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76 진짜 스승은 이유없이 굴리지 않는다
“고미, 왕유는 언제 떨어져······?”
“후훗, 이 몸의 영약을 맛보고 나니 더이상 평범한 단약으로는 만족할 수 없게 된 것이냐?”
고미의 입가에는 ‘후훗, 어쩔 수 없는 녀석 같으니.’하고 말하는 듯한 웃음이 걸려 있었다.
미쳐버리겠네······.
인간은 먹을 것에 민감하다. 특히 먹고 크게 탈이 난 경험이 있는 음식은 아주 오랫동안 기억하며, 몇 년이 지나도 그것을 먹으면 구토감이 치민다거나 하는 거부 반응이 나타난다.
이는 위험한 음식을 피하려고 생물학적 차원에서 프로그래밍된 반응으로, 일명 ‘맛 혐오 반응’이라고 부른다.
다들 있지 않나. 어릴 때 먹고 식중독에 걸렸다거나, 크게 체한 이후로는 못 먹게 된 음식이.
‘이거 한 번만 더 먹으면 검은색 들어간 음식이나 동그란 모양을 한 음식은 평생 못 먹게 될 것 같은데.’
그만큼 ‘왕유’의 맛은 끔찍하다.
인간에게 맛없는 것을 먹여 벌을 주는 지옥이 존재한다면, 그곳에서는 틀림없이 물 대신 왕유를 주고, 밥 대신 왕유 알약을 먹일 거다.
왜 이렇게 혓바닥이 기냐고?
후달려서 그런다, 후달려서.
한 번 했는데 두 번은 못 하냐고 묻는 사람이 있다면, 되묻고 싶다. 당신은 군대 두 번 갈 수 있냐고.
“욱······.”
심지어 몇 미터는 떨어져 있던 한유진이 냄새만으로 헛구역질을 하며 고개를 돌린다.
봐라, 이걸 두 번이나 먹은 내 정신력을 칭찬해야지. 세 번째를 거부하는 걸 탓할 맛과 냄새가 아니라고.
“후후, 아쉽지만, 왕유는 세 번 이상 먹으면 그 효과를 볼 수 없느니라. 너무 아쉬워하지 말고 먹거라.”
고미가 웃으며 죽음의 냄새를 풍기는 검은 단약을 내밀었다.
“그럼 이번이 마지막인 거야?”
“그렇다.”
고미의 말에 나는 애써 마음을 다잡았다.
‘그래, 먹는 거야. 이번이 마지막이잖아. 힘내라 김수하. 넌 할 수 있다.’
그렇게 스스로를 다독이며 숨을 멈추고 마지막 왕유를 삼키는 순간,
‘우욱!’
지금까지 겪어본 적 없는 강렬한 맛의 폭풍이 전신을 휩쓸며 온몸에서 힘이 빠져나갔다.
아아, 이번엔 정말 끝인가? 어째서 갈수록 맛이 강해지는 거야······.
< 왕유의 효과가 전신으로 스며듭니다. >
< 새로운 스킬이 추가되었습니다. >
- 간 때문입니다. (C / Gomi ~ F )
피곤은 간 때문입니다. 회복력과 해독 작용은 간과 관련이 있으며, 예로부터 곰의 쓸개는 영험한 약효를 가진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제부터 당신은 피로와 부상에서 더욱 빠른 속도로 회복되며, 독에 대한 강한 내성을 가지게 됩니다.
······.
뭐냐 이거.
갑자기 왜 스킬이 생기는 건데.
내가 멍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자, 고미가 정신없이 꼬리를 흔들며 기대감이 가득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어떠냐? 벌써 약효가 느껴지느냐? 왕유는 한번 먹으면 단전이 강화되고 기맥이 타통되며, 두 번을 먹으면 전신의 기맥이 더욱 굵고 튼튼해지지. 그리고 세 번을 먹으면 육체가 더욱 강해지고, 백독불침(百毒不侵)의 능력을 가질 수 있느니라!”
굉장하다. 단순히 기맥이 강화되는 수준이 아니구나.
수다르마저 영약이라고 칭한 이유가 있었어.
그래서 그렇게 기를 쓰고 나한테 왕유를 먹였던 거군.
그런데, 너무 감동을 받아서 그런지 오장육부가 드글드글 끓는 느낌이네.
구리구리하고 퀴퀴한 냄새와 맛이 위와 식도를 타고 역류해서 뇌까지 마비시키는 느낌이다.
“심지어 체질이 변화되어 독을 만나면 점점 더 그 독에 대한 면역력을 얻게 되느니라! 그렇게 만독불침에 이르게 되는 것이지!”
“고, 고마워 고미.”
나는 간신히 정신을 차리고 고미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다.
아무리 토할 것 같고 속이 울렁거려도 이런 걸 먹었으니 고맙다는 말은 해야지.
그때, ‘우우웅’하는 소리가 멈추고, 이강혁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던 흰빛이 천천히 잦아들었다.
“곰 선생님! 이 허수아비! 목숨을 바쳐 충성을 다하겠습니다.”
‘천도환’을 무사히 흡수한 이강혁이 자리에 털썩 무릎을 꿇으며 외쳤다.
“그 천도환이라는 게 뭔데요?”
곁에서 이 모습을 지켜보던 한유진이 코를 틀어막은 채 물었다.
음, 아직도 왕유의 향기에서 벗어나지 못한 모양이군.
내 앞에서 그러지 마라. 그걸 먹은 나는 어떻겠냐.
“신체 능력과 기맥을 강화해주는 단약입니다. 원래는 말이죠.”
“원래는?”
한유진의 반문에 이강혁은 흥분한 기색이 가득한 표정으로 답했다.
“등급이 올라갔습니다.”
“뭐라고요?”
원래 A급이었으니까, S급이 된 건가.
음······. S급 헌터 하나 만드는 게 원래 이렇게 쉬운 거였나?
역시 산신령님의 약제조 실력은 장난이 아니군.
“여태까지 한 번도 없었던 일입니다. 어떻게 해도 S급이 될 수 없었는데······. 이 모든 게 곰 선생님 덕분입니다!”
근데, 저렇게 말해도 되나.
‘여태까지 한 번도’라든가, ‘원래는’ 이라든가, 심지어 아까 고미가 ‘세 번의 삶’ 어쩌고 하는 발언까지 했던 것 같은데.
아니나 다를까, 한유진의 눈빛이 심상치 않다.
“이강혁 씨, 지금 그 말, 당신이 회귀자라고 인정한 거라고 받아들여도 되는 건가요? 아까 고미님도 세 번의 삶 어쩌고 그러던데.”
하아, 그럼 그렇지. 바보가 아닌 이상 이 대화를 듣고 그 사실을 유추해내지 못할 리가 없다.
한숨만 나오는군.
“흠흠! 자, 허, 허, 허수아비! 그럼 이제 더욱 강력해진 너의 검술을 확인해 보자꾸나!”
당황한 고미가 연신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
“그, 그럴까요!?”
이강혁의 이마에서는 이미 식은땀이 줄줄 흘러내리고 있었다.
이 얼간이들이 진짜······.
심지어 이강혁이고 고미고 둘 다 오른팔과 오른발, 왼팔과 왼발이 동시에 나가고 있다.
어휴, 고미야 원래 좀 맹하니까 그렇다 치고, 왜 당신까지 고미를 닮아가는 거냐고.
“하아, 뭐, 이미 예상은 하고 계셨잖아요. 그냥 넘어가죠.”
나는 그렇게 말한 뒤 두 사람의 뒤를 따라 앞으로 걸음을 옮겼다.
어차피 언젠가는 알게 될 일이었으니까. 그냥 좀 빨리 알게 된 거라고 생각하자.
‘음, 뒷수습은 내 몫이겠군.’
근데··· 왜 자꾸 한숨이 나오는 걸까?
* * *
던전의 끝이 어디인지는 알 수 없었다.
다만 고미의 뒤를 따라가면 보스 몬스터가 있는 지역에 도착할 수 있다는 것만은 확실했다.
살아있는 던전 ‘곰비게이션’
던전에 한해서, GPS(Global positioning system)의 G는 Gomi의 G라고 해도 주장해도 이상할 게 없는 수준.
보통 던전에 들어오면 가장 애를 먹는 게 보스의 위치를 찾는 것이다.
오죽하면 ‘방향치는 S급이어도 헌터 하지 말아라.’라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니까.
“후후, 이제 이곳의 우두머리가 있는 곳이 멀지 않았다.”
그사이 만난 몬스터들은 모두 이강혁과 한유진의 연습 상대가 되었다.
한유진은 고미가 시킨 대로 마력 사용량을 줄이고 정교하게 컨트롤하는 연습을 하느라 애를 먹고 있었지만, 빠르게 감을 잡아나가고 있었다.
“고미님! 이렇게 하는 거 맞죠? 그쵸?”
“후훗, 금동이 녀석이 쭉정이를 부하로 거두지는 않았구나. 아직 부족한 점이 많지만, 아까보다는 훨씬 나아졌다.”
고미의 칭찬에 한유진은 어린아이처럼 좋아하며 계속해서 몬스터를 처리해 나갔고, 이강혁 역시 신들린 듯 칼춤을 추며 앞으로 나아갔다.
“곰 선생님! 완전히 새로운 세상이 열린 것 같습니다!”
A급임에도 S급에 준하는 실력을 가지고 있다는 이강혁의 실력은 이제 명실공히 S급의 반열에 오른 것 같았다.
어쩌면 그 이상일지도 모르고.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이전에 고미의 힘을 받아 몇 억짜리 검 하나를 날려 먹으며 쓸 수 있었던 백색 검기를 혼자 힘으로 사용할 수 있게 된 것이었다.
그렇게 두 사람의 수련 성과를 확인하며 GomPS의 도움을 받아 앞으로 나아가기를 10여 분,
“수하, 이제 붉은 단약을 먹거라. 네 수련을 시작해야겠구나.”
마침내 내 차례가 왔다.
나는 빠르게 ‘핵빠따’와 ‘보라 찐빵’을 꺼낸 뒤 붉은 단약을 집어삼켰다.
왕유로 단련된 나의 미각에 산신령의 단약 따위는 전혀···
“켁!”
붉은 단약이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순간, 저도 모르게 눈물이 찔끔나고 헛기침이 튀어나왔다.
< 산신령의 신단(辛丹)을 복용합니다. >
이 익숙한 맛, 그리고 이상한 한자 표기······.
대체 단약에 뭘 넣으면 핵불맛볶음면 맛이 나는 건데!
< 30분간 모든 능력치가 10 향상됩니다. >
< 적들에게 매운맛을 보여주세요. >
헐······. 하지만 맛과는 별개로, 효과는 굉장했다.
이거 팔면 한 알에 수천만 원은 할 것 같은데.
‘잠깐.’
나는 황급히 인벤토리에 넣어두었던 산신령의 인삼껌, 아니, 인삼껌 맛이 나는 단약을 집어삼켰다.
< 산의 정수가 흡수됩니다. >
< 1시간 동안 모든 능력치 상승치가 200% 향상됩니다. >
“켁, 켁!”
핵불맛볶음면의 매운맛에 인삼껌의 맛이 더해지며 나의 미각은 지옥의 밑바닥까지 떨어졌지만,
‘미각을 포기하고, 능력치를 얻는다!’
모처럼 찾아온 성장의 기회를 놓칠 수는 없지.
본래 강한 녀석들을 상대할수록 능력치 상승 폭은 더욱 커진다.
즉, 지금 내 수준에서 산신령의 단약을 먹고 A급 몬스터를 상대하면, 그 성장 속도는 B급 던전을 열 번 도는 것보다 더 빠른 수준.
- 츠츠츠,
그리고, 때맞춰 커다란 쌍두사 한 마리가 풀숲을 가르고 모습을 드러냈다.
‘버프가 없어지기 전에 처리하자.’
깡!
하지만 쌍두사의 머리가 방패를 강타하는 순간, 나의 몸이 몇 걸음이나 뒤로 밀려났다.
‘말도 안 돼, A급 몬스터라는 게 이렇게 센 거야?’
능력치 버프고 나발이고 의미가 없다.
현재 내 순 능력치는 힘 23, 민첩 14, 체력 11, 마력 7.
거기에 아이템 능력치와 불맛 버프까지 합치면 순서대로 40, 24, 25, 17.
이 정도면 어지간한 B급 수준은 되는데, A급의 공격 한방을 견뎌내지 못하다니.
쩌적······.
하지만 더 심각한 문제는, 내가 아니라 ‘찐빵’에 있었다.
감각 강화를 통해 미리 읽고 공격을 흘렸는데도, 한방에 찐빵에 균열이 생기고 말았다.
‘기껏해야 세 번, 아니 두 번이나 버티려나?’
실수다. A급을 너무 얕봤다.
지금까지 아이템과 스킬, 보너스 포인트를 활용해 나보다 강한 몬스터를 쉽게 사냥해왔으니까, A급도 그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보너스 포인트도 없고, 아이템 등급도 한참 떨어지는 상황에서 A급을 만나니, 곧바로 밑천이 드러나 버리고 말았다.
가장 큰 문제는, 핵빠따로 저 녀석의 비늘을 뚫을 수 있을지 의문이라는 점이었다.
‘공격 한방에 찐빵에 금이 갔으니까, 핵빠따로는 데미지를 줄 수 없을지도 몰라. 그러다가 승부가 길어지면 찐빵도 부서지고 말 거고.’
“수하, 할 수 있겠느냐?”
고미가 나를 바라보며 진지한 말투로 물었다.
그 순간, 왠지 모르게 오기가 들었다.
고미의 제자도 아닌 이강혁과 한유진도 저렇게 잘하는데, 나도 멋진 모습을 보여 주고 싶다.
게다가 고미는 던전에 들어오기 전, 내가 이곳의 몬스터들을 상대할 수 있을 거라고 말했다.
그러니까, 할 수 있다.
내가 지레 겁먹고 발을 빼지만 않는다면.
“응. 할 수 있어. 젤리 원자로 하나만 부탁할게.”
고미는 곧장 젤리 모양의 빛덩어리를 나에게 날려보냈다.
“후훗. 좋다.”
젤리 원자로가 가슴에 장착되는 순간, 나는 그것의 '새로운 가능성'을 시험해 보았다.
“호오······.”
그리고, 그것을 본 고미는 정답이라는 듯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