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아기곰이 너무 강함-78화 (78/300)

EP.78 갓-고미님의 진짜 액션

- 츠츠츠······.

- 키에에에!

시커먼 늪 속에서 튀어나온 아홉 개의 거대한 뱀 머리가 허공에 떠 있는 갈색의 솜뭉치를 포위하고 흉포한 울음을 내뱉었다.

우리 셋은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곰 선생님의 시연회’를 감상했다.

쉭! 쉬쉭!

여덟 개의 방위를 완벽하게 점한 뱀 머리가 팔방에서 이빨을 들이밀고, 마지막 하나가 아래에서 고미를 덮쳤다.

“이얍!”

“호잇!”

“하!”

그러나 고미는 이상한 기합 소리를 내뱉으며 허공에서 한 번 더 뛰어올랐다가, 좌우로 어지럽게 날아다니고, 아래로 떨어졌다가, 다시 수직으로 솟구치며, 물샐틈없이 치고 들어오는 히드라의 공격을 모조리 피해냈다.

“보았느냐! 이렇게 피하는 것이다!”

······.

전혀 참고가 안 된다. 너무 날렵하잖아.

어째서 아기 같은 체형으로 저렇게 빠를 수 있는 거냐.

저런 걸 물찬 제비, 아니, 물찬 아기곰이라고 하는 건가.

이어서 고미가 아홉 개의 머리 중 하나를 미끄럼틀 삼아 타고 내려오며 외쳤다.

“이것도 좋은 방법이지! 이렇게 하면 제 목을 물까 봐 함부로 공격하지 못한다!”

굉장하다, 늘 그렇듯이 굉장하긴 한데, S급 몬스터의 몸을 미끄럼틀 취급할 수 있는 헌터가 있기는 할까.

‘히드라 미끄럼틀’을 타고 내려온 고미는 그 추진력을 이용해 다시 하늘 위로 높이 솟구쳤고, 아홉 쌍의 날카로운 독니는 번번이 허공을 갈랐다.

- 키에에에에!

“허곰답보를 쓸 수 없다면 이렇게 이동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지!”

고미는 그렇게 외치며 히드라의 머리를 징검다리 삼아 이 머리에서 저 머리로 어지럽게 뛰어다녔다.

“그리고 이렇게 강한 독을 가진 놈을 공격할 때는!”

또 한차례 히드라 미끄럼틀을 타고 내려오던 고미가 허공에 대고 앞발을 휘두르자,

- 끼에에엑!

가장 멀리 있던 뱀의 머리가 끔찍한 비명과 함께 잘려 나갔다.

“곰기를 이용해 가능한 한 멀리서 처리하는 것이다!”

“이강혁 씨, 원래 검기라는 게 저렇게 막 날릴 수 있는 거예요?”

나의 질문에 이강혁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모르겠습니다. 적어도 저는 못할 것 같은데요.”

S급 검사가 못하는 걸, 누가보고 따라하라고 보여주는걸까.

“마법이라면 가능하겠네요. 마법사는 저렇게 민첩하게 움직일 수가 없다는 게 문제지.”

한유진이 어깨를 으쓱이며 덧붙였다.

바로 그때, 히드라의 잘린 머리에서 피거품이 일더니 이내 두 개의 머리가 돋아났다.

“그리고 이렇게 재생을 하는 상대를 만났을 때는!”

고미는 곧장 새로 돋아난 머리 아래쪽을 ‘곰기’로 잘라낸 뒤, 반대쪽 손으로 새빨간 불덩어리를 날려 잘린 부위를 지져버렸다.

“이렇게 하면 되느니라!”

음, 신화에서는 헤라클레스가 머리를 자르고, 그의 조카인 이올라오스가 잘린 부위를 지져 재생을 막은 거로 알고 있는데, 고미 정도 되면 혼자서 저게 다 되는구나.

“너희가 한팀이라면, 허수아비가 목을 자르고, 삼룡 어멈이 재생을 막아주면 되겠지!”

고미의 말에 이강혁과 한유진은 머쓱한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봤다가 다시 격전이 벌어지고 있는 늪지대로 시선을 옮겼다.

그런데, 내 역할은 왜 언급조차 없는 거냐, 서운하게······.

지금 두 사람도 나는 그냥 지나쳐서 눈 마주치던데, 여기까지 데려와서 소외시키는 거 아니지?

“그리고 이렇게 숨어서 공격하는 놈들을 처리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말을 마친 고미가 돌연 하늘 높이 솟구치더니, 만세를 하듯 두 팔을 들어 올렸다.

“이렇게에!”

그러자, 쿵, 쿵 하는 묵직한 소리와 함께 대지가 부르르 떨리더니······.

수백 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늪을 뒤덮고 있던 시커먼 진흙들이 일제히 허공으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허곰섭물로!”

네? 뭔 섭물이요?

“몸을 숨기고 있는 곳 전체를 들어 올려 버리면! 몸을 숨길 수가 없느니라!”

네?

······.

대단하다, 대단한데, 지금 저걸 우리가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서 가르치고 있는 걸까.

수백 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은신처가 통째로 사라지는 어처구니없는 광경에, 머리 하나를 잃은 히드라의 여덟 쌍의 눈동자가 공포로 물들었다.

“그리고, 이런 방식으로 공격을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지!”

이어서 허공으로 떠오른 거대한 진흙 덩어리들이 이리저리 갈라지고 뭉쳐지며 수백 개의 날카로운 비도(飛刀)처럼 변했다.

“간닷! 고미류 기공술! 만천화웅!”

콰우웅-

고미가 손을 휘두르자, 비도의 형상으로 변한 진흙 덩어리들이 칼날의 폭풍으로 변해 고스란히 드러난 히드라의 거대한 몸뚱이와 여덟 개의 머리들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 키에에에!

끝도 없이 쏟아지는 칼날 폭풍에 휘말린 히드라는 계속해서 처참한 비명을 내지르다 끝내 바닥에 쓰러졌고,

“마무리.”

지상으로 내려온 고미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가볍게 발을 굴렀다.

“불도장!”

그러자, 젤리 모양의 불기둥이 하늘 높이 솟구치며 히드라의 몸을 통구이로 만들어버렸다.

“자, 이제 좀 알겠느냐?”

고미의 질문에 우리 셋은 모두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멍하니 젤리 불기둥을 바라봤다.

과, 과연, 제대로 된 탕을 끓이려면 저 정도 화력은 필요한 건가.

허곰섭물에, 만천화웅, 마무리로 불도장이라······. 어처구니없는 이름들의 향연이지만, 위력이 이러니까 어디서 딴지를 걸어야 할지 모르겠다.

무엇보다, 대체 이 싸움의 어디를 보고 배우라는 거냐.

전부 슈퍼 먼치킨이라 가능한 일들뿐이잖아.

“으음, 곰 선생님. 저는 저런 허곰섭물을 사용할 수도 없고, 만천화웅도, 불도장도 사용할 수 없습니다.”

“무슨 소리냐? 네 역할은 히드라의 주의를 끄는 것이다. 허곰답보나 능곰허도까지는 아니어도, 네 녀석의 경신술이라면 충분히 주의를 끌 수 있을 터.”

그리고는 한유진을 바라보며 말을 이어나갔다.

“늪지대를 없애고 저놈을 불태우는 것은 삼룡 어멈, 네 역할이니라.”

“네?”

한유진이 황망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자, 고미는 한심하다는 듯 혀를 끌끌 차며 말을 이어나갔다.

“네가 바람 마법으로 소용돌이를 일으키면, 늪지대를 전부 허공으로 들어 올리지는 못하더라도, 녀석의 몸이 드러나게 할 수는 있지 않느냐? 마력을 제대로 통제하는 능력은 부족해도 마력의 양만큼은 제법 쓸만하니, 그 정도는 충분히 가능할 텐데?”

“하지만 그렇게 하고 나면 마력이 부족해서······.”

“이이! 한심하구나! 그렇게 해놓고 딸기와 검은콩의 마력을 증폭 시켜 마무리를 하면 되지 않느냐! 아니면 놈을 늪 밖으로 유인해도 되는 것이고!”

음······. 이게 그런 심오한 뜻이 담겨 있는 시연이었다고?

“누가 너희에게 홀로 이 몸처럼 위대해지라고 하더냐!? 약한 녀석들끼리 힘을 합치면, 이 몸만큼은 아니어도 저런 머리만 많은 뱀 따위는 충분히 요리할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려 일부러 이런 방식으로 잡은 것이란 말이다!”

말을 마친 고미는 답답하다는 듯 성을 내며 가볍게 손을 들어 올려 주먹을 쥐었다.

그러자,

쿵! 하는 소리와 함께 대지 위에 거대한 젤리 모양의 발자국이 생기며 충격파가 사방을 휩쓸었다.

“이 몸이었다면 이렇게 하면 끝이다. 왜 번거롭게 저런 짓을 했겠느냐!”

고미의 호통에 이강혁과 한유진은 입조차 벙긋하지 못하고 고개만 끄덕였다.

그런데, 왜 끝까지 내 역할에 대해서는 말이 없는 걸까.

“고미, 나는······.”

“너는 비실비실하지만, 머리도 눈도 좋지 않느냐! 네가 이런 것을 지시하고, 허수아비가 시선을 끄는 동안 삼룡 어멈을 지켜주면 되는 것 아니냐!”

아, 그러니까······. 내 책임이구나. 최종적으로 따지자면.

괜히 물어봤군.

PPT만 잘 만드는 놈, 발표만 잘하는 놈 있으면, 조장이 역할분담 해주고 잘 끌고 가라. 뭐 이런 얘기인 건가.

S급 둘한테 지시를 내리라니, 심히 부담스럽다.

“흥, 됐다. 이제 그만 돌아가자. 평소 이 몸이라면 저런 비겁한 놈은 가루도 남기지 않고 없애버렸을 테지만, 적당히 힘을 조절했으니 마정석과 쓸만한 부위들은 고스란히 남아있을 것이다. 어서 챙겨오거라.”

히드라를 잡고 나온 아이템은 클리어 보상으로 제시되었던 어금니와 발톱, 가죽, 그리고 심장을 비롯해, ‘히드라의 단검’이라는 무기와 독주머니였다.

이제 문제는 이 아이템들을 어떻게 분배하냐는 건데······.

“아이템은 어떻게 분배할까요?”

“수하 씨 무기가 부서졌으니, 단검은 수하 씨가 챙기는 게 어떨까요?”

음, 히드라의 단검이라······. 일단 S급 아이템이니 챙겨서 나쁠 건 없지만, 지금은 나에게 이득이 되는지보다, 어떤 아이템이 누구에게 가장 필요한지를 우선시해야 한다.

‘어차피 이 사람들을 한팀으로 묶는 게 내 계획이니까.’

S급 아이템 분배는 까딱하면 분란을 야기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으니까. 어떻게 처신하냐에 따라 역으로 신뢰를 쌓을 기회가 될 수도 있다.

‘여기가 갈림길이야.’

보스는 고미 혼자 잡았으니, 내가 아이템을 다 가져간다고 해도 문제는 없을 거다.

하지만 크게 보면, 여기서는 약간의 손해를 감수하는 게 낫다.

어차피 저 중에 뭐가 내 손에 떨어져도 ‘조물조물’을 이용해 나한테 맞는 아이템으로 만들 수 있으니, 실제로 손해를 볼 일도 없고.

“아니에요. 일단 누구에게 어떤 아이템이 가는 게 제일 나을지 따져보죠. 이강혁 씨는 이 아이템들 어디에 쓰는지 알죠?”

평소대로라면 감정사를 찾아가든지, 비싼 감정 스크롤이 필요했을 거다. 곰정사 스킬로는 S급 아이템의 옵션을 확인할 수 없으니까.

하지만 아까 전 나눈 대화로 보아 이강혁은 전생에 히드라를 잡은 적이 있는 것 같으니, 이 사람에게 물어보면 되겠지.

어차피 고미랑 이강혁이 얼간이 듀오 짓을 하는 바람에 이제는 이강혁이 회귀자라는 걸 감출 필요도 없고.

‘으휴, 앞으로가 걱정이다, 앞으로가. 왜 따로 있으면 멀쩡한 사람이 고미랑 붙어있기만 하면 바보짓을 하지?’

[ 이강혁 씨, 거짓말하지 말고, 그냥 아는 거 솔직하게 다 말해주세요. ]

나는 이강혁에게 전음을 보내 거짓말을 하지 말 것을 요구했다.

S급 아이템을 두고, 회귀자가, 자신 앞에서 모든 옵션을 솔직하게 말하고, 공평하게 분배한다.

이것보다 한유진에게 믿음을 줄 방법이 있을까?

“히드라의 단검은 저도 처음 보는 물건입니다. 심장은 마력을 엄청나게 올려주는 데다가, 회복 스킬의 효과를 상승시켜주니까, 한유진 씨가 가지는 게 제일 좋지 않을까요?”

이어지는 설명에 따르면, 발톱은 그냥 무기를 만들 때 사용하는 아이템이고, 어금니는 발톱보다 강도는 약하지만 ‘맹독’ 스킬을 추가할 수 있는 재료라고 했다.

“가죽은 잘 제련하면 상당한 수준의 독 저항력을 가질 수 있는 아이템입니다. 저는 다른 방식으로 독 저항 아이템을 얻을 수 있으니, 수하 씨나 한유진 씨가 갖는 게 좋을 것 같네요.”

그리고 이강혁은, 내 생각 이상으로 공정한 의견을 내놓았다.

이 사람의 이런 성격 역시 계산에 들어있기는 했지만.

“저는 이미 백독불침이니까 가죽도 한유진 씨가 갖는 게 좋을 것 같은데요. 고미 말대로면 앞으로 만독불침이 될 거라고 하니까요. 대신, 독주머니는 제가 가져갈게요.”

그때, 가만히 우리의 대화를 듣고 있던 한유진이 의아하다는 듯 갸웃거리며 입을 열었다.

“그렇게 솔직하게 말하고 다 양보해도 되는 거예요?”

왔다, 왔어.

[ 이강혁 씨, 솔직하게 그냥 다 털어놓죠. ]

나의 전음에 이강혁은 두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의 ‘진짜’ 목적을 밝혔다.

“제가 회귀자라는 사실은 이미 알고 계실 테니, 솔직하게 말씀드리죠.”

* * *

이강혁의 긴 이야기를 들은 한유진은 무언가 생각에 잠긴 채 던전 밖으로 나갈 때까지 한마디도 말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던전 출구에 이르렀을 때, 마침내 한유진이 입을 열었다.

“떡튀순이나 먹으러 가죠. 승부는······. 없던 걸로 해요. 그리고, 아까 지켜줘서 고마워요.”

“오오, 드디어 그 떡튀순이라는 것을 맛볼 수 있는 것이냐!?”

먹을 것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신이 난 고미의 꼬리가 모터라도 달린 것처럼 빠르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제가 알고 있는 중요한 정보들도 공유하는 게 좋을 것 같네요. 완전히 일치하지는 않아도, 목표는 비슷한 것 같으니까.”

한유진은 툭 던지듯이 그렇게 말하고는 민망한 듯 먼저 던전 밖으로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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