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01 수하에게는 다 계획이 있다
우리가 찾은 곳은 장 칼국수와 옹심이를 함께 파는 호텔 인근의 한 음식점이었다.
고미와 수다르를 데리고 가야 하니, 굳이 조금 먼 식당으로 가야 했다.
음식점 선정은 이번에도 ‘테이머스’의 도움을 받았다.
숙소는 그렇다 치고, 강원도 인근의 음식점까지 섭외가 가능하다니, 테이머스의 능력이나 규모라는 게, 생각보다 더 대단할지도 모르겠다.
[ 호오, 제법 괜찮은 냄새가 나는구나. ]
식당 문을 열고 들어가기 무섭게 고미의 작은 콧구멍이 끊임없이 벌름거리기 시작했다.
“어서 오세··· 응?”
사람처럼 두 발로 걸어 문을 열고 들어오는 아기곰의 모습에 인사를 하던 사장님의 눈이 동그랗게 변했다.
이어서 우리 가족과 한유진 씨, 사람으로 변한 드래곤 둘에 황금색 아기용, 수달이 줄줄이 들어오자, 사장님은 그대로 굳어버렸다.
음, 확실히 시선을 강탈하는 조합이긴 하지.
“아이고, 이런 손님들은 또 처음이네.”
하지만 테이머스 회원들이 종종 찾는 음식점답게, 사장님은 금세 웃는 얼굴로 자리를 안내해 주었다.
확실히 ‘곰’에 ‘수달’은 특이하긴 하지.
곰과 비슷하거나 수달과 비슷한 펫은 있을지 몰라도, 이 둘처럼 지구의 생물과 완전히 똑같이 생긴 펫은 없으니까.
“으음, 어디 보자. 각자 메뉴 하나씩 시키고, 감자전에 메밀전병까지 있네. 도토리묵도 좋고······.”
잠시 메뉴판을 바라보던 아버지는 식당 사장님답게 능숙하게 의견을 취합해 주문을 마쳤고, 이내 맛깔스러운 음식들이 상 위에 올라왔다.
[ 응······? ]
그런데, 음식을 바라보는 고미의 표정이 조금 좋지 않았다.
“왜 그래, 고미?”
[ 으음······. 내가 기대하던 것과 많이 다르구나. ]
“어디가 다른데?”
[ 뭔가 풀만 가득한 것이······. ]
순간 머릿속에 닭도리탕을 먹었던 고미의 모습이 머리에 스쳤다.
그날도 풀 종류는 거의 손을 안 댔지.
생각해보니 장칼국수도, 옹심이도, 도토리묵도, 감자전도, 모두 아이들이 좋아하는 맛은 아닌 것 같군.
“으응? 우리 고미 왜 그래요? 음식이 맛이 없을 거 같아요?”
하지만 어머니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자,
[ 아니다! 이 몸은 음식을 가리지 않는다! 편식은 나쁜 것이다! ]
무언가 결심한 사, 아니, 곰처럼 주먹을 바르쥐고 꼬리를 바짝 세우며 고개를 저었다.
훌륭하다, 훌륭해. 그렇지. 편식은 나쁜 거지.
그나마 다행인 것은, 메인메뉴인 ‘장 칼국수 옹심이’에는 조금이나마 관심을 보인다는 사실이었다.
맛은 둘째치고, 생긴 것부터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했으니까.
[ 이 녀석이 칼국수라는 것이냐? 면발의 모양이 조금 독특하구나. ]
“아아, 그것은······.”
지식을 방출할 기회를 잡은 아버지가 칼국수에 관해 설명을 하려는 찰나,
“그것은 반죽을 펼친 뒤 칼로 썰어 면을 만들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
이유찬 씨가 아버지의 대사를 가로챘다.
[ 호오, 그것참 신기하구나. ]
“중국에도 도삭면이라고 하여 칼로 썰어 만드는 면이 있기는 하지만, 한국의 칼국수와는 달리 반죽을 펼친 뒤 잘라내는 것이 아니라 반죽 덩어리를 그대로 잘라 만든다는 차이가 있지요.”
“유찬 씨는 드래곤인데도 아는 게 많네.”
아버지의 표정에서는 약간의 위기의식이 느껴졌다.
‘음, 이상한 라이벌 구도가 형성됐군.’
한 가지 의문점은, 나름대로 요리 지식이 풍부한 미식 산신령, 수다르가 자신의 지식을 전혀 뽐내려 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저 두 사람에 산신령 할아버지까지 더해지면 제법 불꽃 튀는 승부가 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말이지.
“고미님께서도 요리에 관심이 있으시다면 철냄비짱, 아빠는 요리사, 초밥왕 같은 만화를 추천 드리겠습니다. 요리에 대한 지식과 재미까지 한 번에 잡을 수 있는 훌륭한 작품이지요.”
“아니지, 역시 요리 만화라면 식객과 맛의 달인이지.”
그렇게 두 사람이 요리 만화에 대한 토론으로 2차전을 시작하려는 찰나, 고미가 이유찬 씨를 바라보며 가볍게 눈을 부라렸다.
[ 검은콩! 그만하거라! 아빠는 이 몸에게 무언가를 알려주는 것을 좋아한단 말이다! 그러면 아빠가 자랑을 못 하지 않느냐! ]
갑작스러운 고미의 불호령(?)에 이유찬 씨는 황급히 입을 다물었다.
‘자기가 힘 자랑하는 걸 좋아하듯이 아버지는 지식을 자랑하는 걸 좋아하니까, 일부러 궁금한 게 있으면 아버지에게 물어봤던 건가?’
기특하군. 고미가 이런 것까지 생각하고 있을 줄이야.
그렇게 흐뭇한 마음을 안고 고개를 돌리는 순간, 나는 보았다.
수다르의 입꼬리가, 아주 잠깐, 아주 조금이지만, 분명하게 휘어지는 것을.
‘설마, 이렇게 될 줄 알고 처음부터 아무 말도 안 했던 거냐!?’
굉장하다. 입을 다물어야 할 타이밍을 완벽하게 알고 있어.
사실 인간관계에서는 ‘언제 입을 다무느냐’ 하는 문제가 ‘무슨 말을 하느냐’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
보통 상대에게 진짜로 나쁜 인상을 남기거나 관계가 틀어지는 건, 해서는 안 될 행동이나 말을 했을 때니까.
‘웅변은 은이요, 침묵은 금이다.’라든지, ‘가만히 있으면 중간은 간다.’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그런데 왜 동굴에만 있는 양반이 그런 걸 이렇게 잘 아는 거냐고!’
“허허허, 보아하니 두 분 모두 요리에 조예가 깊으신 모양입니다. 언젠가 두 분이 함께 만든 요리를 먹어보고 싶군요. 아버지께서는 주 종목이 일식과 한식이신 것 같은데, 용 선생님께서는 어떤 요리를 즐겨 하시는지요?”
게다가 자연스럽게 같은 주제인 것 같지만 이유찬도 혼나지 않고 지식을 뽐낼 수 있고, 아버지도 지식을 자랑할 수 있는 이야기로 대화의 초점을 옮기기까지.
‘배, 배워야겠다.’
완벽한 타이밍의 치고 빠지기, 양쪽의 캐릭터를 순식간에 파악해서 둘 다 만족할 수 있는 판을 깔아주는 것까지······. 정말이지 훌륭한 중재자의 표본이다.
그렇게 수다르의 교묘한 화법으로 두 사람의 대화는 지식 자랑에서 ‘지식 공유’로 변해버렸고, 평화로운 분위기 속에서 고미의 ‘장칼옹’ 시식이 시작됐다.
[ 으음?! ]
능숙한 젓가락질로 칼국수 면발을 흡입한 고미는 놀란 듯 눈을 반짝이며 연신 귀를 움찔거렸다.
[ 호오! 제법 흥미롭구나. 우동과도, 라면과도 다른 식감이다. 게다가 조금은 매콤하면서도 이 시원한 국물··· 아니, 시원하다는 표현으로는 부족하구나. 이것은 대체 뭐라고 표현해야 할지······. ]
고미가 붉은 국물을 바라보며 적절한 표현을 찾자, 숟가락을 들어 칼국수 국물을 한입 떠먹은 수다르가 지그시 눈을 감으며 입을 열었다.
“깊군요. 깊습니다.”
[ 그, 그렇구나! 왠지는 모르겠지만, 맛이 깊다는 표현이 딱 어울리는 듯하다! ]
“우리 고미, 옹심이도 먹어 봐야지.”
어머니가 웃으며 옹심이 하나를 숟가락에 올려 고미의 입에 넣어주자,
[ 우웅? ]
고미의 표정이 상당히 미묘하게 변했다.
이게 맛이 있다는 건지 아닌 건지, 도통 모르겠다는, 상당히 애매한 표정.
[ 이 녀석은 식감이··· 아주 희한하구나. ]
고미의 묘한 반응에 나도 옹심이의 맛이 궁금해졌다.
사실 나도 아직 한 번도 먹어본 적이 없거든.
“그래?”
동글동글한 옹심이를 떠서 입안에 넣는 순간, 고미가 왜 그런 반응을 보였는지 단박에 이해가 갔다.
‘꽤 미묘하네.’
옹심이 자체에 무슨 대단한 맛이 있는 건 모르겠는데, 식감이 재미있다. 떡과도 다르고, 젤리와도 다르지만, 뭔가 말랑말랑하고 쫄깃한 것이······.
음, 이래서 여행을 오면 지역 음식을 먹어보라고 하는 건가. 여태 한 번도 못 느껴본 맛이기는 하네.
[ 음, 음······. ]
나에게는 그저 그런 애매한 식감과 맛이었지만, 고미는 진지한 표정으로 두 번째 옹심이를 입안에 넣고 한참이나 오물거렸다.
한편, 한유진은 보기만 해도 배가 부르다는 듯 엄마 미소를 지은 채 고미와 수다르의 먹방을 지켜보고 있었고,
“한유진 씨도 조금 들어요.”
그 모습을 보던 어머니가 웃으며 그녀에게 식사를 권했다.
“아, 네, 감사합니다.”
그제야 정신을 차린 한유진은 밝은 갈색 머리를 질끈 동여 묶었다.
그리고는 젓가락으로 면발을 들어 숟가락에 올려놓은 뒤 천천히 칼국수를 먹기 시작했다.
“음, 맛있네요.”
제르보나는 언제나처럼 무표정한 얼굴로 음식을 먹고 있었고, 알틴은 칼국수나 옹심이에는 관심이 없다는 듯 한유진 씨의 무릎을 베고 새근새근 잠을 자고 있었다.
“오, 이것도 맛있네. 다들 맛 좀 봐요.”
아버지가 감자전 접시를 식탁 중앙으로 옮겨주며 그렇게 말하는 순간,
[ 고미, 그거, 그거. ]
나는 기회가 왔음을 직감했다.
[ 아앗! 그렇구나! 기다리거라. ]
신호를 받은 고미는 곧장 젓가락으로 감자전 하나를 집어 이유찬 씨에게 내밀었다.
[ 검은콩! 이것을 먹어 보거라! ]
음······. 좀 당황스럽군.
음식을 주라고 한 건 나지만, 저렇게 밑도 끝도 없이 내밀 줄은 몰랐다. 그래도 뭔가 자연스러운 흐름이라는 게 있는 거 아닌가.
“이럴 수가, 고미님이 직접 음식을 주시다니! 감사합니다!”
다행히도 이유찬 씨는 잔뜩 감격한 표정으로 고미가 내민 감자전을 받아 먹었고,
< 축하합니다. 퀘스트가 완료되었습니다. >
이내 시스템 창의 메시지가 눈앞에 떠올랐다.
[ 수하, 어떠냐? 원하는 것이 나왔느냐? ]
내가 고미에게 부탁한 것은 간단했다.
아직 시스템에 의해 정식으로 ‘숲속 친구들’로 분류되지 않은 이유찬과 제르보나에게 음식을 주라는 것.
고미는 이미 두 사람에게 호감을 느끼고 있으니, 음식만 주면 아주 쉽게 퀘스트를 완료할 수 있었다.
앞으로의 일을 생각하면 두 사람도 ‘웅톡방’에 초대해 두는 편이 좋을 것 같았고. 노인국 씨 문제나 인터뷰 건을 좀 더 잘 넘기려면 필요한 스킬이 있으니까.
그리고, 내 추측이 맞다면, 상당히 높은 확률로 그 스킬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뭐, 뽑기에 실패하면 어쩔 수 없이 플랜B로 가야겠지만.’
그렇게 생각하며 시스템 창을 확인하는 순간,
< 달성 보상 >
새로운 친구의 스킬을 일부 사용할 수 있습니다.
획득 스킬 : 드래곤 스케일 (F)
드래곤의 비늘은 그 자체로 단단한 갑옷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드래곤의 가호를 받은 자의 신체 역시 강인한 방어력을 지니게 됩니다.
비고 : 블랙 드래곤의 가호로 인해 산성 효과에 대한 추가 방어력을 갖게 됩니다.
이유찬 씨에게 음식을 준 대가로 돌아온 스킬은, 역시나 아주 쓸만한 것이었다.
다만, 내가 원하는 스킬은 아니었다.
‘실패네.’
나는 운이라는 걸 잘 믿지 않는다.
평소에 그렇게 운이 좋은 편이 아니라서 그런 것도 있지만, 로또에 돈을 쓰는 것보다는 그 돈으로 찾을 수 있는 소소한 즐거움을 찾는 편이랄까.
도박이나 내기도 하지 않지만, 무언가에 내기를 건다면 반드시 충분한 근거를 가지고 시작한다.
당연히 지금 이 ‘스킬 뽑기’ 역시 나름의 근거를 가지고 진행하는 것이고.
‘이상하다. 분명히 그게 나올 텐데. 아직 한 번 더 기회가 있으니까, 한 번 더 해봐야겠군.’
그렇게 생각을 정리하며 고개를 젓자,
[ 으음, 알겠다. 일단 딸기에게도 음식을 주어보겠다. ]
고미가 두 번째 새 친구인 제르보나에게도 옹심이 하나를 건네주었다.
“감사합니다.”
제르보나는 늘 그렇듯 예의 바른 태도로 옹심이를 받았다.
그리고 시스템 창을 확인하는 순간,
‘됐어!’
< 달성 보상 >
새로운 친구의 스킬을 일부 사용할 수 있습니다.
획득 스킬 : 폴리모프 (F)
드래곤은 자신의 모습을 원하는 형태로 변형할 수 있습니다. 단, 일정한 크기 이상, 혹은 일정한 크기 이하로는 변신할 수 없습니다.
비고 : 스킬 레벨에 따라 변신할 수 있는 대상이 달라집니다. 변신할 대상과 유지 시간에 따라 마력이 소모됩니다.
그리고 한유진 씨에게 인터뷰 이야기를 꺼내려는 찰나, 타이밍 좋게 그녀의 핸드폰이 울렸다.
[ 수하 씨, 방송국인데, 어떻게 할까요? ]
발신자 정보를 확인한 한유진이 나를 바라보며 텔레파시로 물었다.
[ 잘 됐네요. 저랑 같이 인터뷰 한번 하죠 뭐. ]
그래, 아주 충격적인 인터뷰를 말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