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아기곰이 너무 강함-93화 (93/300)

EP.93 고미와 즐거운 바다여행(3) 입수

< 우리는 모두 친구 (Gomi) >

-적대감이 있는 대상과의 공동 작업 시 적대감이 감소하며, 호감이 있는 대상과의 공동 작업 시 보다 빠르게 친밀감이 상승합니다.

‘이 스킬을 잘 이용하면 문경준이나 노인국 씨도 숲속 친구로 만들 수 있지 않을까?’

그럼 가족들의 안전에 대해서도 고민할 필요가 없고, 초월자들과 전쟁이 벌어진다 해도 한국의 헌터들이 모두 하나가 되어 똘똘 뭉쳐 맞설 수 있을 거다.

우리 가족을 위해서도, 세상을 위해서도, 최선의 해결책이지.

‘설마······. 처음부터 이런 목적으로 나한테 이 스킬을 준 건가?’

지금까지 시스템은 늘 시기적절하게 스킬과 퀘스트를 줬지. 그럼 이번에도······.

“야, 근데 가서 뭐 하고 놀 거냐.”

그렇게 한창 고민에 빠져있을 때, 갑자기 봉식이가 말을 걸어왔다.

“글쎄, 해수욕장은 아직 안 열었으니까, 그냥 바다도 돌아다니고, 맛집 다니고, 뭐 그러면 되지 않을까? 한유진 씨가 예약해 준 리조트에 수영장도 있고.”

“뭐 그렇게 허술해 여행 계획이. 좀 더 알아봐.”

봉식이가 나에게 핀잔을 주자, 아버지가 웃으며 슬며시 입을 열었다.

“낚시 어때, 바다낚시.”

“아이참, 이 양반이. 애들이랑 여행 와서 낚시는 무슨 낚시야.”

“허 참, 이게 또 바다에 왔으면 바다 낚시도 해보고 그래야지. 직접 고기 잡아서 회도 뜨고, 매운탕도 끓여 먹고.”

“칼도 없는데 무슨.”

“그럴 줄 알고 챙겨왔지.”

음, 다분히 계획적이군. 언제 또 몰래 회칼까지 챙기셨대.

“아들, 낚시터 알아보자 낚시터.”

게다가 목소리가 적잖이 들뜨신 게 말리면 혼자 몰래 밤낚시라도 가실 기세다.

“오오, 낚시? 그것은 무엇이냐? 그 낚시라는 것을 하면 또 회를 먹을 수 있는 것이냐?”

고미가 귀를 쫑긋거리며 관심을 표하자, 더욱 기세가 오른 아버지가 웃으며 입을 열었다.

“그럼! 아빠가 직접 돔을 딱! 잡아 가지고!”

“아이고, 돔은 무슨, 매번 허탕만 치는 양반이.”

“내가 장사하느라 손맛을 오래 못 봐서 그렇지, 조금만 감 잡으면 금방이라니까?”

“뭐 어때요, 어머니. 정 싫으면 아버지 낚시하는 동안 우리는 우리끼리 근처에서 놀고 그러면 되지.”

봉식이가 적당히 맞장구를 쳐주자, 어머니는 못 이긴 척 낚시를 허락해 주었다.

“그럼 알아서 해요. 내가 돔이 아니라 아무거나 회 뜰만 한 거 하나만 잡아 와도 인정해준다.”

“이 사람이, 좋아. 내가 이번에 직접 6짜 짜리를 낚아서, 멋지게 회 딱 떠줄게!”

잔소리를 하는 것 같으면서도 어머니의 입에서는 연신 웃음이 떠나질 않았다.

저게 겉보기에는 잔소리를 하는 것 같아도, 둘 사이에만 통하는 애정표현 같은 거니까.

그렇게 수다를 떨며 30분쯤 더 갔을 무렵, 아버지가 먼저 잠이 들었고, 이어서 어머니가, 마지막으로 야곰야곰 회오리 감자를 먹어 치운 고미가 새근새근 잠이 들었다.

나는 그제야 조금 생각을 정리하고, 봉식이에게 한가지 질문을 던졌다.

“야 봉식아, 그런데 문경준하고 노인국······.”

“몰라.”

“말도 안 꺼냈는데 뭘 몰라.”

“모른다고, 인마.”

이 자식이 오늘따라 왜 이렇게 틱틱거려.

“혼자 운전시켜서 삐졌냐?”

“아니, 너한테 운전 못 맡기지. 어차피 장롱면허잖아.”

“그럼 왜 그래.”

“아까부터 네가 시스템 창 들여다보면서 일 생각하는 거 같아서 그런다.”

봉식이의 말에 왠지 가슴이 뜨끔했다. 그러긴 했지.

“왜 여행 와서 일 생각하냐.”

“이강혁 씨랑 한유진 씨는 그렇다 쳐도 앞으로 패왕이랑······.”

“그러니까, 그걸 왜 지금 생각하냐고.”

이후 봉식이는 내가 말할 틈도 주지 않고 말을 이어나갔다.

“왜, 내가 못 미덥냐? 아니면 한유진이나 강혁이 형이?”

“왜 얘기가 그렇게 튀어.”

“뭘 그렇게 튀어. 도와줄 사람 지천에 널렸는데, 너 혼자 종일 시스템 창 들여다보면서 계획 짜고, 고민하고, 그러고 있잖아.”

이 자식이, 내 속에 들어갔다 나왔나.

“적당히 하자. 지리산 내려오자마자 강혁이 형 문제에 한유진 문제에, 던전도 가, 고미도 챙겨줘, 저스티스랑 용왕도 화해시켜, 그거 다 끝나니까 이제 또 문경준에 노인국이냐?”

음······. 할 말이 없군.

“쉴 때 쉬어줘야 하는데, 이렇게 못 쉬고 일만 하면 환자보다 치료자가 먼저 우울증 온다. 이건 아니다. 맨날 치료자 멘탈관리 어쩌고 하면서 이론만 가르치고, 현실은 시궁창이다. 네가 대학원 다닐 때 입에 달고 살던 말 아니야? 너 그러다 갑자기 맛탱이 간다. 대학원 때도 그랬잖아.”

그랬지······.

“걱정 마라. 네가 하루 이틀 다 놓고 논다고 지구 망하는 거 아니다. 마법 소녀들도 연애도 하고 학교생활 즐기고 부 활동도 하는 판에 지 혼자 세상 걱정은 다 끌어안고 살아요.”

“그거 세일러문 얘기냐? 세일러문 연애 안 할걸?”

“안 하냐?”

“몰라, 제대로 안 봐서. 하지 않겠냐?”

“알 게 뭐야, 말이 그렇다는 거지.”

시답잖은 농담을 끝으로, 우리는 약속이나 한 듯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 * *

봉식이와 쓸데없는 옛이야기를 주절거리며 한 시간쯤 달렸을까, 마침내 차창 밖으로 시원한 해안선과 모래밭이 보이기 시작했다.

“와, 몇 년 만에 보는 바다냐.”

딱히 바다를 좋아하지도, 여행을 좋아하지도 않는 나지만, 오랜만에 보는 바다에 왠지 모르게 가슴이 뻥 뚫리는 것처럼 시원한 기분이 들었다.

“그러게, 진짜 몇 년 만이냐.”

“넌 얼마 안 되지 않았냐? 혜연이 만났을 때 바다 가지 않았어?”

흑역사를 후벼 파는 나의 날카로운 공격에 봉식이의 입에서 옅은 한숨이 새어 나왔다.

“닥쳐, 그건 남해였고..”

“그건 바다 아니냐.”

“꺼져, 이제부터 내 마음속에서 바다는 동해뿐이야.”

그렇게 시시한 말싸움을 하며 시시덕거리고 있을 때,

“우우우웃!”

잠에서 깬 고미의 기쁨에 찬 목소리가 귓등을 때렸다.

“우, 웅장하다! 웅장해! 이 몸은 이제야 깨달았다! 바다야말로 진정 위대한 이 몸에게 어울리는 곳이었다!”

끝없이 펼쳐진 수평선에 매료된 듯, 고미는 차창에 바짝 달라붙어 발을 동동 굴러대며 좋아서 어쩔 줄을 몰라 했다.

저렇게 좋아할 줄 알았다면, 조금 더 빨리 데려왔을 텐데.

‘이제라도 데려와서 다행이네.’하는 생각이 절로 드는 반응이었다.

“수, 수하! 어서, 어서 이 몸을 내려다오! 빨리 바다를 느껴보고 싶다!”

“고미, 차에서 그렇게 일어나면 위험해요.”

소란스러운 고미의 목소리에 깨어난 어머니가 녀석을 품 안에 꼭 안으며 말했다.

“우, 우웅······. 알았느니라.”

고미는 아쉬운 듯 입맛을 다시면서도 순순히 품에 안기며 호두과자를 꺼내 어머니의 입 안에 넣어 주었다.

“어머? 왜 아직도 따뜻하지?”

“후후후······. 이 몸이 엄마를 위해 그 호두과자라는 녀석을 식지 않게 해두었느니라. 이 핫바도, 핫도그도, 모두 따뜻하니 한 입 맛보겠느냐?”

음······. 무슨 수를 썼는지는 몰라도, 대단하군.

살아있는 보온병, 아니, 보웅병인가.

핫도그고 핫바고 호두과자고 식으면 맛이 없어지니 다른 휴게소에서 사줄 걸 하고 후회했는데.

“체크인 시간도 한참 남았고, 일단 바다부터 갈까?”

나의 제안에 봉식이는 곧바로 해변으로 차를 몰았고, 문이 열리기 무섭게 초콜릿 색 털 뭉치가 토실토실한 궁둥이를 씰룩거리며 해변가로 달려······.

“고미! 너무 빨라!”

파,파파팟!

잔뜩 흥분한 고미는 저도 모르게 속도를 높였고, 녀석의 발이 닿는 곳마다 모래 기둥이 솟아났다.

[ 고미! 진정해! 안돼! ]

전음으로 다급하게 정지 신호를 보내자, 고미가 우뚝 멈춰서며 1미터도 넘게 솟구쳤던 모래 기둥이 가라앉았다.

“고, 고미가 저렇게 빨랐니?”

그 모습을 바라보던 어머니는 입을 다물지 못했고,

“음······. 훌륭하군.”

아버지는 감격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대체 어떤 포인트에서 감동을 하신 걸까.

[ 우우웃, 미안하다. 수하······. 하, 하지만 발밑이 폭신해서······. 이렇게 기분 좋은 감촉은 처음이구나! ]

눈 깜짝할 새에 수십 미터를 달려간 고미가 신기하다는 듯 연신 발을 들었다 놨다 하며 말했다.

얼마 전 사막 지형의 던전에 다녀와 보았지만, 그곳의 모래는 확실히 해변의 모래하고는 감촉이 많이 달랐다.

잘게 부순 유리 조각처럼 어딘지 모르게 날카롭달까.

던전에 있는 모래가 모두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고미가 즐거워하는 것을 보니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

신발을 벗고 모래사장을 밟는 순간, 왠지 모르게 푸른 바다가 더 푸르게 보이고, 하늘은 더 맑아졌다.

기분 좋게 코 끝을 간질이는 바닷물의 짠 내음에 진짜로 바다에 왔다는 실감이 났다.

“술래잡기하자!”

신이 난 봉식이가 갑자기 그렇게 외치며 고미를 향해 달려가자,

[ 후후후, 봉식이! 너의 속도로는 결코 이 몸을 잡을 수 없느니라! ]

고미는 코웃음을 치며 빠르게 앞으로 달려나갔다.

그래도 너무 빨리 달리면 안 된다는 이야기를 머릿속에 잘 새겨 넣었는지, 봉식이보다 딱 두 배 정도만 빠르게 달리고 있었다.

두 배, 두 배라······.

민봉식 이 자식······. 너무 눈에 띄는 놀이 방법을 선택한 거 아니냐.

[ 후후후후, 수하! 느리구나! 느려! ]

그때, 저만치 멀리 달려간 고미가 전음으로 나를 도발했고,

[ 뭐!? 이리 와! ]

나는 흔쾌히 그 도발에 넘어가 전력으로 두 사람의 뒤를 쫓기 시작했다.

다 큰 어른들이 무슨 짓이냐 싶은 생각이 아주 잠깐 머리를 스쳤지만, 지금은 일단 전력으로 달린다 !

그러던 어느 순간, 저 멀리 달려가던 고미와 봉식이가 흉흉한 눈빛으로 나를 돌아봤다.

자, 잠깐. 그 눈빛. 뭘 의미하는 거냐.

불길한 예감이 머리를 스치는 순간, 커다란 짐승 한 마리와 그 반 토막도 안 되는 아기곰 한 마리가 방향을 틀어 나를 향해 달려오기 시작했다.

“야, 뭐하는 짓이야!”

“잡아라!”

[ 수하! 네 녀석의 느린 발로 이 몸에게서 달아날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 ]

아, 아, 안 돼.

< 허곰답보(C)가 활성화됩니다. >

“야, 이 치사한 놈아! 술래잡기하는데 스킬까지 쓰냐!”

봉식이가 고래고래 소리를 쳐댔지만, 남자의 승부에서 그따위 말은 변명에 지나지 않는다.

억울하면 너도 허곰답보 익히든가.

“닥쳐, 너한테 잡힐 것 같······.”

하지만 내가 간과한 것이 있었으니,

덥석.

아아······. 역시 고미한테서 달아날 수는 없구나.

처음부터 패배가 정해진 싸움이었어······.

“나이스 고미! 꽉 잡아!”

고미에게 뒷덜미를 잡히자, 갑자기 눈에 보이지 않는 기운이 온몸을 짓누르며 나도 모르게 다리에 힘이 풀리고 말았다.

그래도 나름 근력 좀 올렸는데··· 이렇게 허무하게 무릎을 꿇다니··· 분하다! 분해!

[ 후후, 수하! 도망쳐도 소용없다! ]

고미의 전음이 들려오는 동시에 봉식이의 짐승 같은 손아귀가 나를 덥석 붙잡았고, 이내 몸이 붕, 하고 떠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혼자는 못 죽어!”

나는 전력을 다해 몸을 뒤틀어 봉식이를 끌어안았고,

“야, 이······.”

첨벙!

결국 봉식이와 나란히 바닷물에 입수해 축축하게 젖은 몸으로 물속에 들어가 사투를 벌였다.

“이 물귀신 같은 놈!”

“누구더러 물귀신이래. 이 더러운 배신자가!”

봉식이가 팔을 휘두를 때마다 짠 내를 가득 풍기는 물줄기가 솟아오르며 얼굴을 때렸고, 나 역시 지지 않고 봉식이에게 물을 뿌려댔다.

그렇게 정신없이 물싸움을 벌이고 있을 때,

“봉식아! 수하야! 고미! 고미!”

어머니의 목소리에 정신을 차리고 주위를 둘러보자, 모래밭 위에도, 수면 위에도, 고미가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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