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아기곰이 너무 강함-132화 (132/300)

EP.132 영혼을 담아라

고미와 나는 이강혁 씨에게 연락을 취한 뒤 이제는 명실상부한 숲속 친구들의 아지트가 된 한유진 씨의 집으로 향했다.

초인종을 누르자, 언제나처럼 제르보나 씨가 정중한 태도로 문을 열어주었다.

“오셨군요.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오늘 그녀의 표정은 지금까지 본 것 중에 가장 여유가 없어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흑암의 지배자는 토생원과 달리 진짜 위험한 초월자니까.

안으로 들어가니 다른 숲속 친구들 역시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 보였다.

가장 눈에 띄게 굳어 있는 사람은, 역시나 이강혁 씨였다.

그는 벌써 두 번이나 멸망을 경험했고, 그 배후에는 언제나 흑암의 지배자가 있었으니까.

하지만 단 한 명, 전혀 긴장하지 않은 숲속 친구가 있었으니······.

- 삐이이이!

“오오오! 작은 금동이! 드디어 깨어난 것이냐!”

드디어 마력이 다 채워진 알틴은 조그마한 황금색 날개를 열심히 파닥이며 고미의 주위를 정신없이 날아다녔다.

- 삐이, 삐이이이!

“산신령님이 주신 약을 먹였더니, 전보다 훨씬 건강해졌어요. 전처럼 마력을 조금 쓴다고 금방 쓰러지지도 않고, 마법을 쓴 뒤에도 별로 피곤해하지도 않고요.”

한유진 씨가 고미와 함께 신나게 풀밭을 구르고 있는 알틴을 바라보며 말했다.

“다행이네요.”

아기곰과 아기용이 열심히 풀밭을 뛰어다니며 노는 모습에 잔뜩 무거웠던 분위기도 조금은 가벼워졌고, 전에 없이 딱딱하게 굳어 있던 이강혁 씨의 입가에도 옅은 미소가 번졌다.

“부탁하신 물건입니다.”

흐뭇하게 그 모습을 바라보던 이강혁 씨는 천천히 나에게 다가와 고미가 선물(?)했던 ‘부메랑’을 내밀었다.

이강혁 씨 역시 고미가 만든 물건은 내가 쓸 때만 의미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니 당연히 부메랑이 그저 부러진 검, 아니, 고철 덩어리에 불과하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을 버리지 않고 자신의 집안에 고이 모셔두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세 번의 회귀 끝에 만난 ‘친구’와의 추억이 깃든 물건이니까.

“후훗, 좋다. 허수아비, 위대한 이 몸의 권능으로 너의 검에 혼을 불어넣어 주마.”

“감사합니다, 곰 선생님!”

- 삐이! 삐이이!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던 알틴은 부메랑을 바라보며 몇 번이고 힘찬 울음을 내뱉었고,

“자, 그럼 또 제가 나설 차례가 된 것 같군요.”

‘흑염대웅신검’의 제작을 도왔던 이유찬 씨 역시 부메랑을 바라보며 팔을 걷어붙였다.

“잠시만요.”

내가 손을 들어 자신을 막자, 이유찬 씨가 의아하다는 듯 눈을 깜빡이며 나를 바라봤다.

확실히 두 사람의 열정이 담기면 더 엄청난 물건이 나오겠지만······.

아직은 이유찬 씨가 나설 때가 아니거든.

“본격적인 제작에 앞서서 확인해 보고 싶은 게 있거든요.”

말을 마친 나는 곧바로 금이 간 핵 빠따와 보라 찐빵, 그리고 티타늄 주걱을 꺼내 들었다.

갑자기 예전에 쓰던 무기들을 우수수 쏟아내자, 숲속 친구들이 호기심 어린 눈길로 나를 바라봤다.

“고미, 시작하자.”

말을 마치기 무섭게 고미의 젤리가 붉게 달아올랐고,

“좋아, 간닷! 조물, 조물!”

추억이 깃든 세 개의 무기가 빠르게 검은색의 점토 덩어리로 변했다.

“오오······.”

“괴, 굉장하군요.”

“고, 곰 선생님! 이렇게 실력이 느셨을 줄이야.”

그간 다양한 제작법을 시도해보고 주먹밥도 만들어본 덕일까? 고미의 제작 능력에는 실로 장족의 발전이 있었다.

아직 무기의 형태조차 나오지는 않았지만, 이전에는 이 단계에서부터 망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눈이 달린 사람이라면 ‘텄네, 텄어.’,‘볼 것도 없네.’하고 혀를 찰만한, 딱 그런 생김새.

반죽 전체에 불규칙하게 젤리 자국이 찍혀있고, 곳곳이 울퉁불퉁하고 움푹움푹 패여 도저히 제대로 된 물건이 나올 거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굉장해, 젤리 자국도 제법 옅고, 요철도 이삼십 개밖에 되지 않아.’

수박만 한 점토 덩어리 하나에 요철이 삼십 개, 적다고는 할 수 없었지만, 고미에게 있어서는 기적과도 같은 성과였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구체라는 걸 알아볼 수는 있잖아.

그것만으로도 대단한 거라고.

“으음!? 이럴 수가, 이 몸이 드디어 명곰(名工)의 경지에 이른 모양이다!”

고미 역시 자신의 제작 실력이 일취월장한 것을 느꼈는지, 연신 귀를 쫑긋거리며 숲속 친구들을 둘러보았다.

음, 아무리 그래도 스스로 명곰··· 이라고 할 수준은 아닌 것 같은데······.

“기다려라 수하, 이번에는 정말로 굉장한 물건이 나올 것 같다!”

신이 난 고미는 자신의 젤리로 그 반죽을 꾹꾹 눌러 빠르게 찐빵의 형태를 잡아갔다.

“음······. 그런데, 지금 뭘 하고 있는 건지 여쭤봐도 될까요? 용왕의 방패를 얻었는데 왜 굳이······.”

고미가 방패를 만들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린 한유진 씨가 나를 바라보며 물었다.

반죽이 넓으면 방패, 어쨌든 막대기에 가까운 형태를 띠면 무기.

숲속 친구라면 반드시 알아야 하는 생활상식이지.

“실험이요. 이렇게 하면 완전히 랜덤인 옵션을 어느 정도 선까지는 조절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요.”

“네? 그런 게 가능해요?”

나의 대답에 한유진 씨의 눈이 동그랗게 변했다.

“일단 결과를 보면 알겠죠.”

사실 이건 ‘흑염대웅신검’이 완성됐을 때부터 가지고 있던 의문이었다.

고미의 ‘조물조물’로 만든 물건의 옵션이 정말로 재료나 제작 과정에 의해 아무런 영향도 받지 않는다면, 어째서 드래곤의 뿔과 브레스가 들어간 ‘흑염대웅신검’은 불과 관련된 능력을 가지고 있는 걸까?

보라 찐빵과 티타늄 주걱, 핵 빠따에 사용된 마력 철과 마정석은 모두 산신령님과 이강혁 씨에게 받은 것이라, 그 출처를 알 수 없었다.

즉, 내가 인지하지 못했을 뿐, 실은 고미가 만들어낸 아이템은 그 재료의 특징을 반영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거지.

“자! 수하! 어서 실험을 해보거라!”

때맞춰 방패를 완성한 고미가 쪼르륵 달려와 그것을 나에게 내밀었다.

“자, 그럼 해볼까요?”

신호를 보내자, 이강혁 씨가 즉시 자신의 장검을 뽑아 들었다.

“시작하겠습니다.”

쉬익-

말을 마치기 무섭게 이강혁 씨의 검이 나의 방패를 향해 날아들었고, ‘깡’하는 날카로운 쇳소리와 함께 불똥이 튀었다.

그렇게 두 번, 세 번, 합을 맞춰 방패로 검을 막아내자······.

우우우웅-

신형 찐빵이 붉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수, 수하! 성공이구나! 방패에 열풍대웅신검의 혼이 깃들었다!”

이어서 드래곤으로 변한 이유찬 씨가 나의 앞을 가로막았다.

“자, 공격해 보십시오!”

한눈에 보기에도 범상치 않아 보이는 위력.

이강혁 씨라면 검기를 사용하지 않고는 막아낼 수 없을 테고, 자칫하면 둘 중 하나가 다칠지도 모를까 염려되어 직접 나선 것이 분명했다.

“조심하세요!”

블랙 드래곤의 커다란 앞발을 향해 방패를 휘두르자,

콰앙-!

굉음과 함께 황금색의 화염이 폭발했다.

“굉장하군요······.”

공격을 받아낸 이유찬 씨가 자신의 손바닥을 들여다보며 홀린 듯 중얼거렸다.

“B급 아이템 정도의 위력은 나오는 것 같습니다.”

신형 방패에 사용된 재료는 모두 C급 이하.

게다가 공격이 아니라 방어가 주목적인 아이템의 공격력이 이 정도라는 건······.

“우웃, 수하! 어서, 어서 새로운 방패를 만들어 보자꾸나, 이번에는 흑염대웅신검을 능가하는 진정한 신병이 나올 것 같다!”

실험 결과를 확인한 고미는 그 어느 때보다도 열정적인 태도로 허공에 대고 열심히 꾹꾹이를 해댔다.

“좋아, 이유찬 씨, 그럼 부탁 좀 드릴게요.”

나는 그렇게 말하며 ‘저주받은 숲’에서 얻은 마력 철을 고미에게 넘겨주었다.

“걱정 마십시오.”

모처럼 활약할 기회를 찾은 이유찬 씨 역시 의욕으로 눈을 불태우며 한껏 마력을 끌어올렸고,

“간닷!”

고미의 젤리가 또다시 눈부신 빛을 뿜어내며 부메랑과 신형 방패, A급 마력 철을 모두 한 데 뭉쳐 커다란 반죽을 만들어냈다.

“고미! 받아!”

고북 대왕에게 받은 용왕의 방패를 넘겨주자, 고미는 빠르게 그것을 ‘틀’ 삼아 그 위에 반죽을 치덕치덕 덧바르기 시작했다.

“검은콩! 지금이다!”

“가겠습니다 고미님!”

이어서 시커먼 화염이 토해지고, 고미는 문자 그대로 ‘불꽃 속에서’ 작업을 이어나갔다.

“어어······?”

바로 그때, 한유진 씨의 입에서 경악에 찬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아, 알틴! 안돼!”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려보자, 알틴의 눈에서 시퍼런 전광이 일고 있는 것이 시야에 들어왔다.

하지만 놀라기에는 아직 일렀으니······.

- 우르릉······.

어느새 우리의 머리 위에는 시커먼 먹구름이 드리워 있었다.

“알틴! 안돼! 멈춰!”

당황한 한유진 씨가 알틴에게 다가가지도 못하고 발을 동동 구르며 외쳤다.

표정으로 보나 몸짓으로 보나, 지금 알틴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것이 그녀도 감당할 수 없는 위력을 가진 뇌전(雷電)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하, 한유진 씨, 알틴이 갑자기 왜 저러는 거예요?”

알틴이 번개를 뿜는다는 것 정도는 나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날씨를 바꾸는 수준의 마법을 쓸 수 있으리라고는,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

“저, 저도 모, 모르겠어요!”

그렇게 우리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을 때,

“작은 금동이! 훌륭하다!”

불꽃 작업을 이어나가던 고미의 목소리가 우리의 귓등을 때렸다.

자, 잠깐, 설마! 아까 부메랑을 보고 계속 울어댔던 게······.

“그래, 그것이다! 너와 금동이의 혼을 담아다오!”

이, 이건 아니잖아.

화염으로도 모자라서, 번개를 맞으면서 무기를 만들 거라고!?

말릴 새도 없이 하늘을 뒤덮은 먹구름은 거대한 소용돌이로 변했고,

- 파지직······!

부메랑을 녹여 만든 반죽에서도 새파란 전광이 일기 시작했다.

‘부메랑에 담긴 뇌전의 힘하고 알틴의 마법이 공명이라도 하는 건가?’

그 순간, 나의 추측을 증명이라도 하듯, 소용돌이에서 뻗어 나온 가느다란 번개들과 반죽의 전광이 이어지기 시작했다.

“수하, 허수아비, 삼룡 어멈! 모두 떨어져라!”

우렁찬 외침과 함께 고미의 몸이 황금색으로 변하고, 붉게 달아올랐던 젤리에서 눈부신 금색 섬광이 터져 나왔다.

마치 지상에 태양이 내려온 듯, 엄청난 빛.

그리고······.

- 콰르르르릉!

고막을 터뜨릴 것 같은 무시무시한 굉음과 함께 수 미터에 달하는 굵은 번개가 고미를 향해 떨어졌다.

“와라!”

- 콰릉!

“더!”

두 번, 세 번······. 황금 곰으로 변한 고미의 머리 위로 떨어지던 번개마저 금빛으로 물들었다.

“더 세게! 너와 금동이의 혼을 나에게 다오!”

- 삐이이이!

······.

으아아아, 무, 무슨 혼을 이렇게 과격하게 담는 거냐.

제발 평범하게 진행해 줄 수는 없는 거냐고······.

- 콰릉!

그렇게 아홉 번째 번개가 내리쳤을 무렵, 귀가 먹먹해져 모든 소리가 흐릿하게 들리고, 너무나 밝은 빛에 의해 눈조차 뜰 수 없었다.

“······. 이다······.”

잠시 후, 모든 기운을 쏟아낸 듯 기진맥진한 고미의 목소리가 들려오고, 눈부신 빛이 서서히 잦아들었다.

눈을 뜨자, 저녁노을처럼 붉은색과 황금색이 뒤섞인 섬광 속에 서 있는 익숙한 솜뭉치의 그림자가 나의 눈에 들어왔다.

“받··· 거라······. 이것이······.”

모든 기력을 쏟아낸 고미는 더이상 서 있을 힘조차 없다는 듯 털썩 무릎을 꿇었다.

“너를··· 지켜줄··· 것이다······.”

녀석의 손에는, 커다란 황금색 영지버섯이 들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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