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75 1타 강사는 업는 재능도 만들어 줍니다
“어······?”
고미의 젤리에서 뿜어져 나오는 번개를 본 한유진의 동공은 격렬하게 뒤흔들렸고,
“고, 곰 선생님, 뇌전 능력까지 사용하실 수 있으셨습니까?”
이강혁의 신앙은 더욱 굳건해졌다.
‘눈빛만 봐서는 이 던전에서 나가자마자 성전을 세우고 곰 동상이라도 세울 것 같군.’
나로 말하자면······.
이제 뭘 봐도 놀라지 않을 수 있는 담대함을 가지게 된 것 같다.
전 같으면 ‘고미, 뭐야!?’하면서 호들갑을 떨었겠지만, 이제는 조금 덤덤하게 받아들일 수 있게 됐달까.
어쩌면 내 핏속에 잠들어있던 엄마의 적응력이 깨어난 걸지도······.
“대수롭지 않은 능력이다.”
고미가 주먹을 움켜쥐자, 새파란 전광이 날카로운 창의 형태로 응집됐다.
“보거라.”
쐐애액!
창 형태로 응집된 번개를 가볍게 내던지자, 천둥소리와 함께 날아간 빛줄기가 눈앞에 있던 집채만 한 바위에 바람구멍을 만들었다.
오······. 번개로 된 창을 던지는 곰이니까, 제웅스인가?
아니, 웅피테르, 웅피터도 어감이 괜찮은데······.
셋 중 뭘로 할지 고민이 되는군.
“이렇게 응집하면 더 강한 위력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을, 굳이 사방으로 뿌려대는 이유가 무엇이냐?”
번개의 신, 제웅스로 변한 고미가 한유진을 바라보며 물었다.
“그, 그건······.”
“흥, 더 큰 위력을 내기 위해 무조건 더 강하게 마력을 뿜어내는 것에만 집중했겠지.”
제웅스의 날카로운 지적에 한유진은 족집게 강사의 오답 풀이를 듣는 학생처럼 변해버렸다.
“네, 맞아요······.”
“수행의 순서가 엉망이구나. 어찌 작은 힘도 통제하지 못하는 녀석이 큰 힘을 쓰려 하는 것이냐?”
듣다 보니 이유가 뭔지 대충 짐작은 간다.
웅림픽에서 기를 쓰고 이기려는 모습, 평소의 언행, 디저트 가게에서 했던 이야기들, 그리고 김춘식을 잡으러 갔을 때 보였던 행동들······.
이를 토대로 분석해보면, 한유진은 상당히 지기 싫어하고, 적극적이고, 남의 시선을 의식하는 데다가, 성격도 급한 사람이다.
그리고 이런 사람들은 기초를 다지면서 천천히 나가는 것을 어려워한다. ‘당장 이겨야 하는데, 언제 기초부터 다지고 있어?’ 하는 식의 사고방식이랄까.
토대를 다지는 동안 발전이 멈춘 것 같고, 뒤처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견딜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니 마법을 배울 때도 기초 마법보다는 무조건 위력적이고, 강한 마법 위주로 사용했겠지.’
이런 위력의 뇌전 마법을 쓸 수 있으면서 낙하 속도를 줄여주는 간단한 마법도 제대로 못 쓴다는 것 역시 이런 성격 이 원인일 거다.
“본래 훌륭한 마법사는 3할의 힘을 사용해 4할, 5할의 힘을 낼 줄 알아야 한다. 하지만 너는 지금 5할의 힘을 내기 위해 7할의 마력을 사용하고 있지 않느냐.”
고미의 호된 꾸중(?)에 한유진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고개만 끄덕였다.
그래도 자기 문제를 인식은 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삼룡 어멈, 너는 이제부터 한 번에 사용하는 마력의 양을 절반으로 줄이고, 그것을 완벽하게 통제하는 연습을 하거라. 그럼 자연스럽게 같은 마법을 써도 그 위력이 배가 될 것이다.”
한편, 이강혁은 피가 되고 살이 되고, 은총과 축복이 가득한 곰신의 말씀을 한마디라도 놓칠까 귀를 쫑긋 세운 채 그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저······. 곰 선생님, 제 검술도 한 번만 봐주실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이어지는 수줍은 강의 요청.
참으로 모범적인 학생의 자세, 그 자체군.
“후훗, 좋다. 앞으로 가자. 멀지 않은 곳에 또 괴수 몇 마리가 기다리고 있구나.”
허수아비 수강생의 훌륭한 수강 태도에 기분이 좋아진 곰 선생님은 곧바로 복숭아 같은 엉덩이를 흔들며 열심히 앞으로 나아갔다.
그렇게 몇 미터 정도를 걸어가자,
- 크릉!
낮은 울음소리와 함께 커다란 나뭇잎 사이로 시커먼 피부를 가진 3미터가량의 이족보행 악어 한 마리가 나타났다.
생긴 거로 봐서는 앨리게이터나 리자드 맨의 일종 같은데, 제 키만 한 커다란 방패에 단창을 들고 있었다.
짧은 뒷다리에 비해 거의 인간과 비슷한 수준으로 긴 앞다리. 끝부분에 커다란 추 같은 혹이 달려있는 꼬리에, 칼날 같은 이빨까지······.
상당히 언밸런스하면서도 전투적인 생김새군.
- 크륵!
놈이 우리를 발견한 순간, 이강혁이 빠르게 선공을 가했다.
역시 싸움은 선빵 필승이지.
< 검의 달인 (E) 스킬이 활성화됩니다. >
< 개보다 낫다 (B) 스킬이 활성화됩니다. >
나는 곧바로 금동이와 만나 등급이 올라간 검의 달인 스킬과 감각 강화 스킬을 켰다.
이강혁의 싸움은 나에게 아주 좋은 참고 자료가 될 테니까.
쉭!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이강혁의 장검이 허공을 가르고,
- 꾸에에엑!
악어의 한쪽 팔이 깔끔하게 잘려 나갔다.
“응?”
잠깐, 원래 이강혁이 이렇게까지 강했던가?
아니, 원래 강하기야 했지. 상대가 고미니까 초코바에 당한 거고.
하지만, 지금 일격은 ‘뭔가’ 달랐다.
정확히 어떻게 다른지는 모르겠지만, 외뿔 광우를 처리할 때나 초월자의 가짜 빙의체를 처리할 때와는 확연히 다른 움직임.
뭔가 부드러우면서도 맺고 끊는 것이 확실하다는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아쉽지만, 내 눈으로는 고작 그 정도밖에 이해할 수 없었다.
“호오······.”
고미 역시 조금 놀랐다는 듯 눈을 크게 뜨며 고개를 끄덕였다.
‘음, 고미의 반응을 보니까 내가 잘못 본 건 아닌 것 같은데.’
아쉽다.
뭔가가 손에 잡힐 듯 잡히지 않는 느낌, 눈앞에 뭔가가 있다는 건 알겠는데, 뿌연 안개가 시야를 가로막고 있는 것 같은 갑갑함.
‘해피 곰 포인트를 써볼까?’
나는 슬쩍 상태창을 열어 현재 해피 곰 포인트가 얼마나 되는지 확인해 보았다.
요 며칠간 제법 행복했는지, 처음 스킬이 생겼을 때 232점이었던 포인트가 어느새 503점까지 쌓여 있었다.
하긴, 금동이고 만났고, 맛있는 것도 먹고, 가족들과 장도 보러 나왔으니까.
내가 김춘식의 부하들에게 둘러싸였을 때, 해피 곰 포인트를 사용하지 않았던 것은, 그게 고미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몰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위기가 왔을 때 다급하게 스킬을 써서 큰 부작용을 만드는 것보다는, 시험적으로 소량만 사용해서 효과와 부작용을 확인해 볼 필요가 있는 것도 사실이었다.
‘232점 때는 아무런 이상도 없었으니까, 그걸 기준점으로 삼는다면 100포인트 정도는 시험 삼아 써봐도 되지 않을까?’
503점에서 100점을 차감해도 403점. 232점보다는 한참 높다.
그럼 부작용이 있더라도 큰 문제가 발생하지는 않겠지.
무엇보다 지금까지 시스템 창, 아니 ‘웅태창’이 보여준 태도로 보아서는, 내가 고미에게 뭘 잘못했을 때 천벌이 내린다면 모를까, 고미에게 해가 될 뭔가를 내 손에 쥐여줄 것 같지는 않았다.
‘좋아. 100 포인트만 써보자. 과도한 대출은 신용불량자가 되는 지름길이니까.’
결정을 내린 나는 시스템 님에게 ‘해피 곰 포인트 100점’을 대가로 ‘고미와 둥기둥기 론’을 신청했다.
< 특수 스킬 - 고미와 둥기둥기 (Gomi)를 사용합니다. >
< 검의 달인(E)의 효과가 일시적으로 상승합니다. >
- 해피 곰 포인트 100포인트 차감 (잔여포인트 : 403)
- 10분간 검의 달인 스킬이 D등급으로 상승합니다.
스킬의 등급이 상승하자, 이강혁의 검술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조금 더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여유가 생겼구나. 힘도 빠졌고, 훨씬 부드러워진 느낌이야.’
전에는 전력으로 달리다가 멈출 때를 놓치는 느낌이었다면, 지금은 약간의 여유를 두고 달리며 원하는 때에 정확히 멈추는 느낌.
‘맺고 끊는 게 확실하다고 느껴진 건 그런 이유에서였나.’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고미에게 시선을 돌렸다.
딱히 기분이 나빠진 것 같지도 않고, 뭔가 변화가 느껴지지는 않는다.
부작용이 없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는 했지만, 세상에 100%는 없는 법이니까.
‘포인트가 좀 더 쌓이면 다시 실험을 해봐야겠군.’
그렇게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시스템 창을 닫았을 때, 이강혁의 검에 의해 ‘악어맨’의 목이 날아갔다.
“허수아비! 훌륭하구나!”
깐깐하기로 소문난 1타 강사님의 칭찬에 이강혁은 좋아서 어쩔 줄을 몰라 하며 얼굴까지 붉혔다.
음, 이제 원조 호구를 놓아줄 때가 된 것 같다.
이쯤 되면 ‘호구’가 아니라 ‘광신도’가 맞지.
좋아, 곰신교가 생긴다면 당신이 신도1 번이다.
아니, 통 크게 제사장 자리를 넘겨주지.
“여전히 흐물흐물거리는 검이지만, 지난번 위대한 이 몸의 곰기를 보고 무언가 깨달은 바가 있는 모양이구나! 훌륭하다!”
흐, 흐물흐물이라니······.
역시 고미의 눈에는 A급 몬스터를 1분 내로 썰어버리는 검술도 그 정도 수준으로밖에 안 보이는 건가?
“정말 감사합니다. 혹시 부족한 점을 여쭈어 봐도 되겠습니까?”
하지만 이강혁은 그 야박한 평가에도 전혀 굴하지 않고 눈을 빛냈다.
“너의 가장 큰 문제점은, 그릇이 작다는 것이다. 삼룡 어멈은 잘못된 방식으로 수행을 했음에도 너보다 강하지. 그릇의 크기가 다르니 낭비가 있어도 너보다 나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어지는 고미의 말에 이강혁의 얼굴에 처음으로 어두운 그늘이 드리웠다.
아무리 열심히 해도 타고난 재능을 이길 수 없다는 잔인한 선고.
그 말에 상처를 받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열심히 하면 할수록 좌절도 더욱 크겠지.
갑자기 무거워진 분위기에 한유진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못 들은 척 시선을 돌렸다.
“그럼 저는 여기서 끝입니까······?”
자기는 재능도 없고, 머리도 나빠 끝내 세 번이나 시간을 돌렸음에도 세상을 구하지 못했다는 이강혁의 말이 떠올라 더욱 가슴이 아팠다.
잠시 숲속에 무거운 적막이 깔리고,
“후후후······.”
고미가 다시 입을 열었다. 녀석의 입가에는 여느 때처럼 자신만만하다 못해 오만하기까지 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걱정하지 말 거라. 네 세 번의 삶은 결코 헛것이 아니었느니라. 위대한 이 몸을 만났으니 말이다.”
말을 마친 고미는 곧바로 ‘산신령의 보물’을 문질러 공간 통로를 열더니 그 안에 자신의 오른손을 쑥 하고 집어넣었다.
그러나······.
“응?”
동공이 흔들리고, 짤막한 꼬리가 갈피를 잃고 미묘하게 움찔거린다.
뭔가 잘못됐군.
멋있는 척을 하려다가 실패한 건가?
“이, 이게 아닌데······. 잠시만 기다리거라!”
당황한 고미는 민망한 듯 황급히 공간 통로 안으로 몸을 밀어 넣었다.
“이, 이익!”
평소라면 아장아장 걸어서 들어갔을 텐데, 좁은 곳을 지나듯 억지로 몸을 밀어 넣어 기어가는 것을 보니, 던전 안에서 공간 통로를 연 탓에 수다르의 동굴과 제대로 연결이 되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렇게 1분 정도의 시간이 흐르고,
“휴우······. 흠! 흠!”
손에 붉은색 단약을 든 고미가 식은땀을 닦으며 나타났다.
‘이렇게 당황하는 건 처음 보네.’
블랙 드래곤을 때려잡을 때도 땀 한 방울 안 흘리던 녀석이······.
“야, 야, 약속한 천도환이다! 이것으로 너의 그릇을 키울 수 있느니라!”
음, 말 더듬는 거 보소. 창피하구나.
어찌 됐든, 그 한마디에 시체처럼 텅 비어있던 이강혁의 눈에 다시 약간의 빛이 돌아왔다.
“하지만 이전 생에서 먹었을 때는······.”
“후후, 말하지 않았느냐. 이 몸은 신의를 아는, 전지전능한 곰이니라! 자, 어서 이것을 먹거라.”
이강혁은 조심스럽게 ‘업그레이드 천도환’을 받아 입안에 털어 넣었다.
천도환을 삼키는 그의 눈꺼풀이 긴장과 기대로 파르르 떨렸다.
‘음, 저건 무슨 맛일지 괜히 궁금해지네.’하는 쓸데없는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우우웅-
우웅-
기이한 소리와 함께 그의 몸에서 새하얀 빛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후후후, 그리고 수하. 너에게도 줄 것이 있다. 수다르가 횟값이라면 선물을 준비했더구나. 이걸 먹고 나면 너에게도 가르침을 주겠다.”
그때, 흡족한 표정으로 이강혁을 바라보던 고미가 나에게 두 개의 단약을 내밀었다.
하나는 빨간색······. 하나는······.
아, 나한테 왜 이러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