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아기곰이 너무 강함-133화 (133/300)

EP.133 개전 준비

“고, 고미! 괜찮아!?”

나는 바닥에 떨어진 영지버섯을 제쳐두고 얼른 고미에게 달려갔다.

“거, 걱정하지 말거라··· 그저······.”

- 꼬르륵······.

주인이 말을 마치기도 전에, 고미의 배가 먼저 목소리를 냈다.

“배, 배가 고프구나······.”

“놀랐잖아!”

배가 고프다는 그 말이, 나에게는 참 반가웠다.

제때 먹고, 제때 자고, 제때 쉬는, 그런 삶이 점점 더 익숙해지고 있다는 소리니까.

벽곡의 경지에 올라 음식을 먹지 않아도 되고, 잠을 자지 않아도 되는 먼치킨보다, 잘 자고, 잘 먹고, 잘 노는, 그런 고미가 좋다.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고미님!”

고미에게 아무런 문제도 없는 것을 확인한 이유찬 씨는 폐허가 된 정원을 벗어나 황급히 주방으로 달려갔다.

“으아아, 죄송합니다······.”

나는 그제야 한유진 씨의 정원에 커다란 구덩이가 생겨난 것을 깨달았다.

구덩이만 생겼으면 다행이지, 정원의 절반 가까이가 시커멓게 타버려서, 이미 정원이라고 말하기도 민망한 상태.

그나마 다행인 건, 집이 무너지지는 않았다는 것 정도였다.

하지만 정작 정원의 주인인 한유진 씨는 전혀 개의치 않는다는 듯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괜찮아요. 어차피 이거 유찬이가 다 관리해요. 전 이런 거 취미 없거든요.”

······.

이유찬 씨, 잠은 잡니까.

수상 스포츠에, 요리에, 정원 가꾸기에······.

인간도 이 정도로 다양한 활동을 할 것 같지는 않은데.

게다가 이 정원, 거의 조경사가 가꿨다고 해도 믿을 정도로 관리가 잘 되어 있잖아.

아무리 에너지가 넘쳐도 그렇지, 너무 다양한 취미를 즐기고 있는 거 아니냐고.

그렇게 잠시 한유진 씨와 대화를 나누고 있는 사이, 이유찬 씨가 허겁지겁 냄비를 들고 달려왔다.

“고, 고미님!”

뭐야, 뭐가 이렇게 빨라. 미리 만들어 놓기라도 했나.

“오오, 검은콩! 역시 너는 굉장하구나! 그 잠깐 사이에 먹을 것을 만들어 온 것이냐!”

“시간이 없어 제 불꽃으로 급하게 만들어 왔습니다!”

제발 그 불꽃 그런데 쓰지 마요······.

용이잖아, 용. 블랙 드래곤.

이건 뭐 걸어 다니는 가스레인지도 아니고······.

“오오! 그사이에 제법 훌륭한 요리를 해왔구나!”

냄비 안에는 꼬들꼬들 익은 라면에 비엔나소시지와 스팜, 그리고 송송 썰기로 깔끔하게 잘라낸 파와 떡까지 들어 있었다.

흑룡의 불꽃 때문인지 뭔지는 몰라도, 제법 먹음직스러운 냄새가 풍기는 훌륭한 라면이었다.

“죄송합니다. 정신이 없어서 일단 한 개만 끓였는데, 다른 분들 것도 끓여올까요?”

라면 셔틀을 자처하는 이유찬 씨의 모습에 제르보나는 못 당하겠다는 듯 혀를 차며 고개를 저었고, 나머지는 피식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흐, 흐흠! 너희들도 먹거라! 역시 맛있는 것은 함께 먹어야 하지 않겠느냐! 위대한 이 몸은 친구들을 놔두고 혼자만 맛있는 것을 먹는 욕심쟁이가 아니니라!”

힘이 없어서 무릎까지 꿇을 정도로 배가 고픈 상태에서도 친구들과 기꺼이 먹을 것을 나누려는 고미의 마음에, 나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피어올랐다.

“괜찮아, 얼른 먹어. 조금 전까지 고생했잖아.”

나의 말에 고미는 얼른 고개를 끄덕인 뒤 정신없이 라면을 흡입하기 시작했다.

“오오, 괴, 굉장하구나. 이 스팜이라는 것은 라면에 넣어도 맛이 훌륭하구나!”

김치볶음밥 만들었을 때 스팜을 반찬으로 준 걸 아직도 기억하는군. 이런 걸 보면 확실히 기억력은 좋은데 말이지.

“오오오! 이 작은 녀석은 무엇이냐? 식감이 아주 각별하구나! 위대한 이 몸처럼 작지만 아주 훌륭한 녀석이다!”

고미가 통통한 볼을 끊임없이 오물거리며 말했다.

음, 자기가 작은 거 알고는 있구나······.

어쨌든, 이렇게 말도 잘하고 먹기도 잘 먹는 걸 보면 정말 아무 이상도 없는 모양이네.

고미가 무사한 것을 확인한 나는 잠시 방치(?)되어 있던 새로운 방패를 향해 다가가 그것을 집어 들었다.

방패의 생김새는, 딱 영지버섯 그 자체였다.

버섯의 중심부는 검붉은 색에, 바깥쪽으로 갈수록 고미의 털빛과 비슷한 초콜릿 색에 가까워졌다가, 방패의 모서리 부분에 이르러서는 은은한 황금빛을 띠고 있었다.

‘삼색 영지버섯? 초코 영지버섯? 황금 영지버섯? 이름을 뭘로 하지?’

그리고 방패 전체에서 저녁노을처럼 살짝 붉은 빛을 띤 금빛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한눈에 보기에도 지금까지 만든 모든 장비 중 최고의 걸작이라는 것을 알 수 있는 느낌.

“오오, 수하! 어서, 어서 그 방패의 성능을 시험해 보거라! 그럼 그 녀석에게 아주 멋진 이름을 붙여주겠다!”

기운을 차린 고미가 기대감으로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사실 ‘곰정사’ 스킬을 사용하면 곧장 어떤 아이템인지 알 수 있지만······.

지금은 시위 중이니 실험으로 확인하는 수밖에.

“그럼 우선 불꽃부터 확인해 볼까?”

말을 마치기 무섭게 인간, 아니, 드래곤 가스레인지 이유찬 씨가 커다란 블랙 드래곤으로 변화해 불꽃을 뿜을 준비를 마쳤다.

“불꽃이 너무 강하다 싶으면 말씀해 주십시오. 천천히 온도를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조금 위험하기는 하지만, 방패의 성능 테스트는 내가 아니면 할 수 없었다.

고미의 무기는 내가 쓸 때만 제대로 된 위력을 발휘하니까.

“그럼, 시작해 보겠습니다!

말을 마치기 무섭게 검붉은 화염이 방패를 향해 날아들었다.

내 몸에는 닿지 않고, 방패 위만 절묘하게 가열하는, 실로 완벽한 화력 조절.

제르보나 씨는 이렇게 화력 조절을 잘하지는 못하는 것 같던데.

‘설마 요리를 하면서 불 조절을 하는 요령이라도 익힌 걸까.’

영지버섯의 내열성은 드래곤의 브레스를 앞에 두고도 딴생각을 할 수 있을 정도로 뛰어났다.

‘화염 망토와 중복되는 능력이기는 하지만, 옵션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으니까······.’하는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오오오! 수하! 방패의 색이 변하고 있다!”

고미가 잔뜩 흥분한 표정으로 통통한 손가락을 들어 영지버섯을 가리켰다.

“뭐?”

나는 뒤쪽에 서 있으니, 방패의 색이 변하는 것을 알 수가 없었다.

“방패 전체가 빨갛게 변하고 있어요!”

고미에 이어 한유진 씨가 좀 더 정확하게 상황을 일러주었다.

그러던 어느 순간,

“오오오! 수하! 방패 위에 위대한 곰의 문양이 생겼느니라!”

뭐, 뭐야, 어떻게 돌아가는 건데! 궁금해!

“유찬 씨, 잠깐만 멈춰 주세요!”

이유찬 씨는 곧바로 불꽃을 뿜는 것을 멈추었고, 나는 곧바로 방패를 뒤집어 어떤 변화가 생겼는지를 확인했다.

“젤리?”

그렇다. 영지버섯의 중심부에는 아주 선명하게 고미의 젤리와 똑 닮은 문양이 생겨나 있었다.

설마······. 휘두르면 화염이 폭발하는 건가?

“수하! 자! 이 몸을 향해 위대한 곰의 힘을 폭발시켜 보거라!”

젤리 문양이 흐려지는 것을 본 고미가 후다닥 나에게 달려오며 외쳤다.

“아, 알겠어!”

이어서 고미의 솜방망이를 향해 방패를 휘두르자,

- 우우웅!

기이한 소리가 울리며 방패에서 검붉은 화염이 폭발했다.

“우웃!”

쾅!

폭발이 만들어 낸 위력은, 고미마저 놀라 눈을 치켜뜰 정도.

“괴, 굉장하구나! 이, 이런 웅장한 기운을 뿜어낼 수 있다니! 수하! 이 방패와 함께라면 너도 진정한 곰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음······. 항상 앞은 괜찮은데 뒤에 이어지는 문장이 이상하다. 아무리 그래도, 곰이 되는 건 무리지.

그렇게 신제품 시연회(?)가 한창일 때, 이강혁 씨가 기대에 찬 눈으로 입을 열었다.

“번개도 흡수할 수 있지 않을까요?”

“아, 그렇겠네요. 그럼 번개는 제가 해볼게요.”

알틴의 번개 마법은 위력은 강하지만 조절이 잘 안 된다는 문제가 있으니, 두 번째 테스터는 한유진 씨로 결정이 되었다.

- 콰르릉!

그녀의 손에서 뿜어져 나온 번개가 영지버섯을 강타하는 순간, 이번에는 방패 전체가 눈부신 황금색으로 물들었다.

이어지는 실험을 통해, 우리는 몇 가지 추가적인 옵션을 확인할 수 있었다.

원리는 간단했다.

공격을 막아낼 때마다 방패가 충전된다.

번개 공격을 막아내면 금색, 화염 공격을 막아내면 붉은색, 물리 공격을 막아내면 방패는 초콜릿색.

그리고 젤리 문양이 떠오르면 그동안 방패에 축적된 데미지를 일시에 방출할 수 있다.

추정컨대, 방패의 등급은 S급 이상일 것 같았다.

어쩌면 최초의 Gomi급 장비일지도 모르고.

이 외에도 뭔가 다른 옵션이 숨어있을 것 같기는 했지만, 일단은 이 정도만 알아도 충분하지.

“으음······. 이 녀석의 이름을 무엇으로 해야 할지 모르겠구나. 신병에 걸맞은 부끄럽지 않은 이름을 만들어 주어야 할 텐데······.”

자신의 작품에 만족한 고미는 신병에 어떤 이름을 붙여줄까 고민했고, 우리는 곧 있을 ‘흑암’과의 전쟁에 대비하기 위한 회의를 시작했다.

“흑암이 아무런 계산도 없이 거래에 응할 리가 없습니다. 틀림없이 함정을 파둘 겁니다. 설령 정당한 거래라 하더라도 절대 단독으로 저희에게 맞서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러니 저희도 전쟁을 치른다는 각오로 준비를 해야 할 겁니다.”

이강혁 씨가 결연한 표정으로 눈을 빛내며 말했다.

삼룡이 패밀리 역시 그 생각에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고, 나 역시 그들과 생각이 같았다.

“걱정 말거라. 그놈이 어떤 준비를 하든, 위대한 이 몸 앞에서는 아무런 의미도 없을 것이니라!”

고미는 자신감이 넘치는 표정으로 가슴을 팡팡 두드리며 그렇게 말했지만, 녀석에게 모든 걸 맡길 생각은 없었다.

그럴 거면 이렇게 준비를 하지도 않았을 거고.

“아니야, 고미. 이번에는 다 같이 싸우자.”

하지만 나의 말에 고미는 한사코 고개를 저으며 자신이 모든 것을 해결하겠노라 고집을 부려댔다.

“왜 그래, 고미. 너무 위험하다니까.”

“맞아요, 이번에는 토생원 때와는 다르다니까요. 고미 님 혼자서 싸우다가는 정말로 위험할지도 몰라요. 이번에는 군대가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고요.”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그렇습니다, 곰 선생님. 저희도 곰 선생님을 도와서······.”

“삐이이이!”

알틴까지 나서서 함께 싸우겠다는 의지를 표명하자,

“하, 하지만······. 너, 너희들이 다치는 것은 싫단 말이다······.”

고미는 고개를 떨구며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다.

“이, 이 몸과 함께 싸우다가 너희들이 다치기라도 한다면······. 이 몸은 겨, 견딜 수가 없다.”

고미의 얼굴에는, 여태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던 표정이 걸려 있었다.

두려움. 걱정.

그 어떤 몬스터도, 인류를 멸망시킬 강력한 초월자도 두려워하지 않던 녀석이, 친구들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처음으로 두려움을 느끼고 있었다.

우리가 다칠까 걱정이 되어 혼자 맞서겠다는 말에, 장내에는 잠시 적막이 감돌았다.

그렇게 모두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입을 다물고 있을 때, 이강혁 씨가 입을 열었다.

“곰 선생님, 선생님은 지금까지 홀로 인간들을 지켜오지 않으셨습니까? 그리고, 선생님이 없었다면 이번에도 인간들은 똑같은 결말을 맞았을 것입니다.”

“하, 하지만······.”

“저는 그들에게 맞서기 위해 세 번의 삶을 살았습니다. 그리고, 그 세 번의 삶이, 곰 선생님을 찾아 모든 것을 떠넘기라고 주어진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이강혁 씨는 부드러운 눈빛으로 고미를 바라보며 말을 이어나갔다.

“선생님이 다치거나 죽는다면, 저희도 곰 선생님만큼 마음이 아플 것입니다. 그리고, 어차피 세상은 멸망을 맞이하겠지요. 그보다는 할 수 있을 때 함께 힘을 합쳐 맞서는 것이 낫지 않겠습니까?”

“그래요. 설령 고미님이 혼자서 흑암의 지배자를 처리한다고 해도, 제가 마일로스트 님한테 죽을지도 몰라요. 저 좀 살려 주세요.”

이강혁 씨에 이어 한유진 씨가 농담 섞인 어조로 함께 싸우자고 말하자, 고미의 커다란 눈망울에 그렁그렁 눈물이 맺혔다.

“그, 그럼, 이 몸이 단숨에 흑암의 지배자를 처리할 테니, 저, 절대로 죽지 않겠다고 약속하거라!”

고미의 말에 한유진 씨는 생긋 웃으며 손가락을 내밀었다.

“네, 약속할게요.”

“우웅?”

“이렇게, 이렇게 손가락을 거는 거예요. 절대로 약속을 어기지 않겠다는 맹세죠.”

한유진 씨의 손가락이 자신의 손가락에 걸리자, 고미는 언제 그랬냐는 듯 눈을 반짝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후 우리는 흑암의 지배자를 쓰러뜨리기 위한 구체적인 전략을 세워나갔다.

그렇게 대략적인 전략의 얼개가 나오고, 필요한 물건들과 각자의 임무가 주어졌을 때 즈음······.

“수, 수하! 문어 할아범이다! 문어 할아범에게 전화가 왔느니라!”

노인국 씨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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