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아기곰이 너무 강함-128화 (128/300)

EP.128 친해지려면 위기가 필요하다

- 속보입니다. 오늘 오전 서울 인근의 B급 던전에서 저스티스의 길드원들과 용왕의 길드원들 사이에 무력 충돌이 발생했습니다.

“응? 저거 이 사장이랑 그 예쁜 아가씨, 이름이 뭐더라······.”

아버지가 의아함과 걱정스러움이 섞인 눈길로 화면과 나, 봉식이를 번갈아 바라보며 물었다.

“한유진 씨.”

“그래, 그 두 사람 길드 아니야?”

“아이고, 아래 사람들끼리 싸움이라도 났나 보지.”

어머니가 걱정 말라는 듯 그렇게 말하는 찰나, 리포터의 보도가 이어졌다.

- 처음에는 길드원들 간의 사소한 말다툼에서 시작된 싸움은 B급 헌터 둘의 몸싸움으로 번졌고, 이 싸움이 커져 B급 헌터 셋과 C급 헌터 둘이 부상을 입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 이 싸움으로 인해 저스티스의 길드장, 이강혁 씨가 직접 용왕의 본사를 찾아 항의하는 상황이 일어났는데요.

- 하지만 용왕의 길드장인 한유진 씨는 아직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으며, 사과와 보상을 요구하는 이강혁 씨의 요청을 철저하게 무시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 이로 인해 두 길드의 갈등은 더욱 격화되고 있으며······.

“어머, 아들, 두 사람이 싸웠니? 여행 때는 사이 좋아 보이던데.”

이어지는 보도에 어머니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며 물었다.

“원래 남녀 관계가 다 그런 거지. 아들, 설마 아들 때문에 두 사람 사이가 멀어지고 뭐 그런 건 아니지?”

그 와중에도 아버지는 드립인지 진심인지 알 수 없는 질문을 해댔다.

아버지의 드립은 나름대로 철학이 있다.

‘진심인지 농담인지 헷갈려야 맛이 있다’ , ‘상황이 심각할수록 드립이 필요하다’는······. 해괴한 철학이.

2년간의 혼수상태에서 깨어났을 때도 드립부터 치셨던 분이니, 그 철학이 얼마나 확고한지는 두말하면 입이 아플 정도지.

“그런 거 아니야. 일이 좀 있어서, 싸운 척한 거야 싸운 척.”

‘척’이라는 말에 아버지는 호기심으로 눈을 빛냈고, 어머니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래. 친구들끼리 싸우고 그러면 안 되지. 일이 있어도 대화로 풀고. 혹시 이강혁 씨랑 한유진 씨랑 둘이 싸우면 아들이 꼭 잘 말려.”

“후훗, 걱정 말거라! 삼룡 어멈과 허수아비가 싸운다면, 이 몸이 나서서 혼쭐을 내주겠다!”

음, 그럼 피해자가 둘로 늘어나는 것뿐 아닌가. 그것도 둘이 싸운 것보다 훨씬 더 심각하게 부상을 당할 것 같은데.

“그래요, 우리 고미도 친구들이랑 잘 지내고, 아웅이 다웅이랑도 사이좋게 지내고.”

다웅이와 고미 사이의 미묘한 기류를 감지했는지, 어머니는 뒤에 의미심장한 말을 덧붙이셨다.

“아웅!”

그 말에 아웅이는 곧장 고개를 끄덕이며 힘차게 대답을 내놓았고, 다웅이는 아주 느릿하게 귀를 한번 움찔거리고는 ‘다······웅······.’하고 답했다.

“아, 알겠느니라.”

엄마 바라기인 고미야 애초에 다른 답을 내놓을 리가 없었고.

“뭔데? 뭔데?”

그때, 호기심을 참지 못한 아버지가 숟가락마저 멈추고 일의 전모를 물었다.

“후훗, 사실 이 몸은 모든 것을 알고 있느니라. 아빠가 궁금하다면, 특별히 알려줄 수도 있다.”

“부디 저에게 진실을 알려 주십시오, 곰 선생님!”

아버지가 계란말이 하나를 들어 숟가락에 올려주자, 뇌물을 받은 고미는 그 대가로 자신이 알고 있는 고오급 정보를 아버지에게 일러주었다.

“문어 할아범과 수하가 단둘이 이야기를 나눌 시간을 만들기 위해서 둘이 싸운 척을 한 것이다!”

뭐야, 그 미묘하고 애매한 설명은.

그렇게 얘기하면 노인국 씨랑 나랑 데이트하라고 이벤트라도 해주는 것 같잖아.

“음······. 그렇군.”

응? 뭐야, 납득한 거야? 정말로?

“아빠, 진짜 알아들은 거 맞아?”

“사업상 할 얘기가 필요한데, 그 자리에 두 사람이 있으면 안 돼서, 자연스럽게 둘 다 그 자리에 없을 만한 상황을 만들었다, 이런 얘기 아니야?”

······.

이럴 수가, 아버지가 각성을 한 모양이다.

독심술, 사이코메트리? 그렇지 않고서야 저 설명을 듣고 저렇게 이해한다는 게······.

“어쨌든, 항상 조심하고, 고미 잘 챙기고, 가능하면 일찍 들어오고.”

그렇게 어머니의 말을 끝으로 대화가 끝났고, 두 분은 다시 개업 준비를 위해 집을 나서셨다.

“그럼 우리도 나가볼까?”

* * *

나는 아웅이와 다웅이를 봉식이에게 맡긴 뒤 고미와 둘이서 노인국 씨를 만나러 갔다.

약속 장소는 안산에 있는 블랙 메이지 소유의 A급 개방형 던전이었다.

사실 분신술을 해제하면 좀 더 편하겠지만, 그래도 생각이 있고 감정이 있는 아이들인데 우리 편할 데로 만들었다 없앴다 하고 싶지는 않았으니까.

“와있었군. 한유진이 올 수 없으니 당신도 오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나와 고미가 집을 나선 뒤, 한유진 씨가 이강혁 씨를 만나 대화를 나온다는 보도가 나갔다.

당연히 노인국도 이 자리에 한유진이 올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을 테고.

최진웅으로 변한 나의 말에 노인국의 입꼬리가 웃는 듯 마는 듯 미미하게 올라갔다.

“한유진과 그렇게 끈끈한 사이였던가? 지난번에 나에게 아니라고 계속 눈치를 주었던 것 같은데 말이야.”

“다행이군, 지금쯤이면 그 정도 상황 파악도 못 할 정도로 망가져 있지는 않을까 걱정했는데 말이야.”

슬쩍 옆구리를 찌르자, 노인국의 눈썹이 송충이처럼 꿈틀거렸다.

“뭔가 아는 게 있는 모양인데, 빙빙 돌려가며 신경만 긁는 이유가 뭔가?”

“당신과 같은 이유.”

“무슨 의미지?”

“당신의 상태를 파악하기 전까지는 함부로 내 패를 까고 싶지 않다는 의미지.”

‘상태’라는 단어에 노인국의 눈이 더욱 싸늘하게 얼어붙었다.

흑암의 지배자와 케르베로스에 의해 계속해서 정신공격을 당하면서 언젠가는 자신이 미치지는 않을까 줄곧 마음을 졸이고 있는 사람에게 이보다 더 신경 쓰이는 단어는 없겠지.

“좋아.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 궁금하군. 일단 약속을 지키러 가볼까?”

* * *

던전 안으로 들어가자, 꿀태창이 반짝이며 던전과 관련된 정보를 띄워주었다.

당연하게도, 나는 그걸 확인하지 않았고.

어차피 확인하지 않아도 던전의 정보는 대략적으로 알고 있으니까.

「안산 던전은 한국에서 가장 질 좋은 마력 철과 재료가 나오는 던전 중 하나입니다. 가급적 저희 길드 소유로 하고 싶었지만, 이번 회차에서 블랙 메이지는 이상할 정도로 안산 던전에 집착하더군요.」

이강혁 씨는 그렇게 말한 뒤에 던전의 몬스터 구성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해 주었다.

지형은 곳곳에 눈이 쌓여 있는 울창한 침엽수림, 몬스터의 구성은 ‘저주받은 검사’와 ‘저주받은 궁수’를 위시한 인간형 몬스터와 ‘강철 기사’라는 쇳덩이.

이 강철 기사를 잡으면 나오는 마력철이 상당히 질이 좋아서, 이강혁 씨도 이 던전을 원했었다고 했다.

게다가 ‘특정한 조건만 갖추면’ 이 던전의 체감 난이도는 B급 수준으로 떨어지니, 상당히 가치가 높다고 할 수 있었다.

반대로, 특정한 조건이 충족되면 난이도가 S급에 가깝게 치솟는다는 문제도 가지고 있었다.

우리가 이 던전을 선택한 것은, '우리는 모두 친구' 스킬의 친밀도 상승 효과를 이용해 노인국과 친밀도를 쌓는 것이 첫 번째 목적이었다.

어차피 던전 도는 김에 겸사겸사 새로운 방패 제작에 필요한 아이템도 모으고.

‘용왕의 방패에 그것까지 더하면······. 굉장한 방패를 만들 수 있을 거야.’

어쩌면 ‘흑염대웅신검’에 버금가는 아이템이 나올지도 모르지.

“가지.”

노인국이 데스나이트와 시커먼 망토를 두른 마법사 하나를 소환하며 말했다.

마법사의 망토 곳곳에는 새하얀 서리가 끼어있었고, 입에서는 끊임없이 푸르스름한 입김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저게 서리 법사인가.’

소환물의 등급은 모두 A급.

노인국의 강함은 상황에 맞는 다양한 소환수의 활용에 있다고 들었다.

미궁에서 언데드 계열 몬스터가 접근하지 못하게 한 것만 봐도 상황에 맞는 상당히 다양한 소환물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이 던전에서는 주로 서리 법사로 정찰대의 발을 묶고, 데스나이트를 이용해 몬스터를 처리한다고.

[ 호오······. ]

한편, 고미는 흥미롭다는 듯 서리 법사의 주위를 맴돌며 서리가 낀 망토를 손끝으로 툭툭 건드려대고 있었다.

조금 불안하기는 하지만, 뭐, 괜찮으니까 하는 거겠지.

늘 넘치는 에너지를 감당하지 못하는 개구쟁이라고는 해도, 이런 상황에서 해서는 안 되는 행동을 하는 녀석은 아니니까.

[ 오늘 이 몸이 맡을 것이 이 녀석이냐? ]

살곰살곰으로 모습을 감춘 아기곰이 자신을 툭툭 건드리자, 서리 법사는 움찔거리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하지만 끝내 자신을 건드린 것이 무엇인지 찾아내지는 못했다.

그 반응에 재미를 느낀 모양인지, 고미는 계속해서 방향을 바꿔가며 서리 법사의 몸 이곳저곳을 툭툭 건드려댔다.

[ 오오, 이 녀석은 아주 시원하구나. 엄마 아빠의 가게에 이 녀석을 불러놓으면 한여름에도 걱정이 없을 것 같은데······. ]

그런 무서운 소리 하지 마. 귀신의 집도 아니고, 이런 동사한 시체 같은 걸 가게에 두자니······.

[ 안돼, 귀신의 집도 아니고, 이런 걸 어떻게 가게에 둬. ]

[ 우웅? 귀신의 집? 그것은 무엇이냐? 이 몸도 들어본 적이 없는 던전인데······. ]

음, 단어 선택이 잘못됐군.

고미가 귀신의 집을 알 리가 없지.

[ 놀이공원에 가면 있는 거야. 음, 으스스한 건물 안에 들어가면, 귀신이나 좀비나 도깨비나 저승사자 같은 게 튀어나오고······. ]

물론 다 가짜지만 말이지.

[ 우, 우웃! ]

그때, 서리 법사를 톡톡 건드리며 장난을 해대던 고미가 두 눈을 치켜뜨며 나에게 후다닥 달려왔다.

[ 노, 놀이공원!? ]

녀석의 꼬리는 전에 없이 격렬하게 빙글빙글 돌아가고 있었다.

[ 응, 놀이 공원. ]

[ 이, 이름만 들어도 알 것 같구나! 그, 그곳은, 틀림없이 이 몸을 위해 존재하는 곳이다! 그렇지!? 어서 그렇다고 말하거라! ]

‘놀이’와 ‘공원’이라는 단어의 조합에 고미의 눈이 광기로 번들거렸다.

음······. 생각해보니 고미가 제일 좋아할 만한 곳이긴 하네.

스릴 넘치는 탈 거리가 가득하고, 퍼레이드나 공연도 있는 데다가, 사람 많기로는 또 놀이공원만 한 곳이 없으니까.

[ 그럼 이번 일 끝나고 친구들이랑 같이 놀이공원 갈까? 귀신의 집도 가고, 롤러코스터도 타고, 바이킹도 타고······. 음, 또······. ]

[ 우우웃! 정말이냐 수하, 정말 이 몸을 놀이공원에 데리고 가 줄 것이냐!? ]

나의 대답에 정신없이 돌아가던 고미의 꼬리는 진자운동과 회전운동 중 어떤 것을 선택할지 결정하지 못한 듯, 끊임없이 8자를 그리며 실로 화려한 무브먼트를 선보였다.

‘괴, 굉장하네, 이렇게 화려한 움직임은 처음이야.’

그렇게 우리가 전음으로 대화를 나누고 있는 사이, 노인국 씨는 데스나이트를 앞세워 천천히 전진을 시작했다.

전방에는 정찰병으로 보이는 검사 둘과 궁수 둘이 일정한 간격을 유지한 채 숲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최진웅, 당신이 달아나는 놈을 맡아주면 될 것 같군. 절대로 놓쳐서는 안 되네. 알고 있겠지?”

노인국이 굳은 표정으로 눈앞의 정찰대를 바라보며 말했다.

“걱정 말고, 시작하지.”

말을 마치기 무섭게 서리 법사의 몸에서 서늘한 냉기가 피어오르더니, 정찰대가 서있는 곳의 지면에 새하얀 서리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쩌저적-

냉기가 놈들의 발을 묶자, 대기하고 있던 데스나이트가 빠르게 달려가 정찰대 중 둘을 쓰러뜨렸다.

[ 고미, 일지곰! ]

나는 가볍게 손가락을 뻗어 궁수 둘을 처리한 뒤 터벅터벅 걸어가 정찰대가 떨어뜨린 검을 주워들었다.

“검술도 할 줄 아나?”

익숙한 손놀림으로 검을 휘두르는 나의 모습에 노인국은 흥미롭다는 듯 눈을 빛냈다.

“글쎄, 맨손보다는 검이 낫지 않겠어?”

이후 우리는 비슷한 방식으로 두 개의 정찰대를 더 처리했고, 순조롭게 던전을 클리어해 나갔다.

그렇게 군데군데 녹다 만 눈이 보이는 숲을 걸어 조금 더 앞으로 나아가다 보니, 마침내 첫 번째 강철기사가 시야에 들어왔다.

강철 기사의 주위에는 10명 정도로 구성된 소대 하나가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여기서부터는 조금 더 난이도가 올라가니, 조심하게.”

그래, 알고 있다. 여기서 한 놈을 놓치면, 난이도가 갑자기 S급에 가깝게 치솟겠지.

다 놓치면 더 재밌는 일이 벌어질테고.

말을 마친 노인국은 다시 서리 법사를 활용해 놈들의 발을 묶으려 했다.

콰드드득- 챙!

하지만······. 지면을 타고 퍼져나가던 얼음이 돌연 무언가에 가로막힌 듯 그대로 멈춰서고,

- 뿌우우우!

적습을 알리는 뿔피리 소리가 숲속에 메아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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