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아기곰이 너무 강함-65화 (65/300)

EP.65 오빠, 어제 뭐했어

“말씀하시죠.”

이강혁이 싱긋 웃으며 답했다.

“먼저, 그쪽도 죽지 않겠다고 약속해 주세요.”

뜻밖의 첫마디에 이강혁은 잠시 머뭇거리며 말을 잇지 못했다.

“내가 너무 우리 애들만 생각했네요. 우리 고미도 남의 자식 귀한 걸 아는데, 엄마가 돼서는······. 그러니까 이강혁 씨도 죽겠다느니 어쩌겠다느니, 그런 소리 하지 말고, 꼭 살아주세요.”

“참 좋으신 분이군요. 수하 씨가 누굴 닮아 그렇게 마음이 따뜻한지 알 것 같습니다.”

그의 목소리에는 누군가를 추억하듯, 약간의 그리움이 묻어났다.

“그리고, 애들이 어디 가는지, 일이 있어서 가면 간다, 언제쯤 돌아갈 거다 하는 것 정도는 말해주세요. 안 그러면 불안해서 못 살 것 같으니까. 수하랑 봉식이, 고미도 이건 꼭 지키고.”

우리 셋이 그러겠노라 답하자, 이강혁이 웃으며 입을 열었다.

“네, 그건 제가 직접 책임지고 보고 하겠습니다.”

“아니 그래도 사장님인데, 그렇게까지 할 거 있나.”

줄곧 입을 다물고 있던 아버지가 웃으며 말했다.

“아닙니다. 세 분은 저에게도 아주 중요한 분들입니다. 그래서 제가 직접 모시러 온 것이기도 하고요. 실은 헌터 일을 반대하는 부모님들이 꽤 많으시거든요. 화목한 집안일수록 더욱 그렇고요. 그래서 대충 이런 분위기 일거라고 예상은 했습니다.”

“고마워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아이 참, 이 사람이, 뭐 이렇게 부탁이 많아.”

아버지가 핀잔을 주었지만, 어머니는 단호한 얼굴로 다시 입을 열었다.

“가게 문제는, 우리 애들이랑 별개로 우리가 벌어서 갚을게요.”

“아, 그 문제는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어차피······.”

“아뇨, 이건 부모로서 가져야 할 최소한의 책임감이에요. 지금 당장은 돈이 없지만, 꼭 벌어서 갚을 테니까, 혹시 애들하고 이걸로 계약한 게 있으면 그건 빼주세요.”

어머니의 제안에 이강혁은 말없이 나와 고미의 눈치를 살폈다.

이미 나하고 이야기를 마쳤으니, 나에게 결정을 맡기겠다는 의미인 것 같았다.

“그럼 보증금하고 권리금은 제가 그냥 받을게요.”

어머니의 고집을 꺾을 수 없다고 생각한 나는 그냥 그 돈을 현금으로 받기로 했다.

어차피 집도 필요하니, 지금 가지고 있는 현금에 그 돈까지 합쳐서 집을 사면 되겠지.

‘가게 새로 얻으면 그 근처에 얻는 게 좋겠다. 그럼 문제가 생겨도 금방 갈 수 있으니까.’

다시는 유령 게이트 때 같은 일이 벌어지지 않으려면, 가게와 집이 가까운 편이 좋겠지.

이걸로 부모님의 안전에 대한 걱정도 덜었다.

어머니의 허락을 받고 나자, 고미가 짤막한 꼬리를 신나게 흔들며 입을 열었다.

“후훗, 엄마는 너무 걱정이 많구나. 이 몸과 함께 한다면 걱정할 일이 없느니라!”

“그러게, 그런데 엄마는 아직도 고미가 그렇게 강하다는 게 믿어지지가 않아요.”

어머니가 고미의 볼을 가볍게 꼬집으며 말했다.

“어제 나타났던 그 괴물 놈도 사실 위대한 이 몸이 힘을 빌려주어 물리친 것이다! 이 몸이 직접 손을 썼다면 그놈은 한방에 끝이 났을 것이다!”

신이 난 고미는 솜방망이를 붕붕 휘두르며 헤실헤실 웃음을 흘렸다.

“도착했습니다. 한번 보시죠.”

이강혁이 차를 멈추며 말했다.

그가 우리에게 보여준 첫 번째 가게는······.

커도 너무 컸다.

테이블 숫자는 얼핏 보기에도 50개 이상, 여기에 가게를 연다면, 점원을 열은 써야 간신히 돌아갈 수 있는 수준이었다.

“으음······.”

상상을 초월하는 넓이에 아버지와 어머니는 당황한 듯 어찌할 바를 몰라 했다.

여긴 아니겠군.

“가게가 마음에 들지 않으십니까?”

이강혁의 물음에 어머니는 어색하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가게는 좋은데, 너무 커서······. 저희는 항상 작게만 했었거든요. 장사가 얼마나 될지도 모르는데 무턱대고 큰 곳에 가게 내기도 좀 그렇고.”

“이렇게 크면 수족관 관리도 어렵고, 직원도 너무 많이 써야 하는 데다가, 물건 대기도 어렵지. 회는 재료가 반인데 고기 관리 안 되면 맛도 없어질 거고.”

아버지 역시 어머니와 생각이 같은 모양이었다.

평소에는 조금 철이 없어 보이고 장난기가 넘치지만, 요리와 장사에 대해서만큼은 한없이 진지하고, 나름대로 내공이 있는 분이 아버지다.

그러니 갑자기 이렇게 큰 곳에서 장사를 하게 되면 생길 여러 가지 문제에 대해 고민도 해보지 않고 덥석 장사를 시작하실 리가 없지.

“조금 더 작은 곳은 없을까요?”

물론, 아버지나 어머니나, 돈 욕심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장사를 오래 한 만큼, 내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많은 문제에 대해 고려하고 내리신 결정이겠지.

결국 우리는 나머지 두 개의 건물을 돌아본 끝에, 이강혁이 본래 내주려던 곳이 아니라 그 옆에 붙어있던 작은 곳을 선택했다.

“이 정도가 딱 좋네. 테이블은 한 열 개 들어가려나?”

그렇게 가장 작은 곳에 가게를 내기로 결정을 내리자, 고미가 실망스러운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어째서 이런 작은 곳을 선택한 것이냐······. 위대한 이 몸의 엄마 아빠라면, 처음에 갔던 그 웅장한 곳을 선택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느냐······.”

재료 관리부터 시작해서 테이블 회전률, 마진, 직원 교육이나 품질 관리까지······. 그 어려운 것들을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을 때,

어머니가 한마디로 상황을 정리했다.

“으음, 그런데, 그렇게 큰 곳에서 장사하면 우리 예쁜 고미가 밥 먹으러 와도 엄마 아빠가 같이 밥을 먹을 수가 없는데?”

“!!!”

“게다가 손님이 너무 많으면, 우리 고미랑 가족 회식도 못 하고, 맛있는 것도 못 해줄 거야. 산신령님이 놀러 오기도 어려울 거고. 그래도 고미는 큰 곳이 좋아요?”

이어지는 확실한 마무리에 고미는 언제 그랬냐는 듯 세차게 고개를 내저었다.

“아니다! 생각해보니, 그렇게 큰 곳에 사람들이 모여들면 엄마 아빠가 얼마나 피곤하겠느냐! 여, 역시 작······. 작은 곳도······.”

음, 차마 작은 곳도 좋다는 말을 확실히 끝맺지는 못하는군. 고미답다.

새로운 가게의 위치는 저스티스의 건물과 그리 멀지 않은 곳이었다. 게이트나 던전이 열려도 A급 헌터라면 몇분내에 도착할 수 있는 위치.

세 군데 모두 그 정도 범위 내에 있었으니, 아마도 우리 가족의 안전을 고려한 조치인 것 같았다.

‘참, 여러모로 세심한 사람이네.’

그렇게 이강혁과 부모님이 인테리어나 리모델링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

깨톡.

‘신종 호구’에게서 깨톡 메시지가 도착했다.

└ 저한테 할 얘기 없으세요?

뭐냐 이 ‘오빠 나한테 할 얘기 없어?’의 변형판 같은 소름 돋는 메시지는.

└ 무슨 얘기요?

나는 벌렁거리는 심장을 부여잡고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답신을 보냈다.

얼굴 마주 보고 이 얘기 들었으면 동공 지진 나고 난리 났을 텐데, 다행이네.

└ 있으실 것 같은데. 어젯밤 일로.

└ ?

└ 어젯밤, 패왕 길드에 나타난 복면 히어로의 정체는 무엇일까요~! 60초 후에 공개됩니다!

이, 이 여자가 미쳤나.

└ 잘 생각해 보세요. 제가 해코지라도 할 거면 이렇게 따로 메시지를 보내겠어요? 김춘식처럼 갑자기 사람을 보내든 하겠죠.

└ 제가 딱 두 시간 드릴게요. 그때까지 고미랑 같이 우리 집으로 오세요. 아니면 저 상처 받아서 갑자기 심경 인터뷰 이런 거 할지도 모르니까.

환장하겠네.

어젯밤에는 잠잠하다가 왜 이제 와서 이러는 거야.

[ 고미! ]

나는 잽싸게 전음으로 고미를 불렀다.

[ 왜 그러느냐? ]

[ 한유진 씨 만나러 가야 할 것 같아. ]

[ 갑자기 삼룡 어멈을 왜 만나느냐? ]

[ 삼룡 어멈이 우리 정체를 알아챈 것 같아. ]

[ 흥, 그래봤자 제까짓 게 뭘 어쩔 수 있겠느냐? ]

고미가 가소롭다는 듯 콧방귀를 뀌며 답했다.

[ 우리 정체를 기자들에게 알린다고 했어. ]

[ 기자? 그것이 무엇이냐? ]

[ 아침에 엄마한테 혼났던 거, 그거보다 두 배는 더 혼난다는 소리야! ]

두 배라는 말에 고미는 새파랗게 질려 번개처럼 나에게 달려왔다.

[ 어, 어서! 어서 가자! ]

* * *

이후 나와 고미는 봉식이와 이강혁 씨에게 부모님을 맡긴 뒤 황급히 택시를 타고 한유진의 집으로 향했다.

그리고, 정확히 1시간 하고도 13분 만에 한유진의 집 대문 앞에 도착했다.

황급히 벨을 누르자, 처음 한유진의 집에 방문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이유찬이 문을 열어주었다.

“오셨군요. 들어오시죠.”

나와 고미를 보는 눈이 예사롭지가 않다.

이거, 망한 거 같은데.

[ 고미, 만에 하나 싸움이 벌어지면, 용 세 마리 제압 가능해? ]

[ 걱정 말거라. 내 삼룡 어멈의 정성이 갸륵해 힘을 쓰지 않은 것일 뿐, 도마뱀 세 마리쯤은 한주먹에 끝낼 수 있느니라. ]

갑자기 습격을 하지 않고 정중히 집으로 부른 것을 보니 나쁜 의도는 없겠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드래곤과의 일전은 최대한 피해보려 했지만, 지금은 최악의 상황도 상정해야 한다.

[ 그래도 절대 먼저 공격하지는 마. 알았지? ]

[ 걱정하지 말거라. 섣불리 움직이지는 않겠다. 더이상 엄마에게 혼나고 싶지는 않으니 말이다. ]

음, 용 세 마리의 목숨이 어머니의 말 한마디에 달려있다니, 실로 굉장하군.

대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자, 한유진이 싱긋 웃으며 나를 맞았다.

“어머, 진짜 두 시간 내로 오셨네요?”

이유찬과는 정반대로 아주 호의적인 반응. 대체 뭐지?

“하하, 고미가 한유진 씨를 많이 보고 싶어하는 것 같아서요.”

너스레를 떨며 주위를 둘러보자, 처음 만났던 날과 마찬가지로 정원에 앉아 차를 마시고 있는 제르보나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김수하, 어제 일은 고마웠다.”

눈이 마주치자, 제르보나가 태평한 목소리로 감사 인사를 건넸다.

“그래요, 나도 고마웠어요.”

한유진이 싱긋 웃으며 말했다.

아주 확정적으로 얘기하는군.

분위기 보니 무슨 변명을 해도 씨알도 안 먹히겠네.

“감사 인사를 굉장히 무서운 방식으로 하시네요. 그냥 깨톡으로 하셨어도 충분할 텐데.”

“하하, 단순히 감사 인사만 할거면 굳이 여기까지 오라고 했겠어요?”

“그럼 왜 오라고 하신 건데요.”

나의 날 선 반응에 한유진은 걱정하지 말라는 듯 커피 한잔을 내밀었다.

“그냥 얘기를 좀 하고 싶어서요. 장래가 촉망되는 신인 스카우트도 좀 할 겸.”

뭐야, 내 정체는 눈치챘지만, 고미가 숨어 있었다는 것까지는 모르고 있는 건가?

하긴, 상태창을 조작할 수 있다는 걸 알지 못하는 이상, 고미를 의심할 수는 없겠지.

마음이 너무 급해서 그런 간단한 사실조차 잊고 있었다.

“그리고, 그 이상한 마력은 누구 능력이죠? 김수하 씨는 C급 아니었나요? 덩치? 검사? 아니면 서포트 능력자가 따로 있었던 건가요? 세 분인지 네 분인지는 몰라도, 전원 스카우트 하고 싶은데.”

고미의 버프 덕에 이강혁의 정체도 알아보지 못한 모양이다. 원래 그는 어제 사용한 것 같은 새하얀 검기를 쓰지 못 하니까.

‘이 사람, 어지간히 해태 눈이네. 그러면서 나만 알아본 거야?’

하지만 안도의 한숨을 내쉬기도 전에, 등 뒤에서 으스스한 한기가 느껴졌다.

고개를 돌려보니 이유찬이 나와 고미를 섬뜩한 눈으로 노려보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심지어 눈동자는 이미 인간의 그것이 아니라 드래곤의 형상을 취하고 있었다.

“제르날. 그만해.”

제르보나가 자리에서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생각해보니 처음 만났던 날도 이랬지.

이유찬은 계속 우리를 의심했고, 제르보나는 알면서도 넘어가 주고······. 둘이 생각이 다른 건가?

“김수하, 연기는 그만하지.”

이유찬의 몸이 조금씩 부풀어 오르며 머리에서 은색의 뿔이 돋아나며 그의 은회색 눈동자가 섬뜩한 빛을 발했다.

하지만 정작 고미는 관심도 없다는 듯 열심히 초코바를 할짝이고 있을 뿐 이었다.

“솜뭉치, 언제까지 날 속일 수 있다고 생각하나?”

그 순간, 반인반룡으로 변한 이유찬의 손가락에서 실 같은 검은 화염이 뿜어져 나가 고미의 초코바를 녹여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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