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아기곰이 너무 강함-98화 (98/300)

EP.98 바다에서 만난 새친구

세이렌의 위치는 해변에서 이삼십 미터쯤 떨어진 바위 위.

나와 놈들 사이에는 새하얀 파도가 몰아치는 바다가 놓여 있었다.

지금 내 능력치와 스킬로는 도달할 수 없는 위치.

헤엄을 쳐서 가려고 했다가는 물고기 밥이 될 게 뻔했다.

‘아무리 저쪽은 생선이고 나는 횟집아들이라도, 물속에서는 못 당하지. 한 번에 뛰어넘어야 해.’

나는 빠르게 생각을 정리했다.

‘시스템 창.’

잔여 스킬 포인트는 3개, 능력치 포인트는 10개, 해피 곰 포인트는 820.

그리고 봉식이가 처리한 몬스터들의 잔해······.

이 정도면··· 할 수 있어.

‘좋아, 간다.’

< 능력치를 강화합니다. >

민첩 13 -> 23 (+2)

봉식이는 전투 불능이고, 이강혁 씨의 움직임은 점점 느려지고 있다.

정신 공격을 버텨낼 수는 있지만, 완벽히 막아 내지는 못하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정신도 아직 또렷하고, 상처를 입지도 않았다. 그저 베는 속도가 느려졌을 뿐이다.

‘아직 생명이 위태로울 정도는 아니야.’

그렇다면, 우선 봉식이부터 구한다.

< 허곰답보(C)가 활성화됩니다. >

퍽!

나는 전력으로 달려가 봉식이를 힘껏 걷어찼다.

체중이 한껏 실린 발에 걷어차인 봉식이는 힘없이 날아가 그대로 모래사장에 처박혔다.

깨어나 주면 고맙고, 그게 아니라면 가급적 몬스터와 떨어진 곳으로 보내기 위해서.

‘안 깨어나는군.’

하지만 봉식이는 여전히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하긴, A급 정신 계열 스킬이 그렇게 허접할 리가 없지.

봉식이의 안전을 확보한 나는 빠르게 주위의 반인반어형 몬스터들을 베어나갔고,

- 키에엑!

- 끼익!

검에 베인 괴물들이 불꽃에 휩싸여 재로 돌아가는 사이, 곁눈질로 이강혁 씨를 바라봤다.

S급 검사답게 여전히 잘 버티고 있었지만, 게이트는 계속해서 커지고, 몬스터가 나오는 속도가 몬스터를 처리하는 속도를 점점 상회하고 있었다.

더욱 나쁜 것은, 움직임이 점점 더 무뎌지고 있다는 사실.

‘안돼, 너무 느려.’

게이트가 완전히 열리면 상황이 더 어려워지겠지.

그것을 막으려면 최대한 빨리 이쪽을 정리하고, 바로 세이렌을 처리해야 한다.

< 강화할 스킬을 선택해 주십시오. >

< 검의 달인 C -> B >

< 고미류 기공술 – 곰기 C -> B >

< 고미류 기공술(입문) - 웅신입기혈 B -> A >

나는 재빠르게 남아있는 스킬 포인트를 모두 사용했다.

“이강혁 씨! 얼마나 버틸 수 있어요!”

“아직은 괜찮습니다! 그보다 세이렌을!”

“알겠습니다!”

기공술에 곰기까지 강화하자, 이유찬 씨와 고미의 열정이 담긴 화염이 더욱 뜨겁고 화려하게 타올랐다.

하지만 예기치 못한 문제가 있었으니···

불꽃의 위력은 더욱 강해졌지만, 들고 있는 것만으로도 힘이 빠진다는 점.

신검이 아니라 마검이었구만······.

‘아, 안 되겠어.’

미쳐 날뛰는 화염은 덤앤더머 콤비의 넘치는 에너지만큼이나 통제가 어려웠다.

설마 제작 과정에서 보여줬던 두 사람의 열정이 이런 식으로 반영된 건가?

‘어차피 컨트롤하기 어렵다면 속전속결로 끝낸다.’

그렇게 판단한 나는 전력으로 몸을 날려 남은 몬스터들을 정신없이 베었다.

- 키에에에!

검붉은 화염이 허공을 수놓을 때마다 몬스터들이 비명을 지르며 바닥을 나뒹굴었고, 순식간에 십수 마리의 몬스터가 재로 변했다.

“헉, 헉······.”

이어서 나는 곰기를 끄고 봉식이에 의해 박살 난 ‘꽃게 괴물’들의 갑각과 집게발들을 집어 들었다.

이제 재료는 모두 갖춰졌군.

그럼 다음.

< 해피곰 포인트를 사용합니다. 잔여 포인트 : 520. >

< 허곰답보(C)의 효과가 일시적으로 강화됩니다. >

< 허곰답보 C -> A >

‘으아, 뭐가 이렇게 비싸!’

곰정사는 한 등급에 50 포인트 밖에 안 들면서, 허곰답보는 한 등급에 150 포인트냐.

나는 곧장 해안 쪽으로 몸을 날리며 고미가 하늘을 날 때 보여주었던 동작을 되새겼다.

처음 뛸 때는 바닥을 박차는 것으로 충분하지만, 공중에서 방향을 틀거나 다시 한번 날아오를 때는 반드시 허공에서 발을 바둥거렸지.

통통하고 짤막한 다리로 허공을 차고 날아오르는 고미의 귀여운 모습을 상상하니, 이 급박한 상황에서도 웃음이 났다.

‘이렇게 하는 건가?’

하늘 위에서 바닥을 차듯 온 힘을 다해 발을 움직이자, 무언가가 밟히는 느낌이 들며 몸이 조금 떠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역시, 모자라.’

하지만 이십 미터 이상을 한 번에 도약할 정도는 아니다.

하긴, 고미처럼 하늘을 나는 게 그렇게 쉬웠다면, 기공 계열의 헌터는 개나 소나 하늘을 날아다녔겠지.

나는 한 번 더 바닥을 박차고 날아오른 뒤, 몸이 가라앉기 직전에 몬스터의 집게발을 앞으로 내던져 그것을 밟고 다시 한번 뛰어올라 보았다.

그러자······.

탓!

예상대로, 허공에서 한 번 더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물론, 고미처럼 공중에서 훌쩍 뛰어오르거나 공중에 벽이라도 있는 것처럼 방향을 틀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비거리를 늘릴 수는 있었다.

‘이 정도면, 아슬아슬하게 가능해.’

실험 끝.

두 번의 실험을 거치며 육지와 바다의 경계까지 날아왔으니, 거리도 딱 좋다.

전력으로 바닥을 박차고 몸을 날리자, 발아래로 보이는 풍경이 순식간에 변했다.

지금 나의 발밑에는 모래 대신 새하얗게 부서지는 파도가 깔려있었다.

완만한 호를 그리며 날아오른 몸이 정점을 지나 아래로 떨어지는 순간,

‘하나!’

손에 들린 집게발을 던지고, 그것을 발판 삼아 다시 앞으로 몸을 날렸다.

‘둘.’

차가운 빗줄기가 뺨을 때리고,

‘셋!’

세이렌의 노래가 점점 더 가까워진다.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 발판이 첨벙, 하고 바닷물 속으로 빠지는 순간,

‘됐어!’

바위의 단단한 촉감이 발끝을 타고 전해졌다.

< 곰기(B)가 활성화됩니다. >

검붉은 화염에 휩싸인 ‘흑염대웅신검’이 춤을 추자, 세이렌들의 노랫소리가 끊기고, 해변에는 듣기 싫은 몬스터의 울음소리와 이강혁 씨의 검이 바람을 가르는 소리만이 가득 찼다.

“휴우······.”

다섯 마리의 세이렌을 처리한 나는 잠시 숨을 고르며 바위 위에 널린 돌 몇 개를 주워들었다.

‘기가 조금만 부족했으면 바닷에 빠졌든가, 세이렌을 처리하지 못했을 거야.’

내 입으로 말하기는 뭐하지만, 제법 훌륭한 스킬과 능력치 분배였다.

웅신입기혈의 스킬 등급이 낮았다면 기가 부족했을 거고, 곰기와 검의 달인 등급이 낮았다면 몬스터를 처리하는 게 늦었겠지.

그리고 장기적으로 보면 다른 스킬보다는 허곰답보를 일시적으로 강화하는 게 이득이다.

‘이렇게 강해지다 보면, 더 이상 고미 혼자 고생하지 않아도 되겠지.’

무엇보다 처음으로 고미의 도움 없이 위기를 해결했다는 사실에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갔다.

이제 이강혁 씨를 도와서 게이트를 파괴하면 상황 종료군.

세이렌들의 노래가 끊기자, 이강혁 씨는 물 만난 고기······.

‘음, 아니, 표현이 부적절하군. 저쪽도 물고기잖아.’

눈부신 백색 검기를 뿜어내며 미친 듯이 칼춤을 춰댔다.

덕분에 놈들의 시선은 온통 이강혁 씨에게 집중됐고,

나는 이전과 똑같은 방식으로 바다를 건너가 다시 한번 불꽃을 피워올렸다.

마지막 남은 힘을 모두 짜내 불꽃을 일으킨 뒤 게이트를 찌르자, 시커먼 화염이 맹렬하게 타오르며 게이트가 파괴됐다.

‘으아··· 이제 모르겠다.’

몬스터는 아직 남아있었지만, 이제 체력이 없다.

남은 건 이강혁 씨랑 정신 돌아온 민봉식한테 맡겨야지······.

그렇게 생각하며 바닥에 털썩 주저앉은 순간,

< 새로운 퀘스트가 개방됩니다. >

“응?”

< 메인 퀘스트 : 혼자서도 잘해요 (1) >

- 언제까지나 스승에게 의지해서는 진정한 강자가 될 수 없습니다. 위대한 곰을 닮고 싶다면, 스스로 당당히 문제를 해결하세요.

메인 퀘스트가 아직도 남아있었나?

어쨌거나, 늘 그랬듯이, 지극히 고미 편향적인 설명이군.

고미가 좋긴 하지만··· 닮고 싶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는데 말이지······.

나까지 애가 되면 애만 둘인데, 그럼 고미는 누가 돌봐.

< 달성 조건 >

1. 고미의 도움 없이 B급 이상 게이트 파괴하기. (완료)

2. 고미의 도움 없이 B급 이상 던전을 클리어. (미완)

< 달성 보상 >

- 고유 스킬 획득 : ???

잠깐, 고유 스킬?

고미의 스킬을 그대로 따라 배우는 게 아니라 내 스킬이라는 소리인가?

시스템 창에 떠오른 새로운 퀘스트와 메시지에 잠시 정신이 팔린 사이,

“휴······. 수하 씨, 정말 잘해주셨습니다. 수하 씨가 아니었다면 위험할 뻔 했습니다.”

이강혁이 다가와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끝까지 못 도와드려서 죄송해요. 막판에 힘이 빠져서.”

“아닙니다. 세이렌은 물론이고 게이트까지 파괴해 주실 줄이야. 과연 곰 선생님의 제자답습니다.”

“야! 김수하! 오늘 대박이었다!”

이어서 봉식이가 커다란 소리로 고함을 지르며 나에게 달려왔고, 이후 우리 세 사람은 승리의 기쁨을 만끽하며 마정석과 아이템 큐브를 회수했다.

“생각보다 쏠쏠하네.”

봉식이가 콧노래까지 흥얼거려가며 마정석을 채취하고 있을 때, 이강혁 씨가 나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아 참, 수하 씨. 세이렌이 아이템 큐브를 떨어뜨리지는 않았습니까?”

“급해서 확인을 못 했네요.”

“높은 확률은 아니지만, 세이렌 중에는 요정석을 가진 녀석들이 있습니다. 조금 있다가 가서 확인해 보죠.”

“어디에 쓰는 건데요?”

“뭐 용도는 다양하죠. 아이템 제작을 할 때 꽤 유용하게 쓸 수 있습니다.”

‘음, 그럼 방패를 만들 때 넣어볼까?’하는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저 멀리서 환한 불빛이 터져 나오더니 이내 수면 위에 짙은 해무(海霧)가 끼기 시작했다.

“저쪽도 대충 끝이 났나 보군요.”

그 모습을 본 이강혁은 안도한 듯 웃음을 지으며 모래 위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럼 곰 선생님이 돌아올 때까지 편하게 기다려볼까요?”

그렇게 5분 정도 지났을 무렵, 두 개의 거대한 그림자가 짙은 안개를 뚫고 해변으로 날아왔다.

└ 한유진 씨, 그쪽도 잘 정리됐나요?

└ 삼룡 어멈 : 네, 아무 문제 없이 처리했어요. 어느 쪽에 계신가요?

역시, 이 짙은 안개는 브레스가 바닷물을 증발시키면서 만들어진 건가.

└ 한유진 씨가 보기에 오른쪽이에요. 혹시 오는 길에 바다 위에 떠 있는 바위에 아이템 큐브 떨어져 있는지 확인 좀 해주실 수 있을까요?

└ 삼룡 어멈 : 얼마든지요.

얼마 지나지 않아 한유진 씨와 두 마리의 드래곤이 아이템 큐브를 들고 우리에게 걸어왔다.

그런데, 두 사람의 곁에 고미와 알틴이 보이지 않았다.

“고미는요?”

“아, 그게······. 고미 님이 게이트를 파괴하다가 새 친구를 사귀셔서, 친구와 함께 오겠다고 하네요. 알틴도 같이요.”

“새 친구요?”

이건 또 무슨 소리야. 게이트를 파괴하다 말고 무슨 친구가 생겨.

“누군데요?”

“음, 누구··· 라고 말하기는 조금 어렵고, 보면 아실 거예요.”

나의 질문에 한유진은 재미있다는 듯 피식 웃음을 지으며 바다를 가리켰다.

그리고 그녀의 손끝을 따라 수평선을 바라보자, ‘무언가’가 엄청난 물보라를 일으키며 육지를 향해 다가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 우하하하! 수하! 바다에도 이 몸의 위대함을 알아보는 녀석들이 있구나! ]

그것도 하나가 아니라, 여럿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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