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94 고미와 즐거운 바다여행(4) 뜻밖의 수확
‘서, 설마 수영을 못 하는 건 아니겠지?’
고미가 얼마나 대단한지 알면서도 순간 심장이 덜컥 내려 앉았다.
처음 오는 바다에, 여태 수영을 하는 건 본 적이 없는데······.
아니야 그래도 고미인데, 숨을 안 쉬든, 바닥을 밟고 하늘 위로 날아오르든, 바다에 빠져 죽을 일은 없겠지?
일단 빨리 찾아봐야겠다.
“고미 물로 들어갔어?”
내 질문에 어머니는 다급한 목소리로 고미를 찾아보라고 외치셨다.
우리가 물에 들어갈 때 따라 들어갔는데, 갑자기 사라졌다고.
“걱정하지 마! 빨리 찾아볼게!”
나는 곧바로 감각 강화를 사용해 주위를 둘러보았다.
하지만 꽤 먼 곳까지 훑어봤는데도 고미의 모습은 도통 보이지가 않았다.
“고미야아!”
또다시 어머니의 목소리가 바닷가에 울려 퍼지자,
[ 수하! 이 몸은 물속이니라! ]
머릿속에 고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휴, 역시 별일 없었군.
‘그럼 그렇지. 고미가 바다에 빠져 죽기 전에 바다가 고미한테 죽지나 않으면 다행이지.’
하지만 물속에 들어가서 감각 강화를 사용해 주위를 둘러봐도, 익숙한 갈색 솜뭉치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 고개를 돌려라! 왼쪽이다! ]
목소리가 들려오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려보자, 무언가가 고미의 등에 업혀있는 것이 보였다.
아니, 업혀있다기보다는······. 들러붙어 있다고 해야 하나.
[ 이 이상하게 생긴 녀석이 이 몸의 위대함을 알아본 모양이다! 색을 바꾼 채 흙으로 위장해 있길래 재미있어서 다가갔는데, 찰싹 달라붙어 떨어지질 않는구나! ]
지금 고미의 몸에는 제법 커다란 문어 한 마리가 들러붙어 있었다.
‘대체 뭘 어떻게 하면 바다에 오자마자 문어를 잡는 거야. 아니, 자기가 잡힌 건가.’
어찌 됐든 잘됐네. 점심 확보. 맛있겠다.
[ 고미! 그거 가지고 이쪽으로 와! 엄마가 걱정해! ]
[ 아, 알았느니라! ]
엄마라는 말에 고미는 화들짝 놀라며 빠른 속도로 나에게 다가왔다.
음, 거의 잠수함 수준이군. 굉장한 속도다. 북극곰도 아닌데 헤엄은 어떻게 저렇게 잘 치는 걸까.
저런 녀석이 물에 빠졌을까 걱정을 했다는 게 민망해질 정도다.
그렇게 고미의 엄청난 수영 솜씨에 감탄하고 있을 때, 문어와 한 몸이 된 아기곰이 제 몸에 달라붙은 문어처럼 나에게 찰싹 달라붙었다.
녀석을 끌어안고 수면 위로 올라가자, 문어의 표정-실제로 표정 같은 건 없지만-에서 당혹감이 느껴졌다.
[ 네 이놈! 어딜 가느냐! ]
당황한 문어 선생은 사냥(?)을 포기하고 달아나려 했지만, 이번에는 고미가 녀석의 다리를 덥석 붙잡았다.
그렇게 사냥꾼을 사냥감으로 착각한 가련한 문어 한마리와 함께 뭍으로 올라가자, 새파랗게 질린 어머니가 후다닥 달려와 고미를 나무랐다.
“고미! 갑자기 물속에 들어가서 안 나오면 어떻게 해요!”
[ 우, 우웅··· 미안하다······. 하지만 이 녀석이 이 몸에게 달라붙어 떨어지질 않는 통에······. ]
음, 애가 갑자기 물에 들어가서 안 나오면 놀랄 만도 하시지.
“앞으로는 그러면 안 돼요! 알았어요!?”
[ 하지만 이 몸은 물에 빠져도 그 안에서 며칠은 살 수 있느니라! ]
“고미, 그래도 갑자기 안 보이고 그러면 엄마가 놀라.”
아빠가 차분하게 설명을 해주자, 문어를 손에 든 고미가 귀를 눕힌 채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 미, 미안하다······.]
그 사이에도 문어 선생은 고미의 솜방망이에 엉겨 붙으며 어떻게든 살아남으려고 애를 썼지만,
“응? 이거 피문어인데?”
결국 해산물 전문 킬러와 눈이 마주치고 말았다.
명복을 빕니다. 고이 가소서.
[ 우웅? 이것도 먹을 수 있는 것이냐? 생긴 거로 봐서는 도저히 맛이 있을 것 같지 않은데······. ]
“그럼, 피문어가 얼마나 맛있는데. 거기다 방금 막 잡은 거니까 엄청 맛있을걸.”
[ 오오오! 그럼 이 몸이 가족들을 위해 맛있는 것을 가져온 것이냐? ]
금세 기가 산 고미가 꼬리를 좌우로 흔들며 물었다.
“그럼 오늘 점심은 문어 넣고 라면이라도 끓여 먹을까? 굳이 뭐 살 것도 없을 것 같은데?”
“냄비는?”
어머니의 질문에 아버지는 자랑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가져왔지. 부루스타도.”
“아빠,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인데, 리조트 안은 취사 금지야.”
“알아, 알아. 낚시하고 매운탕 끓여 먹으려고 가져온 거야. 당연히 리조트 안에서 그러면 안 되지.”
음, 그렇지. 김태평 사장님께서 그 정도 교양도 없으신 분은 아니지 또.
결국 우리는 고미가 잡아 온 첫 번째 사냥감을 가지고 차 앞으로 이동했고, 아버지는 트렁크를 뒤적여 냄비와 라면은 물론이고 양념장이 든 통까지 꺼내 들었다.
“준비가 아주 철저하네. 당신, 처음부터 낚시하려고 했지?”
그러게. 이건 다분히 계획적이다.
냄비에 부루스타는 둘째치고, 초장에, 간장에, 고춧가루에······. 이만하면 사실상 다 준비해 온 거나 다름이 없는데.
“그래도 덕분에 막 잡은 문어회도 먹고, 문어 넣어서 라면도 끓여 먹고 할 수 있잖아.”
아버지는 싱글벙글 웃으며 도마와 회칼을 꺼내들었다.
“아, 그런데 물이 없네. 수하야, 저기 편의점 있다. 가서 물 좀 사 와라, 문어 씻어야 하니까, 많이.”
“얼마나?”
“라면도 끓여야 하고 문어도 씻어야 하니까······. 음, 큰 거로 서너 개 사 와 봐, 그리고 밀가루 사 오고.”
“밀가루?”
“문어 씻어야지. 문어를 잡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 해서 밀가루를 안 가져왔네.”
‘밀가루까지 가져오면··· 그건 진짜 이상한 거 아닌가······.’라는 생각이 잠시 머리를 스쳤지만, 나는 일단 봉식이와 고미를 데리고 편의점으로 향했다.
하지만 편의점으로 가던 도중에 뜻밖의 사건이 발생했으니······.
[ 수, 수하! 뭔가가 이상하다! ]
“응? 왜 그래?”
[ 아까 그 녀석이 이 몸에게 무슨 수작을 부린 모양이다! 돌아가자! 엄마 아빠가 위험할지도 모른다! ]
고미의 몸에는 새하얀 가루가 군데군데 들러붙어 있었다.
털이 보송보송하게 말라있는 걸 보니, 소금물을 뒤집어 쓴 채로 평소처럼 ‘생체건조’를 했나 보군.
[ 그런 거 아니야, 그거 찍어 먹어 봐. ]
피식 웃으며 그렇게 말하자, 제 몸에 붙은 소금을 찍어 먹어 본 고미의 눈이 주먹만 하게 커졌다.
[ 이, 이 몸에게 새로운 권능이 생긴 모양이다! 이제 물을 말리면 소금이 나오는구나! ]
이런 맹한 녀석 같으니······. 그게 왜 그렇게 연결되는 거냐.
“뭐야, 바다에 들어갔으면서 바닷물도 안 먹어봤어?”
[ 수영을 할 때는 숨을 참아야 하지 않느냐? 잘못하면 역겨운 물을 마시게 되니 말이다. ]
그렇군. 던전의 바다나 강물은 이쪽 세계하고는 상당히 다른 맛이 나는 건가?
“그거 바닷물 때문에 그래. 바닷물에는 소금이 녹아있거든. 바닷물을 말려버리니까 소금이 남는 거야.”
나의 설명에 고미는 매우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는 듯 입을 크게 벌리며 털에 달라붙은 소금을 몇 번이나 훑어보았다.
[ 그, 그런 마법이 있었단 말이냐? 굉장하구나······. 어쩐지 바닷물에서 짠 내가 난다 하였더니······. ]
내가 보기에는 바다에 오자마자 문어를 잡아 오는 게 더 마법 같지만 말이지.
물과 밀가루를 사서 돌아가자, 아버지가 능숙한 손놀림으로 문어를 손질하기 시작했다.
먼저 밀가루로 문어를 깨끗이 문질러 닦고, 머리를 잘라 내장과 눈알 등을 깔끔하게 제거한 뒤, 적당히 손질한 문어를 냄비 안에 넣자, 문어의 몸뚱이가 빠르게 먹음직한 붉은 색을 띠기 시작했다.
[ 호오······. 아빠의 요리 솜씨는 언제봐도 굉장하구나. 이 몸이 다른 것을 잡아 와도 요리를 해줄 수 있는 것이냐? ]
회를 통해 해산물 맛을 알게 된 고미가 마른 침을 꼴딱꼴딱 삼키며 말했다.
이러다 고래나 상어 같은 거 잡아 오는 건 아닌가 겁나는 리액션이네.
“자, 그럼 라면 끓이는 동안 문어숙회부터 맛볼까.”
아버지는 문어가 적당히 익자마자 곧바로 다리 하나를 잘라낸 뒤 그것을 도마에 꾹꾹 누르기 시작했다.
[ 응? 그 녀석은 죽어서도 들러붙는 것이냐? ]
문어의 빨판이 도마에 붙는 것을 본 고미가 신기하다는 듯 귀를 쫑긋 세우며 물었다.
“그럼, 죽어도 빨판은 잘 붙지. 이렇게 해야 썰기도 쉽고.”
빠르게 문어 다리를 포 뜬 아버지가 준비해 온 일회용 그릇에 초장을 담으며 말했다.
“자, 얼른 찍어 먹어 봐. 아빠도 여기서 피문어 숙회를 먹게 될 줄은 몰랐네.”
어머니는 아버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적당히 잘린 문어 다리를 손으로 집어 초장에 찍은 뒤 고미의 앙증맞은 입에 쏙 넣어주었다.
[ 우, 우웃!? 이, 이럴 수가! 저 괴상한 녀석이 이런 맛을 낸단 말이냐? ]
처음으로 문어숙회의 맛을 본 고미는 꼬리를 뱅글뱅글 돌리며 광기 어린 눈으로 바다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지금 녀석의 눈에 바다는 맛있는 것이 가득한 보물창고로 보이겠지. 이러다 동해 연안에서 잡을 수 있는 횟감은 죄다 한 번씩 맛보고 가는 거 아닌지 모르겠네.
“수하, 봉식이, 너네도 얼른 맛 봐.”
아버지가 능숙한 손놀림으로 문어의 몸통을 썰며 말했다.
“아빠도 좀 먹어.”
“아빠는 뜨면서 먹으면 되니까, 신경 쓰지 말고 얼른 먹어. 이렇게 신선한 건 진짜 어디서도 못 먹어본다.”
확실히 그건 그렇지. 그럼 나도 한입 먹어볼까······.
손가락만 한 크기로 맛깔나게 썰린 문어를 집어 입안에 넣는 순간,
“아, 죽인다.”
절로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적당히 씹히는 맛이 살아있으면서도 전혀 질기지 않고 부드러운 식감에, 씹을수록 은은하게 배어나는 자연스러운 단맛, 문어 특유의 향기가 완벽하게 살아있다.
10년 이상을 횟집 아들로 살아온 나지만, 이렇게 맛있는 문어는 처음이라고 단언할 수 있었다.
이어서 갓 잡은 싱싱한 문어가 들어간 라면이 익어가며 적당히 매콤하면서도 시원한 향기가 콧속을 파고들었다.
[ 오오, 이, 이 냄새는······. ]
잔뜩 신이 나서 꼬리를 프로펠러처럼 돌리던 고미는 무언가 말을 하려다가 냄비와 내 얼굴을 번갈아 바라보며 말끝을 흐렸다.
이거 뭔가 상처가 될지도 모르는 말을 애써 삼키는 느낌인데.
[ 흐흠······. ]
“괜찮아. 그냥 말해 봐.”
나의 말에 고미는 입술을 달싹이다가 고개를 저었다.
“지리산에서 내가 끓여줬던 거랑은 냄새가 다르지?”
내가 자신의 속을 정확히 짚어내자, 바람개비처럼 빙글빙글 돌아가던 고미의 짤막한 꼬리가 우뚝 멈춰 섰다.
[ 어, 어떻게 알았느냐!? ]
“그야 문어가 들어가면 맛이 좋아지는 게 당연하니까.”
그래도 나와 함께 먹은 라면에 대해 나쁜 말을 하지 않으려고 애쓰는 걸 보니 괜히 뿌듯하군.
다음에 또 맛있는 거 해줘야겠다. 라면 같은 거 말고 제대로 된 거로.
“와, 국물 진짜 시원하다.”
먼저 특제 문어 라면의 국물 맛을 맛본 봉식이가 탄성을 내지르자,
[ 봉식이! 이 몸도! 이 몸도 어서 맛을 보고 싶구나! ]
고미가 짤막한 다리로 콩콩 뛰어오르며 자신에게도 국물을 달라고 난리를 피웠다.
“오구오구, 우리 고미 라면이 먹고 싶어요?”
흐뭇한 표정으로 그 모습을 바라보던 어머니는 얼른 면발과 국물을 종이컵에 담아 고미의 손에 쥐여주었다.
하지만 종이컵을 받아든 고미는 곧바로 그것을 먹지 않고 잠시 봉식이를 위아래로 훑어보며 눈을 흘겼다.
[ 봉식이! 거짓말은 나쁜 것이다! 국물이 이렇게 따끈하거늘, 어째서 시원하다고 거짓말을 하는 것이냐! ]
난감하군.
‘이걸 뭐라고 설명해야 하나’하고 고민하고 있을 때,
“시원하다는 말은 차갑다는 말 외에도 개운하고 상쾌하다는 뜻으로도 쓰이는 거야.”
아버지가 명쾌하고 짤막하게 설명을 해주었다.
[ 오오······. 그런 것이냐? 봉식이가 거짓말을 한 게 아니구나! ]
금세 납득한 고미는 곧바로 컵에 담긴 라면을 한입에 호로록 털어 넣고는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 흐으음······. 처음 보는 맛이다. 하지만 왜 이것을 시원하다고 하는지 알 것도 같구나. ]
그렇게 고미 덕분에 바다에 도착하자마자 진미를 맛 본 우리는 즐거운 마음으로 숙소를 향해 차를 몰았다.
* * *
마침내 리조트에 도착하자, 기쁨이 극에 달한 고미는 그대로 자리에 굳어 버린 채 한참이나 말을 잇지 못했다.
[ 우, 우, 우··· 웅장하다! 웅장해! 핸드폰으로 보았던 것보다 훨씬 더 멋지구나! 삼룡 어멈이 이곳을 소개해 주었다 하였느냐? 돌아가면 상을 주어야겠구나! ]
고미가 선택한 것은, 커다란 배 모양의 호텔겸 리조트였다.
산 위에도 배가 한 척 있고, 바닷가에도 배가 한 척 있었는데, 고미는 바다가 처음이니 바닷가에 있는 것을 선택했다.
사진으로 봤을 때도 특이한 곳이라고 생각은 했지만, 실제로 보니 뭔가 커다란 장난감 같기도 하고, 크기도 모양도, 딱 고미 취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슬슬 들어 갈까?”
하지만 막 숙소로 들어가려는 찰나, 돌연 고미가 굳은 표정으로 우리 네 사람의 앞을 막아섰다.
“응? 고미? 왜 그래?”
온종일 신이 나서 빙글빙글 돌아가던 녀석의 꼬리는, 어느새 빳빳하게 굳어 있었다.
[ 수하, 누군가가 우릴 지켜보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