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아기곰이 너무 강함-102화 (102/300)

EP.102 또다시 바다로(1) 월척을 노리는 아기곰

“그러니까, 지금 최진웅 씨는 자신이 평행 세계에서 왔다고 주장하시는 건가요?”

“주장이 아니라 사실이다.”

지금 TV 화면에는 눈을 감고 있는 건지 뜨고 있는 건지 알 수 없는 실눈의 사내가 비추고 있었다.

음, 저게 나라니, 내가 봐도 믿기지 않는군.

“그걸 어떻게 증명하실 수 있나요?”

“같잖은 소리를 하는군. 내가 그런 거짓말을 할 이유가 뭐지?”

“어··· 미등록 헌터라든가······. 헌터 협회에서는 최진웅이라는 헌터는 없다고 하던데요.”

“어깨 위에 달린 그건 장식인가 보군. 다른 세계에서 왔으니 미등록자인 게 당연하지. 내가 무언가 캥기는 게 있어 숨어다니는 미등록 헌터라면, 굳이 보는 눈이 많은 곳에서 게이트를 파괴하고 인터뷰에 응하는 얼간이 짓을 할까?”

사내의 질문에 리포터는 잠시 머뭇거리며 말을 잇지 못했다.

“어이가 없군. A급 게이트를 파괴해 준 것에 대한 감사 인사보다 그딴 의심이 먼저라니.”

나, 아니, 최진웅의 말투에는 짜증이 가득 묻어났다.

“하······. 할 수 없지. 시스템 창, 가시 모드.”

그가 시스템 창을 부르자, 푸른색의 화면이 떠올랐다.

< 이름 : 최진웅 (S) >

< 보유 칭호 >

- 멸망한 세계의 마지막 생존자 (유일)

- 히드라의 머리를 벤 자 (희귀)

■ ■ ■ ■ ■

< 보유 스킬 >

■ ■ ■ ■ ■

< 능력치 >

■ ■ ■ ■ ■

“이만하면 증거가 되겠나? 정 못 믿겠으면 최진웅이라는 이름을 가진 모든 인간의 신상을 확인해 보든지.”

시스템 창을 확인한 리포터는 놀란 토끼 눈이 되어 몇 번이나 최진웅의 얼굴을 바라봤다.

“그, 그럼 한국에 S급 능력자가 한 명 더 늘어나는 건가요?”

“내가 다른 나라에 갈 이유가 없다면. 나는 무국적자니까. 부디 내가 다른 나라로 망명이라도 하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하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의, 의심해서 죄송합니다. 저희 직업이 팩트를 체크하는 것이다 보니······.”

상대가 S급 헌터라는 것을 확인한 리포터의 이마에 송골송골 식은땀이 맺혔다.

음, 다시 보니까 더 미안하군. 정말 죄송합니다.

그래도 진짜 그런 일이 벌어지지는 않을 거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그럼 현재 무소속 헌터로 활동하고 계신 건가요?”

“아니. 용왕이라는 길드에 가입했다. 난 맨몸으로 이곳에 넘어왔으니까. 어느 세상이든 돈은 필요하잖나?”

이어지는 인터뷰에서 ‘최진웅’은 호텔을 감싼 보따리가 자신의 아이템이라고 밝혔고, 말을 마치기 무섭게 방송국에 황금색의 보자기가 홀연히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그 고래 떼도 내가 부른 거고.”

“굉장한 능력이네요. 혹시 어떤 스킬인지 여쭈어봐도 될까요?”

“하, 그걸 공개해도 된다고 생각하면 아까 시스템 창을 열었을 때 보여줬겠지?”

“죄, 죄송합니다.”

“죄송할 말을 왜 하는지 모르겠군. 말하기 전에 생각을 하고 말했다면 그런 질문을 할 일도 없을 것 같은데 말이야.”

으음, 내가 봐도 재수가 없군··· 정말, 정말 죄송합니다······.

이후 리포터는 한유진 씨에게 ‘보따리 3인방’의 정체에 관해 물었고, 그녀는 ‘내가 새로 영입한 세 명의 헌터 중 하나가 바로 최진웅씨다. 나머지 둘의 정체는 밝힐 수 없다.’라고 짤막하게 밝혔다.

“수, 수하! 굉장하구나! 이 몸이 보기에도 완전히 다른 사람 같았다! 역시 너는 타고난 모리배구나! 아, 아니, 그러니까, 그게 나쁜 모리배는 아니지만, 모리배는 맞는 것 같구나!”

TV 속 ‘최진웅’을 바라보던 고미가 구슬처럼 동그란 눈을 더욱 동그랗게 치켜뜨며 외쳤다.

음, 모리배라, 추억의 단어군.

어쨌든, 이걸로 나의 아바타가 되어줄 ‘최진웅’은 성공적인 데뷔를 마쳤다.

이 정도로 어그로를 끄는 캐릭터라면, 노인국 씨도 주목을 할 수 밖에 없겠지. 평행 세계에서 왔다고 하면, 앞으로 할 수 있는 일도 많을 거고.

“그런데 저런 재수 없는 캐릭터는 어디서 떠올린 거냐?”

봉식이가 감탄 섞인 표정으로 혀를 차며 물었다.

“그냥 옛날에 병원 다닐 때 봤던 사람 중에 하나를 따라해 본 거야.”

“진짜로 저렇게 말하는 인간이 있다고?”

“응, 요즘은 기분이 어떠신가요? 라고 물어보면 나아졌으면 여기 왔겠어요? 라는 식으로 대답했지. 생각을 안 하고 물어보는 거냐, 아니면 생각을 하고 물어보는 건데 머리가 나빠서 그런 거냐, 뭐 이런 말도 자주 했고.”

대답을 들은 봉식이는 안타깝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고,

“당장 그 녀석을 데려오거라! 감히 나의 제자에게 그런 언사를 퍼붓다니! 용서할 수가 없구나!”

흥분한 고미는 솜방망이를 휘두르며 고래고래 소리를 쳐댔다.

“진짜 괜찮아, 다 지난 일이고, 환자잖아. 내가 했던 일이 그런 사람들 치료해주는 거고. ”

게다가 그 정도면 받아줄만 했다고. 진짜는 환자가 아니라 선배나 교수님들의 압박이지.

“수하, 참으로 고생이 많았구나······.”

고미가 보기 드물게 측은함이 가득 담긴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그럼 이제 저 최진웅이라는 사람으로 변해서 노인국 씨를 만날 생각이신 건가요?”

멍한 표정으로 화면을 보고 있던 한유진이 차분한 목소리로 물었다.

“네, 여행 끝나고, 상황 봐서 한번 만나보려고요. 아참, 그때까지는 그 물건을 제가, 아니, 최진웅이 가지고 있다고 말하지 말아 주세요.”

“네, 그렇게 할게요.”

“그나저나, 정말 신기하군요. 인간이 이렇게 완벽한 폴리모프가 가능하다니. 역시 고미님의 제자답습니다.”

이유찬 씨가 화면에 나온 ‘최진웅’과 나를 몇 번이나 번갈아 보며 홀린 듯 말했다.

“드래곤의 능력이 대단한 거죠. 감사합니다, 제르보나 씨.”

“아닙니다. 도움이 됐다니 다행입니다.”

제르보나는 나의 감사 인사에 짤막하게 답하며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이 스킬은 제르보나 씨에게 받은 거니까, 감사 인사 정도는 해야지.

“후후후······.”

한편, 삼룡이 패밀리 사이에 앉아있는 이강혁 씨는 완전히 입이 귀에 걸려 있었다.

만난지 그리 오래된 건 아니지만, 저렇게 즐거워 하는 건 처음 본다.

왜 저러냐고?

내가 ‘검의 달인’을 통해 강해진 걸 알게 됐거든.

고미의 ‘첫 친구’가 자신이고, 내가 가진 가장 유용한 전투 스킬이 ‘고미류 기공술’과 ‘검의 달인’이라는 이야기를 듣자, 이강혁 씨는 세상을 다 가진 사람처럼 기뻐했다.

“그런데, 정말 노인국을 친구로 만들어 보려고요?”

한유진이 걱정이 가득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며 물었다.

“네, 노력은 해봐야죠.”

“흐음······. 알겠어요. 이번에도 수하 씨를 믿어볼게요.”

나는 이번 일을 계기로 이강혁 씨와 삼룡이 패밀리에게 나의 스킬과 퀘스트의 정체에 대해 밝혔다.

그동안 두 사람에게 너무 많은 도움을 받았고, 진심으로 신뢰하니까.

몇 안 되는 고미의 친구들에게 계속 진실을 감추고 무언가를 받고 싶지도 않았고.

무엇보다 큰일을 함께 헤쳐나가야 할 동료들이니까. 진정한 신뢰를 쌓으려면 나부터 솔직해져야지.

‘진실을 밝힐 용기가 생긴 건 사실 고미 덕분이지만.’

애를 키우다 보면, 부모도 같이 성장한다고 하던가?

고미에게 진실을 밝혔을 때 녀석이 보였던 반응을 떠올리니, 조금 더 쉽게 용기를 낼 수 있었다.

고맙게도 두 사람은 나와 고미를 전적으로 신뢰해주었고, 어떻게 하면 그 능력들을 더욱 잘 쓸 수 있을지까지 함께 고민해 주었다.

사실 봉식이가 조금 서운해하지는 않을까 걱정을 하기는 했지만,

“앞으로는 그런 거 있으면 빨리 빨리 말해라. 혼자 끌어안고 가지 말고.”

하고 말하며 살짝 인상을 찌푸린 게 전부였다.

억지로 모든 걸 털어놓기를 강요하지도 않고, 진실을 말하기 어려웠던 내 입장을 먼저 고려해 주다니······.

역시, 이 녀석은 친구보다는 가족이 맞는 것 같다. 그것도, 아주 좋은 가족.

“허허허, 고미님과 수하님에게 이런 좋은 동료들이 생기다니, 이 수다르, 눈물이 앞을 가립니다.”

내 이야기를 모두 들은 수다르는 감격한 듯 눈물을 훌쩍였다.

대체 고미의 정체가 뭐길래 이렇게까지 고미를 극진히 모시는 걸까?

“그럼 저희도 해피곰 포인트를 쌓는 데 도움을 드려야겠네요. 폴리모프로 포인트 많이 쓰셨죠?”

잠시 후, 한유진이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질문을 던졌다.

놀고 싶은 거군. 고미랑 놀고 싶은 거야. 해피 곰 포인트는 명분일 뿐이야.

“그렇죠. 이제 200포인트도 안 남았으니까요.”

“후후, 그럼 어서 이 몸을 즐겁게 해다오!”

해피 곰 포인트 이야기가 나오자, 고미가 벌떡 몸을 일으켰다.

F급 폴리모프로도 모습을 바꿀 수는 있었지만, 한유진 씨의 ‘용안’ 스킬은 그것이 폴리모프라는 것을 단박에 꿰뚫어 봤다.

즉, 누군가 용안과 비슷한 스킬을 가진 사람이 있다면 아주 쉽게 ‘최진웅’의 정체를 간파할 수 있다는 의미.

이에 나는 무려 300점이나 되는 해피곰 포인트를 사용해 폴리모프를 S급까지 끌어올렸다.

“후후, 사실 이 몸에게는 이미 하고 싶은 것이 있다! 너희들도 함께 하겠느냐!?”

“뭐든 말씀만 하십시오, 곰 선생님.”

“고미 님이 좋은 거면 전 다 좋아요.”

“이 수다르, 고미님이 원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함께 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진실을 밝힌 덕분일까, 숲속 친구들이 나와 고미를 대하는 태도가 한결 친밀해진 게 느껴진다.

“그래서, 하고 싶은 게 뭐야?”

나의 질문에 고미는 꼬리를 빙글빙글 돌리며 입을 열었다.

“낚시니라!”

“낚시?”

응? 내가 지금 뭘 잘못 들었나?

그런 ‘정적인 활동’을, ‘고미’가 한다고?

“저기, 혹시 낚시가 뭔지 모르는 건 아니지?”

나의 질문에 고미는 대답 대신 자랑스레 꿀폰을 들어 보였다.

“후후, 이미 검은콩이 알려준 너튜브라는 것을 활용해 낚시가 무엇인지 확인해 보았느니라!”

음, 이런 건 참 빨리도 배우는군.

하지만 조금 걱정이 된다. 낚시라는 게 원체 정적인 활동인 데다, 운동 신경이나 힘만으로 커버되는 게 아니니까.

‘고기 안 잡히면 잔뜩 뿔낼 것 같은데.’

어쩌면 바닷물을 전부 들어 올리거나, 직접 바다로 뛰어들어 고기를 잡을지도 모르지.

고미라면 충분히 가능하다.

“그런데 왜 낚시죠?”

한유진이 의아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그녀 역시 고미가 낚시같은 정적인 활동을 하고 싶어 한다는 게 의문인 모양이었다.

“아빠가 하고 싶어하지 않느냐? 위대한 이 몸의 첫 가족 여행에, 이 몸만 즐겁다면, 그것은 가족 여행이 아니지 않느냐? 이 몸처럼 위대한 존재는 모두를 즐겁고 행복하게 해줄 의무가 있느니라.”

대견한 녀석… 그 와중에도 가족들이 즐거워하는지 살피고 있었구나.

왜 가끔씩 이렇게 훅 치고 들어와서 사람을 감동시키는 걸까.

사랑스럽다는 낯간지러운 말을 그다지 좋아하지는 않지만, 그 말 외에는 달리 표현할만한 말이 떠오르질 않는다.

그러나 예상 밖의 난관이 있었으니······.

“어, 그런데 제가 낚시 쪽은 아예 관심이 없어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대테이머스의 수장께서 낚시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다는 사실.

“으음, 저도 낚시는 취미가 아닌지라.”

이어서 검은콩까지 난색을 표했다.

이쪽은 고미과니까, 낚시에는 관심이 없을 거라고 대충 짐작은 했다.

“흠흠!”

그때, 이강혁 씨가 잔뜩 어깨에 힘을 주며 헛기침을 해댔다.

“제가 한번 섭외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오오, 허수아비! 너는 낚시를 할 줄 아는 것이냐?”

“몇 안되는 취미 중 하나입니다. 일이 바빠 자주 즐기지는 못하지만 말입니다.”

이후 우리는 이강혁 씨의 지인을 통해 낚싯배 하나를 수배했고, 낚시 용품점에서 장비까지 모두 대여했다.

배낚시를 갈 수 있다는 사실을 듣게 된 아버지는 뛸 듯이 기뻐했다.

* * *

다음 날 아침,

[ 후후, 이 몸이 오늘 반드시 고래만한 돔을 잡아 올리겠다! 전지전능한 이 몸에게 불가능이란 없느니! ]

선글라스를 쓴 힙한 아기곰은 월척을 다짐하며 자신의 키보다 몇 배는 큰 낚시채를 든 채 배에 올랐다.

그런데……. 저 녀석이 돔을 못 낚으면,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는 걸까.

‘제발 낚여줘, 참돔이든 돌돔이든 뭐든 상관없으니까 낚여주라.’

나는 그렇게 용왕님의 가호가 따르기를 기도하며 숲속 친구들과 함께 배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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