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아기곰이 너무 강함-99화 (99/300)

EP.99 안개라도 있어서 다행이다

‘새 친구라니 대체 누구지?’

순간 여러 가지 바다생물이 머리를 스쳤다.

돌고래? 상어? 고미는 큰 걸 좋아하니까 고래인가?

아니 그보다, 뭘 하면 게이트를 파괴하다가 새 친구가 생기는 거야?

그렇게 고미의 새 친구가 누구인지 궁금해하고 있을 때, 무언가가 파도를 뚫고 뛰어올랐다.

“돌고래!?”

그것도 한 마리가 아니었다. 얼핏 보기에도 수십 마리 이상.

고미를 태우고 있는 것은 가장 선두에 있는 녀석이었다.

[ 수하! 굉장하다! 이 녀석들은 헤엄을 아주 잘 치는구나! 너도 타보거라! ]

매끈한 피부를 가진 돌고래는 고미를 태운 채 수면 위로 튀어 올랐다가 잠수하기를 반복하고 있었고, 초콜릿색 솜뭉치는 녀석에게 매달려 신나게 항해(?)를 즐기고 있었다.

돌고래 보트라니… 드래곤 서핑을 포기할만한 엄청난 탈 것이긴 하군.

그런데 저렇게 심하게 물속으로 들어갔다 나왔다 하는데, 코에 물은 안 들어가나······.

“와아······.”

수십 마리의 돌고래가 물살을 가르며 튀어오르는 장관에 봉식이는 완전히 넋이 나갔고,

“저 돌고래들도 곰 선생님의 위대함을 알아보는 모양이군요.”

원조 호구, 아니, 광신도 이강혁 씨는 또다시 광신도만이 할 수 있는 반응을 보였다.

음, 그래도 생각보다는 평화롭고 작은 친구들이네.

난 또 수십 미터짜리 고래를 타고 나타나는 건 아닌가 했는···

- 푸우!

그 순간, 고미의 뒤에서 커다란 물줄기가 솟아올랐다.

“뭐, 뭐야!”

[ 보거라! 이 녀석들이 이 몸을 위해 물을 뿌려주고 있구나! ]

신이 난 고미가 솜방망이를 흔들자, 수십 개의 물줄기가 축포처럼 터져 나왔다.

수면 아래에는 얼핏 보기에도 십 미터 이상은 되어 보이는 커다란 고래들이 일렬로 늘어서서 고미를 따라오고 있었다.

대체 뭐지? 그 새 친구라는 게 고래들의 대장이라도 되는 건가?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고미의 스케일은 나의 상상을 뛰어넘어 있었으니,

“수하! 이 녀석이 이 몸의 새 친구인 동해의 왕이니라!”

안개를 뚫고 달려온 고미가 빌딩처럼 높다란 그림자를 가리키며 외쳤다.

‘용왕!? 설마 그 사이에 용왕을 친구로 만들었단 말이야!?’

나는 두근거리는 가슴을 부여잡고 안개에 가려진 거대한 그림자로 시선을 돌렸다.

하지만 ‘동해의 왕’은······.

수다르 때와 마찬가지로, 나의 기대와는 완전히 다른 생김새를 하고 있었다.

‘와, 왕 거북이?’

“반갑습니다. 이 몸은 동쪽 바다를 지키는 왕, 고북이라 하옵니다.”

그, 그것도 말하는 왕고, 아니, 왕 거북이!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니, 말을 하고 있는 것은 왕 거북이가 아니라 왕 거북이의 머리 위에 서 있는 작은 거북이였다.

‘바다의 수호자면, 당연히 용왕 아니야? 왜 거북이인데?’

그 작은 거북이는 아무렇지도 않게 아파트 10층 높이에 달하는 왕거북의 머리 위에서 훌쩍 뛰어내렸다.

나, 날렵하다. 거북이가 왜 이렇게 날렵한 거야.

게다가 저 높이에서 뛰어내리고도 무사하다니, 수다르와는 다르게 전투력도 뛰어난 캐릭터인 건가?

“이분 이십니까?”

바닥에 착지한 고북 대왕이 나를 바라보며 묻자,

“그렇다! 이 녀석이 바로 이 몸의 가족이자, 수하이자, 제자인, 수하다!”

고미는 흡족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고북 대왕의 키는 고미보다 조금 큰 정도였고, 눈가에 주름이 가득한 것이 한눈에 보기에도 제법 나이가 많아 보였다.

“과연······. 눈빛이 선한 것이 한눈에 보기에도 아주 인품이 훌륭하다는 것이 느껴지옵니다.”

고북대왕은 그렇게 말하며 자신의 등껍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그런데, 원래 거북이 등껍질이 저렇게 배낭처럼 사용할 수 있는 거였나.

아닌 것 같은데, 분명히 아닐 텐데.

어쨌든, 그가 내민 것은, 알아볼 수 없는 문자가 가득 새겨진 거북이의 등껍질이었다.

“이게 뭔가요?”

“용왕의 힘이 깃든 방패 이옵니다.”

“네?”

이렇게 귀한 걸, 갑자기 덥석?

“이런 걸 갑자기 왜······.”

“수하님은 고미님의 제자이시지 않습니까?”

응? 고미의 ‘새 친구’라고 하지 않았나?

“어······. 고미랑은 오늘 처음 만나신 것 아니었나요?”

“직접 용안을 뵙는 것은 처음이지요. 하지만 고미님의 위명은 저희 일족에 대대로 전해져 내려오고 있사옵니다. 설마 제 대에서 고미님을 만나 뵙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수다르 할아버지 때와 비슷한 반응이네······.

분명 처음 만났을 때 ‘내 대에서 고미님을 뵙게 될 줄은 몰랐다.’고 했었지?

산신령이니 용왕이니 하는 신기한 사람(?)들 사이에서는 고미가 상당한 유명인사인 건가.

그러고 보니 동이님 말고도 악몽의 지배자니 만수왕이니 하는 초월자들도 고미를 알고 있었고······.

대체 이 녀석, 어디서 뭘 하고 다녔길래 이렇게 유명해진 걸까?

궁금하다. 도저히 못 참겠어.

“어······. 조금 더 자세히 얘기해 주실 수 있나요?”

하지만 뭔가 설명을 들을 수 있을 거라는 나의 기대와는 달리, 고북 대왕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고미님의 선택을 받으신 분이니, 언젠가는 자연히 알게 되실 것입니다. 지금은 아직 말씀을 드릴 때가 아니니, 부디 이해해 주시옵소서.”

그리고는 더이상 이 문제에 대해 말하고 싶지 않다는 듯 화제를 돌렸다.

“고미님의 제자를 직접 뵙고 싶은 마음에 잠시나마 뭍으로 나왔으나, 제가 오랫동안 뭍에 있으면 인간들에게 좋을 일이 없사옵니다. 인사만 올리고 떠난다고 너무 고깝게 생각하지 말아 주시옵소서.”

말을 마친 고북은 또다시 등껍질에서 무언가를 꺼내 대나무로 만들어진 작은 피리 하나를 내밀었다.

“이 피리를 한 번 불면 바다를 터전으로 살아가는 생물들의 도움을 받으실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피리를 세 번 불면, 저를 부르실 수 있습니다. 다만 제가 뭍에 오래 머물면 인간들에게 좋을 일이 없사오니, 아주 중요한 때에만 사용하셔야 합니다. 그럼 저는 이만······.”

말을 마친 고북 대왕은 고미에게 절을 올리고는, 전혀 거북이 답지 않은 가벼운 몸놀림으로 왕 거북이의 머리를 향해 날아올랐다.

“고맙구나, 고북! 조만간 또 올 터이니 그때는 용궁을 구경시켜다오!”

“언제든지 찾아 주십시오!”

수십 마리의 고래와 돌고래 떼는 고북을 따라 빠르게 바다로 돌아갔고, 섬처럼 거대한 왕 거북이 역시 수면 아래로 사라졌다.

* * *

고북 대왕과 바다 친구들이 모두 떠나자, 짙은 해무가 걷히며 밤바다가 선명하게 시야에 들어왔다.

조금 전까지 벌어졌던 모든 일이 꿈인 것처럼, 한없이 평화로운 풍경이었다.

“용왕님을 만나다니, 정말 신기하군요.”

이강혁 씨가 꿈을 꾼 사람처럼 멍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전생에 용왕님 못 만나봤어요?”

한유진이 나 대신 질문을 던지자, 이강혁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거북이를 용왕이라고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요.”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자니, 문득 한 가지 의문이 생겨났다.

수다르는 초월자들이 가장 먼저 없애려 했던 존재였다.

동해의 왕이라면 산신령만큼이나 신성한 존재다. 게다가 피리로 보나 뭘로 보나, 수다르 못지 않게 신통한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았고.

“혹시, 수다르 할아버지 때처럼 고북대왕 할아버지를 죽이려고 한 건 아닐까요?”

충분히 합리적인 추론이었다.

“해상에 열린 게이트가 더 크고 위험했으니, 그럴 가능성도 있겠군요.”

“아마도 정찰이었을 것이다.”

그때, 고미가 살짝 미간을 찌푸리며 입을 열었다.

“정찰?”

“그렇다. 용궁의 위치는 정해져 있지 않으니 말이다. 수다르의 동굴보다도 훨씬 더 찾기가 어렵지.”

이건 또 무슨 소리야. 용궁의 위치가 정해져 있지 않다니······.

“그게 무슨 말이야?”

“너희가 보았던 커다란 거북이, 그것이 용궁이니라.”

고미의 대답에 우리 모두는 순간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저, 저게 용궁이라고요?”

한유진이 동그랗게 눈을 치켜뜨며 되묻자,

“그렇다.”

고미가 짤막하게 답했다.

이 녀석은 왜 이런 걸 알고 있는 걸까.

바다에는 와본 적도 없다면서.

언제 한 번 진지하게 날 잡고 얘기를 해봐야겠다.

나는 내 비밀을 다 털어놨는데, 이 녀석은 계속 자신의 정체를 말해주지 않으니 서운한 마음도 좀 들고.

‘그래도 지금은 곤란하겠지.’

하지만 이렇게 사람이 많은 곳에서 할 얘기는 아닌 것 같으니, 나는 아쉬운 마음을 뒤로 한 채 한유진이 가져다준 아이템 큐브를 확인해 보기로 했다.

“한유진 씨 혹시 아까 가져오신 아이템 큐브 좀 주실 수 있을까요?”

“아, 여기요.”

나의 요청에 잠시 넋이 나가 있던 한유진은 제꺽 손에 들린 두 개의 아이템 큐브를 나에게 넘겨주었다.

아이템 큐브를 손에 들고 마력을 불어넣자,

< 아이템 큐브를 개봉합니다. 마력이 소모됩니다. >

시스템 메시지와 함께 아이템 큐브가 열리며 주먹만 한 푸른 수정이 모습을 드러냈다.

“역시, 요정석이군요. 조금 전에 받은 방패를 강화할 때 쓰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아이템을 확인한 이강혁은 흡족한 표정으로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 정말요? 그게 요정석이에요?”

한유진이 아직 물기가 마르지 않은 머리를 넘기며 나에게 성큼 다가왔다.

“이거 아세요?”

“아뇨, 처음 봐요. 그런데, 이게 수하 씨한테 필요한 물건이라는 건 알아요.”

“네?”

“아, 아웅이님하고 다웅이님을 계속 유지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냐고 물어보셨잖아요.”

“그럼 이게······.”

“네, 마일로스트님께서 고미님의 분신을 계속 유지하려면 요정석이 필요하다고 하셨어요.”

횡재했군. 휴가를 방해받아서 조금 짜증이 나 있었는데, 이 정도면 충분하고도 남는 보상이야.

이제 곰 세 마리가 한집에 살 수 있게 되는 건가?

“요정석에 고미의 털을 넣고 아웅이 다웅이를 만들면 되는 건가요?”

“그렇게 간단한 건 아니고, 어떤 약이 필요하다고 하셨어요. 그런데 만들기가 좀 어렵다고 하셔서······.”

약이라······. 약이라면 또 일가견이 있는 분이 있지.

고미에게 시선을 돌리자, 녀석은 곧장 수다르의 동굴로 향하는 공간 통로를 열었다.

“잠시만 기다리거라!”

잠시 후, 공간 통로에서 자그마한 수달 한 마리가 고미의 손을 잡고 걸어 나왔다.

“오랜만에 바깥 세상에 나왔는데, 이런 미인을 만나 뵙게 될 줄이야. 만나뵈어 영광입니다. 저는 지리산의 산신령, 수다르 8세라고 합니다.”

공간 통로에서 나온 수다르는 언제나 그랬듯 자신의 사회성을 유감없이 발휘했고,

“어, 어떡해!”

말하는 수달을 만난 한유진 씨는 거의 뒤로 넘어갈 듯이 기뻐하며 꺅꺅 소리를 질러댔다.

“야, 그런데……. 우리 괜찮겠냐?”

그때, 봉식이가 나의 어깨를 톡톡 두드리며 말했다.

그제야 나는 불현듯 한가지 문제를 깨달았다.

게이트 열린 건 둘째치고, 왕 거북이까지 등장해서 한바탕 난리가 났는데······.

게다가 그 사이즈면 아무리 멀리 있어도 뭔가가 나타났다는 것 정도는 모를래야 모를 수가 없었다.

‘이걸 어떻게 둘러대지? 고미야 바다에 있었으니까 안 보였다 치더라도, 우리는…….’

무려 이강혁이 헌터 둘을 달고 해변에서 게이트를 파괴했다.

그런데 그 헌터 둘이 삼룡이 패밀리와 광란의 서핑을 즐기던 서핑곰의 주인이다.

이런 소문이 퍼지면 우리의 계획은 모두 물거품이 될지도 몰랐다.

이 일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을 때,

“훗, 걱정 말거라 수하. 이 몸이 다 조치를 취해 뒀느니!”

고미가 모든 것을 예상했다는 듯 자신만만한 목소리로 외쳤다.

그리고 숙소로 고개를 돌리는 순간, 고미가 제법 훌륭한 대처를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대신, 또다른 문제가 생겼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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