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아기곰이 너무 강함-66화 (66/300)

EP.66 초코바의 가치

벌렁-

“고, 고미!?”

손에 들린 초코바가 허무하게 녹아내리자, 고미는 아침 드라마에 나오는 재벌 집 회장님처럼 목덜미를 잡은 채 뒤로 넘어갔다.

“제르날!”

“이유찬!”

제르보나와 한유진이 사색이 되어 우리를 향해 달려왔다.

쿠웅······.

그와 동시에, 정체를 알 수 없는 묵직한 소리가 울려퍼졌다.

“네 이놈!”

그리고, 말릴 새도 없이 분노에 찬 고미의 목소리가 쩌렁쩌렁하게 울려 퍼졌다.

고미가 갑자기 사람 말을 하자, 한유진은 멍한 표정으로 나와 고미를 번갈아가며 바라봤다.

“역ㅅ······.”

반인반룡의 형상을 한 이유찬이 말을 채 끝내기도 전에, 그의 몸이 무언가에 맞은 것처럼 수직으로 튀어 올랐다.

“고미! 안 돼!”

“고미류, 결계술! 흑곰 덫!”

고미가 발을 구르자, 한유진의 저택 주위에 시커먼 돔 형태의 막이 생겨나고, 튕겨 나간 흑룡이 천장에 부딪히며 지진이라도 난 듯 저택 전체가 뒤흔들렸다.

- 크오오오!

이이서 갈색 솜뭉치가 번개처럼 하늘을 향해 튀어 오르고, 이유찬의 몸이 거대한 흑룡으로 변화해 포효했다.

‘뭐, 뭐야! 왜 이렇게 커!’

이유찬의 몸은 지금껏 보았던 것보다 수 미터는 더 컸고, 머리에는 평소처럼 두 개가 아니라 네 개의 은색 뿔이 돋아나 있었다.

“김수하 씨! 말려야 해요!”

어느 새 정신을 차리고 알틴을 안은 채 달려온 한유진이 사색이 되어 나의 팔을 붙잡으며 외쳤다.

······.

저걸요? 제가요?

“유진! 김수하! 움직이지 마!”

제르보나가 두 팔을 들어 올리며 우리의 주위에 핏빛 결계를 펼치고, 한유진의 품에 안긴 알틴은 계속해서 ‘삐이이’하는 소리를 내며 울어댔다.

- 크오오오오!

그 순간, 흑룡이 검붉은 화염을 토해냈다.

“초코바를 돌려내라! 이 도마뱀 놈!”

수십 미터는 떨어져 있는데도 피부가 타버릴 것 같은 열기.

하지만 고미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화염을 향해 몸을 날렸다.

쾅!

그리고는 검붉은 불꽃이 홍해처럼 갈라지며 흑룡의 ‘아구창’이 돌아갔다.

험한 표현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이건 정말이지, 아구창이라는 단어를 쓰지 않고는 형용하기 어려운 모양새였다.

-크, 크륵······.

“아직 한 입밖에 먹지 못한 것을!”

쿵······.

일격에 의식을 잃은 흑룡은 검은 벽에 등을 댄 채 그대로 바닥으로 추락했다.

‘으아, 초코바 때문에 흑룡을 두들겨 패다니······.’

그간 몇 번이나 ‘그깟 도마뱀 따위는 한주먹거리도 되지 못한다!’라고 말하는 걸 듣기는 했지만, 진짜로 한방에 블랙 드래곤을 보내버릴 줄이야.

고미의 수백 배에 달하는 크기를 가진 블랙 드래곤이 달달한 꿀주먹 한방에 기절해 버리는 모습에 제르보나와 한유진은 숨을 쉬는 것조차 잊은 듯 그대로 굳어버리고 말았다.

이윽고 흑룡에게 꿀잠(?)을 선사한 갈색의 솜뭉치가 ‘허곰답보’를 사용해 하늘을 계단처럼 걸어 내려왔다.

망했다······. 완벽하게 망했다.

설마하니 초코바를 건드리는 방식으로 고미를 도발할 것이라고는 상상조차 못 했다.

그것도 한유진은 스카우트를 제안하는데, 뒤에서 구경하던 흑룡 놈이 제멋대로 고미의 수염을 뽑는 것으로도 모자라 머리채를 쥐고 흔들어 버릴 줄이야······.

이해할 수 없는 것은, 한유진과 제르보나가 블랙 드래곤이 쥐어 터지는 장면을 보면서도 고미를 공격하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하지만 더욱 놀라운 일이 벌어졌으니······.

“역시 그대였군요. 위대한 수호자이시여.”

제르보나가 고미를 공격하기는커녕 무릎을 꿇으며 경의를 표한 것이다.

‘이게 뭔 일이래······.’

고미 역시 나와 마찬가지로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제르보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흥, 허튼수작 부리지 마라, 빨간 도마뱀.”

그러나 고미의 반응은 싸늘하기 짝이 없었다.

심지어 ‘흑곰 덫’도 아직 거두어들이지 않은 상태.

한유진이고 드래곤이고 이곳에서 내보내지 않겠다는 암묵적인 의사 표현이었다.

“허튼수작이 아닙니다.”

제르보나가 고개조차 들지 않은 채 조심스럽게 답했다.

나는 머릿속으로 지금까지 벌어졌던 사건을 정리해보았다.

처음 만났을 때, 두 용은 모두 고미를 뚫어지게 쳐다봤다.

내가 드래곤들을 계속 피해 다니려 했던 이유도 그거고.

이후 꾀병 작전 때는 이유찬은 계속해서 딴지를 걸었고, 제르보나는 알면서도 속아준 것 같은 행동을 취했다.

그리고 디저트 가게에 갔던 날, 고미가 평범한 곰이라는 걸 납득했었다. 적어도 한유진은.

‘대체 뭐야, 하나도 모르겠네. 고미를 찾았던 이유가 싸우기 위해서가 아니라면 왜 공격한 거지?’

결국, 답은 하나였다.

‘음, 서로를 이해하는 데는 역시 대화만한 게 없지!’

얼굴에 커다란 곰 발바닥 모양이 찍힌 채 기절해 있는 저 시커먼 물건은 제외하고.

대화에 참여하기에는 이미 고미의 꿀 주먹에 취해 인사불성이 되신 것 같으니까.

게다가 만약의 사태가 벌어진다고 해도 이 정도로 실력차가 나서야 음모고 뭐고 꾸미지도 못할 거다.

어쩌면 고미가 거짓말을 못 하는 이유도, 약간 맹한 이유도, 함정에 빠진다고 해도 힘으로 뚫고 나올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드는 장면이다.

말하자면, ‘몸이 좋으면 머리가 편하다’는 원리에 입각한 선택적 진화라는 거지.

“고미, 얘기는 좀 들어보자. 왜 이러는지.”

“흥! 내 초코바에 손을 댄 놈들과 무슨 이야기를 하느냐!”

초코바를 잃은 고미의 분노는 예상보다 훨씬 더 컸다. 이대로는 대화고 뭐고 시작도 불가능한 수준.

“고, 고미야.”

한유진이 자신을 달래려는 듯 조심스레 입을 열자,

“삼룡 어멈! 명심하거라! 네가 사준 디저트라는 것이 아니었다면, 저 검둥이는 진즉에 가루가 되어 사라졌을 것이다! 하지만 이 몸의 자비는 거기까지이니라!”

“사, 삼룡 어멈?”

충격적인 호칭에 한유진은 다리에 힘이 풀린 듯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 버렸고, 안겨있던 알틴은 ‘삐이이’하는 소리를 내며 한유진의 뺨을 핥아댔다.

“고미, 진정해. 대화로 해결하자, 대화로.”

나는 고미를 막아서며 한유진에게 전음을 보냈다.

[ 집에 단 거 없어요? 디저트 좋아한다면서요. 빨리 아무거나 가져와 봐요. ]

[ 아, 알겠어요. ]

자리에서 일어난 한유진은 황급히 몸을 돌려 집 안으로 달려갔다.

“고미, 그만해. 그만.”

나는 여전히 분을 참지 못하고 씩씩거리는 고미를 붙잡은 채 제발 맛있는 디저트가 있기를 간절히 기도했다.

으으, 애들 싸움 말리는 기분이긴 한데, 그 ‘애’가 드래곤도 한방에 때려눕히는 슈퍼 먼치킨이라는 게 문제다.

그나마 다행인 건, 고미가 힘으로 나를 뿌리치지는 않는다는 점. 이 녀석이 어떤 상황에서도 나를 다치게 하지는 않을 거라는 믿음이 없었다면, 이렇게 안을 엄두도 못 냈을 거다.

잠시 후, 온갖 디저트를 품에 한가득 안은 한유진이 정원으로 돌아왔다.

“수, 수하 씨. 이, 이거면 될까요?”

한유진이 머핀과 조각 케이크, 고급 수제 초콜릿을 비롯한 디저트를 내밀며 말했다.

“흥······. 삼룡 어멈, 네가 오늘 처음으로 이런 것들을 내놓았다면, 구차한 아부라 생각하여 절대 받지 않았을 것이다!”

고미는 그렇게 말하며 초콜릿 하나를 집어 들었다.

“자, 말해 보거라! 감히 이 몸의 초코바를 해친 것과 이 몸을 공격한 이유를 해명하지 못한다면, 너희들은 영원히 이 공간 속을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말을 마친 고미의 시선이 한쪽 무릎을 꿇은 채 고개를 숙이고 있는 제르보나에게 향했다.

“그리고, 저 검둥이의 불꽃에 의해 허무하게 사라진 초코바에게 진심으로 사죄하거라. 그러기 전에는 그 어떠한 이야기도 듣지 않을 것이다.”

으, 으음······. 이 녀석이 초코바를 좋아하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설마 이 정도로 애착을 가지고 있을 줄이야.

‘그래 봐야 1,000원 아니야?’라며 얕보고 있던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되는 초코바 사랑이다.

무슨 일이 있어도 절대 먹을 건 건드리지 말아야지.

그렇게 마음속으로 고미의 식탐에 경의(?)를 표하고 있는 사이,

“제르날의 행동으로 인해 사라진 초코바 공에게 애도를 표합니다.”

정말로 놀랍게도, 자존심 강하기로는 모든 몬스터 중 최고라는 드래곤이, 한낱 초코바에게 애도를 표했다.

-삐이, 삐이이!

뒤이어 꼬마 드래곤, 알틴도 미안하다는 듯 눈을 내리깔며 고개를 숙였다.

사과를 받았기 때문인지, 맛있는 것을 받았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조금 기분이 풀린 고미가 알틴과 제르보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흥, 이제 말해 보거라.”

“사실 저와 알틴, 제르날은 줄곧 고미 님을 찾고 있었습니다.”

“저기, 앞뒤가 안 맞는데요. 그럼 왜 고미를 공격한 거죠?”

제르보나가 기절한 블랙 드래곤을 바라보며 한심하다는 듯 혀를 차며 말했다.

“제르날은 저희 일족 중에서도 가장 자존심이 강한 전사입니다. 그래서 주군의 명에도 불구하고 감히 고미님의 힘을 시험해 보겠다고 나선 것입니다. 그 어리석음에 대한 대가는 이미 치른듯하니, 넓은 아량으로 용서해 주시기를 간청합니다.”

나의 질문에 답하는 제르보나의 말투는 어느새 고미를 대하는 것처럼 예의 바르게 변해있었다.

“당신은 생각이 다르다는 건가요?”

“고미님을 처음 보았을 때, 그 위엄이 넘치는 모습을 보고 저희가 찾던 수호자가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아직 확신이 없어 조금 더 상황을 지켜보려 했습니다.”

음, 위엄이 넘치는 외모는 아닌 것 같은데······. 게다가 죽은 척까지 하지 않았나······.

“흥, 어째서 도마뱀들이 나를 수호자라 부르는 것이냐? 나는 너희들의 적일 뿐, 수호자가 아니다.”

고미가 가소롭다는 듯 코웃음을 치며 되물었다.

“고미님, 저희 용족은 예전같이 오만하고 탐욕스러운 존재가 아닙니다. 아니, 그러한 본성에서 벗어나려 애를 쓰고 있다는 표현이 더 정확하겠군요.”

“나더러 그 말을 믿으라는 것이냐? 너희는 지상에 던전과 게이트가 생기기 이전부터 호시탐탐 인간계를 노려오지 않았더냐! 지금도 던전과 균열을 통해 인간계를 침략해 오고 있거늘!”

고미의 말은 확실히 일리가 있었다.

던전과 게이트가 생기기 전부터라는 이야기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여전히 던전이니 게이트에서 나오는 몬스터 중에 가장 위험하고 흉포한 게 용종(龍種)이니까.

즉, 인간계를 침공하는 이계의 생명체라는 점에서는 전혀 변화가 없다고 보는 게 타당하다.

“위대한 수호자이시여, 그것도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아니, 이 양반이 왜 자꾸 말을 바꾸는 거야.

변화하려 하고 있다며?

‘응?’

그때, 이 모순점을 해결해 줄 완벽한 답안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설마, 용족이 분열된 건가요?”

제르보나는 드래곤들이 인간계를 침략하고 있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인간인 한유진과 계약을 맺고 동족에게 맞서고 있었다.

이런 이상한 행동을 설명할 수 있는 방법은 단 한 가지, 용족이 인간을 수호하는 쪽과 공격하는 쪽, 둘로 분열되어 있다는 것뿐이었다.

“그렇습니다. 과연 고미님의 선택을 받으신 분, 참으로 현명하신 분이군요.”

으음······. 선택을 받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얼떨결에 집사, 아니, 가족이 되긴 했지.

“그러니까, 인간을 수호하는 쪽은, 고미와 아군이다. 이런 얘기인가요?”

제법 합리적인 추론이었지만, 정작 당사자인 고미는 그런 이야기는 들어본 적도 없다는 듯 맹한 표정으로 초콜릿을 까먹고 있었다.

당사자도 모르는 동맹이라니······. 그런 게 성립될 리가 없잖아.

“설마 이제 와서 고미에게 힘을 빌려달라고 손을 벌리는 건가요?”

‘아무리 적의 적은 아군이고, 인간을 지킨다는 면에서는 뜻이 맞는다고 해도, 이제 와서 갑자기 고미를 찾는 건 좀 뻔뻔하지 않나, 그것도 이렇게 일방적으로.’ 하는 생각에 저도 모르게 말투가 사나워졌다.

하지만 제르보나의 입밖에서 나온 말은 또다시 나의 상상력의 범주를 벗어나 있는 것이었다.

“아닙니다. 용족이 분열된 원인, 아니, 저희가 스스로를 돌아보게 된 계기를 주신 것이 바로 고미 님이시며, 고미님의 유지를 받든 위대한 존재가 저희의 수장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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