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아기곰이 너무 강함-129화 (129/300)

EP.129 어린아이의 꿈과 희망에는 값을 매길 수 없다

- 뿌우우!

- 뿌우우!

연이어 울리는 뿔피리 소리에 노인국의 얼굴이 석고상처럼 딱딱하게 굳어갔다.

“이런 염병할······. 이게 어떻게 된 거지?”

그리고는 지금 벌어진 상황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몇 번이나 자신의 손과 서리 법사를 번갈아 바라봤다.

[ 후훗, 수하, 됐다! 문어 할아범은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

빙결 마법이 폭발한 곳 근처에서는 아기곰 한 마리가 가볍게 손을 흔들며 솜뭉치에 들러붙은 새하얀 서리를 털어내고 있었다.

노인국은 아무런 실수도 하지 않았다.

그냥 고미가 ‘무형곰기’로 마법을 폭파해 버린 거지.

“이봐, 대체 무슨 실수를 한 거야. 당신답지 않군.”

하지만 나는 이런 불상사가 일어난 것이 순전히 그의 탓이라는 양, 짐짓 짜증스러운 표정을 지어 보였다.

무형곰기는 보이지 않고, 나는 줄곧 자신의 곁에 있었다.

게다가 스킬을 쓰는 조짐도, 어떤 움직임도 없었으니, 억울해도 어쩌겠나, 그냥 자기가 뭔가 실수를 했다고 믿어야지.

그리고 그 실수의 결과로, 사방에서 A급 상위 몬스터인 강철 기사와 저주받은 군대가 몰려오고 있었다.

다른 파티였다면 욕을 바가지로 처먹어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

- 으으으······!

- 케타르! 케타르!

- 호나키아스! 호나키안!

몸 곳곳에 동상과 썩은 부분이 반점처럼 뒤섞여 있는 군인들이 알 수 없는 언어로 무언가를 외치며 우리를 향해 달려왔다.

“할 수 없지. 퇴각하고 다시 할까?”

나는 그렇게 빈정거리며 저주받은 검사에게서 빼앗은 녹슨 철검을 가볍게 흔들어 보였다.

‘저주받은 숲’은 개방형 던전이다.

폐쇄형이라면 한번 실수를 하는 순간 끝이겠지만, 개방형은 몇 번이고 재도전이 가능하다.

즉, 뿔피리가 울리면 죽어라 달아나서 하루나 이틀 정도가 지난 뒤에 다시 클리어하면 그만이라는 소리.

그게 이 던전이 A급치고는 난이도가 낮다는 이야기를 듣는 이유였고.

“됐네. 계속 진행하지. 아직 원하던 재료는 얻지도 못했잖나.”

예상대로, 노인국은 내 퇴각 제안을 거절했다.

그래도 S급인데, 난이도 조금 올라갔다고 곧바로 줄행랑을 치자니, 자존심이 상하겠지.

녹슨 철검에 곰기를 불어넣자, 덜걱거리는 소리와 함께 검이 바르르 떨리는 것이 느껴졌다.

“검기···?”

은은한 빛을 발하는 칼날의 모습에 노인국은 놀란 듯 두 눈을 치켜떴다.

문경준급의 맨손 격투 능력에, 검기까지 사용하는 평행세계의 헌터. 확실히 놀랄만하지.

사실 맨손 격투 능력은 없지만.

“검이 싸구려라 금방 부서질 테니, 앞으로는 실수 없이 잘 좀 부탁하지.”

쉬익- !

나는 그 말을 남기고 검을 휘둘러 노인국을 향해 다가오는 저주받은 검사를 베어 넘겼다.

바로 그때,

- 이카! 이카!

또다시 알 수 없는 언어로 무언가 명령을 내리는 소리가 들려오고,

“젠장!”

그와 동시에 서리 법사가 거대한 얼음벽을 세웠다.

팅! 팅팅!

이어서 정면에서 수십 개의 화살이 얼음벽 위에 쏟아졌다.

“내가 시체를 좀 만들어 보지.”

그렇게 말한 뒤 고미와 합을 맞춰 ‘기곰술’을 쓰는 척 팔을 휘두르자,

콰드득!

저 멀리 거대한 다섯 줄의 고랑이 생겨나며 십여 마리의 저주받은 병사가 산산이 부서졌다.

“이봐! 그렇게 부수면······.”

“뭐야 지금, 내가 당신 뒷수습하고 있는 거 안 보여? 이거 원래 이런 스킬이라고! 온전하게 죽이는 게 쉬운 줄 알아!?”

내가 벌컥 짜증을 내자, 노인국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입을 다물었다.

그렇지, 당신이 이러쿵저러쿵 불만을 토할 입장은 아니지.

연출된 상황이기는 하지만, 지금 당신 실수 때문에 생긴 일을 내가 수습하고 있는 거니까.

나는 그렇게 말한 뒤 노인국이 내 얼굴을 바라보고 있는 것을 확인하고는 피식 웃음을 지었다.

마치 무언가 그리운 일을 추억하는 사람처럼.

“자, 잘 좀 해보자고!”

서리 법사가 검사들의 움직임을 늦추면, 나와 데스나이트가 처리한다.

화살이 날아오면 얼음 방벽으로 막는다.

처음 손발을 맞춰보는 게 맞는 건가 싶을 정도로, 완벽한 호흡이었다.

‘당연하지. 이거 때문에 며칠을 연습했는데.’

「서리 법사와 데스나이트 조합이면 원거리 공격을 얼음 방벽으로 막고, 근거리에 들어온 적을 냉기로 둔화시킨 다음 데스나이트로 처리할 겁니다. 이때 수하 씨는······. 」

나는 이강혁 씨가 일러준 내용을 머릿속으로 복기하며 계속해서 노인국을 보조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데스나이트와 힘을 합쳐 돌진해 온 강철 기사 둘을 처리하는 데 성공했다.

그렇게 수십에 달하는 적병들을 처치했을 무렵, 노인국이 피식 웃음을 흘리며 입을 열었다.

그를 만난 이후로 처음 보는 웃는 표정이었다.

“생각보다 손발이 잘 맞는군. 마치 오래 전부터 알던 사이처럼 말이야.”

좋아, 내가 의도한 대로 생각하고 있군.

‘이쯤이면 된 건가?’

오늘 던전행의 가장 큰 목표는, ‘우리는 모두 친구’ 스킬을 이용해 노인국과 친밀감을 쌓는 것이었다.

흑암의 지배자를 꾀어내 군만두를 먹이려면 결국 노인국의 협력이 필요할 테니까.

가능하면, 그 잘난 케르베로스 얼굴도 좀 보고.

그렇게 수십에 달하는 몬스터를 처리했을 무렵······.

‘뭐야, 왜 이렇게 잘 싸워.’

뭔가 일이 꼬였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어째 내 생각과는 좀 다르게 흘러가는데.’

나와 고미는 일부러 되살려도 전투력을 발휘하지 못할 정도로 철저하게 몬스터들을 파괴하고 있었다.

그래야 위기를 느낀 노인국이 케르베로스를 부를 테니까.

하지만 데스나이트와 서리 법사가 죽인 몬스터의 숫자가 하나둘 늘어나고, 그것을 네크로맨시 스킬로 되살리면서, 점점 더 전황이 우리에게 유리하게 굴러가기 시작한 것이다.

[ 고미! 안 되겠어. 이 아저씨, 생각보다 너무 잘 싸워. ]

[ 으음······. 그렇구나. 설마 이 문어 할아범이 이렇게 잘 싸울 줄은······. ]

고미 역시 나와 생각이 같다는 듯, 턱을 괸 채 고개를 끄덕였다.

[ 그냥 케르베로스는 다음으로 미룰까? ]

이 상태로 오래 끌어봤자, 케르베로스 얼굴 구경하기는 어려울 것 같은데······.

나의 질문에 잠시 고민에 잠겨있던 고미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 아니다. 그래서야 언제까지고 일이 해결되지 않을 것 같구나. ]

확실히, 노인국의 실력은 우리가 생각한 것 이상이었다.

이 정도면 최진웅과 파티를 이루는 한 S급 던전에 들어가서도 케르베로스를 부르는 일은 없지 않을까 걱정이 될 수준.

마력이 바닥날 법도 한데, 마력이 부족한 기미도 보이지 않고, 게다가 며칠 굶은 사람처럼 바싹 마르신 분이 체력은 또 왜 이렇게 좋은 거냐······.

[ 게다가 일이 자꾸만 미뤄지면 엄마 아빠의 가게에 이 몸의 작품을 남길 시간이 없어지지 않느냐! ]

······.

이 와중에 그 생각을 하고 있었냐.

[ 엄마 아빠의 가게이니, 더욱 웅장하고 훌륭한 그림을 남겨야 한단 말이다! 조각상 역시 마찬가지다! 위대한 이 몸과 가족들의 모습을 모두 조각으로 만들려면 며칠은 필요하단 말이다! ]

······.

음, 내가 생각한 것보다 의지가 훨씬 굳건하군.

게다가 왜 며칠씩이나 필요한 거냐.

어차피 대충 주물럭주물럭해서 만드는 거 아니었어?

설마 대웅전의 그 괴물체가 며칠에 걸려 만든 대작이었다고?

‘안 되겠다. 당장 철수해야겠어.’

애써 차린 가게가 망하는 꼴을 보느니, 던전 두 번 더 돌고, 케르베로스는 다음으로 미루는 게······.

[ 고미······. ]

눈물의 폐업을 막기 위해 뭐라고 둘러대고 던전에서 철수할까 고민하고 있을 때, 잔뜩 흥분한 고미가 불어난 사자(死者)의 군대를 이끌고 몬스터를 처리하고 있는 노인국을 가리키며 외쳤다.

[ 게다가 흑암의 지배자인지 뭔지 하는 음침한 놈을 불러서 혼쭐을 내주고 나면 이 몸과 함께 놀이공원이라는 곳에 가기로 하지 않았느냐! 그런데 저 문어 할아범이 그 가짜 케르베로스를 꺼내지 않는 바람에 놀이공원에 가는 게 늦춰지게 생겼다! ]

분노로 가느다랗게 떨리는 손끝, 앙다문 입술, 쫑긋 선 두 귀와 바짝 선 꼬리······.

그 순간, 나는 직감했다.

‘안 돼, 막을 수가 없어······.’

왜 놀이공원 얘기를 꺼냈을까, 왜 개업 얘기를 꺼냈을까······.

거사를 치르기 전에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니었는데.

하지만 후회는 아무리 빨라도 늦는 법.

[ 이 몸이 더 많은 괴수를 몰아오겠다! 그럼 저 방해꾼도 어쩔 수 없이 케르베로스를 꺼내지 않겠느냐! ]

말을 마친 고미는 말릴 새도 없이 눈이 쌓인 숲을 가로질러 달려 사라졌고,

- 뿌우우!

- 뿌우, 뿌우우!

이내 정면뿐만 아니라 후방과 좌우에서도 뿔피리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이, 이게 무슨 일이지?”

쉴 새 없이 사방에서 울려 퍼지는 뿔피리 소리에 노인국의 얼굴이 당혹감으로 일그러졌다.

죄송합니다······. 이렇게까지 일을 키우려고 한 건 아닌데, 놀이공원에 가고 싶은 슈퍼 먼치킨 아기곰을 말릴 힘이 없네요······.

“안 되겠어, 퇴각하지.”

상황이 심상치 않게 돌아가는 것을 직감한 노인국이 잔뜩 인상을 찌푸린 채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건 어려울 것 같은데.”

최진웅으로 변신한 이후 처음으로 말하는 진심 어린 말이었다.

고미가 케르베로스 보기 전까지는 못 나간다고 했으면, 못 나간다.

차라리 여기서 끝장을 봐야지, 안 그러면 다음에는 진짜 무슨 일이 벌어질지 장담 못 한다고.

아니나 다를까, 나의 추측을 확인이라도 시켜주듯, 사방에서 물밀 듯이 병력이 몰려왔다.

“마, 말도 안 돼. 어떻게 이 정도 숫자가 한 곳에······.”

한눈에 보기에도 수백은 되어 보이는 몬스터의 숫자에 입에서 절로 한숨이 새어 나왔다.

[ 수하! 이 던전에 있는 괴수들을 모두 끌고 왔느니라! 이 정도면 문어 할아범도 어쩔 수가 없겠지!? ]

그리고, 우리를 향해 달려오는 병력의 끄트머리에는 말 위에 올라탄 거대한 기사 셋이 서 있었다.

“자, 잠깐······.”

던전의 보스 몬스터를 다 끌고 왔네······.

그것도 본래는 한 번에 하나씩 처리해야 하는 놈들로.

그때, 노인국의 얼굴이 기묘하게 일그러지고, 꿀태창이 반짝반짝 빛을 발했다.

“히든 피스?”

노인국이 이를 악물며 말했다.

“이런 조건으로 발동되는 히든 피스가 있을 줄이야······.”

상태창을 볼 수 없어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보스 몬스터를 모두 한자리에 모아놓고 궤멸시키면 완료되는 퀘스트가 있는 건가.

개방형에, 잠입에 실패하면 난이도가 급격하게 치솟는 던전의 구조.

그러니 누구도 쓸데없는 위험을 감수하고 전면전을 벌이는 얼간이 짓을 하지는 않겠지.

‘이강혁 씨도 모르던 히든 피스를 이런 식으로 발견해 버렸네······.’

하, 놀이공원이라는 게 이 정도로 가치가 있는 거구나.

어린아이의 꿈과 희망에는 값을 매길 수 없다더니.

회귀자도 모르는 히든 피스 하나에, 초월자가 만든 마력 생명체가 자유 이용권 한 장 값 밖에 안 하는 거냐.

“어떻게 하겠나?”

나는 일부러 애매한 말로 노인국의 의사를 확인했다.

조금 난감해졌다고 상태창을 열어버리면 그간의 시위가 허사가 될 테고, 그렇다고 아무 말도 안 하고 입을 다물고 있기도 뭐한 상황이니까.

“설마, 네가 히든 피스의 조건을 충족시킨 건가?”

······.

그걸 의심하신 겁니까.

어째 내가 의도한 것보다 훨씬 더 최진웅을 대단한 사람으로 여기고 있으신 것 같네.

“그럴 리가, 여기 들어와서 실수를 한 건 당신이잖아. 난 지금 당장 내빼도 상관없다고. 그냥 이 던전의 소유주가 당신이니까 물어본 것뿐이야.”

“포기하기에는 아쉬운 보상이군······. 할 수 없지. 잠깐만 시간을 벌어줄 수 있나?”

노인국이 케르베로스를 꺼내려는 조짐을 보이자, 신이 난 고미가 꼬리를 빙글빙글 돌리며 환호성을 내질렀다.

[ 우웃! 됐다! 수하! 역시 위대한 이 몸의 생각이 맞았느니라! ]

“그렇게 하지. 불러 봐.”

나는 그렇게 말한 뒤 곧바로 살곰살곰 상태의 고미를 어깨에 올린 채 앞을 향해 손을 휘둘렀다.

쿠구궁-!

그러자, 지축을 뒤흔드는 굉음과 함께 한 번에 열 마리 이상에 달하는 저주받은 병사가 터져나갔다.

처음에는 정면, 다음에는 왼쪽, 다음에는 오른쪽.

방향을 바꿔가며 이곳 저곳에 공격을 퍼붓자, 수백에 달하는 몬스터들의 시선이 몸 위에 내리꽂히는 게 느껴졌다.

1분 정도, 놈들의 시선을 끌며 이리저리 날뛰었을 때 즈음,

- 크르르르르······!

마침내 등 뒤에서 섬뜩한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 우웅? ]

그런데, 케르베로스를 보는 고미의 표정이, 조금 이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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