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아기곰이 너무 강함-119화 (119/300)

EP.119 진정한 지존은 흔들리지 않는다

다음 날.

비토섬은 경상남도에 위치한 작은 섬으로, 지도를 찾아보니 다리를 통해 차로도 이동할 수 있었다.

하지만 거리도 먼데다가, 선수(?)의 컨디션 관리를 위해 드래곤을 타고 가기로 결정했다.

멤버는 삼룡이 패밀리와 나, 그리고 고미와 수다르.

만일의 사태가 벌어지면 고미가 백색 화원의 주인을 맡고, 삼룡이 패밀리와 내가 수다르를 보호하는 것이 우리의 계획이었다.

“와아······.”

“오오오!”

목적지에 도착한 고미와 나는 동시에 감탄사를 내뱉었다.

발아래로 펼쳐진 푸른 바다와 복잡한 해안선, 그리고 크고 작은 섬들이 점점이 늘어서 있는 절경을 보고 있자니, 초월자를 만나러 간다는 사실마저 잊고 잠시나마 그 아름다움에 푹 빠져들고 말았다.

이유찬 씨가 커다란 날개를 펼치고 활공을 시작하자, 쪽빛 바다와 녹음이 무성한 섬이 더욱 선명하게 시야에 들어왔다.

이후 우리는 섬의 끄트머리에 위치한 ‘낙지포’로 향했다.

백색 화원의 주인이 게이트를 열겠다고 말한, 바로 그곳이었다.

“왜 이런 곳에서 보자고 한 걸까요?”

한유진 씨가 눈 앞에 펼쳐진 바다를 바라보며 그렇게 말했을 때,

- 지이이잉.

기이한 소리와 함께 눈처럼 새하얀 게이트가 열렸다.

“응?”

게이트가 하얀색일 수도 있나?

표정을 보니, 그녀 역시 이런 색의 게이트는 처음 보는 듯 싶었다.

“이게 맞겠죠?”

새하얀 게이트에서는 일반적인 게이트와 달리 몬스터도 나오지 않았고, 크기도 아주 작았다.

“이게 맞겠죠?”

“맞는 것 같네요. 그럼 들어가죠.”

서로 눈을 마주친 우리는, 향긋한 꽃향기와 함께 기이한 약 냄새가 풍겨 오는 게이트 안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 * *

“크크크크, 으하하하하! 수다르! 정말로 왔구나!”

게이트를 지나고, 시야가 밝아지기 무섭게 광기에 찬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그런데, 웃음소리가······. 좀 많이 경박하네.

‘포션 제작자에게 빙의했을 때는 이 정도로 경박한 목소리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

주위를 둘러보자, 형형색색의 꽃이 가득한 너른 풀밭 위에 사람만 한 크기의 무언가가 눈을 부릅뜨고 우리를 노려보고 있는 것이 보였다.

“토끼!?”

내가 무언가 반응을 보이기도 전에, 한유진 씨가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눈을 치켜뜨며 외마디 비명을 내질렀다.

왜 토끼냐······. 호랑이까지는 이해가 가능한데, 토끼라니··· 무력 캐릭터가 아니라도 토끼는 좀 아닌 것 같은데.

게다가 귀엽지도 않다. 새하얗기는 한데 내가 아는 토끼랑은 다르게 털도 짧고, 생긴 것도 너무 날카로운 데다가, 앞다리 뒷다리는 또 왜 저렇게 긴 건데······. 전투 토끼냐?

“인간! 정말 수다르를 데려오다니, 으하하하! 후회하게 해주마!”

우리를 발견한 초월 토끼(?)는 또다시 웃음을 터뜨리며 눈알을 휙 까뒤집었다.

[ 수하, 저 녀석, 정상이 아닌 것 같다. ]

심지어 고미마저 정신 상태를 의심할 정도로 심히 상태가 좋지 않다.

“쯧쯧, 어리석은 자 같으니. 자신이 만든 약에 중독이 된 모양입니다.”

백색 화원의 주인을 바라보던 수다르가 눈을 가늘게 뜬 채 혀를 차며 말했다.

뭐야, 진짜 약쟁이였어?

탓-

그때, 새하얀 토끼가 단숨에 끝이 보이지 않는 풀밭을 가르고 우리의 눈앞에 나타났다.

“인간, 그때와는 모습이 다르구나. 이게 어떻게 된 거지? 설마, 인간 주제에 둔갑술이라도 쓰는 건가? 아니면 환술? 아아, 궁금하구나. 좋다. 수다르를 꺾고 네 녀석을 내 하인으로 삼으면 모든 걸 알 수 있게 되겠지.”

오늘 나는 포션 제작자를 만나러 갔을 때와 달리 본래 내 모습으로 이곳에 온 상태였다.

포션 제작자에게는 나와 한유진 씨의 관계를 숨길 필요가 있지만, 곧 수다르에게 패배할 이 미친 초월자에게까지 그럴 필요는 없으니까.

또 한 가지, 본 모습으로 초월자를 만난 이유는, 수다르의 승리를 믿는다는 무언의 표현이었다.

어떤 위험이 도사리고 있을지 모르는 이공간까지 기꺼이 함께 와 준 산신령님을 위해, 이 정도 신뢰는 보여줘야지.

“당신은 오늘 이 수다르 8세에게 패할 것이니, 결코 수하님에게 손을 댈 수 없습니다.”

수다르가 도포 자락을 휘저으며 말했다.

“으하하하! 건방진 놈! 감히 너 따위가 이 토생원의 적수가 돌 수 있으리라 생각하는 것이냐!?”

토, 토생원······. 이름은 또 왜 이래. 별주부전이냐.

쾅-!

토생원이 말을 마치는 순간, 하늘에서 거대한 백색 화로 하나가 떨어졌다.

“오늘 너와의 승부에 사용할 단로다. 네 녀석도 그것을 가지고 왔겠지!?”

토생원의 말에 수다르님은 말없이 품에서 약탕기 하나를 꺼내 들었다.

“큭큭, 역시, 가져왔구나. 좋아. 만전의 상태가 아닌 너에게 이겨봐야 이 토생원이 천하제일의 연금술사라는 것을 증명할 수는 없으니······. 오늘 너를 이기고, 그 같잖은 약탕기를 부수어 나의 비원이 이루어졌음을 세상에 알릴 것이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그럴 일은 없을 것입니다. 어서 승부의 조건을 말씀하시지요. 선조들을 대신해 당신에게 진정한 단도(丹道)가 무엇인지 알려드리겠습니다.”

오늘의 수다르는 평소의 온화하고 부드러운 산신령님이 아니었다.

늘 고미의 안색을 살피며 비위를 맞춰주던 사회생활 만점의 조금은 얄미운 수달도 아니었다.

그야말로 연단술의 지존다운 자신감과 위엄을 물씬 풍기는 쾌남.

“자, 거두절미하고, 어서 승부의 내용을 말씀하시지요. 이 수다르, 그 어떠한 승부라도 피하지 않습니다.”

수다르의 자신감 넘치는 태도에 토생원의 눈동자에는 흉흉한 살기가 맴돌았다.

“좋다, 먼저 내기의 조건을 받아들여라. 오늘 나에게 패배하면, 너희 수다르 일족의 전승과 약탕기, 항아리를 모두 나에게 넘기고, 평생 나의 실험체가 되는 것이다······. 큭큭큭큭! 아아, 생각만 해도 흥분이 되는구나. 피 대신 영약이 흐른다는 수다르 일족의 몸이라면 얼마나 많은 약을 연구해 볼 수 있을까······.”

“무슨 소리야! 이런 건 조건에 없었잖아!”

생각지도 못한 조건에 벌컥 화를 내자, 토생원의 광기 어린 섬뜩한 두 눈이 나의 얼굴 위로 향했다.

하지만 나와 달리 고미는 아무 말없이 토생원을 노려보고 있을 뿐이었다.

생각 같아서는 당장이라도 눈앞의 토끼를 박살내 주고 싶지만, 모든 걸 수다르에게 맡기겠다는 듯한 태도였다.

“무슨 소리냐? 설마 인간 따위와 내기를 하기 위해 이런 자리를 마련했다고 생각하나? 승부는 나와 저 하찮은 수달 놈이 내는 것이다! 당연히 우리 사이에도 조건을 걸어야지!”

“좋습니다. 우리 수다르 일족의 보물과 이 비루한 육신을 걸지요. 대신 당신 역시 우리가 요구하는 것이 무엇이라도 내주어야 합니다.”

수다르의 태도에는 한 치의 흔들림도 없었다.

그야말로 ‘명경지수’라는 표현이 어울리는, 한없이 차분한 태도.

“크하하! 좋다! 내기의 종목은 세 가지. 첫째는 강화 포션이다. 연금술의 기본이라고도 할 수 있는 것이지. 두 번째는 회복 포션이다. 그리고 마지막은······. 큭큭큭······. 네가 한 번이라도 날 이길 수 있다면 그때 알려주지. 하지만 차라리 모르는 편이 좋을······.”

“시끄럽군요. 본래 빈 수레가 요란한 법, 이 수다르가 두려운 것이 아니라면 당장 승부를 시작하지요.”

수다르가 자신의 말허리를 싹둑 자르자, 흥분한 토생원의 눈에 붉은 실핏줄이 돋아났다.

“좋다. 어디 그 자신감만큼 실력도 대단한지 보지.”

말이 끝나는 순간, 갑자기 대지가 뒤흔들리며 저 멀리서 두 마리의 커다란 짐승이 우리를 향해 걸어왔다.

그와 동시에 제르보나와 이유찬 씨가 약속이나 한 듯 반인반룡의 형상으로 변화했다.

“이게 무슨 짓이지? 연금술 승부가 아니었나?”

두 마리의 드래곤이 수다르의 앞을 막아서자, 토생원의 입가에 묘한 미소가 감돌았다.

“흥, 저것은 시합에 사용할 재료에 불과하다. 강화 포션을 만들기로 하지 않았나? 저 짐승들에게 포션을 먹여 어느 쪽이 더 강해지는지 확인하는 것이 승부의 내용이다. 제한 시간은 두 시간이다.”

말을 마친 토생원은 가볍게 손을 흔들었고, 두 마리의 거대한 야수는 얌전히 자리에 주저앉았다.

“강화할 야수는 네가 선택해라 수다르. 야수를 준비한 것은 나이니 말이야. 그리고, 이 화원 안에는 세상의 모든 약초가 준비되어 있으니, 원하는 약초가 있다면 얼마든지 사용해도 좋다. 약초를 찾는 것 정도는 네가 데려온 놈들에게 도움을 받는 것을 허락해주마.”

얼핏 보기에는 꽤 공평해 보이는 조건이지만, 실상은 어린애도 속아 넘어가지 않을 얄팍한 눈속임에 불과했다.

늑대를 닮은 검은색과 흰색의 몬스터는 이미 약물로 강화가 된 상태 같았다.

모르기는 몰라도, 뭔가 장치가 되어 있겠지.

‘정말 치졸하네. 이게 무슨 승부야.’

약초 역시 마찬가지였다.

화원의 넓이는 감각을 강화해도 한 눈에 다 들어오지 않을 정도로 넓었고, 약초의 숫자는 수백만, 어쩌면 수천만을 넘을지도 몰랐다.

화원의 주인인 토생원은 약초의 위치와 종류를 모두 알겠지만, 이곳에 처음 오는 수다르 입장에서는 기초적인 약초 하나만 찾으려 해도 한참이 걸릴 게 분명했다.

우리가 도와줘도 좋다는 단서를 붙였지만, 우리는 약초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는 무식쟁이다.

게다가 시간제한도 두 시간에 불과하니, 불리하기는 매한가지지.

“그렇게 하시지요.”

하지만 수다르는 그런 것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 조용히 다가가 두 야수의 진맥을 시작했고,

“저는 이 아이로 하겠습니다.”

하얀색 늑대를 선택한 뒤 묵묵히 화원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수하님, 저를 도와 좀 도와주실 수 있겠습니까?”

수다르의 요청에 나는 곧바로 그에게 달려갔고,

[ 수다르! 이 몸도 너를 돕겠다! 무엇이든 말하거라! ]

고미 역시 토실토실한 궁둥이를 흔들며 우리에게 달려왔다.

“그럼 이것과 비슷한 냄새가 나고, 잎이 여섯 개에, 줄기 끝에 노란 꽃이 달린 약초를 찾아 주시겠습니까?”

수다르는 곧바로 나에게 한가지 약초를 찾아올 것을 지시한 뒤, 고미에게도 정중한 태도로 다른 약초 두 가지를 부탁했다.

다만 고미는 아직 살곰살곰으로 숨어있는 상태라, 녀석이 약초를 찾으면 그것을 캐내 수다르에게 가져다 주는 것은 내 몫이었다.

약초를 전해주자, 수다르는 그중 가장 질이 좋은 것 몇 개를 골라낸 후 빠르게 그것들을 손질해 약탕기에 넣고 달이기 시작했다.

한편, 토생원은 약초를 찾으러 가지도 않고 곧바로 약초를 손질해 백색 화로에 그것을 넣어 포션을 제조하고 있었다.

‘역시, 처음부터 자기한테 유리하게 모든 걸 준비해놨군.’

종목도 자기가 정하고, 강화할 몬스터도, 심지어 약초까지 모두 자신이 준비했다.

수다르님은 대체 얼마나 자신이 있길래 이런 불리한 조건을 불만 한마디 없이 받아들인 걸까.

불안한 마음에 대체 어떻게 하려고 이러시냐고 묻고 싶은 마음마저 들었지만, 이미 승부는 시작됐고, 이제 남은 것은 수다르님을 믿는 것뿐이었다.

그렇게 한 시간쯤 지났을까······.

너무나 당연하게도, 토생원의 포션이 먼저 완성됐다.

“크하하하! 수다르! 느리구나! 느려! 그래서야 시간 내에 완성이나 할 수 있겠느냐!?”

투명한 약병에는 기이한 주황색의 끈적한 액체가 찰랑거리고 있었다.

“보이느냐! 이것이 바로 이 몸이 만들어 낸 연구의 결정체다! C급 야수라도 이것을 먹으면 A급 몬스터에 가까운 힘을 낼 수 있단 말이다! 너는 이런 것을 만들어 낼 수 있느냐?”

토생원의 말을 들은 수다르는 덤덤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그렇군요. 확실히 제 단약에 그런 효과는 없습니다.”

이후 토생원은 자신감이 넘치는 표정으로 검은 늑대에게 자신의 포션을 먹였다.

그러자······.

- 크륵, 크르르륵! 크릉!

검은 늑대의 덩치가 순식간에 두 배는 커지고, 눈은 붉게 변했으며, 발톱과 이빨이 장검처럼 길게 자라났다.

심지어 털까지 바늘처럼 날카롭고 빳빳하게 변하는 것이, 한눈에 보기에도 몬스터의 등급이 달라졌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허허, 과연, 나름대로 연구를 많이 하신 흔적이 보이는군요.”

그 광경을 본 수다르는 아무렇지 않게 탕약기를 기울여 자신이 만든 탕약을 따라냈고, 손을 저어 그 냄새를 맡아보았다.

마치 자신의 승리를 확신하는 듯, 혹은 승부를 포기한 듯 너무나 담담한 태도였다.

- 크릉?

하지만 수다르의 탕약을 마신 하얀 늑대의 몸에서는······. 아무런 변화도 일어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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