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27 다웅이vs고미
“어머?”
어머니는 놀란 듯 동그랗게 눈을 뜬 채 고미와 아웅이, 다웅이를 번갈아가며 바라봤다.
“수하야, 이 아기 판다는 왜 말을 못하니?”
…….
판다는 원래 말을 못하는 게 정상입니다, 어머니.
‘다웅’하고 우는 것도 충분히 이상한 거라고요.
고미랑 지내다 보니 곰이 말을 하는 게 너무 당연해진 거 아닙니까.
“다, 다웅…….”
그때, 다웅이가 한 번 더 제대로 된 소리를 내며 ‘스스로’ 어머니에게 팔을 뻗었다.
“우, 우웅!?”
그 모습에 고미는 화들짝 놀라 귀를 쫑긋거리며 다웅이를 뚫어져라 바라봤다.
놀람과 적개심, 약간의 분노가 뒤섞인 눈빛.
다웅이가 무언가에 관심을 보이고 스스로 움직이는 것은 여태 한 번도 없었던 일이었다.
문제는 그 대상이 ‘엄마’라는 거지.
‘설마, 엄마한테만 반응을 보이는 건가?’
[ 수, 수하! 어, 어떻게든 해보거라! 이, 이 녀석이 이 몸의 전용석을 빼앗으려 들지 않느냐!? ]
전용석……. 어머니의 품이나 무릎을 말하는 건가.
확실히, 고미가 가장 좋아하는 건 어머니다.
집에 오면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곳도 엄마의 무릎 위고.
으음, 이걸 어쩌나……. 생각지도 못한 위기군.
그때, 간만에 황금색 상태창이 반짝반짝 빛을 발하며 메시지를 보내왔다.
대충 짐작은 간다. 고미가 다웅이에게 자리를 뺏기지 않도록 도와달라던가, 뭐 그런 내용의 퀘스트를 보냈겠지.
아니면 반대로 다웅이에게 양보하는 어른스러운 모습을 보이게 해달라는 퀘스트일지도 모르겠다.
뭐, 어느 쪽이든 상관은 없지만.
‘참 질기기도 하네. 포기라는 걸 몰라.’
나는 가볍게 꿀태창을 무시하고 다시 눈앞의 상황에 집중했다.
“고미, 집에 왔으면 일단 씻어야지.”
다행히도 어머니는 다웅이의 움직임을 눈치채지 못한 상태였다.
애가 워낙에 느린 데다 동작까지 작아서, 어머니의 시선을 빼앗기에는 부족함이 있으니까.
“아, 알겠느니라.”
고미는 이 사악한(?) 판다가 자신의 자리를 넘보는 것은 아닌가 걱정이 되는 듯, 경계심이 가득한 눈으로 다웅이를 바라보며 뒷걸음질로 화장실로 향했다.
대체 뭐냐고, 이 아무것도 아닌데 긴장감 넘치는 상황은.
“아, 아웅!”
고미가 화장실로 걸어가자, 아웅이는 그게 뭔지도 모르면서 일단 녀석의 뒤를 따라 발걸음을 옮겼다.
역시, 성실함의 표본 같은 녀석이군.
반면, 다웅이는 여전히 시체처럼 늘어져 아무런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음, 수하야. 이 아기곰들은 뭐니? 고미 친구? 가족? 가족은 없다고 했는데…….”
그 모습을 바라보던 어머니는 그제야 진짜 중요한 문제에 대해 질문을 하셨다.
그렇지, 판다가 왜 말을 하지 못하냐는 질문보다는 이게 훨씬 더 정상적이고, 근본적인 질문이지.
“어……. 설명하기 복잡한데, 고미 동생들 같은 거야.”
하지만 어머니에게 마력 생명체가 어쩌고 분신이 어쩌고 하는 이야기를 하기는 조금 어려우니, 대충 동생 비슷한 거라고 얼버무렸다.
“음……. 그렇구나.”
그게 끝?
고옥분 여사님, 뭔가 더 물어보는 게 정상 아닙니까?
적응력이 비범한 건 알고 있지만, 언제나 납득이 너무 빠른 거 아닙니까.
“그런데, 그 판다…….”
“다웅이야. 쟤는 아웅이.”
“응, 그래, 다웅이가 제일 아기니? 걷지를 못해?”
[ 수, 수하! 안 된다! 안돼! ]
‘제일 아기’냐는 말에, 화장실에서 절박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 내가 그렇다고 하면 고미가 막내 포지션을 뺏기는군.
막내의 즐거움을 만끽한 지 얼마나 됐다고 그걸 뺏는 건 좀 너무하지.
“아니, 그런 건 아닌데, 도통 제 발로 걷지를 않네.”
나의 대답에 어머니의 미간에는 옅은 주름이 생겨났다.
“걸을 수 있는데, 안 걷는 거야?”
“응. 꼭 이렇게 안겨 있으려고만 하네. 걷지도 않고, 제 손으로는 아무 것도 안하려고 해.”
스스로는 아무 것도 안 한다는 말에 어머니는 나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한 글자 한 글자 또박또박 말을 이어나갔다.
“아기라고 무조건 받아주기만 하면 안 돼. 걸을 수 있는데 안아주면 계속 안 걸으려고 하고, 혼자 먹을 수 있는데 먹여주기만 하면 어리광만 늘어.”
음, 그건 나도 알고 있다.
문제는 이 녀석이 도통 말을 안 듣는 먼치킨이라는 거지.
그것도 내 힘으로는 입을 벌리게 하는 것조차 불가능한 수준의.
“어, 그건 그렇지만…….”
“말은 알아듣니?”
“응, 말은 잘 알아들어.”
처음에는 애가 워낙에 반응이 없으니, 이 녀석이 말을 못 알아듣는 건 아닌가 생각했다.
하지만 고미가 친구들의 노고를 헛수고로 만들 셈이냐고 물었을 때 반응을 보였으니, 그건 아닐 거다.
“그럼 얼른 내려놔. 걸을 수도 있고 말도 알아듣는데, 마냥 안겨 있기만 하는 건 안 되지.”
불안한 마음을 안고 다웅이를 내려놓자, 아니나 다를까, 녀석은 곧장 바닥과 하나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그러나 곧 기적이 일어났으니…….
“다웅이, 얼른 일어나서 손발 씻고 와요. 외출하면 손발 씻는 거예요.”
공포의 군주의 단호한 태도에 다웅이의 귀가 미약하게 움찔거리고, 꼬리가 보일락말락 하게 흔들렸다.
이, 이럴 수가, 다웅이가 다른 사람 말에 반응을 보이다니…….
“다웅이, 엄마 딱 셋 셀 거에요. 셋 셀 동안 안 움직이면, 다웅이는 간식 없어요.”
경고를 마친 공포의 군주는 손가락을 들어 파멸의 카운트 다운을 이어갔다.
“셋, 둘…….”
“다, 다웅!”
숫자가 내려가자, 탄신 이래 한 번도 제 발로 움직인 적이 없는 다웅이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먹을 것 때문은 아니다. 다웅이는 먹을 것에도 별 관심이 없으니까.
즉, 이건 순전히 엄마에 대한 공포로 움직이고 있는 거다.
‘사실 가장 강한 건 엄마가 아닐까’ 싶은 생각마저 드는 광경.
느릿한 걸음으로 화장실로 향하는 다웅이의 뒷모습에 나는 약간의 허탈함과 분노를 느꼈다.
‘귀엽기는 한데, 왠지 모르게 사람을 울컥하게 만드는 구석이 있는 녀석이네.’
바로 그때, 기회를 포착한 갈색 솜뭉치가 화장실에서 오도도 달려와 어머니의 품에 찰싹 달라붙었다.
“오구오구, 우리 고미 엄마한테 안기고 싶었어요?”
“그렇다! 요즘 이 몸이 너무 바빠 서운하지 않았느냐?”
엄마의 품에 안긴 고미는 행복한 표정으로 통통한 볼을 보비작거리며 연신 꼬리를 흔들어댔다.
‘다행이군, 자리를 뺏기지는 않았어.’
그렇게 고미와 다웅이의 1차전이 고미의 승리로 막을 내렸을 때,
“어, 왔냐.”
봉식이가 어기적거리며 방에서 나왔다.
특훈을 시작한 지 고작 한 달 만에 녀석의 체격은 더욱 커져 있었다.
원래도 그 상태에서 더 커질 수 있는 건가 싶을 정도로 큰 녀석이지만, 이제는 정말로 인간이 아니라 벽 하나가 걸어 다니는 느낌.
“일 잘 풀렸나 보네.”
봉식이가 뒤늦게 손발을 씻고 화장실에서 나오는 아웅이와 다웅이를 힐끔 바라보며 말했다.
“응, 조만간 새 친구 하나 소개해줄게.”
“진짜 해낸 거냐?”
녀석이 조금 놀랐다는 듯 살짝 눈을 치켜뜨며 물었다.
뭐, 그럴 만도 하지. 무려 초월자를 숲속 친구로 끌어들인 거니까.
다만 다음 계획을 위해 나름대로 준비할 게 많으니, 함께 하지는 못했을 뿐이다.
“그래, 보면 좀 놀랄 거다.”
나의 말에 봉식이는 피식 웃으며 어깨를 으쓱였다.
“또 희한한 게 합류했나 보네. 어쨌든, 우리 쪽은 준비 다 끝났다.”
잠시 후, 간단하게 저스티스 쪽 상황을 일러준 봉식이가 무언가 떠올랐다는 듯 다시 입을 열었다.
“아참, 그리고 개업 일주일도 안 남았다. 알고는 있어야지.”
개업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말에, 어머니의 품에 안겨 있던 고미가 심각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이, 이럴 수가! 이 몸이 모르는 사이에 벌써 일이 그렇게나 진행되었단 말이냐? 엄마 아빠의 가게에 위대한 이 몸의 흔적을 남겨두어야 하는데…….”
고미의 말에 아버지는 흥미롭다는 듯 눈을 반짝였다.
“그래? 우리 막내가 마법으로 뭔가 해주는 거야?”
“흠흠……. 사실은 이 몸이 그림에 일가견이 있느니라. 본래 아무에게나 보여주는 것은 아니지만, 엄마와 아빠는 이 몸의 가족이니 특별히 이 몸의 작품을 선물해 주려 했다!”
…….
그런 불안한 말 하지 말아라…….
“이 몸의 위대한 행적이 담긴 벽화를 가게에 걸어둔다면, 더욱 많은 인간들이 그것을 보기 위해 가게를 찾지 않겠느냐?”
이어서 고미는 굉장한 생각이 떠올랐다는 듯 손뼉을 치며 목소리를 높였다.
“그래! 가게 앞에 위대한 이 몸의 조각상을 남겨두는 것도 좋겠구나! 그럼 도저히 그냥은 지나치지 못하겠지!”
조각상과 벽화를 만들어주겠다는 말에 등줄기가 식은땀으로 축축하게 젖는 것이 느껴졌다.
그래, 어떤 의미로든, 시선은 확실하게 끌 수 있겠지.
“김 사장님, 애기한테 그런 거 시키는 거 아니에요.”
다행히도, 어머니의 시기적절한 개입으로 대참사(?)가 벌어지는 것만은 막아낼 수 있었으나…….
“우웅…….”
고미는 아직 포기하지 않은 듯 심각한 표정으로 좌우로 눈을 굴려댔다.
동글동글한 귀가 살짝살짝 움찔거리는 것이, 어떻게 하면 자신의 ‘작품’을 가게에 전시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것이 분명했다.
‘아, 안 돼.’
정말로 고미의 벽화로 가게 벽을 채우면, 인테리어는 끝장이야.
“고미, 어차피 다음 주면 개업이니까, 그때 생각하고, 오늘은 일찍 자야지. 내일 중요한 일 있잖아.”
녀석의 신경을 다른 곳으로 돌리기 위해 빠르게 노인국 문제로 화제를 전환하자, 고미는 아쉽다는 듯 지그시 눈을 내리깔며 고개를 끄덕였다.
“흠, 알겠느니라. 일단은 그 문제부터 해결을 해야겠구나.”
“그, 그래. 얼른 자자.”
그때, 아버지가 대나무처럼 꼿꼿한 자세로 서 있는 아웅이와 바닥에 널브러져 뒹굴거리는 다웅이, 그리고 고미를 바라보며 다시 입을 열었다.
“갑자기 아들들이 잔뜩 늘어나서 기분은 좋은데, 아빠가 열심히 벌어야겠네.”
뒤에 생략된 말은 ‘집이 좁다’겠지.
지금 집은 혼자나 둘이 살기에는 괜찮지만, 어른 넷에 아기 셋이 살기에는 좁은 게 사실이었다.
냉정하게 말하면 봉식이 혼자 살던 집에 우리 가족이 얹혀사는 것이나 다름없는 상태기도 하고.
부모님 입장에서는 못내 마음이 불편하겠지.
자식에게 얹혀사는 걸로도 모자라서, 자꾸만 식구가 늘어나니까.
“후훗, 걱정하지 말거라. 곧 위대한 이 몸이 엄마 아빠에게 커다란 집을 선물해 줄 것이다!”
“응? 그래요?”
집을 사준다는 말에 어머니는 흐뭇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저 말이 진짜로 새집을 알아보고 있다는 의미라고는 상상도 못 하시는 모양이었다.
기껏해야 ‘앞으로 열심히 일해서 엄마 아빠한테 큰 집을 사줄 거야!’라고 말하는 어린애의 약속 정도로 받아들이는 거겠지.
“고미, 집은 엄마 아빠가 열심히 벌어서 살 테니까, 고미는 걱정하지 말고 맛있는 거 먹고, 잘 자고, 튼튼하게만 자라면 돼요.”
음, 튼튼하게 자라라니, 상투적인 말이기는 하지만, 고미에게는 해당 사항이 없는 대사인 것 같은데…….
“그러니까 오늘은 얼른 동생들이랑 코~자요.”
어머니가 다정하게 머리를 쓰다듬으며 그렇게 말하자, 고미는 행복한 표정으로 귀를 눕힌 채 그 손길을 만끽하다가 까무룩 잠이 들었다.
* * *
다음 날 아침.
우리 가족은 모처럼 모두 한자리에 모여 아침 식사를 했다.
여행을 갔다 온 후로는 거의 처음으로 온 가족이 모인 자리였다.
부모님은 개업 준비로 바빴고, 봉식이와 나, 고미도 저마다 할 일이 많았으니까.
원래도 그리 크지는 않았던 식탁에 아웅이, 다웅이까지 보태지니, 식탁은 그야말로 만석이었다.
하지만 나의 신경은 온통 TV에서 흘러나오는 뉴스에 쏠려 있었다.
그렇게 몇 분이나 지났을까.
- 속보입니다. 오늘 오전, 사대 길드간에 무력 충돌이…….
마침내 기다리던 소식이 흘러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