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아기곰이 너무 강함-120화 (120/300)

EP.120 불꽃남자, 수다르

- 크워워어어어!

검은 늑대의 포효에 등줄기에 오소소 소름이 돋아났다.

녀석의 체형은 상반신이 더욱 비대하게 자라나 웨어 울프와 유사하게 변했다.

게다가 처음에는 네발로 기어 다녔지만, 이제는 두 발로 우뚝 서서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야, 약 하나로 이런 게 가능하다고?’

굳이 시험해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이 녀석은 A급 중에서도 상당히 상위에 속하는 몬스터다.

반면 수다르님의 단약을 먹은 하얀 늑대의 체형에는 아무런 변화도 없었고, 눈빛은 온순하게 변해버렸다.

이빨도, 발톱도, 털도, 모두 조금 더 윤기가 돌고 건강해 보였지만, 강해졌다는 느낌은 털끝만큼도 들지 않았다.

‘정말 괜찮은 건가? 뭔가 비장의 수단이 있는 거죠, 산신령님?’

고개를 돌려보자, 삼룡이 패밀리 역시 나와 마찬가지로 불안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반면 고미는 무언가 못마땅한 듯 잔뜩 인상을 찌푸린 채 팔짱을 끼고 눈앞의 검은 늑대를 노려보고 있었다.

‘뭐지, 뭔가 아는 게 있는 건가?’

“으하하하! 수다르! 네 늑대는 조금도 강해지지 않았구나! 어찌 된 것이냐! 연단술의 정점이라는 수다르 일족도 대를 거듭하며 쇠락한 것이냐!?”

토생원은 승리를 확신한 듯 광기로 눈을 번뜩이며 웃음을 터뜨렸다.

“패배를 인정해라! 내 앞에 무릎을 꿇고, 수다르 일족의 단도가 잘못되었다고 말하란 말이다! 아니면 이 두 늑대를 맞붙여 모두가 보는 앞에서 네 영약이 내 것보다 못하다는 것을 증명해야만 패배를 시인할 것이냐!?”

그때, 줄곧 말없이 자신의 하얀 늑대를 바라보던 수다르가 입을 열었다.

“그럴 필요는 없습니다.”

뭐라고······? 산신령님, 설마, 지는 건 아니죠?

“첫 번째 대결은 이 수다르의 패배이니 말입니다.”

그러나 나의 기대와는 달리 수다르는 너무나도 쉽게 패배를 인정했다.

“그러니 이 불쌍한 두 아이를 굳이 싸우게 할 필요는 없습니다.”

하지만 그의 표정에는 여전히 자신감이 가득했다.

아니, 오히려 첫 번째 대결이 시작되기 전보다 더욱 자신감이 넘쳤다.

수다르의 그런 반응에 오히려 대결에서 승리한 토생원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뭐지? 내가 모르는 수 싸움이 있는 건가?’

“그럼 어서 다음 대결로 넘어가시지요.”

수다르의 한마디에 토생원의 표정이 석고상처럼 딱딱하게 굳어갔다.

“이대로 이 두 아이에게 상처를 내고, 그 상처를 치유해주는 것이 두 번째 승부의 내용이었지요?”

“그렇다. 제한 시간은 마찬가지로 두 시간이다. 그 안에 영약을 만들면 된다.”

짧은 대화를 끝마치고, 수다르는 이전과 똑같이 우리에게 약초 몇 개를 구해다 달라고 일러주었다.

그리고는 담담한 태도로 약탕기를 이용해 탕약을 만들었다.

반면 토생원은 무언가 불안한 표정으로 계속 수다르를 힐끔거리며 포션을 제작하고 있었다.

수다르의 두 번째 탕약은 불과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완성되었고, 토생원의 포션은 두 시간을 꼬박 채우고 나서야 간신히 완성됐다.

첫 번째 대결과는 정반대의 양상.

“그럼, 시작하시지요.”

수다르의 말에 토생원은 잠시 망설이다 손을 휘둘러 신호를 보냈고, 두 마리의 늑대는 각자 자신의 발톱으로 가슴팍에 커다란 상처를 냈다.

‘으······. 너무하네.’

“주인이 잘못된 길을 걷는데도 참으로 충직한 아이들이구나. 기다리거라, 곧 편안하게 해주마.”

말을 마친 수다르는 인자한 표정으로 자신의 탕약을 백색 늑대에게 내어준 뒤 침을 놓기 시작했다.

그러자, 뼈가 드러날 정도로 심했던 상처가 거짓말처럼 빠르게 아물며 새살이 돋아났다.

눈처럼 새하얀 털과 대조되는 선명한 핏자국만이 조금 전 녀석의 가슴에 치명적인 상처가 있었다는 것을 증명하는 유일한 증거였다.

“으, 으하하! 수다르! 어쩔 것이냐! 두 번째 승부는 무승부구나!”

수다르가 치료를 마침과 동시에 토생원의 검은 늑대 역시 정상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수다르는 이전과는 달리 승부의 결과를 받아들이지 않고 천천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허허, 참으로 얄팍한 눈속임이군요. 한 번 더 상처를 치료해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그 제안에 토생원의 얼굴이 전에 없이 딱딱하게 굳어버리며 커다란 눈이 시뻘겋게 충혈됐다.

“같은 약을 두 번 시험해 보자는 것인데, 어찌하여 답이 없는 것입니까?”

“이, 이 간사한 수달이······!”

“지금 그 대답, 패배를 시인한 것이라 받아들여도 되겠습니까?”

뭐, 뭐지,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거야. 알려줘요, 산신령님!

토생원은 여전히 답이 없었다. 지금까지 보여준 모습으로 보아, 최소한 바락바락 우겨보기라도 할 텐데, 변명조차 없이 사지를 바들바들 떨고 있을 뿐이었다.

그 행동이 의미하는 바는, 너무나도 명백했다.

완패.

두 번째 대결은, 수다르의 승리였다.

“사, 산신령님, 이게 어떻게 된 건가요?”

참다못한 내가 질문을 던지자, 수다르님이 지그시 눈을 감으며 설명을 시작했다.

“단도란, 생명을 위한 것입니다. 그리고 우주 만물에는 선천지기가 깃들어 있습니다. 이해하기 쉬운 말로 풀어쓰자면, 생명력이라는 것이지요.”

그리고는 자신의 백색 늑대를 가리키며 말을 이어나갔다.

“제가 한 일은 저 하얀 아이의 선천지기를 북돋고, 뿌리를 더욱 단단하게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뿌리 깊은 나무는 세월이 지나며 자연스레 잎이 무성해지고, 꽃과 열매를 피우듯, 저 아이도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건강하고, 자신이 가진 가능성을 펼치며 강하게 자라났을 테지요.”

이어서 수다르의 손가락이 검은 늑대를 향했다.

“하지만 저자가 한 일은 반대였습니다. 뿌리로 가야 할 양분을 빼앗는 것으로도 모자라, 뿌리를 말려서라도 잎만 무성하게 만든 것이지요. 저 아이는 이제 1년을 살지 못할 것입니다. 이것은 생명을 위한 것이 아니요, 생명을 향하지 않은 모든 지혜는 단도가 아니라 사도에 불과합니다.”

“수다르! 네가 뭘 안다고 떠들어 대는 것이냐!”

토생원이 버럭 소리를 지르자,

“네 이놈!”

산신령님은 노기 어린 음성으로 놈을 꾸짖었다.

“저 검은 아이와 하얀 아이를 싸우게 하자 한 것은, 대결을 빙자해 이미 선천지기가 말라버린 저 아이들을 죽이고, 두 번째 대결에서는 아직 생명력이 충분한 다른 아이들을 내세우기 위함이 아니었더냐!”

늘 온화하고 부드럽던 수다르님은 온데간데없고, 지금 내 눈앞에는 감히 눈조차 마주칠 수 없을 정도로 위엄이 넘치는 지리산의 신령이 서 있었다.

“네가 만든 영약은 겉으로는 상처를 회복시키는 것처럼 보이나, 선천지기를 태워 회복 속도를 더욱 빠르게 할 뿐, 결과적으로 수명을 줄이는 사술에 불과하지 않더냐!”

그제야 나는 산신령님이 왜 첫 번째 대결에서 그리도 쉽게 패배를 시인했는지 깨달았다.

아마도, 토생원의 포션이라는 건 생명력을 소모해 상처를 회복하는 물건인 것 같았다.

상처를 치유하는 대신, 수명이 줄어드는 거지.

그러니 강화 포션을 먹고 수명이 줄어든 검은 늑대는 회복력도 약해졌을 터.

‘검은 늑대로 흰 늑대를 죽이고, 공평을 기한다며 새로운 몬스터 둘을 불러내 그 두 마리의 회복력을 비교하려 했던 거겠지. 그런 방법이면 또 생명력을 소모해 회복력을 강제로 끌어올릴 수 있었을 테니까.’

이렇게 보면 다시 상처를 내고 회복력을 측정하자는 말에 곧바로 패배를 시인한 이유를 또렷하게 알 수 있었다.

검은 늑대는 이미 많은 생명력을 소모했으니, 첫 번째는 몰라도, 두 번째, 세 번째에는 반드시 패배했을 테니까.

한 가지 의문은, 왜 저 성질머리에 끝까지 해보자는 소리를 하지 않고 그냥 두 번째 승부를 포기했냐 하는 점이었다.

“너의 지혜와 연금술이라면 느리더라도 순리에 맞는 길을 걸을 수도 있었을 것을! 어찌 대도를 벗어나 불쌍한 생명을 핍박한단 말이냐!”

수다르의 노기 어린 목소리에 토생원은 참을 수 없는 모욕을 당한 사람처럼 온몸을 파르르 떨며 바락바락 소리를 질러댔다.

“네 놈이 뭘 안다고 나를 가르치느냐! 늘 인간들에게 섬김을 받고, 수다르 가문의 비전을 물려받은 네가 뭘 알아! 천천히 정도(正道)를 걸어!? 내일을 모르는 자가 십 년 뒤를 꿈꿀 수 있다는 말이냐!”

그의 목소리에서는 참을 수 없는 분노와 설움이 느껴졌다.

굳이 긴 말을 하지 않아도, 직감할 수 있었다.

그 역시 한때는 약자였다는 것을.

“네 이놈! 어디 간사한 혓바닥을 놀리느냐! 지금의 네 놈이 내일을 모르는 나약한 존재이더냐! 네 놈으로 인해 내일을 모르게 된 가엾은 아이들을 눈앞에 두고 감히 그런 말을 내뱉을 수 있단 말이냐!”

“닥쳐라! 닥쳐! 네 놈이 뭘 안다고 떠들어 대느냐!”

한창 목소리를 높이던 두 사람은 서로를 마주 보며 돌연 입을 다물어 버렸다.

마치, 이 논쟁이 결국 어떻게 끝날지를, 또 어떻게 끝내야 할지를 아는 사람들처럼.

먼저 입을 연 것은, 토생원이었다.

“좋다! 두 번째는 네가 이겼다! 이제 마지막 승부를 하자! 그럼 네 놈과 나, 둘 중 누구의 길이 옳은지 명백하게 밝혀질 테니 말이야! 이제는 돌이킬 수 없다! 끝까지 가는 것뿐이야!”

“좋다, 네 그 삐뚤어진 사고방식을 고쳐주마. 마지막 승부의 조건을 말해보아라.”

수다르의 말에 토생원은 무언가 결심을 굳힌 사람처럼 광기 어린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독단 대결이다.”

“그렇게까지 나를 꺾고 싶은 것이냐?”

“저······. 수다르님, 독단 대결이라는 게······.”

무언가 불길한 예감이 들어 질문을 던지자,

수다르님이 평온한 목소리로 다시 입을 열었다.

“독과 약은 동전의 앞면과 뒷면과 같은 법이지요. 독단 대결이란 서로가 만든 독약을 먹고, 그 해독제를 만드는 대결입니다.”

순간 말려야 한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하지만 대지에 뿌리를 내린 산처럼 굳건한 수다르님의 눈빛에 나는 차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수하님, 이는 피할 수 없는 대결입니다. 의원으로서의 신념을 잃은 산신령은 더이상 신령이 아닌 순리를 거스른 요물에 불과한 법, 부디 이 수다르를 말리지 말아 주십시오.”

그때, 가만히 둘의 대결을 지켜보고 있던 고미가 무거운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 수다르, 나에게 약속하거라. 결코 패배하지 않겠다고. ]

“걱정하지 마십시오. 이 수다르, 반드시 저의 길을 증명해 보이겠습니다.”

말을 마친 수다르는 묵묵히 화원으로 발걸음을 옮겼고, 토생원 역시 지금까지 본 적 없는 비장한 표정으로 약초를 채집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말 한마디 없이 서늘한 분위기 속에서 시간이 흐르고······.

마침내 두 개의 독약이 완성됐다.

토생원의 것은 불길한 검붉은 색을 띤 액체 형태의 독이었고, 수다르님의 것은 평범한 한약처럼 검은 색에 가까운 갈색을 띠고 있었다.

독약 대결의 규칙은 간단했다.

먹은지 두 시간 내에 해독하지 못하면 죽음에 이르는 독을 만든다.

그리고 서로가 만든 독을 마시고, 그 시간 내에 상대의 독을 해독할 해독제를 만들어 복용하는 것.

독약을 먼저 들이켠 것은, 토생원이었다.

“수다르, 이 대결은 내가 이긴 것 같구나.”

독을 마신 토끼는 태연한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의 화원 어딘가로 걸음을 옮겼다.

“쿨럭······!”

반면 수다르님은, 독약을 마시자마자 붉은 피를 토하며 안색이 파랗게 변해버렸다.

“수, 수다르 님!”

[ 수다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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