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아기곰이 너무 강함-117화 (117/300)

EP.117 숲속 친구들도 강해진다

몸을 돌려보자, 던전 안에 조금 전까지만 해도 없던 커다란 길이 뚫려 있는 것이 보였다.

‘언제 이런 게 생겼지?’

문제는, 그 ‘길’의 형태였다.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처럼 길게 이어진 그것은, 경로에 있는 모든 물체를 지워버리고 보이지 않는 곳까지 이어지는 커다란 구멍을 만들어 낸 상태였다.

내 빔은 아니다. 내 빔은 바위 몇 개를 관통하고 멈춰섰으니까.

게다가 이렇게 굵지도 않았다. 기껏해야 사람 머리 크기 정도. 하지만 이건······. 직경이 2미터에 가까웠다.

“이, 이게 뭐야······.”

고미는 거의 턱이 빠질 것처럼 입을 벌린 채 자신의 젤리와 그 ‘길’을 번갈아 바라보고 있었다.

“수하님이 빔을 쏠 때, 고, 곰 선생님도 빔을 쏘셨습니다.”

이강혁 씨가 반쯤 넋이 나간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하지만 정작 고미는 온몸으로 자신이 일부러 빔을 쏜 게 아니라고 말하고 있었다.

‘보라 찐빵’의 옵션을 확인했을 때, 핵 빠따가 처음으로 불을 뿜었을 때도 저런 표정이었지.

의도하지 않게 엄청난 걸 만들어 냈을 때 짓는, 바로 그 표정.

“고미, 지금 이거, 일부러 한 거 아니지?”

나의 질문에 고미는 왕방울만 해진 눈으로 열 번도 넘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네가 빔을 쏘는 순간, 갑자기 몸에서 뜨거운 기운이 끓어올랐느니라! 그래서 참지 못하고 그 기운을 뿜어냈는데 그만······.”

- 크르르륵!

- 크어어엉!

고미가 말을 마치기 무섭게 ‘고미빔’이 만들어 낸 커다란 길 주위에서 몬스터들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하긴, 적진 한가운데서 갑자기 폭탄을 터뜨린 격이니, 반응을 안 보이는 게 이상하지.

‘뭐지······. 이게 그네를 타다가 생긴 새로운 스킬인가?’

아무리 생각해 봐도 그것 외에는 딱히 이렇다 할 설명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리고 그날, 고미는 내가 같이해주면 뭐든지 더 즐겁다고 말했다.

‘설마 내가 무슨 기술을 사용할 때 그 기술을 같이 쓰면 더 강한 힘을 낼 수 있는 스킬이라도 생긴 건가? 그래도 이건 좀 심하잖아······.’

‘고미 빔’은 지금까지 보여준 어떤 기술과도 달랐다.

표정으로 보아 고미 빔의 파괴력에 고미 본인도 상당히 놀란 것 같았다.

“고미, 이 빔, 전력으로 쏜 거야?”

나의 질문에 고미의 동공에 지진이 일었다.

“아, 아니니라.”

역시······. 힘껏 쐈다면 ‘우하하하! 보았느냐! 이 몸의 위대함을!’ 같은 말을 했겠지. 이렇게 놀란 건, 빔을 쏜 것도, 이 위력도 의도한 게 아니라는 의미다.

“고미, 혹시 그네 탔던 날, 아웅이와 다웅이를 만들 때처럼 뭔가 새로운 힘이 느껴졌다거나, 그랬어?”

“우웅······. 그날만큼은 아니었느니라.”

그럼 그날 일이 계기가 되었다가 오늘 새로운 힘이 완전히 깨어난 건가······.

그렇게 이런 저런 추측을 하고 있을 때, 고미 빔에 자극을 받은 몬스터들이 우리 쪽을 향해 달려오기 시작했다.

‘미친 건가. 그걸 보고도 싸움을 걸 생각이 든단 말이야?’

불도장도, 곰기도, 격산타웅도, 모두 굉장한 위력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기술들은 모두 뭔가 이해할 수 있는 형태로 물체를 파괴했다.

이렇게 앞을 가롬가는 모든 걸 지우개로 지운 것처럼 소멸시켜 버리는 게 아니라.

이건······. 놀라운 수준을 넘어 본능적인 공포감을 일으키는 ‘무언가’였다.

“음, 저희도 시험해 볼 게 생겼는데, 저희가 맡겠습니다.‘

이강혁 씨가 검을 뽑으며 앞으로 나서자,

“좋다! 허수아비! 봉식이! 너희들의 수련의 성과를 보여라!”

그제야 정신을 차린 고미가 나의 어깨에 올라탄 뒤 대장군처럼 지시를 내렸다.

“수하, 너는 잠시 휴식을 취하거라.”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고미는 내 상태를 알고 있었다.

‘수하 빔’의 위력은 확실히 굉장했지만, 벌써 체력이 간당간당하거든.

100번이나 대력곰강장을 연습하느라 체력이 많이 바닥난 상태이기는 했지만, 온전한 상태라 해도 빔을 쏠 수 있는 건 서너 번이 한계일 듯 싶었다.

그리고 전투가 시작되는 순간, 내 귓가에 믿을 수 없는 소리가 들려왔다.

“대웅강검!”

······.

내가 뭘 잘못 들은 거겠지.

“승웅참!”

이러지 마, 이강혁 씨. 당신 검성이잖아. 검성의 위엄이라던가, 체면은 없는 거야? 왜 안 하던 짓을 하고 그래.

“바로 그거다 허수아비! 어때! 더욱 강력한 힘이 느껴지지 않느냐!?”

네가 가르친 거였냐······.

어쩐지 초식 이름에 ‘웅’자 들어간다 했다.

“굉장합니다, 곰 선생님!”

정말 어처구니가 없는 것은, 진짜로 이강혁 씨의 검세가 더욱 날카롭고 강맹하게 변했다는 점이었다.

특훈의 성과여라. 특훈의 성과여야 해. 절대로 초식 이름을 외쳐서 그런 게 아니야.

“허수아비! 지금이다! 지금! 웅혼참을 사용해라!”

······.

내가 빔을 쏘기 위해 연습을 하는 동안 조용히 쉬고 있는 줄 알았더니, 이런 걸 가르치고 배우고 있었던 거냐.

“웅혼참!”

그때, 백색의 검기가 폭풍처럼 휘몰아치며 이강혁 씨의 검에 무언가의 환영이 어른거렸다.

‘곰!?’

그렇다. 지금 이강혁 씨의 검에는 거대한 곰의 앞발 모양이 환영처럼 덧씌워져 있었다.

콰아아앙!

검이 가로로 긴 획을 긋는 순간, 일렬로 달려오던 몬스터가 거대한 몽둥이에 의해 짓뭉개지는 것처럼 산산이 부서졌다.

‘잠깐, 설마 이것도······. 고미의 새로운 능력인가?’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이게 가장 합리적인 설명이다.

고작 초식 이름 외친다고 이 정도까지 강해지는 건 말이 안 되지.

“봉식이! 이번엔 네 차례다!”

아직도 남았냐!?

“갓-베어! 크래쉬!”

이런 미친··· 무슨 기술명이 그래. 통일이라도 해. 영어면 영어. 한자면 한자. 한글이면 한글. 뭔가 통일성을 가지고······.

쿠구구구궁!

하지만 ‘갓-베어 크래쉬’의 위력을 보니, 도저히 그만하라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봉식이가 두 주먹으로 바닥을 내리치자, 포탄이 떨어진 것처럼 땅 위에 거대한 구덩이와 균열이 생겨났다.

- 크르르르륵!

두 사람의 압도적인 무위에 우리를 둘러싸고 있던 수십 마리의 몬스터가 눈 깜짝할 새에 정리되었다.

“이, 이게 어떻게 된 거예요?”

나의 질문에 이강혁 씨는 대답 대신 자신의 시스템 창을 열어 보여주었다.

< 대웅강검 (A) >

< 승웅참 (A) >

< 웅혼참 (S) >

자, 잠깐······. 그거 그냥 외친 게 아니었어?

이어서 봉식이도 자신의 시스템 창을 열어 나에게 보여주었다.

< 갓-베어 크래쉬 (S) >

< 갓-베어 차지 (A) >

< 갓-베어 펀치 (A) >

······.

나는 두 눈을 비빈 뒤 ‘웅혼참’의 스킬 설명을 자세히 읽어보았다.

< 웅혼참 (S) >

- 위대한 곰의 영혼에는 천지를 가르는 강력한 힘이 깃들어 있습니다. 위대한 곰의 혼이 깃든 일검으로 적들을 베어버리세요.

비고 : 반드시 초식 이름을 외쳐야 하며, 대웅강검, 승웅참을 먼저 사용해야 발동됩니다.

‘갓-고미 크래쉬’ 역시 설명은 비슷했다. 다만 나머지 스킬을 사용하는 대신 ‘흥분치’가 충전되어야 한다는 조건이 붙을 뿐 이었다.

“이 스킬, 언제 생긴 거예요?”

나의 질문에 이강혁 씨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수하 씨가 빔을 쏘는 연습을 하는 동안 곰 선생님이 저와 봉식이에게 가르침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곰 선생님의 시범을 보고 그것을 그대로 따라 하다 보니······. 갑자기 스킬이 생겼습니다.”

이강혁 씨의 설명을 들은 나는 곰곰이 ‘고미 빔’과 ‘수하 빔’을 쏠 때의 상황을 되짚어 보았다.

그때도 분명히 우리 둘이 똑같은 동작을 취했지······.

‘무언가를 함께 한다’는 게 핵심인 건가.

가장 놀라운 것은, 고미의 스킬이 내가 아니라 숲속 친구들에게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점이었다.

‘뭐, 전혀 예측하지 못한 건 아니지.’

‘나눠 먹기’는 청심환을 다른 사람과 공유할 수 있는 스킬이었고, ‘웅톡방’은 숲속 친구들과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스킬이었다.

그리고 ‘우리는 모두 친구’는 공동 작업 시 친밀감을 빠르게 올려주는 스킬이었지.

이 모든 스킬은 고미에게 더 많은 친구를 만들어주고, 그 친구들과 함께 강해질 수 있도록 도와주는 스킬이었다.

그러니 언젠가는 이런 스킬이 생길 거라고 예상은 했다.

‘이렇게 뜬금없이 그 날이 오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지만.’

아닌가, 돌아보면 내 스킬도 전부 뜬금없이 생기긴 했지.

정말 예상하지 못한 건, 이렇게 우리를 강하게 만드는 결과가 고미를 대균열로 돌려보내는 거라는, 뒤통수가 얼얼해지는 악랄한 계략이라는 사실이었고.

‘두고 봐라. 내가 그렇게 두나.’

시스템 창을 열어보면 곧바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알 수 있겠지만, 나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아직 시위는 끝나지 않았으니까.

지금 중요한 건 단 하나, 숲속 친구들이 더욱 강해지고 있다는 사실 뿐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 힘으로 초월자들을 무릎 꿇리고, 시스템과 거래를 할 거다.

* * *

던전 밖으로 나가자, 때맞춰 한유진 씨에게 연락이 왔다.

“김수하 씨, 먹혔어요.”

“정말요? 뭐라고 해요?”

“그 포션 제작자가, 백색 화원의 주인에게 명령을 받았대요. 그 영약을 만든 사람에게 무슨 수를 써서든 다른 영약을 받아오라고. 제작자를 불러오면 더 좋고요.”

역시, 수다르의 약은 약쟁이들에게는 뿌리칠 수 없는 유혹이겠지.

“그럼 지금 가겠습니다.”

“네, 주소 찍어 드릴게요.”

한유진 씨와 통화를 마치자, 봉식이가 나를 바라보며 물었다.

“어디 가게?”

“초월자 만나러.”

“뭐!?”

“설마 벌써 계획대로 흑암의 지배자를 꾀어내신 겁니까?”

이강혁 씨가 놀란 듯 눈을 치켜뜨며 물었다.

“아뇨, 백색 화원의 주인이요.”

하지만 나의 대답을 듣고는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시험 삼아 백색 화원의 주인이랑 계약을 맺었다는 포션 제작자한테 산신령님의 영약을 보내봤거든요. 그랬더니 곧바로 연락이 왔어요.”

“으음······. 그래도 너무 성급하게 만나시는 것은 아닙니까?”

이강혁의 눈에는 기대와 걱정이 동시에 어려 있었다.

“이강혁 씨도 이쪽에 대해서는 아는 게 별로 없다고 하셨죠?”

“네.”

얼마 전 열린 숲속 친구들의 비상 회의에서 주로 이야기가 나왔던 것은, 흑암의 지배자였다. 다른 쪽은 아직 이렇다 할 움직임도 없고, 워낙 정보가 적으니까.

초월자에 대해 우리가 아는 정보를 요약하자면, 만수왕은 고미에게 원한이 있고, 황금의 군주는 인류의 미래를 두고 동이 님과 대적하고 있다.

그러니까, 이 셋은 인간에게 적대적인 세력이라고 볼 수 있었다.

한편, 무신은 무의 극치를 추구하고, 백색화원은 연금의 극치를 추구한다고 했다. 그렇다면 이쪽은 중립에 가깝다고 볼 수 있지.

즉, 동이님을 제외하면 인간에게 호의적인 초월자는 없다고 보아도 무방했다.

다만 한유진 씨에게 들은 바에 따르면, 백색 화원의 주인은 ‘장사꾼’에 가깝고, 원하는 것도 분명하다.

‘아무리 따져봐도 이쪽이 가장 거래하기 좋은 상대야.’

상대가 원하는 게 뭔지가 비교적 명확하고, 그걸 제공할 수도 있다.

무엇보다, 내가 원하는 ‘트롤 짓’이 가능한지 확인하기에도 가장 좋은 상대고.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무력 캐릭터도 아닌 것 같고, 인간에게 적대적이지 않은 몇 안 되는 초월자잖아요. 세다고 해봐야 고미보다 셀 리도 없고요. 일단 만나서 대화로 풀어 볼게요.”

“그럼 수하 님과 고미 님은 초월자를 만나십시오. 저와 봉식이는 주위에서 대기하다가 문제가 생기면 곧바로 지원을 하겠습니다.”

“알겠어요. 대신 제가 직접 도움을 청하기 전에는 절대로 섣불리 나서지 말아 주세요.”

“걱정 마십시오.”

이후 고미와 나는 한유진 씨를 만나 그 포션 제작자의 작업실을 찾아갔고, 봉식이와 이강혁 씨는 인근에서 몸을 숨긴 채 기다렸다.

백색 화원의 주인과 계약을 맺었다는 포션 제작자는 반백의 중년의 남자로, 희끗희끗한 머리색과 대조되는 매끈한 피부가 어딘지 모르게 이질감을 주었다.

‘미용 포션이라도 만들어 드시나······.’

“이분이 정말 그 포션 제작자가 맞습니까?”

사내는 미심쩍은 표정으로 한유진 씨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나는 지금 최진웅도, 김수하도 아닌, 또 다른 인물로 변신해 있는 상태였다.

나는 대답 대신 약병을 열어 수다르의 독약 선물 세트 중 한 알을 툭 던져주었다.

“먹으면 죽으니까 맛은 보지 마시고, 그냥 살펴만 보세요.”

그리고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미리 경고를 해주었다.

회색 독약을 건네받은 사내는 곧장 그것을 손에 쥔 채 질끈 눈을 감고 정신을 집중했다.

‘감정 스킬인가 보네.’

특별히 실험 같은 것 없이 약의 효과를 확인하려면, 역시 감정 스킬이 필요하겠지.

잠시 후, 사내는 산신령의 독약을 내려놓더니 갑자기 정체를 알 수 없는 알약을 입안에 털어 넣었다.

그러자 사내의 눈에서 검은 동자가 사라지고, 눈 전체가 새하얗게 물들었다.

“거짓말. 이건 틀림없이 수다르의 영약이다. 어디서 이걸 구했지?”

그의 목소리는, 마치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변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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