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92 고미와 즐거운 바다여행(2) 새로운 고민
고미를 데리고 도착한 첫 번째 목적지는 바로 ‘덕평 자연 휴게소’였다.
여행은커녕 학교 도서관 집만 반복하던 삶이라 어디 휴게소에서 뭘 팔고 뭐가 맛있는지 같은 걸 잘 몰라서, 고미가 가장 좋아할만한 곳에 데려가고 싶은 마음에 검색을 통해 찾은 곳이었다.
[ 우웃······. 뭔가 신기한 곳이구나. 작은 버스들이 왜 이렇게 많이 늘어서 있는 것이냐? ]
봉식이의 ‘작은 버스’에서 내린 선글라스를 쓴 아기곰은 예리한 눈으로 주위를 둘러보며 생에 첫 휴게소에 대한 짧은 감상을 늘어놓았다.
그리고는 채 몇 걸음을 떼기도 전에 코를 킁킁거리며 먹을 것을 탐색하기 시작했다.
[ 흐음, 뭔가 신기한 냄새가 많이 나는 곳이구나. ]
역시, 가장 먼저 신경 쓰는 건 ‘먹을 것’인가.
꼬리가 슬슬 돌아가기 시작하는 게, 일단은 성공인 것 같군.
“아, 좋다.”
차에서 내린 봉식이가 가볍게 스트레칭을 하며 말했다.
“역시 여행하면 휴게소 간식이지.”
“오랜만에 호두과자라도 사 먹을까?”
봉식이에 이어 어머니 아버지도 설렘이 가득한 표정으로 차에서 내렸다.
동해나 서해로 종종 횟감을 사러 가시기는 하지만, 그것도 몇 년 전 얘기고, 피곤한 몸을 이끌고 일 때문에 돌아다니던 것과 이렇게 가족 여행으로 오는 것과는 기분이 다르시겠지.
“요즘 휴게소에서 맛있는 거 많이 판다고 하더라. 가보자 엄마.”
그렇게 말하며 어머니와 함께 휴게소 식당으로 이동하려던 찰나, 무언가 희한한(?)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고미? 왜 그래?”
조금 전까지만 해도 뭘 먹을지 고민하던 고미가 발걸음을 우뚝 멈추고, ‘세로로’ 꼬리를 까딱거리고 있었다.
‘뭐지?’
좌우로 흔들거나 빙글빙글 돌리는 건 자주 봤는데, 이런 무브먼트는 처음이다.
가늘게 뜬 눈, 일정하게 쫑긋거리는 귀, 위아래로 가볍게 오르내리는 리드미컬한 꼬리······.
‘왜 이러는 거지?’
정신을 집중해 감각 강화스킬을 활성화하는 순간, 놀라운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원, 투, 원, 투. 둠, 칫, 둠, 칫.
‘음악?’
그렇다. 고미의 꼬리는 지금 음악에 맞춰 메트로놈처럼 일정한 박자로 움직임을 반복하고 있었다.
‘리, 리듬을 타고 있어.’
순간 수다르가 고미에게 수박 플레이어에 대해 말하며 했던 말이 머리를 스쳤다.
「고미님은 예로부터 풍류를 즐기시지 않으셨습니까?」
푸, 풍류. 근데 왜 하필 그게······. ‘고속도로 트로트 메들리’냐.
[ 호오, 제법 흥이 나는구나. ]
흥미롭다는 듯 눈을 빛내며 앞으로 나아가는 고미의 발걸음이 평소와는 상당히 다르다.
뭔가 위아래로 살짝 살짝 반동을 주는 것이, 춤이라고 하기는 어렵지만······.
‘틀림없어. 스텝을 밟고 있는 거야.’
선글라스를 쓰고 트로트 리듬에 맞춰 스텝을 밟는 아기곰이라니, 이게 대체 무슨 조합이냐.
게다가 음악이라면 여기저기서 많이 들렸을 텐데, 왜 하필 처음으로 반응을 보이는 게 고속도로 트로트 메들리냐고.
딱히 트로트에 편견이 있는 건 아니지만, 내 취향은 아니다.
설마 수박 플레이어를 알려주면 매일 이런 음악을 듣는 건 아니겠지?
“고미, 이 음악이 마음에 들어?”
불안한 마음에 고미를 바라보며 질문을 던지자,
[ 이 몸은 흥겨운 음악이 좋다. ]
음, 그렇다면 아직 희망은 있다. 차라리 댄스나 팝, 힙합을 들어줘. 나같은 사람한테 이렇게 텐션이 높은 음악은 좀 힘들다고.
그렇게 고미의 음악 취향에 대해 나름대로 심각한 고민을 하며 휴게소 매점에 도착하자,
[ 오오오! ]
리듬에 맞춰 까딱거리던 고미의 꼬리가 익숙한 원을 그리기 시작했다.
[ 수, 수하, 저 기이한 음식들은 무엇이냐? ]
고미가 가리킨 것은 ‘핫도그’와 ‘핫바’, ‘회오리 감자’와 ‘소떡소떡’ 같은 휴게소 간식이었다.
확실히 지금까지 본 적 없는 형태의 음식들이기는 하지.
게다가 생김새부터 고미의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 저것은 검은콩이 만들어준 꼬치와 비슷하게 생겼구나. 맛도 틀림없이 훌륭하겠지? ]
고미가 ‘소떡소떡’을 가리키며 말했다.
“아니, 그건 아니야 고미. 그 정도 꼬치는 어디 가서도 맛볼 수 없어.”
나의 말에 고미는 물론이고 봉식이마저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를 표했다.
“그렇지, 그 꼬치는 어디 가서도 맛볼 수 없지.”
[ 으음, 확실히 검은콩의 꼬치구이는 엄청난 맛이었다. 어쩌면 엄마의 음식보다도 더 맛있을지도 모른다. ]
음, 엄마가 듣지 않아서 다행이군.
“저건 이따가 나갈 때 사가고, 일단은 안에서 간단하게 우동이라도 먹자. 휴게소는 우동이지.”
푸드코트 안으로 들어가자, 고미는 멍한 표정으로 메뉴판을 훑어보며 아주 심각한 표정으로 고민에 빠졌다.
[ 수, 수하, 이곳은 왜 이렇게 음식의 종류가 많은 것이냐? 이, 이 몸은······. 무엇을 골라야 할지 알 수 없구나. ]
그러고 보니 여태 이렇게 메뉴가 많은 곳에는 처음 데리고 와보는 거군. 고민이 될 법도 하다. 특히 고미처럼 맛있는 것에 인생을 건 먹보에게는 더욱 그렇겠지.
“엄마는 유부 우동.”
“아빠는 됐다. 아침 먹은 것도 아직 안 내려갔어.”
“난 새우튀김, 넌?”
“나도 새우튀김.”
[ 어, 어째서 다들 그렇게 빨리 고를 수 있는 것이냐? 설마 이 음식들이 무엇인지 전부 알고 있는 것이냐? ]
어머니와 나, 봉식이가 메뉴를 고르는 사이, 고미는 진지한 표정으로 메뉴판과 자신의 배를 바라보고는 바깥으로 시선을 돌렸다.
음, 얼마나 들어갈 수 있을지 가늠하고 있는 모양이군.
‘우동을 먹고 나면 핫바나 핫도그, 간식도 먹어야 하는데, 다른 것도 먹고 싶고······. 어떻게 하지?’하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게 빤히 보이는 표정이다.
“그럼 너는 돈가스 먹어. 우동은 내 꺼 나눠 먹으면 되지.”
그 무거운(?) 고민을 조금이라도 덜어주기 위해 돈가스를 시켜 나눠 먹자는 제안을 하자,
[ 우, 우웃! 그렇군! 그런 방법이 있었구나! 수하, 역시 너는 아주 똑똑하구나! ]
이런 사소한 거로 이렇게 기뻐하다니, 귀여운 녀석 같으니.
메뉴가 나오자, 고미는 돈가스와 우동을 번갈아 바라보며 한참이나 말을 잇지 못했다.
녀석의 시선이 가장 오래 머무른 곳은, 바로 새우튀김 위였다.
튀김이 먹고는 싶은데, 새우튀김 우동에는 새우가 한 마리밖에 없으니 차마 달라고 말은 못 하는 게 분명했다.
“자, 이것도 너 먹어. 그리고 돈가스는 이리 줘. 잘라줄게.”
적당히 국물을 머금은 새우튀김을 건져주고 돈가스를 잘라주자,
[ 흑, 수하······. ]
아, 아니, 눈물까지 글썽일 건 없는데······.
새우튀김 하나에 눈물을 보이다니, 몬스터 잡을 때는 그렇게 무시무시한 녀석이, 왜 이런 부분에서 이렇게 마음이 약한 거냐고.
고미가 눈물을 그렁이며 새우튀김을 한입 베어 물었을 때, 뜻밖의 사건이 터졌다.
“엄마! 엄마! 곰이 우동 먹어!”
고개를 돌려보니 너덧살 정도 되어 보이는 여자아이 하나가 똘망똘망한 표정으로 고미를 가리키며 눈을 반짝이고 있는 것이 보였다.
음, 가끔 고미를 힐끔거리는 아이는 봤어도, 이렇게 대놓고 반응을 보이는 건 처음이군.
하긴, 아기곰이 우동 먹는 게 흔히 볼 수 있는 장면은 아니지. 그것도 사람처럼 젓가락질까지 하는 아기곰이라니, 너튜브에 올리면 곧바로 조회수 백만은 찍을 거다.
“그렇게 손가락으로 가리키면 실례야.”
아이의 어머니가 민망하다는 듯 그렇게 말하며 살짝 눈인사를 하는 순간, 꼬마의 왕방울만 한 눈에 돌연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아, 아니, 갑자기 왜 울어.
“저, 저 아저씨가 곰돌이 납치했나 봐!”
아이의 손가락이 향한 곳은··· 봉식이의 얼굴 위였다.
잔인하군. 우리 봉식이가 좀 무섭게 생기기는 했지만, 대체 왜 얘기가 그렇게 튀는 거냐.
설마 밀렵이라도 했다고 생각하는 건가. 그럼 이렇게 한가롭게 휴게소에서 같이 우동을 먹고 있을 리가 없잖아.
“아니에요, 꼬마야. 그리고 나는 아저씨가 아니라 오빠······.”
봉식이가 애써 친절한 웃음을 지으며 자리에서 몸을 일으키자,
“으아앙! 잘못했어요!”
너무나도 당연하게, 상황이 더욱 나빠졌다.
나도 이 자식이 갑자기 몸을 일으키면 놀랠 때가 있는데, 저런 꼬마에게는 거의 마왕이 잠에서 깬 것 같은 충격으로 다가오겠지.
바로 그때,
[ 봉식이! 가만히 있거라! 이 몸이 해결하겠다! ]
우동과 새우튀김의 맛에 흠뻑 빠져있던 고미가 로맨스 드라마의 남자 주인공처럼 선글라스를 벗으며 의자에서 폴짝 뛰어내렸다.
녀석의 도톰한 솜방망이에는, 방금 전에 잘라준 돈가스 조각이 꽂혀 있는 포크가 들려 있었다.
“으응? 곰돌아, 이거 나 주는 거야?”
고미의 스위트한 매력에 이름 모를 여자아이는 언제 그랬냐는 듯 울음을 뚝 그쳤고,
[ 후훗, 수하, 어떠냐? 이 몸이 멋지게 문제를 해결했느니라. ]
순식간에 상황을 종료시킨 고미는 한껏 거만해진 걸음걸이로 자리에 돌아와 다시 식사에 집중했다.
스위트해서 좋긴 한데, 저런 건 대체 어디서 보고 배운 걸까.
[ 오오, 전에 먹었던 라면이라는 것과 비슷한 맛일 줄 알았건만, 면발이 굵어진 것만으로도 이런 차이가 나다니··· 과연 요리의 세계는 깊고도 깊구나. ]
우동의 오통통한 면발과 바삭한 돈가스의 맛에 매료된 고미는 연신 감탄사를 내뱉었고, 그 모습을 바라보는 우리 가족의 입가에는 흐뭇한 미소가 떠나질 않았다.
아이는 한참이나 고미를 바라보며 꺅꺅거리다가 휴게소를 떠났고, 식사를 마친 우리 가족은 즐거운 마음으로 간식 코너로 향했다.
“우리 고미, 뭐 먹고 싶어요?”
[ 우웅······. ]
다양한 간식을 앞에 두고 고미는 또다시 깊은 고민에 빠졌고, 결국 우리 가족은 핫바에 핫도그, 호두과자에 회오리 감자까지 사서 다시 차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 오오, 이렇게 많이 사도 되는 것이냐? ]
먹을 것을 잔뜩 손에 넣은 고미는 또다시 신이 나서 꼬리를 돌려댔고,
[ 지금은 배가 부르니 이따 먹어야겠구나! ]
손에 든 회오리 감자를 빙글빙글 돌리며 헤실헤실 웃음을 흘려댔다.
‘음, 오랜만에 꽤 평화로운걸.’
한편, 휴게소에서 벌어진 이 작은 해프닝은 나에게 뜻하지 않은 고민을 안겨주었다.
우리 애라서 그런 게 아니라, 고미는 애초부터 슈퍼스타가 될 자질을 타고난 녀석이다.
외모부터 시선 강탈인데, 완벽한 이족 보행에 사람 같은 행동거지, 거기에 누구라도 한번 보면 폭 빠질 수밖에 없는 필살 꼬리 돌리기까지.
즉, 사람이 많은 곳에 가면 오늘 같은 일이 계속 벌어질 거고, 유명해지는 건 시간문제겠지.
하지만 고미는 사람이 많고 복작거리는 곳을 좋아하니, 영화관이나 놀이공원, 사람들이 많은 핫플레이스에도 데리고 가고 싶은데······.
‘문제는 유명해지면 그만큼 문제가 생기기도 쉽다는 거지.’
이전에는 누군가 고미를 잡아가 실험체나 전투용 펫으로 쓸까 봐 걱정했지만, 이제 그런 걱정은 하지 않는다.
이유찬 씨를 한방에 잠재우고, S급 보스 몬스터인 히드라를 미끄럼틀 삼아 뛰노는 녀석을 누가 잡아가겠어.
‘거기다 길드장이 이미 숲속 친구가 됐으니까 용왕에 저스티스는 더 걱정할 필요도 없고.’
유일하게 걸리는 건, 문경준과 노인국 정도인가.
고미는 아니라도, 우리 가족이나 나, 봉식이에게는 얼마든지 해를 끼칠 힘을 가진 사람들이니까.
‘그 사람들도 숲속 친구가 되면 참 좋을 텐데.’
역시, 그게 가장 완벽한 해결책이다. 그럼 고미는 더 이상 거리낄 것 없이 마음대로 돌아다닐 수··· 응? 잠깐······.
생각이 여기에 미치는 순간, 나도 모르게 시스템 창으로 눈이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