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61 아동 교육에 좋지 않으니 참교육은 자제해 주세요
“무슨 소리야 그게.”
나의 질문에 봉식이는 아무런 답도 하지 않았고,
뚝-
갑자기 전화가 끊어졌다.
“야, 민봉식! 민봉식!”
차창 밖을 바라보니 이미 패왕 길드의 건물이 보이는 위치까지 도착해 있었다.
하지만 퇴근 시간이라 차가 막히기 시작해 차라리 뛰어가는 게 빠를 것 같았다.
“아저씨, 여기서 내려 주세요.”
택시에서 내린 나는 곧바로 고미에게 청심환을 부탁했다.
“고미! 청심환!”
[ 알겠느니라! ]
우웅-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고미의 젤리에서 푸른 빛이 뿜어져 나오며 가슴에 젤리 원자로가 생겨났다.
탓, 발바닥이 땅을 박차고, 엄청난 풍압이 앞을 가로막는 것이 느껴진다.
축기를 성공해서 그런지 젤리 원자로의 출력도 더욱 강해졌고, 내 몸도 더욱 빨라져서 속도는 이전에 비할 바가 못 됐다.
그야말로 바람의 벽이라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엄청난 저항.
[ 수하,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다. 너의 기(氣)로 앞을 가로막는 바람을 흘려보내라. ]
“그, 그······.”
계속해서 몰려오는 바람에 말조차 할 수가 없었다.
아, 나 전음할 수 있지.
[ 그게 어떻게 하는 건데? ]
[ 물살을 가른다고 생각해도 좋고, 막을 만들어 바람을 흘려보낸다고 생각해도 좋다. ]
고미의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유선형의 원리를 떠올렸다.
물살을 가른다는 이미지는 잘 잡히지 않으니까, 대충 유선형의 막을 만든다고 생각하면······.
그렇게 기를 움직여 어설프게나마 유선형의 막을 만들자,
< 고미의 가르침으로 인해 새로운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
간만에 메시지가 떠올랐다.
< 새로운 스킬을 습득합니다. >
< 허곰답보 (D) >
- 위대한 곰의 발걸음은 대지를 울리고, 바람을 가르며, 그 움직임이 절정에 이르면 하늘을 땅처럼 걸을 수 있게 됩니다. 스킬의 등급이 올라갈수록 더욱 가볍고 빠르게 움직일 수 있습니다.
- 비고 : 고미류 기공술 습득 후 사용 가능.
“켁!”
너무나 어처구니없는 네이밍에 잠깐 집중력이 흐려지자, 눈앞에 만든 유선형의 기막이 흐트러지며 바람이 정면으로 나를 덮쳤다.
“콜록, 콜록!”
[ 수하! 집중력을 유지하거라! ]
허곰답보라니, 어떻게 집중력을 유지하냐.
“아, 알았어. 가자!”
나는 마음을 가다듬고 젤리 원자로의 동력이 끊길 때까지 전력으로 내달렸다.
그리고 가슴팍에 새겨진 곰 발바닥 모양의 푸른 빛이 사라지는 순간,
믿을 수 없는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육안으로 확인하기에는 제법 먼 거리였지만, 감각 강화 스킬 덕분에 무리 없이 상황을 확인할 수 있었다.
무협지를 보면 내공이 쌓이면 오감이 예민해진다고 하던데, 감각 강화 스킬의 레벨이 그대로인데도 시야가 더욱 넓어진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뭐야 이게?’
지금 패왕 길드 건물의 앞마당에서는 봉식이 못지않은, 아니, 그보다 머리 하나는 더 달린 거구의 사내가 터벅터벅 걸어 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앞에는 익숙한 얼굴의 사내 하나가 기이한 각도로 뒤틀린 자신의 오른팔을 붙잡은 채 새파랗게 질려 달아나고 있었다.
“춘식아. 일 복잡하게 만들지 말고 이리 와라. 그렇게 도망간다고 될 일이 아니다. 내가 널 못 잡아서 이러는 것 같으냐?”
‘문경준.’
걸어 다니는 산이라는 별명이 붙어있는 S급 강화 능력자, 패왕 길드의 길드장, 문경준.
대인전으로 이강혁을 찍어 누를 수 있다는 몇 안 되는 헌터이자, 사실상 일신의 무력만으로 4대 길드의 한 축을 담당하는 조직을 키워낸 인물.
‘그런데 왜 한유진이 아니라 문경준이 김춘식을 조지고 있어?’
한유진이 곧바로 김춘식이 자신에게 이상한 거래를 제안했다는 걸 말해버린 건가?
그래서 격분한 문경준이 직접 김춘식을 처리하려고 하는 거고?
“이 개새끼가, 키워준 은혜를 몰라주고 내 뒤통수를 치려고 들어?”
쩌렁쩌렁하게 울려 퍼지는 문경준의 목소리에 나는 내 직감이 맞았음을 확신했다.
이어서 패왕 길드 건물에서 수십에 달하는 헌터들이 줄줄이 튀어나와 김춘식의 퇴로를 끊었다.
“그런데, 우리 춘식이가 이렇게 빨랐나?”
“으으, 혀, 형님! 용서해 주십시오! 제가 다 해명하겠습니다!”
형님이라니, 조폭이냐.
“춘식아. 창문 깨고 달아난 순간부터 넌 나한테 신뢰를 잃은 거야. 게다가 몇 달 새에 실력이 이렇게 는 걸 보면 나한테 감추는 게 있는 모양인데?”
“아, 아닙니다! 형님! 제발!”
김춘식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거대한 바위 같은 그림자가 엄청난 속도로 이동해 김춘식의 앞에 나타났다.
“날 따돌릴 수 있을 거라고 믿은 거냐? 빌딩 수리하기 싫어서 달아나게 놔뒀더니 이게 아주 사람을 알로 보네.”
문경준이 발을 구른 곳에는 폭탄이 터진 것처럼 커다란 구덩이가 생겨나 있었다.
“컥!”
말을 마친 문경준은 가소롭다는 듯 김춘식을 들어 올려 가볍게 내던졌고, 엄청난 소리와 함께 시커먼 덩어리가 포탄처럼 날아가 바닥을 부수며 저만치 멀리 굴러갔다.
‘으아아, 살벌하다. 죽은 거 아니야?’
아무리 그래도 한유진이랑 던전 한번 같이 돌자고 했다고 저렇게까지 하나······.
“형, 이거 우리가 손 안 써도 되겠는데?”
그렇게 처음 보는 생생한 폭력의 현장(?)에 놀라 있을 때, 저 멀리서 봉식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에 나는 곧바로 살곰살곰을 활성화하고 두 사람에게 다가갔다.
“어!? 너 언제 왔냐.”
가까이 가서 어깨를 두드리자, 봉식이가 나를 바라보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네가 하도 난리를 피우니까 전쟁이라도 난 줄 알고 왔지.”
“수하 씨, 오늘 한유진을 만나서 무슨 얘기를 하신 겁니까?”
나는 두 사람에게 오늘 한유진을 만나 나누었던 이야기를 전해 주었다.
중간에 김춘식이 사람을 보냈다는 이야기는 일부러 생략했다. 그 얘기 꺼내면 봉식이가 김춘식 죽이겠다고 길길이 날뛸 거 뻔하니까.
‘이강혁 씨도 어쩔지 모르고······. 이 사람도 은근히 정 많으니까.’
이런 상황에서 봉식이나 이강혁까지 나타나 김춘식 잡아 죽인다고 설쳐대면 문제만 복잡해진다.
생각만 해도 골치가 아프군.
“그나저나, 설마 죽이지는 않겠죠?”
나의 질문에 이강혁의 입가에 뜻 모를 미소가 걸렸다.
“무르시군요. 설마 김춘식을 살려두려고 하신 겁니까? 문경준이 대신 김춘식을 죽여준다면 저희로서는 감사할 일이죠.”
이봐요, 살인을 그렇게 쉽게 얘기하지 말라고······. 당신은 회귀하면서 그런 거 많이 해봤겠지만, 저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순결한 던전 잡부였거든요. 그전에는 더더욱 순결한 대학원생이었고요.
모기랑 바퀴벌레 제외하면 벌레 잡고도 찝찝해하는 사람이 나라고.
게다가 패왕을 내부에서 좀 먹게 하려고 김춘식을 살려둔 건 당신 아니었어?
'내 생각해주는 건 고마운데, 당신도 밝은 인생 살아야지.'
“뭣 때문에 저러는지는 몰라도, 최소한 불구가 될 겁니다. 패왕은 배신자를 절대 용서하지 않거든요.”
“끄아아아악!”
아니나 다를까, 이강혁의 말을 확인이라도 시켜주듯 저 멀리서 처참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고개를 돌려보니 산만 한 덩치의 사내가 김춘식의 허리를 즈려밟고 있는 것이 보였다.
“에비!”
나는 황급히 손을 들어 내 머리를 끌어안고 있는 고미의 눈을 가려주었다.
이런 잔혹한 참교육의 현장을 애한테 보여줄 수는 없지. 아동교육에 나쁘다고.
“춘식아, 그래도 지금까지 네가 해준 게 있으니까 반신불수 정도로 끝내자. 조금 불편하기는 하겠지만 그간 나 몰래 꼬불쳐 둔 돈도 좀 있을 거고, 나머지 생을 안락하게 보내는 데는 문제 없지 않겠냐?”
문경준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어떤 생각을 할 틈도 없이, 김춘식의 비명이 뚝, 하고 끊겼다.
이어지는 묵직한 정적.
하지만 그 누구도 김춘식을 동정하지 않았다. 그가 악인이기 때문일까, 혹은 이 사람들은 모두 나와 다른 세계에 살기 때문일까. 한 가지 확실한 건, 왠지 모르게 마음이 한쪽이 불편하다는 사실이었다.
“하하! 어때? 이제 만족했나?”
문경준이 자신의 가슴까지도 오지 않는 한유진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역시 패왕이 일 처리 하나는 뒤끝 없게 하네.”
축 늘어진 김춘식을 바라보는 한유진의 표정은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고미를 바라볼 때와 같은 사람이라고는 도저히 믿기지 않는 표정
하긴, 이강혁도 한유진도, 모두 이런 면을 가지고 있겠지.
아니, 가지지 않았다면 지금 같은 위치에 오르지 못했다는 게 더 맞는 표현이려나.
씁쓸하다. 이능 같은 게 없었다면, 헌터도, 게이트도, 던전도 없었다면, 조금 더 평범하고 좋은 사람으로 살았을 텐데.
“그나저나 의외로군. 너에게도 제법 구미가 당기는 제안이었을 텐데, 거절하는 거로도 모자라 나에게 연락을 해오다니. 뭐, 내 입장에서는 고마운 일이지만 말이야.”
“관심 없어. 나는 우리 애들 셋이면 충분해. 게다가 패왕 길드 소유 던전을 나와 함께 돌자고 하는 게 영 냄새가 나서 말이야. 혹시 알아? 가서 뒤통수치려고 했을지.”
“그래서, 이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하나? 혹시 원하는 게 있나? 지나치지 않다면 뭐든지 들어주지.”
그렇게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
쿠르릉- 쿠릉-
돌연 거대한 먹구름이 모여들며 하늘 위에 커다란 검은 소용돌이가 생겨났다.
“뭐지?”
게이트와는 명백하게 다른, 이질적인 현상.
하지만 단순한 천재지변이라기에는 어딘지 모르게 익숙한 느낌이 든다.
콰르릉-
이어서 먹구름 사이에 시퍼런 전광이 번뜩이며 그 안이 더욱 검게 물들었다.
“뭐, 뭐야.”
자리에 있는 모두가 직감했다.
저것은, 우리의 상상을 아득히 뛰어넘은 ‘무언가’가 만들어낸 것이라고.
“이럴 수가!”
그 순간, 이강혁이 자리에서 벌떡 몸을 일으켰다.
“어째서 벌써!”
그리고는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이냐고 묻기도 전에, 검은 소용돌이의 중심에서 시커먼 그림자가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쾅!
가장 먼저 반응을 보인 것은 문경준이었다.
그가 거대한 주먹을 휘두르자, 엄청난 파공음과 함께 허공에 또렷한 파문이 일며 검은 그림자를 흩어버렸다.
“크크큭, 하찮은 벌레가······.”
그러나 잠시 흩어졌던 검은 그림자는 금세 다시 모여들어 지상으로 하강했다.
“제르보나!”
이어서 거대한 레드 드래곤에 올라탄 한유진이 하늘로 날아오르고, 블랙 드래곤이 그 뒤를 따라 솟구쳤다.
그 사이, 지상에 도착한 검은 그림자가 빠르게 김춘식의 몸으로 들어갔다.
“크으으······.”
이어지는 광경에 자리에 있던 모두가 자신의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방금 전 허리가 부러진 김춘식이, 자리에서 일어나고 있었으니까.
심지어 빌딩에 나올 때 이미 부러져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 팔도 멀쩡하게 변해 있었다.
- 버러지 같은 놈······. 물건 하나 가져오라는 명령을 완수하지 못해 이런 귀찮은 일을 만들어······?
차갑고 음습한 목소리가 울려 퍼지고,
“제, 제발 살려 주십시오!”
김춘식의 비명이 이어졌다.
콰드득, 콰득.
“어으으윽!”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파악할 틈도 없이, 섬뜩한 소리와 함께 검은 그림자가 김춘식의 몸을 잠식하며 그의 사지가 뒤틀리기 시작했다.
-크오오!
그때, 두 마리의 용이 시뻘건 브레스를 내뿜어 검은 그림자에 잡아먹힌 김춘식을 불태웠다.
- 시시하구나. 참으로 시시해. 고작 이런 것들에게 막혀 주군이 내린 임무를 망쳤단 말이냐?
그러나 그림자에 잡아먹힌 김춘식은 아무렇지도 않게 그 불길을 뚫고 걸어 나오고 있었다.
자리에 있는 모두가 공포로 인해 얼어붙은 그 순간,
[ 수하, 그 김치볶음밥이라는 음식은 틀림없이 맛있겠지? ]
머릿속에 고미의 음성이 울려 퍼졌다.
녀석의 목소리에서는 티끌만큼의 공포도 느껴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