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아기곰이 너무 강함-116화 (116/300)

EP.116 필살기 완성

“으음······. 이 약을 그 사람에게 전해 주실 수 있을까요?”

한유진 씨에게 수다르의 독약 한 알을 건네자, 그녀는 가볍게 고개를 저은 뒤 자신의 약병을 꺼내 흔들어 보였다.

“김수하 씨가 받은 약이 뭔지는 몰라도, 이것만큼이나 효과가 좋겠죠? 전 이미 꽤 성과를 봤으니까, 한 알 정도 모자라도 될 거예요. 김수하 씨는 열심히 약 먹고 조금이라도 더 강해지세요. 시스템에 싸움을 걸었는데, 좀 더 강해져야 하지 않겠어요?”

음, 이럴 때 보면 참 좋은 사람이란 말이지.

“게다가 이 약은 저한테 맞춰서 만들어진 거니까, 자연스럽게 접근하기도 좋지 않겠어요? 약효도 모르는 물건을 들고 가는 거보다는, 내가 마력을 통제하는 데 도움이 되는 포션을 좀 얻었는데, 비슷한 걸 만들어 줄 수 있겠냐, 라고 하는 게 낫겠죠.”

확실히 그게 좀 더 자연스러운 흐름이긴 하지.

“감사합니다. 그럼 부탁 좀 드릴게요.”

말을 마친 한유진 씨는 포션 제작자를 만나러 가겠다며 홀연히 사라졌고, 그렇게 나는 수다르의 영약이라는 미끼를 던져둔 채 또 다른 초월자가 낚이기를 기다렸다.

* * *

고미와 특훈을 재개한 지 삼 일째······.

“고미! 됐어!”

마침내 ‘간 때문입니다.’ 스킬의 등급이 올랐다.

본래 실험용 독약이 해독되는 데는 평균 15.7초가걸렸다.

하지만 오늘, 처음으로 10초 만에 해독이 완료됐다.

30%에 달하는 시간 단축, 틀림없이 스킬의 등급이 오른 거다.

[ 오오, 벌써 백독불침에 도달한 것이냐!? ]

수련을 시작한 지 딱 열흘 만에 일궈낸 성과였다.

“응!”

[ 훌륭하다! 이제 천독불침, 만독불침에 달하면 세상의 어떤 독도 너를 해칠 수 없을 것이다! ]

“하이파이브!”

신이 난 내가 손을 내밀자, 고미 역시 도톰한 젤리를 내밀어 나의 손바닥에 가볍게 부딪혔다.

[ 이 기세로 계속해서 강해지는 것이다! ]

고미와 함께 하는 수련은, 힘들지만 즐거웠다.

퀘스트나 시스템을 통해 성장하는 것은, 빠르게 강해질 수는 있지만, 그만큼 보람을 느끼지는 못했으니까.

역시 성취감의 크기는 고생의 크기에 비례하는 모양이다.

‘게다가 이 녀석도 나에게 뭘 가르치는 걸 참 좋아하고 말이지.’

고미도 나에게 무언가를 가르치는 것을 즐거워하니, 종일 반쯤은 노는 것 같은 기분으로 수련을 할 수 있었다.

[ 자, 수하! 그럼 오늘은 너에게 대력곰강장을 전수해주마! ]

그리고 오늘, 드디어 제대로 된 전투 스킬을 배우는 날이 왔다.

최진웅에게도 검없이 쓸 수 없는 필살기 하나쯤은 필요하니까.

[ 웅왕청심환을 먹고 대력곰강장을 사용한다면, 드디어 너도 빔을 쏠 수 있게 될 것이다! ]

빔!?

그게 농담이 아니었단 말이야!?

“고미, 그게 진짜 가능해?”

[ 당연하지 않느냐! 그날 이 몸의 대력곰강장을 보지 않았느냐! ]

확실히 젤리를 앞으로 내미니까 장풍처럼 기가 날아가서 몬스터들을 박살 내긴 했지······.

내가 청심환을 먹고 그걸 똑같이 하면 빔이 된다, 이런 이야기인가?

뭐야 그게······.

너무 멋있잖아!

장풍, 에네르기 파, 빔, 남자라면 누구나 한 번쯤 흉내 내 보는 꿈의 정점이라고도 할 수 있는 기술들이다.

시대에 따라 이름이 바뀌기는 하지만, 근본적인 형태는 거의 똑같다고 할 수 있지.

무협지의 장풍은 만화에 와서 에네르기 파가 되었고, 빡빡한 이과인들이 세상을 지배하게 된 이후에도 그 낭만은 대를 이어 전승되었다.

그 결과물이 바로······ 빔이라는 거지.

[ 후후, 수하! 어떻느냐? 가슴이 마구 두근거리지 않느냐? ]

순간 나의 머릿속에 TV 앞에 앉아 가슴을 졸이던 어린 시절 내 모습이 스쳤다.

정의의 히어로가 빔으로 주인공을 물리치는 모습은 모든 남자아이들에게 꿈과 용기, 우정, 정의의 가치를 설파하는 경전이나 다름이 없었지.

“그럼 먼저 이강혁 씨에게 연락해 보자.”

[ 후훗, 설마 빔을 쏠 수 있게 되었다고 친구들에게 자랑이라도 하고 싶은 것이냐? ]

설마, 그렇게까지 동심을 유지하고 있지는 않다고.

“그게 아니라, 사람들이 보는 곳에서 빔을 쏘면 안 되잖아.”

이런 곳에서 빔을 쏘면 뒷감당이 안 된다.

사람들의 눈길을 끈다는 건 둘째치고, 공원 시설이 파괴되거나 제대로 조절이 안 된 빔을 맞고 죽는 사람이 나올지도 모른다고.

처음부터 그렇게까지 잘 조절할 자신은 없으니까.

“여기서 빔을 쏘면 사람들이 다칠 수도 있잖아.”

나의 대답에 고미는 잠시 고민하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 알겠다! 그럼 어서 허수아비에게 연락을 취해 보거라! ]

* * *

이강혁 씨에게 훈련용 던전을 구해달라고 연락을 취한 후, 우리는 함께 저스티스의 길드 빌딩을 찾았다.

우습게도, 저스티스의 길드장인 이강혁 씨와는 그렇게 친하면서, 길드 빌딩을 찾아오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이 사람과는 늘 밖에서 만났으니까.

고미와 함께 건물 로비에 도착하자, 이강혁 씨와 봉식이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오랜만이군요, 수하 씨, 곰 선생님.”

“웬일이냐, 네가 여기에 다 오고.”

요즘 두 사람은 거의 가족처럼 붙어 지내고 있었다.

나와 고미가 특훈을 하는 것처럼, 두 사람도 따로 특훈을 하고 있으니까.

웬 아기곰 한 마리와 처음 보는 사람 하나를 길드장이 직접 맞이하는 광경에 지나가던 저스티스의 길드원들은 의아하다는 눈빛으로 우리를 힐끔거렸다.

사실 폴리모프 스킬이 없었다면 이렇게 길드 건물에 당당하게 드나들지는 못했을 거다.

용왕과 접촉할 때는 최진웅으로, 저스티스와 접촉할 때는 김수하로. 사람들의 눈을 속일 수 있으니 가능한 거지.

[ 허수아비, 정말로 큰 집에 사는구나······. 네가 이렇게 돈이 많을 줄이야······. ]

30층에 달하는 으리으리한 저스티스의 빌딩에 고미는 조금 놀란 듯 연신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음, 이강혁 씨가 이렇게 돈이 많다는 사실을 여태 눈치채지 못하다니, 난 그게 더 신기한데······.

‘음······. 고미에게 돈에 대한 개념을 좀 가르치긴 해야겠네.’

그제야 나는 여태 고미에게 꽤 중요한 것을 가르치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자기가 필요할 때 헬기를 부르고, 빌딩을 몇 채나 가지고 있는 사람이 얼마나 돈이 많은 건지 이해하지 못하는 건, 조금 문제가 있지.

조만간 심부름이라도 시켜봐야겠는걸.

“하하, 아닙니다. 이건 제집이 아니라, 저희 길드의 건물입니다. 다 같이 쓰는 건물이죠.”

[ 으음······. 그럼 이곳에 네 친구들이 함께 있는 것이냐!? ]

고미는 그렇게 말하며 흥미롭다는 듯 주위를 둘러보았다.

[ 호오, 꽤 쓸만한 기를 가진 녀석들도 있구나! ]

그리고는 ‘곰 레이더’로 무언가를 포착했는지 위쪽을 올려다보며 귀를 움찔거렸다.

“감사합니다. 곰 선생님에게 받은 가르침을 전해 주었더니, 길드원들의 실력도 빠르게 늘고 있습니다.”

[ 후훗, 위대한 이 몸의 가르침을 어디까지 이해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제법 훌륭하구나. 그보다, 오늘은 수하에게 빔을 쏘는 법을 가르쳐야 하니 어서 던전으로 가자꾸나. ]

‘빔’이라는 한 글자에 이강혁 씨와 봉식이는 약속이나 한 듯 나와 고미를 번갈아 가며 바라보았다.

훗, 놀랐냐. 무려 빔이라고 빔.

두 사람의 눈빛에는 약간의 의심과 기대, 그리고 부러움이 섞여 있었다.

“으음······. 그건 정말 굉장하군요.”

“장난 아닌데.”

말을 마친 이강혁 씨는 곧바로 핸드폰을 꺼내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고,

“가시죠.”

우리는 곧장 인근의 던전에 가서 수련을 시작할 수 있었다.

* * *

던전에 도착하자마자 잔뜩 신이 난 고미는 곧장 나에게 빔을 쏘는 법을 알려주기 시작했다.

“자, 수하! 이제 이 몸이 일러주는 대로 기를 움직여 보거라. 먼저 단전의 기를 신궐혈, 천지혈로 보낸 뒤에 극천혈에서 잠시 머물게 한 뒤······.”

······.

네? 어디요?

신궐은 뭐고 천지는 뭐야······.

내가 바보처럼 멍하니 자신을 바라보자, 고미 역시 눈을 동그랗게 뜬 채 나를 바라봤다.

“왜 그러느냐?”

“고미,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어······.”

나는 지금까지 시스템에 의지해서 스킬을 배워왔다.

검기를 쓸 때도 그냥 시스템을 통해 ‘곰기’를 익히고 나니 자연스럽게 할 수 있었고, 모든 기술을 그런 식으로 익혀왔다.

그러니 이런 설명으로는 어떻게 기를 움직이라는 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음······.”

“흠······.”

뒤쪽에 서 있던 구경꾼 둘은 빔을 볼 수 없게 되었다는 사실에 적잖이 실망했는지 아쉬운 듯 탄식을 내뱉었다.

그러자, 우리의 히어로, 곰 선생님이 곧장 나의 어깨 위로 풀쩍 뛰어올라 말랑말랑한 젤리로 나의 머리를 붙잡았다.

“에잇! 시스템에만 의지해 기공술을 배우니 이런 기초적인 것도 모르는 것이 아니냐! 가만히 있거라! 지금부터 이 몸이 네 기를 대신 움직여 줄 터이니, 그 감각을 기억해 두거라!”

곰 선생님의 호통에 빔을 보기 위해 온 순진무구한 어린양들의 두 눈이 다시 희망으로 반짝였다.

- 우웅······.

이어서 고미의 젤리에서 은은한 빛이 새어 나오더니, 단전에서 출발한 뜨거운 기가 명치를 지나 가슴으로 움직였다.

가슴에 도착한 기는 겨드랑이 부근에서 잠시 머물다가 어깨, 팔꿈치로 내달렸고, 손목 인근에서 우뚝 멈추어 섰다.

“지금이다 수하! 손을 앞으로 내밀거라!”

고미의 명령에 따라 앞으로 손을 내밀자, 손목에서 정체되어 있던 기가 단숨에 폭발하는 것이 느껴졌다.

퍽······!

하지만 그 위력과 효과음은, 풍선처럼 부풀어 오른 기대를 단숨에 꺼뜨리기에 충분할 정도로 형편없었다.

아아······. 굳이 보지 않아도 느껴진다.

이강혁 씨와 봉식이가 얼마나 실망했을지.

지금 나를 어떻게 보고 있을지, 눈에 선하다고.

엄밀히 말하면, 대력곰강장의 위력은 그렇게까지 약하지는 않았다.

눈앞에 있는 바위에 아주 또렷하게 내 손자국이 남아 있으니까.

문제는 ‘빔’의 상징과도 같은 멋진 빛줄기도 없고, 관통력이나 파괴력이 한참이나 부족하다는 거지.

“야, 빔은 아니어도 쓸만하네. 바위에 손자국 남았다. 원거리에서 이 정도면 망한 건 아니지.”

“그렇습니다. 기습으로는 충분히 효과를 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위로하지 마라······. 더 비참해진다고.

하지만 결과를 보고 나니, 새삼 고미가 얼마나 대단한지 실감이 났다.

기의 이동 경로는 고미가 움직여준 것이니 아무런 문제가 없을 거다.

파괴력의 차이는 아마 ‘기’의 양에서 비롯된 거겠지.

대체 얼마나 기가 많으면 저 정도 파괴력이 나오는 걸까?

“후후후······. 걱정 마라 수하. 너는 그 감각을 계속해서 연습하거라. 백 번만 채우고 나면 진짜 빔을 쏠 수 있게 될 것이다.”

배, 백 번······. 많다면 많은 숫자지만, 빔을 쏘려면 그 정도는 연습해야지.

“그럼 수하 님이 연습을 하는 동안 저희도 수련을 하겠습니다.”

이강혁 씨는 그렇게 말하며 곧바로 몸을 검을 뽑아 들었고, 봉식이 역시 가볍게 몸을 풀었다.

“자, 시작하지.”

그리고는 곧바로 둘 중 누가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격렬한 싸움을 벌이기 시작했다.

‘이, 이런 미친······. 이런 특훈을 하고 있었던 거야?’

조금 살벌하기는 하지만, 두 사람이 고미를 대균열로 돌려보내지 않기 위해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지는 분명하게 전해졌다.

좋아, 나도 질 수 없지.

“자, 수하. 어서 시작하거라. 모두가 너의 빔을 기다리고 있다.”

고미가 초코바를 꺼낸 뒤 우리 세 사람을 훑어보며 말했다.

그렇게 몇 시간이나 지났을까······.

두 사람은 진즉에 수련을 마치고 고미와 휴식을 취하고 있었고, 나도 고미와 약속한 백 번을 채웠다.

“고미! 백번 다 채웠어!”

“좋다!”

오랜만에 사용하는 젤리 원자로의 에너지를 고미가 가르쳐 준 경로대로 움직이자, 정말로 손에서 푸른 빛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가라 수하!”

고미가 나와 똑같은 자세로 손바닥을 앞으로 내밀며 외쳤다.

-우우우웅!

다음 순간, 나의 손에서 눈 부신 빛이 뿜어져 나와 거대한 바위를 꿰뚫었다.

“해냈어! 해냈다고!”

하지만, 봉식이도, 이강혁 씨도, 고미도, 기대했던 것과 달리 환호성을 지르지도, 박수를 치지도 않았다.

대신 뭔가에 놀라 얼어버린 것처럼 멍한 표정으로 어딘가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세 사람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리는 순간, 그 셋이 왜 그런 반응을 보였는지 곧바로 알 수 있었다.

‘이, 이게 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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