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25 갓-고미님의 초일류 연금술
“으음, 역시, 이대로라면 마력이 흩어져 길어야 하루, 이틀 밖에 형상을 유지할 수가 없겠군요. 그 외에도 자잘한 문제가 있기는 하나, 가장 먼저 손봐야 할 것은 역시 그것입니다.”
아웅이와 다웅이에게 다가가 이곳저곳을 조심스레 들여다보고 만지작거리던 토생원은 단박에 문제를 짚어냈다.
역시, 초월자는 초월자네.
“먼저 생명의 돌과 기력의 수정석이 필요합니다. 엘릭시르는 제가 가진 것을 사용하면 될 것 같습니다만, 두 가지는 재고가 없어······.”
토생원의 말에 수다르는 곧장 품 안에서 두 개의 약병을 꺼내 들었다.
“응? 설마······.”
“필요한 재료는 이미 준비해 두었습니다.”
약병 안에 든 약액의 냄새를 맡아본 토생원의 커다란 귀가 빳빳하게 일어났다.
음, 고미의 꼬리 못지않게 자기주장이 강한 제2의 자아를 가지고 있으시군.
“호오······. 굉장하군요. 저는 같은 재료로 마력 심장을 만들었지만, 이런 방식도 나쁘지 않은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제작 과정이 여간 까다롭지 않았을 텐데······.”
토생원이 놀란 표정으로 그렇게 중얼거리자, 수다르가 인자하게 웃으며 대꾸했다.
“그 방법을 생각해 보지 않은 것은 아니나, 마력 심장을 만들기에는 제 조예가 부족하여······.”
“으음, 심장과 영약을 결합하는 방식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렇다면 마력이 폭주할 가능성이 있지 않겠습니까?”
이후 두 사람은 영약을 이용하는 방식과 인공장기(?)를 만들어 마력 생명체의 동력을 제공하는 방식의 장단점과 제작 과정의 난점에 대해 깊은 토론을 벌였지만······.
당연하게도, 자리에 있던 누구도 그 대화를 알아듣지 못했다.
제르보나 씨는 조금이나마 이런 문제에 대해 알고 있는 듯 보였지만, 이야기가 깊어지니 교수님 앞에서 내가 짓던 표정과 똑같은 표정을 짓고 말았다.
굳이 설명하자면, 외계어를 듣는 것 같은 표정이랄까.
“흐, 흐흠. 그것참 굉장하구나.”
고미는 뭔가 아는 척 고개를 끄덕였지만, 꼬리가 힘없이 축 처져 있는 것으로 봐서는,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게 분명했다.
잘난 척을 하고 싶다기보다는, 아웅이와 다웅이에게 생명을 불어넣으려 애쓰는 두 사람을 민망하게 하지 않기 위해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는 것 같은 반응.
“흠흠, 이런 이야기는 나중에 하고, 이제 본격적으로 아웅님과 다웅님에게 생명을 불어넣어 보는 게 어떻겠습니까?”
아니나 다를까, 그 반응을 본 산신령님은 곧바로 둘만의 세계에서 빠져나왔다.
‘언제봐도 대단하군.’
토생원과 토론을 할 때 보면 영락없이 자기들만 아는 세계에 푹 빠져 사는 학자인데, 왜 저렇게 사회생활 능력이 좋은 걸까.
반면 토생원은 계속해서 토론을 이어가기를 원하는지 눈치없이 어려운 이야기를 늘어놓았고,
“흠흠······. 토생원 님.”
결국 수다르가 헛기침을 하며 눈치를 주고 나서야 뭔가를 깨달은 듯 아쉬운 표정으로 입을 다물었다.
‘조금 앞날이 걱정되는 분이네······.’
“자, 아웅이님, 다웅이님, 이 약을 드시지요.”
어쨌든, 두 이과인(?)의 말에 따르면, 약의 효과는 아웅이와 다웅이의 몸을 이루고 있는 마력이 더이상 흩어지지 않게 해주고, 진짜 살아있는 생물처럼 다른 방식을 통해 에너지를 보충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라고 했다.
“자, 그럼 어서 영약을 복용해보도록 하지요.”
설명을 마친 수다르님이 다가와 약병을 내밀자,
“아웅!”
아웅이는 곧장 힘차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수다르님의 영약을 꿀꺽 삼켰다.
“아, 아웅!?”
그리고는 인상을 찌푸리며 못 먹은 것을 먹은 것처럼 살짝 혀를 내밀었다.
음, 산신령님의 단약은 언제나 취향을 타는 맛이니, 아마 녀석의 입맛에는 맞지 않는 맛을 가지고 있었겠지.
이어서 다웅이에게 약을 먹이려 했을 때, 뜻밖의 문제가 발생했다.
고미를 닮아 후각이 워낙 뛰어난 탓인지, 약을 먹기도 전에 맛을 눈치채고는 입을 다물어 버린 것이다.
내가 나서서 억지로 입을 벌려 보려 했지만······.
“으아아아아!”
아무리 안간힘을 써봐도 녀석의 턱은 꿈쩍조차 하지 않았다.
“미, 미치겠네.”
지금 내 근력은 못해도 B급 평균을 웃돌거나 A급 하위권 헌터와 비슷한 수준은 될 텐데······. 어떻게 이럴 수 있지.
좀 너무한 거 아니냐?
으으, 분하다, 분해!
아무리 고미의 분신이라도 이런 게으름뱅이 아기 판다의 입을 여는 것조차 실패하다니!
“으음······. 역시 고미님의 분신다운 힘이군요.”
그 광경을 바라보던 수다르와 토생원은 약속이나 한 듯 심각한 표정으로 침음을 흘렸다.
설마, 이런 문제가 생길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다웅이는 아무것도 안 하고 싶다는 마음이 반영된 분신, 말하자면, 욕망에 충실한 캐릭터다.
아마도 그런 특징이 너무나도 성실하게 반영된 나머지, 입에 안 맞는 건 죽어도 입에 대지 않는 모양이었다.
“다······.”
급기야 다웅이는 무슨 일이 있어도 먹지 않겠다는 의지를 표명하듯, 두 팔로 머리를 감싼 뒤 고개를 파묻어버렸고,
“이, 이놈이!”
그 모습을 본 고미는 커다란 두 눈을 더욱 크게 치켜뜨며 성을 냈다.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다웅이는 살짝 고개를 들어 고미를 바라보고는 다시 두 팔로 자신의 입을 가렸다.
“네 이놈! 그건 무슨 의미냐!”
분노가 폭발한 고미가 녀석에게 달려드는 순간,
“다, 다아아······.”
자리에 있던 모두가 경악을 금치 못했다.
다웅이가, 잠깐이나마 고미에게 밀리지 않고 버텨냈기 때문이다.
“마, 말도 안 돼······.”
긴 시간은 아니었다. 불과 2, 3초.
하지만, 명백히 고미와 힘겨루기를 했다.
이는 고미를 만난 이후 지금까지 처음 있는 일이었다.
무력 캐릭터는 아니라고 해도, 초월자인 토생원의 공격을 손부채질로 튕겨내는 게 고미다.
몬스터의 정점, 드래곤 중에서도 상당히 강력한 힘을 가졌다는 이유찬 씨마저 손발 한 번 뻗어 보지 못하고 한 방에 뻗어 버렸고.
그런 고미를 상대로 ‘반항’이라는 게 가능하다니······.
‘설마, 말 안 듣는 고미가 생긴 건가.’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나도 모르게 손바닥이 축축하게 젖어 들었다.
과장 조금 보태서, 초월자보다 이쪽이 더 무섭다고.
“이놈! 친구들과 수다르의 노고를 헛수고로 만들겠다는 것이냐! 너에게 이것을 만들어 주기 위해 모두 얼마나 고생을 한 줄 아느냐!”
그러나 고미의 호통에 이어지는 다웅이의 반응은, 그런 걱정을 적잖이 덜어주었다.
“우, 우웅······.”
힘으로 입을 벌리려 할 때는 꿈쩍도 하지 않던 녀석이, 친구들과 수다르가 자신을 위해 만들었다는 말에 벌렁 몸을 뒤집어 입을 벌린 것이다.
“허허허, 역시 고미님의 분신답게 마음씨가 참 따뜻하시군요.”
그 모습을 본 수다르는 흐뭇하게 웃으며 바닥에 누워있는 다웅이의 입에 영약을 부어주었고,
“다······.”
가만히 바닥에 들러붙어 영약을 받아먹은 다웅이는 표정을 짓는 것조차 귀찮다는 듯 아주 잠깐 인상을 찌푸리고는 다시 바닥을 굴러다녔다.
“토생원님, 다웅이님이 어디 아픈 건 아닌가요?”
그 모습을 지켜보던 한유진 씨가 걱정과 애정이 가득한 눈빛으로 다웅이를 바라보며 물었다.
음······. 어디가 아픈 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심각한 게으름뱅이인 건 사실이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관찰 결과로 보았을 때, 그건 아니다.
“아닙니다. 다웅이님은 실로 놀라운 존재이십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토생원의 말에 따르면, 다웅이의 진가는 내가 상상한 것 이상이었다.
“사실 저도 다웅이님 같은 존재를 만들어 보려고 애썼습니다만,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이런 존재를 오직 자신의 생명력만으로 만들어 낼 수 있다니······. 실로 놀라울 따름이군요.”
“다웅이가 그렇게 대단한가요?”
나의 질문에 토생원은 잠시 눈을 굴리며 생각을 정리하고는 최대한 쉬운 말로 다웅이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다웅이님의 육체와 마력 순환 구조는 단기간에 엄청난 폭발력을 낼 수 있도록 이루어져 있습니다. 하지만 충전할 수 있는 마력의 양에는 한계가 있으니, 움직임을 줄여 마력 소모를 최소화하는 것이 아닐가 추측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움직임이 적은 것은 아마도 고미님의 의도가 반영된 것이 아닐까 합니다만······.”
아닙니다. 자기도 어떻게 만들었는지 모르고 만든 거예요.
그런 의도 같은 거 전혀 없습니다.
그렇게 조물조물로 만든 무기에 대한 이강혁 씨 같은 반응 보이지 마세요.
그냥 게으름 피우고 싶은 마음의 화신이 바로 다웅이입니다.
“아마도 마력을 단숨에 폭발시키면 배틀 포션을 먹고 육식 토끼가 된 저보다도 더 강력하리라 생각합니다.”
육식토끼··· 가 되신 거였구나. 어쩐지 좀 흉악하다 했지.
확실히 풀 뜯을 것 같은 인상은 아니었어.
한편, 토생원의 설명을 들은 고미의 동공은 전에 없이 격렬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거 봐라, 모르고 만든 거지.
그런데, 초월자급 연금술사가 감탄할 정도의 마력 생명체라니, 대체 어떻게 하면 아무 생각 없이 이런 걸 척척 만들어내는 걸까.
“흐흠······. 여, 역시, 토, 토깽이 네 녀석은 이 몸의 의도를 정확히 읽어냈구나.”
고미는 짐짓 허세를 떨며 그렇게 말했지만, 오히려 그 말 덕분에 모두가 고미가 의도치 않은 걸작을 만들었다는 사실을 눈치채고 말았다.
차라리 가만히 있었으면 다들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을 텐데······.
“오오, 그렇다면 혹시 육체의 구성 방법과 마력 충전 방식에 대해 조금만 여쭈어봐도 되겠습니까?”
아니구나, 어딜 가도 꼭 하나씩 눈치 없는 친구가 있는 법이지.
“그, 그것은······.”
당황한 고미가 말을 잇지 못하자,
“토생원 님, 그것은 저희가 연구해서 알아내야 의미가 있지 않겠습니까? 고미님에게 모든 것을 의지해서야 언제 연금과 연단의 정점에 오르겠습니까?”
수다르 님이 잽싸게 상황을 수습했다.
“으음, 그렇군요. 제 생각이 짧았습니다.”
그래도 끝까지 물고 늘어지지는 않아서 다행이네.
계속 물어봤으면 혼났을 텐데······.
“자, 그럼 이제 할 일도 다 끝났고, 다시 바깥으로 나가볼까요?”
어색한 분위기를 끝내기 위해 꺼낸 말에 토생원은 잠시 머뭇거리다 눈치를 보며 입을 열었다.
“그······. 혹시 제가 만든 아이들도 함께 데리고 나가도 좋을 런지요?”
“흑랑과 백랑은 밖으로 나가 치료를 해주기로 하지 않았습니까?”
수다르의 물음에 토생원은 또다시 눈치를 살피다가 어렵사리 입을 뗐다.
“실은 흑랑과 백랑 외에도 두 마리가 더 있습니다.”
토생원이 가볍게 휘파람을 불자, 푸른색과 붉은색의 늑대 두 마리가 화원의 땅속에서 기어 나왔다.
크기는 흑랑과 백랑의 절반 정도.
“허허, 좋지요. 제 동굴도 이제 제법 소란스러워지겠군요.”
수다르는 굳이 그 두 마리에 대해 캐묻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도 두 번째 대결에서 흑랑과 백랑이 죽으면 꺼낼 예정이었겠지.
하지만 끝내 그 둘을 죽이지 않고 자신의 패배로 대결을 마무리했다는 건······.
‘역시, 정 때문이려나?’
뻔하지만, 싫지 않은 이유다.
‘시원하게 악당을 죽어버렸습니다.’보다는, 이런 클리셰가 더 내 취향이거든.
수다르가 자신의 부탁을 받아주자, 잠시 가을철 보리처럼 고개를 푹 숙이고 있던 커다란 두 귀가 다시 꼿꼿하게 허리를 폈다.
“후훗, 토깽이! 네 녀석도 신의를 아는 녀석이었구나! 좋다, 위대한 이 몸이 너와 저 녀석들에게 임무를 내려주마! 수다르의 동굴에서 함께 지내며 수다르를 지켜다오!”
“감사합니다. 위대한 수호자이시여!”
고미의 명령에 토생원은 즉시 무릎을 꿇었고, 네 마리의 늑대 역시 바닥에 넙죽 엎드렸다.
* * *
토생원의 화원에서 나왔을 때는, 이미 달이 중천에 떠 있었다.
그래도 하루나 이틀이 훌쩍 지나지는 않았으니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초월자의 이공간은 현세와는 시간의 흐름이 다르다고 했으니까.
혹시나 하는 마음에 핸드폰을 꺼내 확인해보자, 날짜가 바뀌어 있지 않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제 집으로 돌아가죠.”
나의 말에 제르보나와 이유찬 씨는 자신들의 앞에 선 채 올망졸망 눈을 빛내고 있는 탑승 대기자(?)들을 바라보며 조금 난처하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음, 하긴, 올 때는 고미에 나, 수다르님 셋이었는데, 갈 때는 일곱이 추가됐으니······. 좀 난감한 상황이긴 하지.
이 일을 어쩌면 좋나 고민하고 있을 때, 한유진 씨가 나에게 달려와 핸드폰을 내밀었다.
“수하 씨, 잠깐 얘기 좀 해요.”
그녀의 핸드폰에는 노인국이 보낸 문자가 떠 있었다.
- 통화가 안 되는군. 던전에라도 들어가 있나? 최진웅과의 거래 조건을 변경하고 싶은데, 연락을 할 수가 없군. 통화가 가능해지는대로 전화를 해줬으면 좋겠네. 조금 급한 일이라서 말이야.
거래 조건을 바꾸자고······? 이제 와서? 왜?
순간, 불길한 예감이 머리를 스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