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30 가짜 삼돌이의 위력
지금 내 등 뒤에는 문자 그대로 ‘집채만 한’ 머리 셋 달린 개가 서 있었다.
‘자, 잠깐만. 이런 얘기는 없었잖아. 뭐가 이렇게 커.’
이강혁 씨의 말에 따르면, 케르베로스의 크기는 기껏해야 조금 커다란 사자 정도였다.
그런데 지금 이건······.
‘이만한 사자가 어딨어요, 이강혁 씨. 이건 거의 코끼리잖아. 발목이 내 몸통보다 더 굵은데······.’
생김새도 케르베로스라고 부르기에는 조금 무리가 있어 보였다.
중앙에 있는 머리는 개보다는 늑대에 가까워 보이고, 왼쪽에 있는 머리는 사자와 비슷한 생김새를 하고 있었다.
개라고 할만한 머리는 오른쪽 하나 뿐인데······.
‘얘는 왜 눈동자가 세 개냐고! 무서워서 눈도 못 마주치겠네, 진짜!’
게다가 세 개의 눈동자가 번들번들 빛나며 따로따로 움직이는 게, 보기만 해도 온몸의 털이 쭈뼛쭈뼛 곤두서는 느낌이었다.
놈의 피부는 털이라고는 하나도 없이 강철처럼 윤기가 흐르는 검은 색을 띠고 있었으며, 꼬리가 달려 있어야 할 곳에는 머리 두 개 달린 뱀이 붙어있었다.
[ 흐으음······. ]
한편, 고미는 그 흉악한 생김새에도 전혀 놀라지 않은 듯 연신 고개를 갸웃거리며 삼돌이의 머리 중 하나를 유심히 바라보고 있었다.
아무리 무섭게 생긴 친구들을 많이 봤다고 해도 그렇지, 어떻게 이렇게 태연할 수 있는 거냐.
난 쫄아서 눈도 못 마주치겠는데······.
[ 이상하구나, 아무리 보아도 이 가짜 삼돌이의 중앙에 달린 머리가 낯설지가 않은데······. ]
- 크, 크릉!?
고미가 자신을 유심히 바라보자, 중앙에 있는 늑대 머리가 무언가를 느낀 듯 귀를 눕히며 겁을 먹은 표정을······.
‘잠깐, 뭔가를 느낀다고?’
지금 고미는 살곰살곰을 사용한 상태였다.
그런데, 고미가 자기를 보는 걸 알아차리고 겁을 먹는다고?
[ 고, 고미, 지금 저 중앙에 있는 머리가 네가 있는 걸 느끼는 것 같은데? ]
설마, 탐지 능력을 가지고 있는 머리인가? 그것도 살곰살곰을 간파할 정도로 뛰어난 수준의 탐지 능력을?
[고, 고미! 이 녀석이 네가 있는걸 아는 것 같다니까!]
예상치도 못한 난관, 그것도 자칫하면 모든 게 어그러질 수도 있는 수준의 문제였다.
설마하니 살곰살곰을 쓴 고미의 기척을 느낄 수 있는 괴물이 있을 줄이야······.
다급한 나의 전음에 고미는 몸을 숨기기는커녕 더욱 똑바로 녀석을 바라보더니 가볍게 손을 휘휘 저었다.
[ 흐음, 걱정 말거라, 이 녀석은 뭔가가 있다고 느낄 수 있을 뿐, 이 몸의 존재를 완전히 알아채지는 못하고 있느니라. ]
고미의 말에 놀란 가슴이 조금 진정되기는 했지만, 그래도 찝찝한 느낌을 완전히 지울 수는 없었다.
- 으르릉······.
그때, 머리 1호, 그러니까 사자 머리가 낮은 울음소리를 토했다.
그러자, A급 하위인 몬스터인 저주받은 병사들은 물론이고, A급 상위에 속하는 강철 기사까지 주춤거리며 잠시 발을 멈추었다.
‘A급 몬스터를 상대로도 먹히는 수준의 위압스킬까지 가지고 있는 건가.’
이어서 케르베로스의 거대한 몸뚱이가 검은 호를 그리며 적진으로 뛰어들었다.
- 키할라! 키할라!
- 이카! 이카!
거대한 괴수가 앞발을 휘두를 때마다 저주받은 병사들은 형체조차 알아보기 어려운 수준으로 뭉개졌고,
캉, 캉!
놈들의 화살과 검은 쇳덩이에 부딪힌 것처럼 날카로운 금속성을 울리며 튕겨 나갔다
‘자, 장난 아닌데.’
정말 내가 이런 놈을 막을 수 있을까?
그렇게 상상을 초월하는 케르베로스의 위용에 넋을 놓고 있을 때,
[ 수하! 문어 할아범이 이상하다! ]
고미의 목소리가 나의 정신을 되돌려 놓았다.
고개를 돌려보자, 줄곧 침착하게 소환수를 조종하고 있던 노인국 씨가 고통으로 얼굴을 일그러뜨리고 있는 것이 보였다.
“으, 으으윽······.”
잠시 후, 노인국이 자신의 한쪽 손으로 머리를 감싸 쥔 채 바닥에 무릎을 꿇으며 외쳤다.
“최, 최진웅! 빨리! 빨리 보스를 처리해야 하네!”
마치 다른 사람처럼 거칠어진 목소리와 말투, 고문이라도 당하는 것처럼 고통으로 물든 표정.
‘저렇게까지 하면서 얻으려는 보상이 뭔지 궁금하네.’
나는 곧바로 고개를 끄덕인 뒤 고미에게 시선을 옮겼다.
[ 고미, 청심환! ]
지금 노인국은 제 몸을 추스르고 케르베로스를 조종하기도 벅찬 상태.
왜 저렇게 된 건지는 곧 알 수 있겠지.
지금은 저 사람이 정신이 없는 사람 틈을 타서 빨리 상황을 정리하는 게 낫다.
그거 말고는 일을 진행시킬 다른 방법이 있어 보이지도 않고.
“내가 길을 뚫지! 케르베로스로 보스를 노려!”
나는 그렇게 외치며 젤리 원자로의 푸른빛으로 온몸을 감쌌다.
예전에는 기를 다루는 능력이 부족해 사용하지 못했던, 바로 그 기술이었다.
‘흑염대웅신검’이 아니면 청심환까지 먹은 상태의 내 곰기를 무기가 버티지 못한다.
그러니 지금은 기곰술로 몸을 보호하고, 고미와 합을 맞춰서 몬스터를 쓸어버리는 게 최선의 선택이다.
봉식이만큼은 아니어도, 이렇게 하면 내 몸도 더 튼튼해지겠지.
[ 우웃! 수하! 드디어 너도 곰강불괴신공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구나! ]
고, 곰강불괴라니, 언제부터 그런 이름이 붙은 건데.
[ 가자, 고미! ]
젤리 원자로의 에너지를 무기가 아닌 나의 몸으로 돌리자, 이전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수준으로 발이 가벼워진 것이 느껴졌다.
가볍게 한번 발을 디뎠을 뿐인데도 나의 몸은 축지법이라도 쓰듯 수 미터에 달하는 길이를 단번에 이동했고,
[ 간닷! 웅조수! ]
콰드드득!
손을 휘두르자, 푸른색의 섬광이 번뜩이며 수십 마리의 몬스터가 폭풍에 휩쓸리는 낙엽처럼 날아갔다.
‘괴, 굉장하네.’
물론, 실제로 내 웅조수에 맞고 쓰러진 건 서넛밖에 되지 않았고, 나머지는 모두 고미의 웅조수에 박살이 난 것이지만······.
한 마리든 두 마리든, 맨손으로 A급 몬스터를 때려잡을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에 짜릿한 전율이 온몸을 타고 흘렀다.
[ 오오, 수하! 너의 웅조수도 제법이구나! 하지만 아직 조금 부족하다! 처음에는 가볍게 휘두르다가, 마지막 순간에 손끝에 기를 모아 위대한 곰이 꿀통을 잡듯 움켜쥐는 것이다! ]
음······. 언제나 그렇지만, 참 알 듯 모를듯한 설명이란 말이지.
콰드득!
그렇게 양 떼 사이에 뛰어든 늑대, 아니, 진짜 곰이 된 기분을 만끽하며 놈들의 좌익을 반쯤 무너뜨렸을 때,
- 이카! 이카!
함성과 함께 수백 발의 화살이 하늘을 새카맣게 뒤덮으며 날아왔다.
[ 수하, 손을 휘둘러라! 이 몸이 저 화살을 모두 되돌려 보내겠다! ]
고미의 지시에 따라 푸른 빛을 내뿜는 두 손을 교차시켜 태극문양을 그리자, 굉음과 함께 거대한 기의 회오리가 나타났다.
콰우우웅!
무형의 소용돌이는 수백 발의 화살을 모조리 빨아들였고, 뇌성과 함께 폭발을 일으키며 사방으로 화살을 흩뿌렸다.
다음 순간, 고미의 기를 머금은 화살이 주위의 나무와 바위, 갑주를 두른 몬스터들의 몸을 관통하며 곳곳에서 처절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 이테! 이테!
“노인국!”
신호를 보내자, 완전히 붕괴된 좌익으로 집채만 한 케르베로스가 달려왔다.
콰드득!
머리 셋 달린 괴물은 번개처럼 좌우에 달린 두 개의 머리로 전신에 두꺼운 갑주를 두른 보스의 두 팔을 봉쇄했고,
- 크오오오!
중앙에 있는 늑대 머리가 시뻘건 화염을 토해냈다.
‘부, 불꽃까지 쓸 수 있는 거야?’
늑대 머리가 뿜어낸 화염은 은색의 갑옷을 새카맣게 태우는 것을 넘어, 갑옷째 보스를 녹여버릴 수 있을 정도로 강력했다.
A급 보스 몬스터를 단숨에 녹여버릴 수 있는 화염에, 수백 발의 검과 화살을 튕겨내는 피부, 압도적인 크기와 속도, 힘까지······.
과연 초월자가 직접 만들어낸 괴물다운 압도적인 위력이었다.
‘저기에 히드라의 독까지 더해지면······.’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저도 모르게 등줄기에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그야말로 전대미문의 생체 병기······.
삼룡이 패밀리와 이강혁 씨가 함께 달려들어도 무사히 이 녀석을 쓰러뜨릴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바로 그때, 고미가 손뼉을 치며 방금 전 화염을 토해낸 늑대 머리를 가리켰다.
[ 생각이 났느니라! 이 녀석, 만수왕의 오른팔이었던 적염낭왕이라는 녀석이다! ]
[ 뭐? ]
만수왕의 부하를, 흑암의 지배자가 키메라로 만들었다고?
[ 얼굴이 숯처럼 검어져서 알아보지 못했지만, 불을 토하는 것을 보니 확실하다! 이 녀석은 과거에도 어설프게나마 이 몸의 기운을 느낄 수 있었지! ]
[ 너한테 당한 거야? ]
[ 그렇다! 이 녀석은 제 주인인 만수왕과는 달리 제법 용맹한 녀석이었지. 한데 이렇게 가짜 삼돌이가 되어있는 것을 보니······. 영 기분이 좋질 않구나. ]
고미의 목소리에는 약간의 씁쓸함과 분노가 묻어났다.
한편, 그 이야기를 들은 나의 머릿속은 전에 없이 분주했다.
흑암이 적염낭왕의 시체를 몰래 빼돌려 키메라로 만든 걸까? 아니면, 만수왕도 이 사실을 알고 있을까?
둘 다 파괴와 멸망을 추구하는 존재이니, 손을 잡았다고 보는 편이 합리적일 것 같기는 한데······.
그렇다면, 흑암을 잡으려 할 때 만수왕이 개입할 가능성은?
그렇게 여러 가지 가능성을 검토하고, 앞으로 벌어질 일들을 가늠하며 전투를 이어나가는 사이, 케르베로스가 두 번째 보스를 처리했고, 연달아 세 번째 보스를 덮쳤다.
‘응?’
그리고 케르베로스가 마지막 보스를 처리하는 순간, 무언가 이상한 것이 나의 시야에 들어왔다.
‘저 뱀 머리, 왜 저러지?’
두 개의 뱀 머리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줄곧 별다른 역할을 하지 않았다.
심지어 후방에서 적이 덮치는데도 뱀 머리로 대적하는 게 아니라, 굳이 몸을 돌려 머리나 앞다리로 적을 처리해왔다.
‘폼으로 달린 건가?’
그럴 리는 없다.
뛰어난 탐지능력, 정신지배, 불꽃, 강철 같은 피부, 압도적인 힘과 속도, 앞으로 추가될 독 능력까지 합치면, 이 녀석은 철저하게 전투를 위해 태어난 생물이다.
‘그런 괴물에게 멋으로 뱀 머리 같은 걸 달아놓을 리가 없지.’
그렇게 생각을 정리하며 뱀 머리의 움직임을 주시하던 어느 순간, 나는 녀석들의 역할이 무엇인지 깨달았다.
‘감시하고 있어.’
두 개의 머리 중 하나는 나, 나머지 하나는 노인국의 움직임에 따라 움직이고 있다.
틀림없다. 저 뱀 머리는 적을 처리하기 위해 만들어진 게 아니라, 노인국을 감시하기 위해 붙인 거야.
하지만 나는 그렇다 쳐도, 왜 노인국을?
“크으윽, 최진웅! 마무리는 너에게··· 맡겨도 되겠지······?”
마지막 보스가 케르베로스의 이빨에 의해 갈가리 찢어지자, 노인국이 바닥에 털썩 주저앉으며 중얼거렸다.
“그렇게 하지.”
나는 상태가 영 좋아 보이지 않는 노인국을 놔둔 채 남아있는 몬스터들을 빠르게 정리했고, 강철 기사의 잔해에서 아이템 큐브를 회수해 그의 곁으로 돌아갔다.
“그렇게 힘들면 이제 그만 소환을 해제하지 그래?”
나의 말에 노인국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아무런 답도 내놓지 않았다.
고작 몇 분 사이에 그의 몸은 비라도 맞은 것처럼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다른 사람이 보면 내가 아니라 노인국이 직접 몸으로 전장을 헤집고 다녔다고 느낄 정도로 엄청난 양의 땀.
게다가 얼굴은 하얗다 못해 아예 파랗게 변해 있었고, 이제는 걸어 다니는 송장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생기가 없었다.
“이봐, 괜찮은 거야?”
“으으, 으으으······. 어, 어서, 어서 보스 몬스터의 아이템 큐브를 넘겨 주게, 제, 제발······.”
애원하듯 말하는 노인국의 눈동자는 흰자가 없이 온통 검은색으로 변해 있었다.
‘대, 대체 왜 이러는 거야.’
“무, 무슨 대가라도 치를 테니, 제발 그 아이템 큐브를 넘겨줘!”
노인국이 갈라진 목소리로 그렇게 외치는 순간,
- 크르릉······.
케르베로스가 낮은 울음을 내뱉으며 나에게 다가왔다.
그와 동시에, 꿀태창이 전에 없이 분주하게 반짝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