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아기곰이 너무 강함-64화 (64/300)

EP.64 엄마 마음은 그렇지가 않다

[ 수, 수하······. 도와다오. ]

공포로 물든 초롱초롱하고 커다란 눈망울이 나를 향하는 순간,

< 긴급 퀘스트 발생 >

< 고미를 도와줘! (2) >

- 고미가 도움을 요청합니다. 위대한 곰이 도움을 요청하는 것은 매우 드문 일입니다. 빠르게 고미를 위기에서 구해주세요.

< 달성 조건 >

- 엄마의 꾸지람에서 고미를 지켜주세요.

< 달성 보상 >

- 능력치 강화 (+7), 히든 칭호 강화 (위대한 고미의 훌륭한 조력자)

아니야, 이건 무리야. 이건 불가능한 퀘스트야.

“고미, 말해 봐. 어디 숨어 있었니?”

“이, 이 몸은······.”

고미의 구슬같은 두 눈이 촉촉하게 젖어 들었지만, 냉혹한 공포의 군주는 심문을 멈추지 않았다.

“이, 이 몸은······. 숨은 것이 아니다!”

글렀어······.

저기에 있긴 있었다는 소리잖아.

“위대한 곰은, 악당을 앞에 두고 절대 숨지 않는다!”

“그러니까 우리 위대한 고미 님께서 저기 있기는 있었다는 소리네?”

안돼, 이대로 두었다가는 등짝 스매싱을 당한 다음 죄다 집안에 봉인 당하고 말 거다.

“아니, 엄마 그런 게 아니라, 어제 우리는 집에서 김치 볶음밥 해먹었어.”

“그렇다! 수하가 치즈 김치볶음밥이라는 걸 해주었느니라! 고, 고소하고 살짝 매콤하고 달콤하고, 그, 굉장했다!”

나는 곧바로 고미의 말을 받아 우리의 알리바이를 입증할 물건이 뭐가 있는지를 언급했다.

“그래, 냉장고에 재료도 좀 남아있고, 재활용 통에 스팜 캔도 있고, 한번 확인해 봐. 어제 집에서 얌전히 밥해 먹었다니까.”

그 변명에 어머니는 증거를 확인해 볼 필요도 없다는 듯 생긋 웃음을 지었다.

“그래, 김치볶음밥 해먹은 건 싱크대 보니까 알겠더라.”

“그, 그렇다! 우리는 김치볶음밥을······.”

“제대로 치우지도 않고 잔 걸 보니까 엄~청 피곤했던 것 같던데, 왜 피곤했을까?”

아, 안돼. 벗어날 수 없어.

이런 얄팍한 수작으로는 엄마를 속일 수 없다고!

“이 몸은 피곤하지 않았다! 그런 한주먹······.”

아, 아아······. 고미, 그렇게 말해버리면······.

게임 오버. 너무나도 허무한 게임 오버였다.

고미 역시 자신이 무슨 실수를 했는지 깨달았는지, 솜털이 보송보송 돋아난 손으로 입을 틀어막고 공포에 질린 표정으로 어머니를 바라보고 있었다.

“어, 엄마. 진정하고, 내 얘기를 좀······.”

“넌 형이 돼서, 저런 위험한 게 나왔으면 애 데리고 도망갈 생각부터 해야지, 뭘 잘했다고!”

“어, 어머니 고정하시고······.”

“봉식이! 너는 저게 뭔 줄 알고 앞장서서 주먹을 휘둘러 휘두르길!”

어머니는 어제저녁 초월자의 빙의체를 퇴치한 슈퍼히어로셋을 상대로도 전혀 밀리지 않으셨다.

아니, 굳이 따지자면 우리의 일방적인 패배.

< 퀘스트가 실패했습니다. >

시스템 창에 우리의 패배를 확정해주는 듯한 메시지가 떠오른 순간,

띠리리링-, 띠리리링-.

한 줄기 광명과도 같은 전화벨 소리가 울렸다.

“어, 엄마. 전화 왔다 전화. 전화 받고 얘기해요.”

나는 손을 들어 잠시 휴전을 요청한 뒤 곧바로 전화를 들었다.

설마 교양있는 우리 고옥분 여사께서 통화 중에 호통을 치지는 않으시겠지.

“여보세요.”

“아, 수하 씨. 접니다.”

“네, 그렇지 않아도 연락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래, 정말 간절히 기다렸다. 제발 살려줘요.

“지금 모시러 가도 되겠습니까?”

“네, 알겠습니다.”

통화를 마치자, 어머니가 매서운 눈으로 나를 쏘아보며 물었다.

“그 건물주 분이시니?”

“응, 지금 오겠대.”

“건물주가, 세입자를 모시러 온다고?”

으으, 또다시 엄마의 날카로운 촉이 발휘되는 것 같다.

“음, 혹시 어제 칼 들고 같이 싸우신 분이 그 건물주니?”

[ 수, 수하! 엄마는 어떻게 저렇게 예리한 것이냐!? 사실은 엄마도 이능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냐!? ]

말을 마치기 무섭게 경악에 찬 고미의 목소리가 머릿속에 울렸다.

“설마 엄마 아빠 가게 해준다고 하고 너네한테 저런 위험한 일 시키는 건 아니지?”

이어지는 어머니의 질문에 가만히 상황을 관망하고 있던 아버지도 인상을 찌푸렸다.

“아니야, 그런 건 진짜 아니야. 일단 이강혁 씨 오면 얘기하자. 응?”

“이강혁?”

이강혁의 이름이 나오자, 아버지의 표정이 묘하게 변했다.

“아는 사람이에요?”

“아, 기억 안 나? 가끔 뉴스 나오는 칼 차고, 당신이 영화배우 같이 생겼다고 말한 그······.”

“아!”

‘역시 어른들 눈에는 티비 나오는 사람이 신뢰도가 높긴 하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드는 대화.

그래, 어쩌면 아직 희망이 남아 있을지도 모른다.

“이강혁이 어제 그 칼 휘두르던 사람이고, 건물주야?”

“네네, 강혁이 형이 우리 길드장이고······.”

봉식이가 우물쭈물 어머니의 눈치를 살피며 답했다.

“길드? 기일드!? 너네 벌써 그런데 들어갔니!?”

어머니가 빽하고 소리를 지르자, 아버지가 자리에서 일어나 어머니를 진정시켰다.

“여보 진정해. 당신도 저렇게 잘 생기고 훌륭한 총각 부모가 누구냐고, 애를 어떻게 키운 건지 궁금하다고 했었잖아.”

“그거야 남의 자식일 때 얘기지! 우리 애들이, 하나도 아니고, 셋이나 언제 죽을지 모르는 일 하겠다는데!”

엄마의 말에 무언가 반박을 하고 싶었지만,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가족 앞에서, 그것도 가족이 세상 전부인 어머니가 자기 자식을 걱정해서 하는 말을 야박하다고 탓할 수 있겠는가. 그것도 자식인 내가.

“어, 엄마는 잘못됐다!”

그 순간, 뜻밖에도, 고미가 엄마의 말을 반박하고 나섰다.

“어제 우리가 나서지 않았다면, 삼룡 어멈의 엄마와 아빠는 틀림없이 슬퍼했을 것이다!”

“삼룡 어멈? 그게 누구니······?”

“나에게 맛있는 것을 사준 여인이다!”

으음······. 대화의 흐름이 약간 이상하지만, 일단 지켜보자.

“나는 엄마 아빠가 없었지만, 이제 있다! 그러니까 알 수 있다! 엄마가 나를 막는다면, 그래서 사람들이 죽는다면, 다른 엄마들은 슬플 것이다!”

어휘력은 조금 부족하지만,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는 정확히 전해졌다.

“나는 가족들을 걱정시키고 싶지 않지만, 그것을 위해 다른 가족들을 슬프게 만들고 싶지는 않다!”

고미의 말에 집안에는 잠시 정적이 맴돌았다.

“이 몸은! 엄마 아빠가 좋다! 수하도, 봉식이도, 허수아비도, 모두 좋다! 다른 인간들도 좋아하는 인간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인간들은 이 몸처럼 위대하지 못하니, 이 몸이 지켜주지 않으면 안 된다!”

어머니는 말없이 입술을 앙다문채 고미를 바라봤다.

띵동, 띵동.

그리고, 벨소리가 울렸다.

“일단 손님 오셨으니까, 내려가 여보. 응? 이 얘기는 이따 다시 하자.”

아버지가 자리에서 일어나 후다닥 상을 치우며 말했다.

“······. 알았어요. 일단 내려가요.”

어머니는 고민에 빠진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며 주섬주섬 핸드백과 핸드폰을 챙겼다.

그리고는 냉장고를 열어 고미의 간식 몇 가지를 가방 안에 집어넣었다.

* * *

오늘 이강혁이 몰고 온 것은 평소 타고 다니던 세단이 아니라 SUV였다.

나와 고미, 부모님, 봉식이까지 함께 이동해야 하니 큰 차를 몰고 온 모양이었다.

이동하는 내내 차 안에는 어색한 정적만이 가득했다.

어머니는 한마디도 하지 않고 골똘히 생각에 잠겨 있었고, 아버지도 평소와 달리 농담 한마디 없이 고민에 빠진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이강혁 역시 그런 분위기를 읽었는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차를 몰았다.

그렇게 10분 정도가 지났을까, 마침내 어머니가 먼저 입을 열었다.

“이강혁 씨, 왜 가게를 내주려는 거죠?”

“곰 선생님과 수하 씨, 봉식 씨, 셋 모두 대단히 중요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어머니의 목소리는 평소와 달리 날이 잔뜩 서 있었지만, 이강혁의 태도는 담담하기 짝이 없었다.

‘으, 제발 대답 잘해줘라.’

사실 어머니를 설득하는 일은 나에게는 불가능한 일이나 다름이 없다.

똑같은 말이라도 가족이 하는 말은 받아들이기 어려울 때가 많고, 내가 뭐라고 말하든, 어머니는 절대로 안 된다고 말 하실 테니까.

그래서 나는 처음부터 이강혁에게 설득을 맡기려고 생각했었다. 같은 메시지라도, 누가 말하느냐에 따라 받아 들이는 게 달라지는 법이니까.

사실 일신의 무력으로 따지자면 문경준과 한유진, 둘 모두에게 밀리는 사람. 그게 이강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스티스를 용왕, 패왕과 어깨를 나란히 할 만한 조직으로 키워낼 수 있었던 것은, 그가 그만큼 능력 있는 인재들을 끌어모을 줄 아는 사람이었기 때문이었다.

싹수가 있는 인재를 미리 알아보는 건 회귀 덕분이라 쳐도, 그 사람을 끌어들이는 것은 온전히 그의 능력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면에서는 나보다 훨씬 경험도 많고, 이미지도 워낙 좋으니까.’

한유진은 안티도 많고 팬도 많지만, 이 사람은 안티가 거의 없는, 헌터계의 유지석이나 다름없는 사람이다.

나도 지리산에서 처음 그를 봤을 때, ‘그’ 이강혁이 던전의 보상을 노리고 눈이 벌게졌다는 사실을 믿지 못했으니까.

그런 이미지 관리도 모두 인재영입을 위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전문성과 경험, 높은 사회경제적 지위, 긍정적인 이미지를 겸비한, 설득력 있는 메신저라는 것만큼은 분명하다.

“곰 선생님이요?”

어머니가 이강혁이 고미를 부르는 호칭에 의아함을 느낀 듯 되물었다.

“설마 부모님께서는 곰 선생님에 대해 모르시는 건가요?”

이강혁이 나에게 되물었다.

“아뇨, 대충은 알고 계세요.”

“그런데 뭐가 문제죠?”

이강혁의 무심한 말투에 어머니의 목소리가 조금 높아졌다.

“고미가 아무리 강하다고 해도, 어떻게 그런 흉악한 몬스터들을 상대할 수 있겠어요?”

“어머님, 정말 죄송하지만, 곰 선생님에 대해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계시는 것 같군요.”

하지만 이강혁은 한결같이 담담한 말투로 말을 이어나갔다.

“저도 한국에서는 손가락에 꼽는 실력을 가진 헌터입니다. 그런 제가 곰 선생님의 이름조차 함부로 부르지 못하는 데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는 것 아닐까요?”

“하지만 아무리 강하다고 해도, 전혀 안 위험한 건 아니잖아요. 너무 이기적인 거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지만, 애 셋이 전부 언제 죽을지 모를 직업을 가지게 된 부모가 어떤 기분일지······.”

“그럼, 헌터 일을 안 하면, 안전하게 살 수 있는 겁니까? 어머님께서는 헌터 일을 하셨기 때문에 사고를 당하셨나요?”

냉정하지만, 상당히 예리한 질문, 이런 말도 할 줄 아는 사람이었구나 싶다.

아니, 원래 이런 사람인데 그간 고미 앞에서는 이런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는 게 맞겠지.

“곰 선생님은 특별합니다. 수하 씨도, 봉식 씨도 마찬가지죠. 이런 사람들은 언제까지 세상의 눈을 피해서 살 수 없습니다.”

“하지만······.”

“어머니도 아시겠지만, 게이트와 던전이 언제 어디서 열릴지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습니다. 앞으로 세상은 더욱 혼란해질 거고요.”

어머니는 이강혁의 말에 반박하지 못하고 입을 다물어 버렸다.

“세 분의 특별함이 드러나면, 다른 길드에서도 세 분을 노릴 겁니다. 영입할 수 없다면 제거하려는 조직도 있겠지요. 적어도 제가 아는 이 바닥의 룰은 그렇습니다.”

이 대목에서 잠시 뜸을 들인 이강혁이 차분한 목소리로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런 상황에서, 아무런 정보도, 도와줄 조직도 없이 세 분이서 모든 걸 헤쳐나가게 두실 생각입니까?”

“당신이 우리 애들을 도와주겠다는 건가요?”

“네, 적어도 제가 죽기 전에 세 분이 먼저 죽는 일은 없도록 하겠습니다. 사실 곰 선생님이 당할 수 없는 적이 나타났다면, 한국은 이미 지도에서 사라지고 없겠지만요.”

이강혁의 답을 들은 어머니는 잠시 말없이 우리를 바라보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럼, 몇 가지만 약속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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