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아기곰이 너무 강함-123화 (123/300)

EP.123 비토섬의 비밀

“자기가 고미라고 말하는 사람, 아니, 곰을 만났다고요?”

“네, 그렇습니다.”

······.

대체 이게 무슨 소리야.

“분명히 자기 입으로 위대한 이 몸은 더욱 강력한 힘을 손에 넣었다. 이제 그 누구도 이 몸에게 대적할 수 없느니라! 이 몸의 이름은 고미니라! 하고 외쳤습니다.”

말투까지 딱 고미네······.

우리가 영문을 몰라 눈만 끔뻑이고 있을 때, 고미가 인상을 찌푸리며 입을 열었다.

“그놈이 정말, 이 몸처럼 위대한 곰의 형상을 하고 있었느냐?”

“네, 하지만 훨씬 더 거대하고 흉흉한 인상에, 털은 검은색이었습니다. 지금 이 능소니, 아니 고미 님처럼 동글동글 귀여운 것이 아니라, 아주 날카롭고 무섭게 생긴 맹수였습니다.”

“뭐, 뭣이!? 동글동글!?”

왜 그 대목에서 흥분하는 건데.

설마 네가 동글동글하게 생겼다는 걸 몰랐냐······.

귀도 동글동글, 꼬리도 동글동글, 솜방망이도 동글동글, 동글동글 포동포동의 화신이잖아.

“가, 감히! 위, 위대한 이 몸에게! 이 날카로운 이와 위엄 넘치는 발톱을 보고도 그런 소리가 나온단 말이냐!?”

고미가 자신의 앙증맞은 이빨과 발톱을 보여주자, 토생원은 잠시 눈치를 살피다 어렵게 입을 열었다.

“무, 물론 능소니 님도 강력하시지만, 그 검은 곰은 훨씬 더 흉폭하고 무서운 생김새를 하고 있었습니다······.”

이어지는 토생원의 설명에 따르면, 그 곰은 드래곤 보다도 거대하고, 드래곤을 맨손으로 찢어 죽일 정도로 강력했으며, 너무나도 잔인하고 흉폭해 보는 것만으로 간담이 서늘해졌다고 했다.

“저, 저는 너무 두려운 나머지 꽁지가 빠져라 달아 났습니다. 그리고 만수왕을 만난 날, 그 일에 대해 물었지요. 만수왕은 모든 짐승의 왕이니, 그 곰에 대해서도 아는 바가 있지 않을까 하여 ······.”

음, 아까부터 하면 안 되는 말만 골라서 하시는 분이네.

약 기운이 좀 빠지고 정신이 돌아왔나 했더니, 이건 이거대로 문제가 되는 발언을 마구 쏟아 내시는군.

“네 이놈! 어째서 만수왕이 모든 짐승의 왕이란 말이냐!”

그럴 줄 알았다.

어째 본인이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든 굉장히 구박받기 좋은 말을 하는 캐릭터인 것 같네.

“고미, 진정해 봐. 일단 얘기를 좀 들어보자.”

나는 일단 고미를 달랜 뒤 취조(?)를 이어나갔다.

“그래서요. 그 애꾸가 뭐라고 말했는데요?”

“만수왕은 그 곰이 바로 고미님이라고 했습니다.”

토생원의 설명을 듣고 있자니, 뭔가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다르님은 고미를 보자마자 상대가 대균열의 수호자라는 걸 알아봤다.

그런데 어째서 더 오래 산 토생원이 그런 착각을 한 걸까?

“고미가 아기곰이라는 건 알려지지 않은 건가요?”

“아닙니다, 대균열의 수호자는 능소니의 모습을 하고 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나의 질문에 수다르가 대신 고미에 관한 전설을 말해주었고, 토생원이 그 말을 받아 설명을 이어나갔다.

“네, 저도 그렇게 알고 있었지요. 해서 만수왕에게 고미님은 능소니의 모습을 하고 있지 않냐 물었더니, 그것은 새빨간 거짓말이라며 저에게 벌컥 화를 냈습니다.”

응? 이건 또 무슨 소리야. 어떻게 하면 자기를 애꾸로 만든 상대의 외모를 잊을 수 있는······.

그 순간, 어처구니없는 생각 하나가 머리를 스쳤다.

‘설마 아기곰한테 당했다고 말하기 창피했던 건가?’

그리고 토생원의 설명은 나의 추측이 옳았음을 증명해 주었다.

“자신이 고미님과 싸우다 눈을 잃었는데, 자기보다 고미님의 외모를 더 정확하게 아는 자가 어딨겠냐며······.”

잠시 말꼬리를 흐리며 고미의 눈치를 살피던 토생원은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다시 입을 뗐다.

“본래 고미 님은 봉황의 날개에 용의 뿔, 호랑이의 발톱을 가진 거대한 곰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자신과 싸우다가 뿔을 꺾이고 날개를 잃었다고······.”

역시, 아기곰한테 얻어터졌다고 말하기 민망하니 허풍을 떠신 거고만.

하긴, 외모만 놓고 보자면 다 큰 어른이 초등학생도 아니고 유치원생한테 쥐어 터졌다는 느낌이니까.

그래도 그렇지, 이건 뭐 신수라고 이름 붙은 것들은 대충 다 갖다 붙였군.

하려면 제대로 하지, 발톱만 호랑이인 건 또 뭐야.

호랑이 발톱이 용의 뿔이나 봉황의 날개급 이라는 소리냐.

“이이······.”

만수왕에 의해 날조된 자신의 소문을 접한 고미는 온몸을 파르르 떨며 주먹을 움켜쥐었다.

하지만 내 신경은 온통 다른 곳에 쏠려 있었다.

만수왕의 허풍은 둘째치고, 그 거대한 곰은 왜 자신이 고미라고 외치고 다닌 걸까?

“그 곰이 자기가 고미라고 했다고요?”

“네, 그렇습니다.”

“혹시 다른 정보는 없나요?”

“저도 우연히 본 것이라······. 더 이상은 아는 바가 없습니다.”

뭔가 수상한 냄새가 풀풀 나는데······.

그때, 흥분한 고미가 솜방망이를 붕붕 휘두르며 나의 생각을 끊었고,

“당장 그놈에게 안내해라! 수하들을 모두 버리고 간신히 목숨만 건져 달아난 놈이, 감히 이 몸을 모욕해!?”

노발대발하는 고미의 모습에 토생원의 눈이 공포로 물들었다.

‘이분도 참······. 겁이 많네.’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그렇게 흉폭하시던 분이······. 약 기운이 빠지셔서 이렇게 된 건가, 아니면 고미의 물리치료 때문에 착해지신 건가.

“고미, 그만해. 어차피 조만간 만날 거잖아. 지금은 지금 할 일에 집중해야지.”

“흥! 알겠느니라! 하지만 흑암의 지배자 다음은 그 애꾸눈 괭이 녀석이니라! 약속하거라!”

우리의 대화를 듣고 있던 토생원은 그제야 눈앞의 아기곰이 진짜 대균열의 수호자라는 것을 깨달았는지, 바닥에 넙죽 엎드리며 예를 갖추었다.

“이, 이 무지한 토끼가 감히 태양 같은 수호자를 몰라보고 무례를 범했나이다!”

그런데 어째 반응이······.

“저······ 토생원님, 토생원 님은 고미의 적이 아니었나요?”

나의 질문에 토생원은 황급히 머리를 조아리며 목청이 터져라 외쳤다.

“고미님은 힘과 위엄을 모두 갖추신, 진정한 강자이십니다. 저를 핍박하고 괴롭히던 용왕이나 호랑이, 늑대 놈들과는 달리 힘이 있음에도 함부로 사용하지 않는 그 모습을 언제나 동경해 왔습니다!”

흠, 줄곧 타고난 강함이 어쩌고 하더니, 힘센 놈들한테 악감정이 많으셨던 모양이군.

뭐, 토끼 입장에서는 억울할만한 일이지.

그냥 토끼로 태어났을 뿐인데 맹수에게 쫓겨 다녀야 할 테니 말이야.

“감히 고미님을 앞에 두고도 몰라보았으니, 그 죄는 죽음으로······.”

짝!

또다시 죽겠네 어쩌네 하면서 설쳐대자, 수다르님이 작은 손바닥을 쫙 펼쳐 토생원의 뺨을 후려쳤다.

“네 이놈! 또다시 의원이 죽음을 입에 담는단 말이냐!”

처음보는 수다르님의 엄한 모습에 삼룡이 패밀리와 나는 물론이고, 고미마저 말문이 막혀버렸다.

“나는 이미 의원의 길을 버렸다! 어째서 나를 의원이라 부르는 것이냐!”

의원······?

아, 수다르 4세의 제자였다고 했었지. 그런데 어쩌다가 이렇게 매번 열폭을 하는 약쟁이로 변해버렸담.

내가 질문을 하기도 전에, 수다르님이 먼저 입을 열었다.

“토생원은 본래 저의 선조이신 수다르 4세님의 제자였습니다. 당시 굶주리던 인간들을 위해 독성이 있는 음식들과 안전한 식재료들을 구분하여 인간들이 보다 풍요롭게 살 수 있게 도와주셨지요.”

“닥쳐라, 수다르!”

과거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토생원은 다시 흥분하여 목소리를 높였지만,

“네 이놈!”

고미의 한마디에 금세 착한 아이로 돌아가 입을 다물고 말았다.

“그렇게 온갖 독초를 먹고 해독하는 과정에서 토생원님의 간은 만독불침의 힘을 가지게 되었고, 이를 알게 된 용왕이 토생원님의 간을 탐내기에 이르렀습니다.”

응? 이거 어디서 많이 들은 이야기 같은데.

“아, 그래서 여기서 보자고 한 거구나!”

그때, 한유진 씨가 무언가를 깨달았다는 듯 갑자기 손뼉을 쳤다.

“네?”

“비토섬이 별주부전의 무대거든요.”

······.

장소가 복선이었냐?

그래도 초월자의 정체가 전래동화의 주인공인 건 좀 심하잖아.

“여기에 용궁마을도 있고, 별주부전 테마파크도 있어요. 이따 가보실래요?”

이 사람이······. 지금 상황에 별주부전 테마파크가 말이 되냐고.

맥락이 조금 이상한 느낌이 들기는 했지만, 토생원은 슬픈 눈으로 고개를 떨구었다.

“그것이 힘없는 자의 말로다! 아무리 선의를 가지고 있어도 세상은 알아주지 않는단 말이다! 당시 용궁의 대신이었던 고북이 나를 측은히 여겨 풀어주지 않았다면, 나는 용왕에게 살해당하고 말았을 것이다!”

고북···? 설마 그 고북이 고북 대왕은 아니겠지?

으, 물어보고 싶은데, 타이밍이 안 나온다.

나중에 꼭 물어봐야지.

여하튼, 이후 토생원은 강해지기 위해 의술이 아닌 연금술을 연구했고, 금술에 손을 대었다가 수다르 4세에게 쫓겨나기에 이르렀다고 말했다.

“그 후로 나는 매일 밤 용왕에게 간을 빼 먹히는 악몽에 시달렸다! 하지만 인간들은 바다에 나갈 때마다 용왕에게 제사를 올렸지! 자신들을 위해 의술을 연구한 나보다 재앙을 내리는 존재인 용왕을 더 숭배하는 모습을 보고, 내가 어떤 느낌이었을지 상상이나 해보았느냐!”

음, 듣고 보니 조금 딱하기는 한데, 그래도 이건 아닌 것 같기도 하고······.

“흥! 네 놈은 진정한 위대함의 의미를 모르는구나.”

내가 토생원에게 조금이나마 연민을 느끼고 있을 때, 고미가 단호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이 몸이 어떻게 지금처럼 위대한 존재가 되었다고 생각하느냐! 약자를 보호하고, 정의로운 일을 행한다는 것은 본래 그런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의무를 저버리지 않는 존재만이 이 몸처럼 진정한 곰이 될 수 있는 것이란 말이다!”

고미의 정의론이 옳은지는 모르겠다.

정의로운 사람들이 저렇게 살아가는 건 사실이지만, 그렇게 살라고 말하는 건 또 다른 차원의 문제니까.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고미는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있는 삶을 살아왔다는 거.

‘뭐, 보통 사람이 그런다고 진정한 곰으로 변할 것 같지는 않지만.’

고미의 호통에 토생원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고개를 떨구었다.

그렇게 잠시 정적이 흐르고, 고미의 입에서 뜻밖의 말이 나왔다.

“좋다, 이 몸이 너에게 진정으로 위대해질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주마. 이제부터 너는 수다르의 제자가 되어 다시 의술을 연구하거라.”

“고미?”

“수하, 너도 이 녀석에게 궁금한 것을 묻고, 가능하다면 같은 편으로 만들고 싶다고 하지 않았더냐?”

아니 뭐, 될 수 있으면 아군으로 끌어들이고 싶다고 말한 건 나지만, 그게 이런 방식은 아닌데······.

갑작스러운 고미의 결정에 삼룡이 패밀리 역시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듯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이곳에 온 목적이 그것이기는 했지만, 막상 토생원의 캐릭터를 보고나니 이 녀석이 배신을 하지는 않을까 걱정을 하는 듯한 반응.

잠깐의 정적이 흐르고, 토생원이 다시 입을 열었다.

“이 토생원······. 고미 님처럼 위대한 존재가 되기에는 이미 너무나 많은 죄를 지었습니다. 이 죄는 오로지 죽음만으로 갚을 수 있습니다. 저의 간은 용왕도 탐내던 보물이오니 이 화원과 저의 간을 바치고 이만 흙으로······.”

찰싹!

토생원이 말을 마치기도 전에, 또다시 찰진 소리가 울려퍼졌다.

뺨을 때리는 것과는 조금 다른 소리.

고개를 돌려보니, 약초를 꺾어 만든 회초리를 손에 든 수다르님의 모습이 보였다.

“고미 님은 지금 아주 중요한 시기에 있습니다. 그리고 세상은 큰 위기를 맞았으니, 당신의 연금술을 세상을 위해 쓰는 것으로 죄를 갚으십시오. 그때까지는 내가 당신의 스승이며, 잘못을 저지를 때마다 회초리로 엄히 다스리겠습니다.”

타이밍 절묘한 거 보소······.

토생원에 의해 죽을 뻔한 당사자가 저렇게 나와버리면, 우리가 할 말이 없잖아.

게다가 토생원은 회초리에 맞고도 고개조차 들지 못한 채 무릎을 꿇고 가만히 앉아 있었다.

설마 이런 반응까지 예상하고 회초리질을 한 건가?

“또한 당신의 화원은 앞으로 힘없고 약한 자들을 위해 쓰일 것이며, 저 가엾은 두 늑대를 치료하는 것이 스승인 내가 당신에게 내리는 첫 번째 명령입니다. 혹 다른 아이들이 있다면, 그 아이들도 모두 치료해 주셔야 합니다.”

거기에 자연스럽게 늑대 두 마리의 안위까지 살피고, 화원까지 확실히 챙기다니······.

정말 굉장한 산신령이군.

정치력으로 지리산의 신령이 된 건 아닐까?

내가 그렇게 합리적인 의문을 제기하고 있을 때, 토생원이 고개를 저으며 입을 열었다.

“다른 실험체는 없습니다. 백랑과 흑랑은 처음부터 마력으로 만들어진 아이들······. 맹세컨대 이 토생원, 살아있는 것을 잡아다 실험체로 사용하지는 않았습니다.”

“저것들이······. 마력으로 만들어진 생명체란 말입니까?”

두 늑대가 마력 생명체라는 말에 수다르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두 눈을 치켜떴다.

‘뭐야, 저 늑대들이 산신령님도 진짜 살아있는 생물로 느낄만큼 완벽한 마력 생명체란 말이야?’

“그렇습니다. 흑암의 지배자의 피조물인 케르베로스를 참고해 만들었으나, 진짜 생령이 들어가 있지는 않습니다.”

역시······. 케르베로스는 노인국 씨가 만든 게 아니었군.

“토생원님, 그 이야기, 조금 더 자세히 들어볼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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