을 느꼈는지, 삼돌이의 눈에 처음으로 공포가 어렸다.

단 한 번의 격돌로 녀석의 전투 방식이 바뀌었다.

마구잡이로 발톱과 이빨을 들이밀지 않고, 세 개의 머리를 최대한 활용해 빈틈을 만들고, 일격에 싸움을 끝내려는 듯한 움직임.

캉, 캉!

계속해서 날카로운 금속성이 울리고, 날카로운 이빨과 발톱이 만들어내는 섬뜩한 잔광과 검광이 뒤엉킨다.

······.

······.

그러던 어느 순간, 놈의 이빨과 나의 검이 부딪치며 울리는 소음이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수많은 몬스터들이 내는 울음소리도, 숲속 친구들이 싸움을 벌이는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대신 놈의 움직임이 점점 느려지는 것이 느껴졌다.

처음에는 따라가는 것도 벅찼던 정신없는 공격이, 놈의 이빨과 발톱이 그려내는 궤적이, 선명하게 시야에 들어온다.

‘느려.’

위에서 아래로, 칼을 내리긋는다.

구불구불한 칼날이 만들어내는 궤적이 허공에 짙은 흔적을 남긴다.

쉭-

왼쪽에서 한번, 오른쪽에서 한번, 날카로운 이빨이 날아든다.

미묘하지만, 왼쪽이 조금 더 빠르다.

왼쪽은 방패로, 오른쪽은 검으로.

공격을 쳐낸다.

다음은 정면.

예상대로 날아드는 공격에 나는 곧바로 바닥을 박차고 허공으로 몸을 날렸다.

온몸이 깃털처럼 가볍다.

녀석의 머리를 디딤돌 삼아 등으로 타고 올라가는 게, 아무렇지도 않게 느껴질 만큼.

‘지금이야.’

훤히 드러난 놈의 등을 향해 검을 내리치는 순간,

- 크어어어엉!

잠시 사라졌던 청각이 돌아오고, 시커먼 몸에 커다란 자상이 생겨나며 놈의 몸이 힘없이 무너져 내렸다.

- 크, 크르르르······.

놈은 여전히 적의가 가득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지만, 아무리 애를 써도 몸을 일으키지는 못 했다.

‘일단 전투 불능 상태로 만든 것 같기는 하니······. 내 승리네.’

하지만, 승리의 기쁨을 만끽하기도 전에 거짓말처럼 온몸의 힘이 빠지는 것이 느껴졌다.

“으으······.”

특제 청심환은 강력한 만큼 반동도 크다.

수다르님과 토생원이 연구에 연구를 거듭해 더욱 대량의 기를 담을 수 있게 되었고, 휴대까지 가능하게 만들었지만, 내 그릇은 아직 그 정도 기를 무리 없이 받아들일 정도로 단단하지 않았으니까.

그래도 내 역할은 다 한 것 같으니까, 잠깐만 숨을 돌리고······.

- 그워어어!

하지만 주위를 둘러보는 순간, 도저히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전황이 생각보다 나쁘다.

아직 다친 사람은 없지만, 적의 숫자가 너무 많다.

우리 중 가장 넓은 범위를 공격할 수 있는 삼룡이 패밀리는 여전히 하늘에서 백골 드래곤들을 상대하고 있었고, 지상조인 이강혁 씨와 봉식이가 빠르게 적들의 숫자를 줄여나가고는 있지만······.

‘너무 많아.’

적의 숫자가 생각보다 너무 많았다.

게다가 조금만 마무리가 어설퍼도 뼛조각들이 다시 모여 일어선다.

심지어 팔다리가 아니라 머리가 날아가도 움직이는 놈들이 적이다 보니 생각보다 적의 숫자를 줄이기가 어려웠다.

가장 큰 오산은, 흑암의 정체가 두더지라는 사실이었다.

고미가 아무리 강하고 빠르다고 해도, 땅속으로 숨어버린 두더지를 잡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니까.

설마하니 상대가 땅속으로 달아나고, 고미가 녀석을 잡는데 이렇게 오랜 시간이 필요할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

[ 고미, 아직이야? ]

조급한 마음에 고미에게 전음을 보내봤지만, 익숙한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그저 발 아래 깔린 지면을 통해 전해지는 미미한 진동을 통해 상황을 짐작할 수 있을 뿐.

아마도 추격전이 한창이겠지.

[ 김수하! 조금만 더 버텨! 곧 간다! ]

그때, 귓가에 봉식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그래, 버텨볼게. 느긋하게 오라고. ]

나는 최대한 괜찮은 척 그렇게 답하며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런데, 솔직히 조금 자신이 없다.

숲속 친구들이 나와 합류하려면 수백에 달하는 몬스터의 파도를 뚫고 와야 하는데······.

그때까지 버틸 수 있을까?

“자, 다시 시작해 보자.”

지금 내 눈앞에는 삼돌이와 나의 결투를 방해하지 않기 위해 잠시 거리를 두었던 몬스터들이 다시 나에게 다가오는 것이 보이고 있었다.

숫자는 어림잡아도 백 이상.

가짜 삼돌이와 싸우면서 영지버섯이 충전되기는 했지만, 아직 필살기를 사용할 수준은 아닌데······.

‘그래도 이대로 죽을 수는 없지.’

그렇게 마음을 다잡으며 영지버섯과 흑염대웅신검을 붙잡는 순간,

- 콰아아아앙!

엄청난 굉음과 함께 바닥에서 지진이 일며 수십, 아니, 거의 백에 달하는 몬스터가 하늘로 날아올랐다.

[ 고미? ]

그러나 바닥에서는 계속해서 미미한 진동만이 전해질 뿐, 고미의 목소리는 여전히 들리지 않았다.

‘뭐지?’

고개를 돌려보니, 이강혁 씨와 봉식이가 넋이 나간 표정으로 어딘가를 바라보고 있는 것이 보였다.

두 사람의 시선이 향한 곳에서는 시커먼 그림자 하나가 엄청난 속도로 적의 진영을 박살 내며 진격하고 있었다.

‘누구지? 대체 누굴 데리고 온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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