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아기곰이 너무 강함-100화 (100/300)

EP.100 위기를 기회로

지금 숙소에는 거대한 황금색 덮개가 덮여있었다.

굳이 비유하자면, 가끔 지하철에서 볼 수 있는, 할머니들이 김치를 담아 다니는 윤이 반짝반짝 나는 노란 보따리가.

“후후, 어떠하냐? 이러면 엄마 아빠도 무사하고, 사람들도 밖을 보지 못했을 것이다.”

고미가 꼬리를 빳빳하게 세운 채 김치 보따리가 된 숙소를 가리키며 말했다.

언제봐도 자기 주장이 강한 꼬리군.

확실히 고미의 대처는 제법 훌륭했다.

‘문제는, 다른 방식으로 주목을 받게 됐다는 거지.’

게이트가 열렸다. 주위에 있던 헌터들이 처리한다.

여기까지는 딱히 대단한 일도 아니다. 이미 그런 게 일상이 된 세상이니까.

왕 거북이와 고북 대왕, 고래 떼의 등장··· 은 조금 이슈가 되겠지만, 한 치 앞도 분간하기 힘들 정도로 짙은 안개가 끼어 있었으니, 그것도 어떻게 잘 무마할 수 있겠지.

문제는 저 김치 보따리가 된 호텔을 뭐라고 설명해야 하냐는 건데.

‘일단 한유진 씨랑 고미랑 내가 같이 있는 건 크게 문제가 안 될 거야. 테이머스 회원이랑 놀러 왔다고 하면 되니까.’

실제로 존재하는 조직이고, 임성한 씨도 내가 테이머스에 들어간 걸 알고 있으니 그 부분은 어렵지 않게 해명할 수 있다.

관건은 사람들이 어디서 어디까지 봤느냐 하는 문제다.

우리와 이강혁 씨가 같이 있다는 것만 안 봤다면, 어떻게든 넘어갈 수 있다.

“이강혁 씨, 일단 숨어있다가 적당히 숙소로 돌아가 주세요. 사람들이 한유진 씨랑 같이 있는 거 보면 안 될 것 같아요.”

“알겠습니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이강혁 씨의 모습이 빠르게 시야에서 사라졌고,

“고미, 저것 좀 걷어줘.”

“훗, 알겠느니라.”

김치 보따리로 변했던 숙소는 금세 원래의 모습을 되찾았다.

호텔 전체를 감싸고 있던 황금색의 덮개가 사라지자, 창문에 다닥다닥 달라붙어 있는 사람들의 면면이 선명하게 눈에 박혔다.

좋아, 시작해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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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거 드래곤 아니야?”

“이건 무슨 아이템인가? 스킬은 아닌 것 같은데.”

“나 아까 게이트 열리는 거 봤어. 막 헌터 몇 명 뛰어가는 거 같던데.”

“안개 때문에 제대로 보이지도 않더만.”

“헌터도 아닌데 게이트로 뛰어가겠냐? 아까 한유진이랑 놀던 그 사람들 아니야?”

“한유진은 드래곤 타고 바다로 날아가던데?”

“그럼 한유진이랑 놀던 그 사람들이 해변에 열린 게이트 파괴한 거 아닌가?”

······.

나는 감각을 강화해 사람들이 떠드는 소리에 하나하나 귀를 기울였다.

먼저 사람들이 어디서 어디까지 봤는지,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를 파악해야 한다.

“수하 씨? 저희도 얼른 들어가는 편이 좋지 않겠어요?”

한유진의 말에 나는 말없이 고개를 저었다.

그럴 거면 보자기를 거두기 전에 숨었겠지.

하지만 이미 이유찬 씨와 우리가 어울리는 걸 본 사람들이 있으니까, 그건 현명한 선택이 아니다.

게다가 우리가 게이트를 파괴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까지 있으니까.

‘같이 있는 걸 봤는데 게이트는 파괴되고 우리가 사라지면, 그게 더 이상해.’

무려 A급 게이트다. 그런 걸 없앤 사람들이 자기 몸값 올릴 기회를 차버리고 슥 사라지면, 그게 더 화제가 되겠지.

다행인 건, 고미의 대처 덕에 이강혁 씨가 나타난 걸 본 사람은 없는 것 같다는 점.

그럼 됐다. 아니, 잘 됐다.

“한유진 씨, 인터뷰 한 번만 더 해주셔야 할 것 같은데요. 봉식아, 너랑 나도 나가야 할 것 같다.”

“우리도?”

봉식이가 의아하다는 듯 되물었다.

이건 그 동안 우리가 추구하던 바랑 다르니까.

하지만 이걸 이용해서 더 좋은 판을 만들 수 있을지도 모른다.

위기는 기회랑 함께 찾아온다고, 고미가 어시스트를 해줬으니 내가 골로 연결해야지.

“응, 우리도.”

“그래도 되는 거야?”

“생각이 있어. 일단 상황을 좀 보고, 필요하면 나가는 거야.”

이후 봉식이와 나는 삼룡이 패밀리를 먼저 돌려보내고, 수다르, 고미와 함께 숙소로 돌아갔다.

* * *

숙소에 도착하자, 수심이 가득한 표정으로 소파에 앉아 계신 아버지와 어머니가 보였다.

“어, 어머니, 저희 왔어요.”

봉식이가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방금 전 게이트가 나타났고, 우리가 돌아오지 않았으니, 적잖이 걱정을 하셨겠지.

게다가 황금 보따리 덕에 밖을 보지도 못했으니 더 불안하셨을 거다.

“고생했다.”

“다친 데는 없니?”

하지만 두 분의 반응은 우리의 예상과는 달랐다.

얼굴에는 걱정이 가득했지만,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헌터는 위험하다는 이야기 따위는 입에 올리지도 않으셨다.

“배는 안 고프니? 뭐라도 사 먹으러 나갈까?”

그렇게 묻는 어머니의 입가에는 어색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어······.”

예상 밖의 반응에 당황한 내가 말을 더듬자, 어머니가 고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잔잔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괜찮아, 엄마도 이제 받아들였어. 가족 여행까지 와서 이런 일이 벌어진 건 좀 아쉽지만, 그게 너희 탓은 아니니까. 그래도 항상 몸조심하고.”

음, 막상 이렇게 되니 조금 허전한 느낌이 드는 건 왜일까.

어머니의 잔소리란, 참 묘한 것 같다. 들을 때는 귀찮은데, 막상 안 들으면 어딘지 모르게 서운하고 허전하니까.

“자자, 얼른 씻고 나와라. 셋 다 쫄딱 젖었네, 감기 걸리겠다.”

어머니가 말을 마치기 무섭게 아버지가 웃으며 수건을 내밀었다.

그때,

“허허허, 안녕하십니까.”

봉식이의 뒤에 숨어있던 수다르가 빼꼼 고개를 내밀어 부모님께 인사를 건넸다.

잠깐, 당신, 왜 숨어 있던 거야.

설마 분위기 이상한 거 읽고 없는 척했던 건 아니겠지?

“어머, 산신령님! 죄송해요. 우리 봉식이가 너무 커서 산신령님 오신 것도 모르고.”

어머니가 민망하다는 듯 인사를 하자, 아버지도 웃으며 꾸벅 고개를 숙였다.

“아이고, 우리 산신령님. 잘 오셨네. 내일 바다 낚시갈 생각이었는데, 산신령님도 회라도 드시고 가세요.”

“허허허, 이것 참, 매번 올 때마다 맛있는 것을 대접받는군요.”

수다르는 그렇게 말하며 곧바로 손안에서 작은 약병 세 개를 꺼내 들었다.

응? 뭘 가지고 오신 거지······.

“어머? 이건 뭐죠?”

어머니가 눈을 깜빡이며 묻자,

“자, 먼저 이 병에 담긴 것은 울화가 쌓이거나 복통이 있거나, 소화가 잘 안 될 때 드시면 좋은 약입니다. 떨어지면 또 가져다드릴 터이니 속이 좋지 않을 때 드십시오.”

수다르가 웃으며 약에 관해 설명해 주었다.

‘뭐, 뭐냐, 이 약장수 같은 멘트는······.’하는 생각을 하는 사이, 수다르가 나머지 두 개의 약병을 각각 어머니와 아버지의 손에 쥐여주었다.

“기가 허했을 때 드시면 좋은 약입니다. 인간들은 이것을 공진단이라 부른다지요. 그것과는 조금 다르지만, 약효는 더 좋을 것입니다. 매일 아침 한 알씩 복용하시면 됩니다. 이쪽은 아버님, 이쪽은 어머님의 체질에 맞추어 만들어 보았으니 한번 드셔보시고 느낌을 말해주시면 다음번에는 더 좋은 약으로 가져다드리겠습니다.”

“아이고, 뭘 이런 걸 다 가져오셨어요.”

“아이참, 괜찮은데. 그냥 오시지.”

아버지와 어머니는 약속이나 한 듯 손사래를 치며 거절했지만,

“제가 명색이 산신령인데, 두 분께 대접만 받아서야 되겠습니까? 예로부터 산신령은 자신을 잘 모신 자에게 약을 내려주는 존재였습니다. 설마 산신령이 산신령 역할을 못 하게 만들지는 않으시겠지요?”

수다르의 유창한 언변에 결국 약병을 받아들고 말았다.

“그럼 우리는 좀 씻고 나올게.”

두 분이 수다르와 대화를 나누는 사이, 우리 셋은 잽싸게 샤워를 마쳤다.

“저녁 뭐 먹게?”

나의 질문에 아버지는 기다렸다는 듯 입을 열었다.

“장 칼국수 어때? 감자옹심이도 좋고.”

한 번도 먹어보지 않은 메뉴네. 고미는 어느 쪽을 더 좋아하려나.

“웅심이라고 하였느냐!?”

‘옹심이’라는 말에 샤워를 마친 고미가 온몸에서 김을 모락모락 내뿜으며 달려왔다.

언제봐도 굉장한 생체 건조군.

“아니, 옹심이야, 옹심이.”

하지만 내가 ‘옹’이라는 글자를 강조하자, 고미의 꼬리가 힘없이 축 늘어지고 말았다.

“우웅······. 아쉽구나.”

대체 뭐가 아쉬운 걸까······. ‘웅’이 아니라 ‘옹’이라는 데서?

“허허허, 장 칼국수라니, 이거 매번 올 때마다 좋은 음식을 대접받는군요.”

고미가 웅, 아니, 옹심이에 관심을 보이자, 수다르가 잽싸게 떡밥을 투척했다.

이제 대충 눈에 보인다. 아마 감자옹심이가 아니라 장 칼국수가 먹고 싶어서 고미의 관심을 장칼국수 쪽으로 돌리려는 거겠지.

“호오, 수다르. 그 옹심이라는 것보다 칼국수라는 녀석이 맛있는 것이냐?”

‘한과 사건’과 ‘회 사건’ 이후로 수다르의 입맛을 상당히 신뢰하게 된 고미는 의심 한 점 없이 덥석 떡밥을 물었다.

“허허허, 강원도 하면 옹심이와 장 칼국수지요. 여행을 왔다면 역시 그 지역의 전통 음식을 먹어보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호오······. 그렇다면 둘 다 맛을 보겠노라!”

하지만 고미는 아주 간단하게 수다르의 계략(?)을 파훼해 버렸다.

음, 둘 중에 뭘 먹을지 고민할 줄 알았는데, 둘 다 먹겠다니. 고미답다면 고미다운 해답이군.

“그럼 가까운 곳에 두 개 같이 하는 집 있나 한 번 찾아볼까?”

“아빠, 혹시 한유진 씨도 같이 가도 돼?”

나의 질문에 아버지와 수다르는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허허, 바다와 여행이라, 거기에 젊음이 더해지면, 낭만이라고 읽어야겠지요.”

“아들, 승부에 나서는 거야?”

이 양반들이 쌍으로······.

“승부는 무슨 승부야. 그런 거 아니라고 몇 번을 말해.”

“진짜 아니냐?”

민봉식, 너까지······.

“아니야. 아까 낮에 있었던 문제 때문에 그래. 인터뷰하려면 미리 입을 맞춰두는 게 좋지 않겠어?”

물론, 그 외에도 한가지 목적이 더 있기는 하지만.

그건 될지 안 될지 보고 결정을 해야 하니까, 굳이 지금 얘기할 필요는 없겠지.

“그래, 이 숙소도 그 아가씨가 잡아줬다며, 같이 밥이라도 한 끼 먹으면 좋지. 비싼 건 못 사줘도, 그런 거 그냥 넘어가면 안 돼.”

가족들의 동의를 얻은 나는 곧바로 한유진 씨에게 깨톡을 보냈다.

이강혁 씨도 불러서 같이 먹고 싶지만, 다 같이 밥 먹는 모습을 사람들에게 보여서 좋을 게 없으니, 조금 미안하지만 어쩔 수 없지.

└ 한유진 씨, 저녁 안 드셨으면 칼국수라도 드시러 가실래요? 수다르 님이랑 고미랑 같이요. 제르보나 씨랑 이유찬 씨도 같이 왔으면 좋겠는데.

└ 한유진 씨 : 꺅! 좋아요! 완전 좋아요! 저 지금 바로 날아갈게요!

역시, 수다르에 고미 조합이면 껌뻑 죽을 줄 알았다.

조금 부족하지만, 일단은 겸사겸사 이 정도로 인사치레를 해야겠다.

* * *

숙소를 나선 우리는 시원한 밤공기를 맞으며 근처에 있는 칼국수 집으로 향했다.

[ 고미, 이유찬 씨나 제르보나 씨를 어떻게 생각해? ]

[ 후후, 검은콩도, 딸기도, 모두 마음에 든다. 그런 것은 왜 물어 보느냐? ]

[ 그럼 내 부탁 좀 들어줄 수 있어? ]

[ 말해 보거라! 이 몸을 바다에 데려와 주었으니 무슨 부탁이든 들어주마! ]

나는 빠르게 내 계획을 밝혔고, 고미는 흥미롭다는 듯 눈을 반짝반짝 빛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 호오······. 그것 참 재미있는 생각이구나. ]

좋아. 이제 운만 조금 따라주면 이번 일을 잘 넘기는 걸 넘어서, 노인국씨 문제까지 한 번에 해결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군.

‘자, 그럼 돌림판을 한번 돌려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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