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아기곰이 너무 강함-105화 (105/300)

EP.105 고미는 요리사(1) 도래하는 쿠킹 아포칼립스

‘저 눈치 없는 드래곤 새······.’

아, 잠깐 이성의 끈을 놓을 뻔했다.

참자, 참아. 이유찬 씨가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니잖아.

하지만, 아무리 마음을 다독여보아도 고미가 요리를 한다는 상상만으로 속이 뒤틀리는 느낌이다.

지금 눈앞에 있는 불쌍한 어린양들은 고미가 만든 음식의 맛을 모른다. 물론 냄새 정도는 맡아본 적이 있으니, 맛이 어떨지 대충 짐작은 하겠지.

하지만 직접 맛을 본다면 자신들이 본 것은 지옥의 입구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달을 거다.

어쩌면 다시는 회, 아니 해산물을 먹지 못하는 몸이 될지도 모르지.

그때, 먹구름을 뚫고 내리는 햇살처럼 부드러운 음성이 우리를 구원해 주었으니,

“그래도 칼은 위험해서 안 돼요.”

지금 어머니를 바라보는 숲속 친구들의 눈빛에는 구세주를 바라보는 어린양들의 그것처럼 간절함이 가득했다.

‘어, 엄마. 고마워······.’

[ 훗, 걱정 말거라! 인간이 만든 칼 따위가 위대한 이 몸을 다치게 할 수는 없느니라! 게다가 이 몸은 칼이 아니라 곰기로······. ]

물론, 고미는 언제나 그렇듯 고집을 꺾으려 하지 않았지만,

“고미, 안 된다고 했어요.”

‘공포의 군주’가 강림하려는 조짐을 보이자, 차마 말을 잇지 못하고 고개를 떨구고 말았다.

[ 아, 알겠느니라······. ]

누구도 말릴 수 없는 ‘숲의 왕’, ‘숲의 폭군’은 그렇게 모두가 보는 앞에서 무릎을 꿇고 말았고,

‘엄마, 나이스!’

참돔 분쇄육의 공포에서 해방된 숲속 친구들은 모두 마음속으로 만세를 불렀다.

누구도 입 밖으로 소리를 내지 않았지만, 모두가 한마음이 되어 있음을 눈빛으로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이어지는 공포의 군주의 말에 우리는 아직도 참된 자유와 정의가 실현되기에는 너무나 많은 시련이 남아있음을 깨달았으니······.

“대신 이따 숙소에 돌아가면 엄마랑 같이 요리해볼까?”

아, 안 돼, 엄마. 차라리 참돔 분쇄육을 먹게 해줘.

비늘이 조금 섞여 있어도 괜찮아.

뭐 어때? 바삭하고 좋지.

[ 우웃! 엄마랑 같이 말이냐!? ]

“그러엄, 엄마가 요리 가르쳐 줄게! 우리 고미도 할 수 있는 걸로!”

기운을 차린 고미의 꼬리가 빙글빙글 돌아가기 시작하자, 숲속 친구들의 눈이 절망으로 물들었다.

누가 알았겠는가,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온 해방자라고 믿었던 이가, 악과 손을 잡고 우리를 더 큰 절망 속으로 몰아넣으리라는 것을.

그러나 자리에 있던 누구도 감히 입을 열지 못했다.

고미조차 감당하지 못하는 우리가, 어찌 고미를 눈빛 한 번으로 제압하는 공포의 군주에게 저항할 생각을 할 수 있겠는가.

“자, 다 됐다. 맛들 한번 봐요!”

그때, 아버지가 새하얀 놀래미 회와 맛깔스러운 불그스름한 색이 섞인 참돔회가 담긴 접시를 우리에게 내밀었다.

평소라면 눈을 뒤집고 달려들었겠지만, 지금 우리에게는 그 싱싱하기 그지없는 회가 최후의 만찬처럼 느껴졌다.

“오오······. 역시 바다에서 먹는 회는 정말로 각별하군요.”

단 한 명, 미식 수달, 수다르 옹만이 내일 지구가 멸망한다 해도 한그루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철학자처럼, 한 치의 흔들림도 없는 젓가락질로 회를 음미했다.

역시 산신령쯤 되면 심지부터가 평범한 인간과는 다른 걸까.

“다른 분들도 어서 드셔 보시지요.”

그래, 먹고 죽은 귀신이 때깔도 곱다고, 일단 먹자.

이게 내 인생 마지막 회가 될지도 모르는데.

“으음~!”

초장에 찍은 참돔회가 혀끝에 닿는 순간, 나도 모르게 콧소리가 나왔다.

고미의 요리라는 끔찍한 재앙마저 잊게 할 정도로 훌륭한 맛.

“와! 제 평생 이렇게 맛있는 건 처음 먹어봐요, 아버님!”

한유진 씨 역시 눈을 반짝이며 아버지를 바라봤고,

“크! 이 맛이지! 소주 땡긴다!”

봉식이는 곧바로 소주를 찾았다.

“아, 아버님! 아니, 스승님! 저에게 회의 진수를 알려 주십시오!”

참돔회의 맛에 감동한 이유찬은 무릎을 털썩 꿇고 곧바로 아버지를 사부로 모시겠다고 외쳤다.

“음, 이제 곧 오픈인데, 솜씨가 녹슬지 않아서 다행이군.”

아버지는 고수의 풍모를 한껏 뽐내듯 가볍게 어깨를 한번 으쓱이고는 웃으며 회칼을 닦으셨다.

“돌아가면 코스로 대접할 테니까, 일단 간단하게 요기만 한다 생각하고들 먹어요.”

입안에서 살아 춤출 것만 같은 싱싱한 활어회의 맛에 우리는 잠시 후에 닥칠 재앙마저 잊고 젓가락을 바삐 놀렸고, 정신을 차렸을 즈음에는 이미 항구에 도착해 있었다.

* * *

숙소로 돌아가는 길, 우리는 마트에 들러 참돔 코스 요리를 만들기 위해 필요한 재료를 샀다.

아버지는 개업을 앞두고 감이 무뎌진 건 아닌지 확인해 보겠다며 제법 꼼꼼하게 준비를 하셨다.

본래 호텔은 취사 금지가 상식이지만, 우리는 예외였다.

계기는, 해변에 열린 게이트였다.

인터뷰 이후로 ‘최진웅’은 사라졌고, 한유진과 봉식이가 호텔에 묵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호텔의 지배인이 직접 찾아와 감사 인사를 전했다.

지배인은 숙박비와 룸서비스를 비롯해 모든 것을 무료로 제공하겠다고 말했고, 필요한 것이 있다면 뭐든지 말만 하라며 연신 고개를 숙였다.

코앞에서 게이트가 열렸는데도 아무런 재산피해도 입지 않았으니, 그럴만도 하지.

“음, 그럼, 정말 죄송하지만, 방에 조리대랑 싱크대가 다 있던데, 거기서 요리를 좀 해도 될까요? 청소는 깨끗하게 할게요.”

봉식이의 부탁에 지배인은 너무나 흔쾌히 호의를 베풀어 주었고, 덕분에 우리는 멋진 숙소에서 바다를 보며 갓 잡은 싱싱한 참돔 코스요리를 즐길 수 있게 되었다.

“자, 그럼 엄마랑 아빠는 요리 준비할 테니까 손님들은 가만히 앉아서 쉬세요.”

숙소에 들어온 아버지가 마트에서 사 온 식재료를 싱크대 위에 올려놓으며 말했다.

“저희도 뭐라도 돕겠습니다.”

“저도요.”

이강혁과 한유진은 예의가 아닌 것 같다며 잡일이라도 하겠다고 했지만,

“정말 괜찮아 이 사장, 어차피 장사 시작하면 나랑 우리 와이프가 다 해야 하니까, 다른 사람 손이 닿으면 잘 되고 있는지, 문제가 있으면 어디서 문제가 생겼는지 알기가 어려워요. 그러니까 시식평만 정확히 해주면 돼.”

아버지의 말에 숲속 친구들은 결국 자리로 돌아와 시답잖은 잡담을 나누며 요리가 나오기를 기다렸다.

이유찬 씨는 워낙 요리에 관심이 많아 싱크대 곁에 찰싹 달라붙어 현장 실습을 하기로 했다.

고미의 요리에 대한 이야기는, 어느새 모두의 머릿속에서 잊혀져 있었다.

“어, 엄마! 이 몸과 함께 요리를 하기로 하지 않았느냐!”

하지만 그 한마디로 잠시 평정을 되찾았던 마음에 다시 격렬한 풍랑이 일고, 숲속 친구들의 눈동자가 일제히 어머니에게로 향했다.

“오구오구, 그래요. 그런데, 지금 말고, 이따가, 엄마가 부르면 와요!”

“우웅··· 알겠느니라! 대신 꼭 약속을 지켜야 하느니라!”

“걱정 말아요, 엄마는 거짓말 안 하니까!”

“우웃! 역시 엄마는 신의를 아는구나! 이 몸의 가족다운 자세니라! 참으로 훌륭하구나!”

어머니가 다정한 목소리로 그렇게 말하며 머리를 쓰다듬어주자, 신이 난 고미는 꼬리를 달랑달랑 흔들며 얌전히 테이블로 돌아왔다.

[ 김수하 씨, 설마 어머니가 진짜 고미님에게 요리를 시키실 생각은 아니겠죠? ]

상황을 보다 못한 한유진은 불안한 기색이 역력한 표정으로 나에게 텔레파시를 보냈다.

[ 진심일 거에요. ]

[ 아······. 혹시 빈말로 시간을 끄시는 건 아닐까요? ]

마치 ‘제발 그래라.’라는 말이 생략된 듯한 간절한 눈빛.

하지만 그럴 일은 없다.

어머니는 한다면 하시는 분이다. 모르긴 몰라도, 같이 요리를 한다고 말씀하셨을 때부터 이미 무슨 메뉴를 만들지까지 정해뒀을 거다.

[ 그런 일은 없을 거에요. ]

[ 만약이라는 게 있잖아요. ]

신종 호구가 이렇게 온몸으로 고미의 요리를 거부할 줄이야.

왕유의 냄새가 어지간히 두렵긴 했나 보군.

하긴, 정상적인 후각을 가지고 있다면, 지옥 입구에 갔다 온 느낌을 받았겠지.

[ 저희 어머니가 어떤 분이냐면, 세뱃돈 받은 거 나중에 이자 쳐서 돌려준다고 말씀하시고 진짜로 적금 들어서 돌려주시는 분이에요. ]

“하아······.”

나의 답을 들은 한유진의 입에서 짙은 한숨이 새어 나왔다.

세뱃돈 빼앗아 간 걸 진짜로 돌려주는 부모, 이것보다 더 약속을 잘 지킨다는 증거가 어디 있을까?

이후 이강혁 씨와 한유진 씨는 이 절망스러운 현실을 잠시라도 잊어보려는 듯 온갖 쓸데없는 이야기를 끝도 없이 늘어놓았고,

마침내 최후의 만찬의 첫 번째 요리가 나왔다.

“호오, 마스까와라······. 참으로 훌륭하군요.”

접시에 담긴 회를 본 수다르는 실눈을 뜨며 감탄사를 내뱉었다.

지금 접시에는 참돔의 껍질과 껍질이 없는 회, 그리고 살짝 익힌 껍질이 붙어있는 회까지, 모두 세 가지 요리가 올라와 있었다.

“이건 유비끼 아닌가요?”

내가 알기로, ‘유비끼’란 껍질을 붙인 채 뜨거운 물을 부어 껍질과 함께 맛보는 회를 말한다.

하지만 수다르는 그것을 ‘마스까와’라고 불렀기에 한 질문이었다.

“허허, 이렇게 끓는 물에 살짝 익혀 껍질과 회를 함께 맛보는 것은 마스까와라고 하는 것이 맞습니다. 돔 요리에서는 껍질만 먹는 것이 유비끼, 살이 붙어있으면 마스까와라고 이해하시면 될 것입니다. 본래 유비끼는 샤브에 가까운 음식을 말하는 것이라 이것도 정확하지는 않지만 말입니다.”

수다르의 설명에 아버지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우리 산신령님이 아는 게 많으시네. 지난번에도 회 맛을 아주 정확히 알고 계시던데.”

그런데, 왜 그렇게 자세히 아는 거야. 횟집 아들인 나보다 더 잘 아네.

“허허, 요리에 담긴 주방장의 정성과 혼을 조금이라도 더 이해하기 위해 이 정도 노력은 기울여야 하지 않겠습니까? 지식은 일천하나, 진정한 식객이란 그런 것이라 생각합니다.”

괴, 굉장하군. 단순히 요리 지식이 있는 걸 넘어서서, 자기만의 확고한 미식 철학까지 가지고 있는 진정한 미식가다.

“이거, 진짜 맛을 아는 분을 상대로 솜씨를 발휘하려니 저도 긴장이 되는군요. 그럼 제가 오늘 지리랑 초밥까지 제대로 솜씨를 발휘해 볼 테니, 한번 맛을 보고 정확하게 평을 해주십시오.”

“감히 평가할 자격이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저도 최선을 다해보겠습니다.”

말을 마친 수다르는 젓가락을 들지 않고 고미를 지그시 바라봤다.

고미가 먼저 시식을 하기를 기다리는 모양이었다.

수다르의 눈빛을 받은 고미는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더니 껍질만 있는 ‘유비끼’로 먼저 젓가락을 가져갔다.

“껍질만 먹는 요리라니, 어떤 맛일지 참으로 궁금하구나.”

“옆에 있는 미나리도 함께 드시지요. 미나리의 향기가 껍질의 풍미를 더해줄 것입니다.”

수다르의 조언에 고미는 흐뭇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고는 곧장 미나리와 껍질을 특제 소스에 찍어 입안으로 집어넣었고,

“오, 오오······. 이, 이 식감, 이 맛······.”

눈이 휘둥그레져 통통하게 살이 오른 볼을 열심히 움직였다.

“고소하고 쫄깃한 것이······. 참으로 재미있는 맛과 식감이구나.”

음, 약하다. 약해.

역시 시식평은 수다르 할아버지의 것을 들어야지.

“음, 물기가 완벽하게 빠진 데다가, 잡내를 완벽하게 제거하여 전혀 비리지 않군요. 가장 훌륭한 것은 익힘의 정도입니다. 조금만 덜 익히거나 더 익혀도 껍질의 식감을 제대로 살릴 수 없거늘······. 실로 놀라운 완성도입니다.”

“와! 산신령님은 어떻게 그렇게 요리를 잘 아세요?”

수다르의 시식평을 들은 한유진이 신기하다는 듯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허허, 진정한 요리란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 좋은 맛을 끌어내는 요리사만으로는 완성되지 않는다 생각합니다. 그 맛을 알아주는 자가 있어야 요리가 완성되는 법이지요. 저는, 궁극의 요리란 먹는 자와 만드는 자가 함께 만들어내는 예술 작품이라 생각합니다.”

멋진 철학이군. 어딜 가도 환영 받는 손님이겠어.

이후 우리는 선상에서 맛보았던 것 같과 똑같은 참돔 회와 유시모리까지 맛보았고, 커다란 접시에 나왔던 회가 순식간에 동이 나고 말았다.

“음, 유진을 따라다니며 회니 초밥이니 하는 것들을 제법 먹어봤다고 생각하는데, 이렇게 맛있는 회는 처음이군요. 초밥도 기대가 됩니다. 저는 초밥을 좋아하거든요.”

심지어 늘 담담하고 차분한 태도를 유지하던 제르보나마저 젓가락을 멈출 줄을 몰랐다.

그렇게 회 한 접시를 깨끗하게 배웠을 무렵,

“고미, 이리 와요! 엄마랑 요리하자!”

식욕을 단칼에 끊어버리는 목소리가 들려왔고,

시스템은 기다렸다는 듯 퀘스트 하나를 보내왔다.

절대로, 성공할 수 없을 것 같은, 아니, 감히 읽어보는 것 조차 두려운 퀘스트를.

< 새로운 퀘스트가 발생했습니다. >

< 히든 퀘스트 : 고미는 요리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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