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95 갓-고미님의 화끈한 놀이방식(1) 불안한 조합x2
고미의 전음을 듣는 순간, 나도 모르게 온몸에 힘이 바짝 들어갔다.
호텔 주위에는 던전도, 게이트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 게 생겼다면 곧바로 ‘곰 레이더’가 발동했을 테니까.
즉, 우리를 지켜보고 있다는 ‘무언가’는 인간일 가능성이 높았다.
‘누구지······?’
일단 숲속 친구들을 제외하면 남는 건 당연히 패왕과 블랙 메이지.
설마 ‘보자기 3인방’의 정체를 알아내고 누군가 뒤를 밟기라도 한 건가?
하지만 어떻게?
“응? 고미? 왜 그러니?”
갑자기 고미가 앞을 막아서자, 어머니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자리에 우뚝 멈춰섰다.
그때, 산 위에 있는 커다란 크루즈 모양의 호텔 위로 익숙한 검은 물체 하나가 날아올랐다.
‘이유찬 씨?’
“고, 고미야!”
어머니는 반사적으로 고미를 안아 들었고, 아버지가 앞으로 튀어나와 우리의 앞을 막아섰다.
“수, 수하야! 봉식아! 도망가!”
음······. 감동적인 장면인데, 저거 친구라고 말하면 뻘쭘해지려나.
“엄마, 아빠, 괜찮아. 저거 우리 친구야.”
내가 거대한 날개를 펄럭이며 날아오는 검은 드래곤을 가리키며 그렇게 말하자,
“응? 그게 무슨 소리니?”
어머니와 아버지가 멍한 표정으로 발을 멈추었다.
반면 자신이 느꼈던 시선의 정체가 삼룡이 패밀리의 것이라는 사실을 확인한 고미는 어머니의 품에 안긴 채 반갑게 웃으며 솜방망이를 흔들었다.
“지난번에 시장에서 우리 장 보는 거 도와줬던 여자분 있잖아요. 그분이 저 용 주인이에요.”
봉식이가 피식 웃으며 검은 용의 정체를 설명해주자,
“그 예쁜 아가씨가 용도 타?”
“우리 아들들이 요즘 신기한 친구들을 많이 사귄 것 같네.”
부모님은 얼떨떨한 표정으로 날개짓을 하며 다가오는 이유찬 씨와 우리를 번갈아 바라봤다.
한편, 나는 왜 한유진 씨가 여기까지 왔는지, 그 이유가 궁금할 뿐이었다.
‘설마 고미가 보고 싶어서 가족 여행까지 쫓아온 건 아닐 테고.’
그런 생각을 하며 한쪽 뿔이 잘린 블랙 드래곤의 등 위로 시선을 옮기는 순간, 뭔가 좋지 않은 예감이 머리를 스쳤다.
지금 그의 등에는 삼룡이 패밀리뿐 아니라 이강혁 씨가 함께 타고 있었다.
이 둘이 같이 올 일이면······.
“어? 이 사장이네?”
그때, 이강혁 씨를 알아본 아버지가 또 말도 안 되는 상상의 나래를 펼치기 시작했다.
“아들, 혹시 이 사장이랑 저 처자랑 아들이랑 삼각관계야?”
······.
대체 어떤 과정을 거치면 저런 답이 나오는 걸까.
진심으로 이런 걸 물어 보는 건가? 내 아버지지만, 어디까지가 농담이고 어디까지가 진심인지 도통 감이 안 온다.
“곤란한데··· 우리 아들도 어디 가서 빠지지는 않지만, 라이벌이 건물주면······.”
“아빠, 드라마 좀 그만 봐.”
아무튼, 두 사람이 사이가 좋아졌다고는 해도 이런 곳까지 같이 여행을 올 정도는 아니니, 아마도 일 문제 때문에 온 거겠지. 그것도 꽤 급한 건으로.
봉식이 역시 뭔가 일이 터졌다는 걸 직감했는지 한숨을 내쉬며 나를 바라봤다.
[ 오오, 삼룡 어멈과 허수아비도 이 몸과 함께 놀고 싶어 바다까지 따라온 모양이다! 역시 이 몸의 위대함에서 헤어나질 못하는구나! 검은콩도 왔으니 또 맛있는 것을 해달라고 하는 것은 어떻겠느냐? ]
하지만 고미는 마냥 신이 나서 꼬리와 손을 흔들며 숲속 친구들을 맞이했다.
‘사람은 많을수록 좋지’라는 고미의 철학에 의하면, 어딜 가든 사람은 많을수록 좋을 테니까.
“어······. 김수하 씨! 아, 어머니 아버지 안녕하세요.”
이유찬의 등에서 내린 한유진은 무언가 말을 하려다가 먼저 부모님에게 인사를 드렸고, 이강혁 역시 조금 어색한 표정으로 부모님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웬일로 여기까지 오셨어요?”
나의 질문에 한유진은 아주 잠깐 부모님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가 웃으며 다시 입을 열었다.
“으음··· 숙소 예약해 드리고 나니까 저도 갑자기 바다가 보고 싶어서요.”
저런 뻔한 거짓말을.
부모님 앞에서는 얘기하기 어려운 건으로 찾아온 건가?
갑자기 나타난 한유진 일행 때문에 당황한 것도 잠시, 아버지가 싱글벙글 웃으며 입을 열었다.
“잘됐네. 지난 번에 장 보는 것도 도와줬는데 그냥 보내서 미안했는데, 내일 내가 돔 잡아 가지고 다 같이 회식 한번 하면 되겠어.”
“아이고, 그놈의 돔 타령 진짜. 사람이 이렇게 많은데 한 마리 잡아서 누구 코에 붙이려고? 아니, 한 마리라도 잡기는 하는 거야?”
어머니는 못 당하겠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타박을 했지만,
“아이, 이 사람도 참. 내가 큰 거로 두세 마리 낚으면 여기 사람들 다 먹지. 회도 뜨고, 매운탕도 하고. 그래, 내친김에 초밥까지 하지 뭐.”
아버지는 아직 잡지도 못한 돔이 꼭 손안에 들어온 것처럼 말을 이어나갔다.
“음, 수하님 아버지께서는 요리에 조예가 있으십니까?”
요리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어느새 인간 형태로 변한 이유찬이 진지한 눈빛으로 아버지를 바라보며 요리혼을 불태웠다.
“응?”
수 미터에 달하는 커다란 드래곤이 갑자기 사람으로 변하는 모습에 두 분은 놀란 토끼 눈이 되어 이유찬 씨를 바라봤다.
“아, 놀라셨다면 죄송합니다. 별거 아닌 마법이니 신경쓰지 마시지요.”
이유찬은 가볍게 웃으며 그렇게 말하고는 가슴을 손에 가져다 대며 두 분에게 인사를 올렸다.
아무리 그래도 평범한 사람들한테 용이 사람으로 변하는 게 별거 아니지는 않을 것 같은데······.
“처음 뵙겠습니다. 저는 이유찬이라고 합니다.”
“안녕하세요. 수하 엄마예요.”
“음, 수하, 애비 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우리 용··· 씨도 요리에 관심이 있으신가?”
음, 너무 빨리 수긍하는군. 고미를 만난 이후로 어째 아버지도 어머니만큼 적응력이 좋아진 것 같단 말이지.
“요리사라 자처하기는 부끄러운 수준입니다만, 천천히 배워나가고 있습니다.”
순식간에 공통분모를 찾은 아버지와 이유찬 씨는 마치 오래전부터 알고 지낸 사람처럼 눈을 빛내며 대화를 이어나갔다.
불안하다, 불안해. 여긴 또 왜 이렇게 파장이 맞아.
이건 곰앤더머를 넘어서는 조합이 나올 것 같은데.
“오, 우리 용······.”
아버지가 호칭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듯 말꼬리를 흐리자,
“유찬이라고 불러 주십시오, 선배님. 제가 아직 일식에는 조예가 없는데, 혹시 한 수 가르쳐 주실 수 있겠습니까?”
이유찬이 싱긋 웃으며 답했다.
“아하하! 내가 살다 살다 용하고 요리 얘기를 하게 될 줄이야! 그냥 편하게 아버님이라고 불러요 유찬 씨!”
의도하지는 않은 것 같지만, 이유찬 씨가 부모님의 신경을 빼앗아 줬으니, 이 기회에 ‘웅톡방’을 시험해 보는 게 좋겠군.
뭔가 일이 터지긴 터진 모양인데, 이강혁 씨와 봉식이는 전음을 못 하니까.
‘어차피 스킬 효과도 확인해 봐야 하고, 부모님이 듣는데 이런 얘기 하기도 뭐하니 지금 써보지 뭐.’
< 친구들과 웅기종기(Gomi) 스킬이 활성화됩니다. >
< 웅톡방이 개설되었습니다. >
< 초대할 대상을 선정해 주세요. >
- 초대 가능 대상 : 허수아비, 삼룡 어멈, 봉식이, 작은 금동이.
‘이유찬 씨랑 제르보나 씨는 없네.’
아직 고미가 음식을 안 줘서 그런 건가. 그러고 보니 오늘은 왜 제르보나 씨가 안 보이지?
그렇게 생각하며 대상을 정하 지정하자, 웅톡방에 초대된 사람들이 일제히 나를 바라봤다.
└ 허수아비 : 수하 씨, 이게 뭡니까?
└ 삼룡어멈 : 응?
└ 갓고미님 : 호오······. 이것이 웅톡방이더냐?
└ 봉식이 : 이건 또 뭐야.
└ 작은 금동이 : 삐이!?
웅톡방에 들어온 사람들은 모두 텔레파시로 대화가 가능하고, 시스템 창에 글씨로도 뜨는 형태인 건가.
별것 아닌 것 같지만, 상당히 좋은 스킬이네.
말하는 내용이 모두 시스템 창에 기록되니 설령 대화 내용을 까먹거나 잘못 들었다고 해도 재확인이 가능하다.
당연히 파티를 짜서 던전을 공략하거나 같이 무언가를 할 때 100%에 가까운 정확도로 의사소통을 할 수 있다는 건 상당히 큰 도움이 될 테고.
나의 대화명은 ‘갓-고미님의 부하 1호(수하)’였다.
음, 고쳐지지도 않는군.
뭔가 애매한 호칭이다. 제자인 수하라는 소리인가. 아니면 제자이자 수하라는 소리인가.
근데 다 별명인데, 왜 봉식이만 봉식이야? 이거 좀 억울한데······.
└ 무슨 일 있어요?
└ 삼룡어멈 : 내일 여기 게이트 열린대요. 그것도 A급 두 개가 연달아서. 전화 드렸는데, 계속 안 받으셔서 직접 찾아왔어요. 어차피 저희 도움이 필요할 것 같기도 하고······.
한유진의 말에 나는 그제야 핸드폰을 꺼내 카톡과 부재중 통화 목록을 확인했다.
이강혁, 이강혁, 한유진, 이강혁, 한유진, 한유진······. 두 분이 번갈아 가면서 전화하셨네.
고미랑 물놀이 하고 문어 먹느라 정신이 팔려서 전화가 온 것도 몰랐다.
└ 삼룡어멈 : 웬만하면 방해하고 싶지 않았는데, 일이 일이다 보니······.
그래서 이렇게 급하게 찾아온 거고만.
└ 삼룡어멈 : 죄송해요. 모처럼 놀러 오셨는데.
└ 아니에요. 죄송할 게 뭐 있어요. 도와주러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게이트가 열리는 위치가 이 근처인가요?
└ 허수아비 : 네, 해상에 하나, 해변에 하나가 열릴 겁니다.
└ 삼룡어멈 : 저희가 처리할게요. 수하 씨는 부모님이랑 계세요.
└ 봉식이 : 어차피 가까운데 열리는 거면 빨리 처리하고 같이 놀죠. 그게 서로 편할 것 같은데.
└ 삼룡어멈 : 그래도 제가 숙소 잡아드린 건데, 괜히 저 때문에 여행도 못 즐기시는 것 같아서······.
숙소는 고미가 선택한 건데 그렇게 생각할 거야 있나.
어차피 게이트 이야기야 이강혁 씨가 뒤늦게 알려준 걸 테고, 이런 일 생길 거 알면서 숙소 소개해 준 것도 아닌데.
└ 괜찮아요. 기왕 이렇게 된 김에 빨리 처리하고 놀러 가죠.
이강혁 씨의 설명에 따르면, 전 회차에서는 해상에 먼저 게이트가 열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해변에 게이트가 열렸다고 했다.
특히 해상에 열린 게이트가 제법 커서, 바다를 타고 퍼져나간 몬스터 때문에 강원도 전역이 상당한 피해를 보게 될 예정이라고.
그래서 지금 제르보나는 하늘을 날아다니며 상공에서 해상 게이트가 열리지는 않나 확인하고 있다고 했다.
‘비행 가능한 헌터가 그렇게 많은 것도 아니고, 해상 게이트 처리하러 간 사이에 해변에 게이트가 열렸으면, 앞뒤로 협공까지 당했겠네.’
└ 그럼 한유진 씨랑 제르보나 씨, 이유찬 씨, 고미가 한 조로 해상을 맡고, 저랑 봉식이랑 이강혁 씨가 해변을 맡죠.
└ 갓고미님 : 흠, 그럼 게이트가 열리기 전까지는 신나게 놀아보자꾸나. 이 몸은 아직 저 바다라는 녀석을 마음껏 맛보지 못했느니라.
고미가 리조트 근처에 펼쳐진 해안을 향해 뜨거운 시선을 보내며 말했다.
음, 이 멤버면 게이트가 완전히 열리기 전에 파괴할 수 있을 테니, 괜찮으려나. 바닷가에서 노는 편이 대처도 빠를 테고.
└ 삼룡어멈 : 아 참, 고미님, 유찬이가 고미 님을 즐겁게 해드린다고 특별히 준비한 게 있는데, 혹시 관심 있으세요?
고미가 놀고 싶은 마음을 어필하자, 기회를 포착한 신종 호구가 잽싸게 입을 열었다.
······.
아, 말리고 싶다. 말리고 싶어.
저 콤비라면 또 뭔가 엄청난 짓을 저지르고 말 것 같단 말이다.
솔직히 게이트 두 개 보다 저 둘이 무슨 짓을 할지가 더 걱정이야.
말릴 수 없다는 걸 알아서 더 불안하다.
└ 갓고미님 : 호오, 준비성이 제법 철저하구나. 지난번 꼬치구이는 실로 굉장했다. 이번에도 맛있는 것을 대접할 생각인 것이냐?
역시, 이런 걸 마다할 고미가 아니지.
그리고 이어지는 한유진 씨의 말에, 나는 왠지 모르게 등골이 오싹해지는 것을 느꼈다.
└ 삼룡어멈 : 아니요. 먹을 건 조리도구가 없어서 못 해 드리고, 대신 수상 스포츠를 알려드리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