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아기곰이 너무 강함-85화 (85/300)

EP.85 수하의 결심

‘다웅이’는 판다였다.

그건 전혀 문제가 안 된다. 판다도 곰은 곰이니까.

뭐, 흑곰이나 반달곰이 튀어나올 거라고 생각했던 내 기대와는 조금 다르기는 했지만.

진짜 문제는······. 애가 시체처럼 축 늘어져 있다는 거지.

“고미, 혹시 마력이 부족해?”

고미 같은 슈퍼 먼치킨에게 마력이 부족할 일은 없을 것 같기는 하지만, 아무리 봐도 애 상태가 정상이 아니다.

“아니다!”

음, 그래. 아니겠지. 가설 1은 기각.

“저기, 괜찮아?”

걱정이 된 봉식이가 다가가서 쿡쿡 찔러보았지만, 다웅이는 미동조차 하지 않고 바닥에 껌딱지처럼 눌어붙어 있었다.

- 다······.

그뿐이면 모르겠는데, 목소리에도 힘이 없고, 귀에 들릴락 말락 엄청나게 작은 소리로 운다.

- 우······.

게다가 한번 우는데 왜 이렇게 오래 걸리는 거냐.

- 웅.

이강혁이 다가가서 초콜릿을 건네 보았지만, 단 음식에도 전혀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이거 진짜 고미의 분신이 맞긴 하나?’ 하는 의심이 드는 모습.

그때, 꿀태창에 메시지가 떠올랐다.

< 축하합니다. 퀘스트가 완료되었습니다. >

< 빠른 시간 내에 퀘스트를 완료했으므로 추가 보상이 지급됩니다. >

- 능력치 강화 (+10), 스킬 강화 (+3)

- 위대한 고미님의 첫 번째 조력자 (F) -> 위대한 고미님의 제법 쓸만한 조력자 (D)

심지어 본래대로라면 칭호효과는 F에서 E로 향상되어야 했지만, 추가 보상으로 단번에 D등급까지 올라갔다.

‘이상하다.’

다웅이가 제대로 만들어지지 않았어도 아웅이가 제대로 만들어졌으니 대충 퀘스트 완료로 치는 건가?

하지만 시스템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이렇게 허술하게 굴었던 적이 없었다.

퀘스트의 내용이 어이없고 황당한 적은 있었어도, 일단 퀘스트가 주어지면 에누리 없이 정확한 기준으로 완료 여부를 심사한다.

‘스킬명이 아웅다웅인데, 반만 만들어졌어도 스킬을 쓴 걸로 칠 리는 없어.’

설마 ‘저게’ 제대로 만들어진 상태라는 건가?

“고미, 만드는 도중에 뭔가 이상하다고 느끼지는 않았어?”

나의 질문에 고미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아니다. 아웅이를 만들 때와 똑같았느니라.”

“기력이 모자라는 느낌이라고 한 건?”

“마력이 모자란 것은 아니다. 그저 아웅이를 만들었을 때 이상하게 힘이 빠졌고, 앞으로 하나밖에 더 만들 수 없다고 생각한 것뿐이다.”

역시, 저게 제대로 만들어진 거라는 건가.

“그럼 이런 색으로 변신도 가능한 거야?”

다웅이 주위를 서성이며 상태를 살피던 봉식이가 뜬금없이 던진 질문에,

“그게 이상하구나. 이 몸은 사용하는 기술에 따라 종종 색이 변하기도 하지만, 언제나 한가지 색깔로만 변한다. 저렇게 색이 뒤섞인 형태로는 변하지 않는다.”

고미가 의아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며 답했다.

확실히 다웅이는, 여러모로 기묘한 존재였다.

이후 녀석을 찔러도 보고, 쓰다듬어 주기도 해보고, 맛있는 것으로 유혹해 보기도 했지만, 무슨 짓을 해도 ‘다우웅······.’ 하고 힘없이 울 뿐, 그대로 바닥에 들러붙어 있었다.

가장 활발한 움직임을 보인 것이 ‘뒤집기’ 정도였고, 그나마도 슬로우 모션으로 찍은 것처럼 느릿하게 움직이는 수준.

“안 되겠어. 다웅이에 대해서는 천천히 알아보자. 여기서 뭘 더 알아볼 수는 없을 것 같아.”

결국, 우리는 다웅이에 대해 알아보는 것을 잠시 미뤄두고 던전에 온 다른 목적부터 달성하기로 결정을 내렸다.

“허수아비, 네가 저 점박이를 들고 다니거라. 어차피 이곳의 괴수들은 너무 약해 네 연습 상대가 되지 못할 테니, 나는 수하와 봉식이에게 가르침을 주겠다.”

“저, 정말 제가 곰 선생님의 분신을 안아봐도 되겠습니까?”

고미의 명령에 허수, 아니 이강혁은 감격에 겨운 표정으로 다웅이를 안아 들었다.

생각해보니 고미를 그렇게 좋아하는데 한 번도 만지지 못했구나.

아닌가, 저 사람한테 고미는 하늘 같은 스승님이니까 손을 못 대는 게 당연한 건가.

아무튼, 이강혁은 아기를 안듯 다웅이를 꼭 안고 우리의 뒤를 따라왔고, 나와 봉식이가 앞장서서 잿빛 모래로 이루어진 사구를 걸어 나갔다.

커다란 사구 두 개를 넘어가자, 2미터에 가까운 선인장이 드문드문 서 있는 널따란 사막이 시야에 들어왔다.

“저 커다란 선인장이 바로 독침 선인장입니다. 이곳에 있는 독 속성 몬스터 중 하나죠. 저것을 거점 삼아 주위에 회색 독전갈과 샌드맨이 포진하고 있습니다.”

이강혁이 품에 안은 다웅이의 등을 토닥거리며 던전의 구성에 대해 대략 설명해주었다.

“C급 던전 치고는 꽤 난이도가 있는 구성이네.”

봉식이의 말에 이강혁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원거리 공격이 가능한 독 몬스터에 언제 튀어나올지 모르는 독 전갈이 포진되어 있으니까. 그리고 샌드맨은 잠시 몸을 무너뜨려서 무력화시킬 수는 있지만, 죽이는 건 불가능해. 대신 독침 선인장을 없애면 기능이 정지되니까, 선인장을 먼저 노리는 편이 좋을 거야.”

확실히 C급 던전 치고는 상당히 복잡한 몬스터 구성이다.

하지만 이 정도는 되야 훈련이 되지. 게다가 독 몬스터가 있는 던전이니까, 딱 내가 원하는 구성이다.

“이강혁 씨, 죄송한데 검을 좀 빌릴 수 있을까요?”

갑작스러운 나의 요구에 이강혁은 흔쾌히 자신의 검을 내주었다.

“생각해보니 무기가 모두 부서지셨군요. 새 무기를 만드는데 필요한 마정석을 구해둘까요?”

“음······. 지난번에 주워온 A급 마정석이 있으니까, 일단은 괜찮을 것 같아요. 그 문제는 무기를 만들어 보고 결정하죠.”

“그걸로는 부족하지 않겠습니까?”

이강혁의 말대로, 히드라 던전에서 주운 마정석의 양은 무기 하나를 만들 수 있을까 말까 한 수준에 불과했다.

하지만 내 가설이 맞다면, 일단은 그 정도로 충분할 것 같았다.

“괜찮아요. 일단 실험을 좀 해보고, 부족하면 그때 부탁드릴게요.”

이강혁의 검을 건네받은 나는 곧바로 ‘검의 달인’ 스킬이 활성화했다.

[ 고미, 검술 스킬 하나 더 올릴까? 조금 전에 퀘스트 보상이 들어와서 스킬 포인트가 3개 더 늘어났거든. ]

[ 호오, 그렇다면 이곳 몬스터의 수준에 맞춰 한 등급만 더 올려보거라. ]

< 스킬을 강화합니다. >

- 검의 달인 (D) -> (C)

“자, 그럼 이것을 받거라.”

전투에 들어갈 준비가 시작되자, 고미는 바로 청심환을 건넸다.

“아니, 오늘은 내 힘만으로 해볼게.”

사실 청심환이 있다면 부서진 보라 찐빵과 핵 빠따로도 C급 몬스터 정도는 어렵지 않게 상대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아웅이’와 ‘다웅이’를 보는 순간, 그래서는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아웅다웅이라는 명칭을 보고 가장 먼저 떠올린 것은 ‘합체기’였다. 동료들과 함께 하는 멋진 연계기라던가.

그러나 아웅다웅의 정체는 고미의 능력을 감정과 생각, 능력을 일부만 본뜬 분신술이었다.

왜일까? 너무 외로워서 만들어 낸 기술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랬다면 나와 가족들을 만나기도 전에 아웅이와 다웅이를 만들었을 거다.

생각이 거기에 미치자, 머릿속에 불현듯 한가지 생각이 스쳤다.

‘너희를 모두 합친 것보다, 내 분신이 더 강하다.’

어쩌면, 아니, 거의 확실히, 고미는 그렇게 느끼고 있는 것이다.

분신을 만들어서라도 가족을 지키고 싶다는 녀석의 진심, 그리고 우리에 대한 평가.

이 두 가지는 늘 느긋한 게 좋다고 생각해오던 나에게, 평생 느껴본 적 없는 아주 강렬한 감정을 불러일으켰다.

‘강해지고 싶어.’

고미에게 도움을 받는 존재가 아니라, 도움을 주는 존재가 되고 싶다.

녀석이 나에게 의지하는 것을 바라지는 않는다. 그건 불가능한 일이니까.

하지만 분신이라도 만들어 지켜줘야겠다고 생각할 만큼 약한 상태로 남아있고 싶지는 않았다.

짐이 되고 싶지는 않다. 적어도 고미의 분신보다는 강해지고 싶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만큼은 고미의 짐이 되고 싶지 않다.

나는 고미의 첫 번째 친구이자, 가족이자, 제자니까.

가족들에 대한 고미의 무한한 애정을, 조금이라도 돌려주고 싶다. 녀석의 짐을 조금이라도 덜어주고 싶다.

그러니까 오늘 던전은, 무슨 일이 있어도 내 힘으로 공략해보고 싶었다.

청심환도, 고미가 준 무기에도 기대지 않고. 오로지 내 힘으로.

“오늘은 혼자 해볼게.”

“정말 괜찮겠느냐?”

고미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되물었다.

지금 내 능력치면 이 정도 던전은 어렵지 않게 클리어할 수 있고, 고미도 그 사실을 알 거다.

하지만 여전히 걱정이 되는 거겠지. 그 걱정의 크기만큼 나를 소중히 여긴다는 거고. 그건 나 역시 마찬가지다.

그래서 더 강해지고 싶다. 아니, 꼭 그렇게 할 것이다.

“응.”

- 아, 아웅!

그때, 줄곧 꼿꼿한 자세로 우리를 따라오던 아웅이가 앞으로 걸어왔고,

- 아웅!

얼음으로 만든 새하얀 방패를 건네주었다.

내 뜻은 존중하지만, 방패는 가지고 가라는 건가.

‘곰정사’ 스킬을 발동하자,

< 아웅이의 얼음 방패 (D) >

- 아웅이의 마력으로 만들어진 얼음 방패. 매우 단단하다.

비고 : 여름에는 다양한 용도로 사용할 수 있을 것 같다.

아무런 특수 효과도 없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내 원래 장비도 방패와 검이고, 특수 능력도 없다. 이 정도는 받아도 되겠지.

“고마워.”

“자, 그럼 오랜만에 몸 좀 풀어볼까.”

준비를 마치자, 봉식이가 가볍게 목을 돌리며 내 곁에 섰다.

“가자.”

봉식이와 나는 약속이라도 한 듯 동시에 독침 선인장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쉭-

선인장과의 거리가 30미터 정도 남았을 무렵, 거대한 선인장이 몸을 흔들며, 수십 개의 독침을 날려 보냈다.

팅!

나는 얼음 방패를 들어 독침을 막아내며 더욱 속도를 높였다.

수십 개의 가시 중 절반 정도는 방패에 막혀 튕겨 나갔지만, 나머지 절반이 방패에 꽂히며 새하얀 방패가 시커멓게 물들었다.

그렇게 십여 미터를 전진하자, 곳곳에서 잿빛 모래로 만들어진 괴물들이 몸을 일으켰다.

“아자!”

그와 동시에 봉식이가 맹수처럼 몸을 날렸고,

퍼억!

한방에 자신보다 머리 두 개는 큰 샌드맨의 가슴에 커다란 구멍을 만들었다.

하지만 샌드맨은 단순히 구멍을 메우는 것을 넘어 몸을 단단하게 굳히며 봉식이의 손을 그대로 묶어버렸다.

- 그워어······.

일단 한 마리가 봉식이를 묶자, 주위의 샌드맨들이 녀석을 향해 벌떼처럼 몰려들기 시작했다.

나는 봉식이가 시선을 끌고 있는 틈을 타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갔다.

마침내 선인장에서 10미터 정도 떨어진 곳까지 다가갔을 무렵,

쾅!

엄청난 소리와 함께 하늘 높이 잿빛 모래 기둥이 솟아오르며 온몸이 붉게 변한 봉식이가 샌드맨들을 거침없이 때려 부수기 시작했다.

‘역시.’

그 순간, 모래 속에 숨어있던 주먹만 한 회색 전갈들이 일제히 뛰어올라 나에게 달려들었다.

나는 방패로 몇 마리를 쳐내는 동시에 빠르게 검을 휘둘러 십여 마리의 전갈을 베어버렸다.

몸이 가볍다. 팔다리도, 검도, 모두 원하는 대로 움직인다.

고미의 도움 없이도, C급 정도는 무리 없이 처리할 수 있다.

아이템을 활용해 손쉽게 몬스터를 물리칠 때와는 또 다른 묘한 성취감이 가슴속 깊은 곳에서 피어올랐다.

나는 더 강해질 수 있다. 아니, 그렇게 될 거다.

쉭!

나는 거침없이 앞으로 나아가 단칼에 독침 선인장을 베었다.

고개를 돌려보니 붉은 야수로 변한 봉식이가 움직임을 멈춘 샌드맨들을 툭툭 걷어차며 나에게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일단 1라운드 종료.

이제 다음 선인장이 있는 곳으로 가야 하는데······.

‘후, 그전에 할 게 있지.’

나는 가볍게 숨을 들이쉰 뒤 독전갈의 꼬리를 잘랐다.

그리고 이를 악문 뒤...눈을 꾹 감고 스스로 그 꼬리로 손가락을 찔렀다.

그 순간,

-아, 아웅!

“수하!”

-다, 다웅!

곰돌이 셋이 번개처럼 나의 곁으로 날아왔다.

잠깐, 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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