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아기곰이 너무 강함-82화 (82/300)

EP.82 진실의 대가

[ 우웅? 무슨 걱정거리라도 있는 것이냐? ]

보석같이 맑은 눈을 깜빡이며 되묻는 고미의 모습에 나는 차마 눈도 마주치지 못하고 먼 산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사실, 지금까지 널 속인 게 있어. 아니, 속인 건 아니고, 말을 하지 않은 거지만······.”

고미는 아무 말 없이 천진한 눈망울로 나를 바라보다가 한참이 지나서야 입을 뗐다.

[ 무엇이냐? ]

나는 말 없이 ‘꿀태창’을 열어 그것을 고미에게 보여주었다.

[ 갑자기 상태창은 왜 보여주는 것이냐? ]

“사실 여기에 너한테는 보이지 않는 게 있어.”

말을 마친 나는 ‘꿀태창’의 내용을 한 자도 빠짐없이 ‘구라 상태창’에 옮겨 넣었다.

그것을 본 고미는 한참이나 돌처럼 굳어있었다.

나를 보지도, 다른 곳을 보지도 않았고, 화를 내지도, 슬퍼하지도 않았으며, 입 밖으로 어떤 소리도 내지 않았다.

평소라면 ‘감각 강화’를 사용해 고미의 표정을 살폈을 테지만, 차마 그럴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렇게 무거운 정적이 흐르기를 한참, 마침내 고미가 입을 열었다.

[ 이것을 왜 감췄던 것이냐? ]

“처음에는······. 이걸 보면 내가 너에게 잘해주는 게 스킬을 얻기 위해서 그러는 거라고 생각할까 봐 그랬어.”

[ 그럼 이제 와서 이것을 보여주는 이유가 무엇이냐? ]

“그냥······. 마음에 걸렸어.”

[ 무엇이 말이냐? ]

“널 속이는 것 같아서.”

나의 대답에 고미는 잠시 말없이 생각에 잠겨있다가 뜻밖의 답을 내놓았다.

[ 흐흠······. 사, 사실 이, 이 몸은 모두 알고 있었느니라! 드, 드디어 네 입으로 진실을 밝히는구나!]

거짓말이다.

굳이 감각 강화 스킬을 사용하지 않아도 고미의 거짓말은 아주 쉽게 알아볼 수 있다.

불규칙하고 불안정하게 흔들리는 꼬리, 끊임없이 쫑긋거렸다가 눕기를 반복하는 작은 귀, 좌우로 쉴 새 없이 움직이는 눈동자까지.

못 알아보는 게 이상할 정도로, 고미는 거짓말이 서투니까.

[ 아, 알고 있었지만, 지, 지켜본 것이다! ]

하지만 화를 내야 할 대목에서 거짓말을 하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 그, 그래서, 이 몸은 너에게 도움이 되었느냐? 그, 그러니까 이 몸을 가족으로 받아들여 준 것이지? ]

불안하게 떨리는 목소리, 축 처진 꼬리.

[ 도, 도움이 되었겠지? 엄마, 아빠에게도, 너에게도, 봉식이에게도, 도움이 되었겠지? ]

당연하게 왜 그런 걸 묻는 거냐.

왠지 모르게 핑, 하고 눈물이 돌았다.

“그게 무슨 소리야. 항상 도움이 됐어. 네가 아니었다면 엄마 아빠는 아직도 병원에 누워있었을 거야.”

[ 어, 엄마 아빠도 그렇게 생각하겠지? ]

왜 이런 상황에서도 내가 자기를 속였다는 사실보다, 자기가 가족에게 도움이 되었는지를 더 먼저 생각하는 걸까.

그 순간, 나는 불현 듯 고미가 느낀 불안의 정체가 무엇인지 깨달았다.

고미는 무서웠던 것이다.

‘내가 자기를 이용했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을까’하고 걱정했던 나만큼, 아니 그 이상으로, 가족들에게 자신이 필요하지 않으면 어쩔까, 내심 두려웠던 것이다.

나에게 강해지라고 했던 것도, 던전에 데리고 가려고 했던 것도, 억지로 왕유를 먹인 것도, 자꾸만 무언가를 해주려고 했던 것도, 모두, 자신이 필요한 존재라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서였을지도 모른다.

할 줄 아는 거라곤 싸움뿐이니, 그걸 통해서 자기가 쓸모있는 존재라는 걸 증명하고 싶었던 거다.

언제나 지나치리만큼 칭찬을 원했던 것도, 자신을 좋아해 주지 않을까 봐, 자신이 얼마나 잘하는지 알아달라고, 끊임없이 확인했던 것이리라.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오랜 시간을 홀로 지내온 고미에게, 자신을 아껴주는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더없이 행복하지만, 동시에 끝없이 불안한 일이라는 걸.

하물며 이 녀석에게는 그 대상이, 나와, 우리 가족뿐이니, 두려운 마음도 그만큼 컸겠지.

“그럼. 왜 그런 생각을 해.”

[ 하지만 어, 엄마는 괴수들을 상대하는 것이 위험하다고 하지 않았느냐! 어쩌면 나 때문에 너와 봉식이가 그렇게 됐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

“아니야. 절대 아니야.”

[ 너, 너도, 싸우는 것을 싫어하지 않느냐? ]

“싸우는 걸 좋아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네가 싫은 건 아니야.”

[ 그럼······. 우리는 계속 가족인 것이냐? ]

“응, 항상 가족이야. 빨리 말 안 해줘서 미안해. 네가 싸움을 잘하지 않아도, 도움이 되지 않아도, 항상 가족이야. 그러니까 그런 생각하지 마.”

나는 목 끝까지 차오르는 울음을 애써 눌러 참으며 그렇게 말했다.

그 답을 들은 고미는 통통한 솜뭉치를 들어 눈물을 훔친 뒤 씨익 웃음을 지었다.

[ 흥! 위대한 이 몸은, 모, 모두 알고 있었느니라! 그, 그러니 용서하고 말 것도 없다! ]

나는 말 없이 고미를 꼭 끌어안아 주었다.

생각해 보니, 내가 해준 애정표현이라고는 아주 가끔 머리를 쓰다듬어 주거나, 속으로만 귀엽다고 생각하며 피식 웃거나, 맛있는 것을 사주거나, 목말을 태워주는 게 전부였다.

왜 그랬을까.

애정에 목마른 이 녀석에게, 조금 더 잘한다고, 대단하다고, 멋지다고 말해줬으면 좋았을 텐데.

[ 우웅······. 기분이 좋구나. ]

고미를 가장 먼저 만난 건 나였는데, 어째서 여태 한 번도 안아준 적이 없을까.

나는 고미를 꼭 끌어안고 등을 토닥여 주었다. 그러자 처음에는 눈물만 찔끔거리던 녀석이 어느 순간부터인가 어깨를 들썩이며 흐느꼈고, 그렇게 한참을 울었다.

“자, 이제 다 울었어?”

울음소리가 잦아들 무렵, 나는 주머니에서 초코바 하나를 꺼내 고미에게 건네주었다.

처음 만났던 날부터 우리를 이어주었던, 초코바를.

[ 흥! 위대한 곰은 절대 울지 않는다! 네가 잘못 본 것이니라! ]

음, 생각보다 기력이 빨리 돌아왔군.

그래도 축 처져 있는 것보다는 훨씬 보기 좋다.

[ 그럼 이제 매일 매일 나와 놀아주어야 한다! 이 몸이 기분이 좋아져야 너도 강해질 수 있으니 말이다! 후후후! ]

그렇게 말하면 여태 꿀태창의 퀘스트를 몰랐다는 게 너무 티 나잖아······. 그래도 하나부터 열까지 어수룩한 게 고미다워서 좋다.

“알았어. 그럼 내일부터 재밌는 걸 하나씩 찾아보자!”

[ 악당들을 혼내주는 것도 잊어서는 안 된다! 던전과 게이트도 찾아서 파괴해야 한다! ]

“그래, 그래. 알았어.”

이후 나는 고미를 어깨에 태우고 편의점에 가서 녀석이 좋아하는 군것질거리들을 잔뜩 사주었고, 조금 더 밤공기를 쐬고 싶다는 녀석의 말에 한적한 곳을 찾아 돌아다녔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아주 오랜 의문을 해결하기 위해 질문을 던졌다.

“그런데, 시스템은 왜 그렇게 널 좋아하는 걸까?”

[ 그거야 이 몸이 위대하기 때문이지! ]

“혹시 시스템이 네 엄마나 아빠일 가능성은 없어?”

시스템의 정체에 대한 가장 흔한 추측은, 그것이 ‘신’ 혹은 ‘신’이라고 부를 수 있는 무언가라는 것이었다.

그도 그를 것이, 기존의 물리법칙이나 과학을 완전히 초월한 기현상을 일으키는 게 바로 시스템이니까.

인간의 언어로 표현하자면 신이라는 개념에 가장 근접해 있는 ‘무언가’라는 것은 분명하다.

[ 으음······. 이 몸은 가족이 없다. ]

알고 있다.

다만, 그 말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겠다.

있는데 죽었다는 건지, 있는데 알지 못한다는 건지.

“돌아가셨다는 거야? 아니면 알지 못한다는 거야?”

[ 그런 것이 아니다. 이 몸은 처음부터 혼자였다. ]

“그게 가능해?”

존재의 기원이 없는 존재라니, 그런 것은 들어보지 못했다.

하다못해 신화 속의 존재들에게도 부모는 존재한다.

하지만 고미는 시종일관 자신에게는 가족이 없다는 말만 반복해 왔으니까.

[ 이 몸은, 산이나 바다, 하늘 같은 것이다. ]

무슨 소리지······.

처음으로 고미가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어려운 말을 하는군.

[ 그냥, 있었느니라. ]

스스로도 기원을 알지 못하지만, 그냥 존재한다는 건가.

확실히 고미같이 신비한 존재라면 불가능한 일도 아닐 거라는 생각은 든다.

애초에 처음 만났을 때부터 모든 법칙을 무시하고 있으니까.

‘그래, 기원 따위야 아무렴 어때. 이렇게 사랑스러운데.’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고미를 한 번 더 꼭 안아주었고, 녀석은 기분이 좋은 듯 머리를 부비며 내 품을 파고들었다.

[ 후후, 기분이 좋구나. 아주 따뜻하다. ]

잠시 후, 내 품에 안겨있던 고미가 무언가 생각났다는 듯 귀를 쫑긋거리며 다시 입을 열었다.

[ 아 참! 지금까지 날 속였으니 계속해서 이 몸을 막내로 모셔야 한다! 알겠느냐!? ]

고미는 절대로 그 자리를 포기하고 싶지 않다는 듯 한껏 목소리를 높여 강조했다.

음, 전부터 느낀 거지만, 막내라는 포지션이 마음에 드는 모양이다. 가족들에게 한껏 어리광을 부려도 되고, 가장 많은 사랑을 받는 자리가 막내이기 때문인 걸까?

“알겠어. 걱정하지 마. 너는 계속 막내님이니까.”

나의 대답에 고미는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 후후, 그럼 이제 집으로 돌아가자! 엄마 아빠가 이 몸을 그리워하고 있을 것이다! ]

“알겠어. 가자.”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몸을 돌렸을 때, ‘띠링’하는 소리와 함께 시스템이 메시지를 보내왔다.

< 축하합니다. 히든 퀘스트를 완료했습니다. >

“응?”

[ 왜 그러느냐? ]

“새 퀘스트가 떴어······.”

이전과는 달리 숨길 필요가 없다는 사실에 괜스레 기분이 좋고 마음이 가벼웠다.

[ 호오, 어서 확인해 보거라! 이 몸도 궁금하구나! ]

퀘스트가 떴다는 말에 제 일처럼 기뻐하는 모습에 역시 털어놓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다시 한번 들었다.

< 히든 퀘스트 : 고미를 아껴주세요. (2) >

고미는 위대하지만 외로운 존재입니다. 오랜 시간 외로웠던 고미를 진심으로 아껴주세요.

< 달성 조건 >

고미에게 시스템 창의 비밀을 털어놓기.

< 달성 보상 >

스킬 강화 (+3, 등급 무관)

“와······.”

모든 스킬 등급 상승만큼은 아니지만, 상당히 큰 보상이다.

보통은 스킬 획득권 하나, 스킬 강화권 하나, 스탯 포인트 몇 개 정도니까.

퀘스트 내용을 확인한 나는 곧바로 그것을 고미와 공유했고,

[ 호오······. 아주 훌륭하구나. ]

지금까지와 달리 고미에게 직접 어떤 스킬을 강화하는 것이 좋을지 조언을 구했다.

[ 역시 기본은 기공술이다. 같은 기술이라 해도 얼마나 많은 기를, 얼마나 능숙하게 다룰 수 있느냐에 따라 그 위력은 천지 차이니 말이다. ]

“검술이나 감각 강화는 올리지 않아도 되는 걸까?”

[ 오감이 뛰어난 것 역시 중요하지만, 지금 같은 상태에서 감각만 좋아져도 본 것을 소화하지 못할 것이니 아무런 의미가 없다. ]

역시, 1타 강사가 직접 사사하니 나 혼자 머리를 쥐어 짜내는 거 하곤 달리 정답이 척척 나오는구나.

[ 기공술을 강화하고, 다음으로는 검술을 강화하는 것이 좋을 것 같구나. 나머지는 아껴두었다가 더 좋은 권능을 손에 넣게 되면 그때 사용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

나는 곧바로 고미류 기공술을 C에서 B로, 검의 달인을 E에서 D 등급으로 강화했다.

그리고 고미와 다음에 스킬 획득권이 생기면 어떤 것을 익히면 좋을지 상의하려는 찰나······.

[ 으응!? 이럴 수가! ]

< 고미의 새로운 능력이 개화됩니다. 이제부터 새로운 권능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

< 새로운 퀘스트가 완료되었습니다. >

[ 수하! 몸에서 알 수 없는 기운이 느껴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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