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아기곰이 너무 강함-60화 (60/300)

EP.60 삼룡 어멈의 화끈함

본래 고미의 털색은 자기가 좋아하는 초콜릿과 닮은 진한 갈색이다.

하지만 지금 녀석의 털은 밝은 갈색을 지나 황금색에 가까운 색으로 변해 있었다.

“수하, 어서 축기를 시작하거라. 숨은 천천히, 깊이 들이쉬고, 단전에 그 숨을 모아둔다고 생각하거라. 기맥을 따라 기를 이동시키는 것은 내가 도와주마.”

< 웅신입기혈(熊身入氣穴)이 활성화됩니다. >

스킬을 활성화하고 고미의 말에 따라 천천히 숨을 들이쉬자, 청심환을 삼켰을 때 느껴졌던 것과 비슷한, 하지만 그것보다 몇 배는 옅고 탁한 기운이 하복부에 쌓이는 것이 느껴졌다.

그제야 고미의 ‘웅왕청심환’에 깃든 기가 얼마나 깨끗하고, 또 진한 것인지 실감이 났다.

“이제 그 기운을 천천히 가슴으로 끌어올리거라.”

한편, 고미의 털색은 황금색을 지나 회색에 가깝게 변해 있었다.

“고, 고미, 괜찮은 거야?”

“운기 중에 말을 해서는 안 된다. 나는 괜찮으니 너는 축기에만 집중하거라.”

하지만 고미의 상태를 보니 도저히 운기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혹시라도 나를 강하게 만드느라 고미의 몸에 이상이 생기는 거라면, 그런 건 싫다.

“걱정 말거라 수하, 이것은 그저 내가 권능을 사용하며 생기는 변화일 뿐, 이 몸에게는 아무런 이상도 없다. 그러니 나를 믿고 정신을 집중하거라.”

내 표정을 읽은 고미가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웃으며 말했다.

나는 그제야 조금 안심하고 정신을 집중할 수 있었다.

본격적인 운기에 들어가자, 고미의 몸이 눈처럼 새하얀 색으로 변하더니 이내 사방으로 민들레 씨앗 같은 백색의 빛을 뿌려댔다.

이어서 그 새하얀 빛이 눈처럼 녹아내리며 방 안의 공기가 거짓말처럼 맑아지는 것이 느껴졌다.

‘곰기청정기!?’

그렇다. 고미의 털색이 변한 것은, 곰기청정기로 변하기 위해서였던 모양이다. 그럼 저 털은 천연 필터인 건가?

어쨌든 고미가 무사하다는 것을 확인했으니 나는 운기, 아니, 웅기조식에나 집중하자.

곰기청정기의 힘으로 맑아진 공기를 들이쉬자, 책상 위에 쌓인 먼지처럼 탁하고 미약하게 느껴졌던 나의 기가 빠르게 맑은 시냇물처럼 변하며 온몸을 타고 졸졸 흐르기 시작했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눈을 떴을 때는 이미 뉘엿뉘엿 해가 저물고 있었다.

“응?”

내 눈앞에서는 북극곰으로 변한 고미가 반쯤 눈을 감은 채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석양이 드리우며 눈처럼 새하얗게 변해있던 보송보송한 솜털이 노랗게 물들었다.

그 평화로운 광경에 저도 모르게 그만 피식, 웃음이 나고 말았다.

이대로 자게 둬야겠다.

저녁에 맛있는 거 사주기로 했는데, 뭘 사주면 좋아하려나?

아니다, 모처럼 시간도 나는데 직접 만들어 줄까?

그렇게 생각하며 자리에서 몸을 일으키는 순간, 고미가 반짝 눈을 떴다.

“우웅······. 운기가 끝난 것이냐?”

“응, 덕분에 무사히 끝났어.”

“후훗, 이 몸이 있는 한 그 무엇도 걱정할 것이 없느니라! 오랜만에 백곰으로 변했더니 배가 고프구나. 어서 먹을 것을 다오!”

고미는 그렇게 말하며 서운하다는 듯 살짝 입술을 내민 채 자신의 배를 어루만졌다.

백곰으로 변신이라니, 아무리 생각해봐도 신기하다. 혹시 팬더나 흑곰, 회색곰으로도 변신이 가능한 걸까?

다른 모습으로 변한 고미를 상상해 보았지만, 역시 오리지널 초콜릿 버전이 제일 귀여운 것 같다.

“그래, 얼른 밥먹자.”

부모님은 언제 오실지 모르고, 봉식이도 연락이 안 되니, 오늘 저녁은 고미와 둘이서 먹어야겠군.

“엄마 아빠는 언제 오는 것이냐? 봉식이는?”

아쉽다는 표정을 지으면서도 안먹겠다는 말은 안하는 것으로 보아, 아마 적잖이 배가 고픈 모양이었다.

언제는 벽곡의 경지에 이르렀다는 둥, 잠은 자지 않아도 된다는 둥 해놓고 점점 더 끼니를 챙기고 잠도 자는 모습에 왠지 모르게 기분이 좋아졌다.

먹는 즐거움, 자는 즐거움을 모른다는 건 인생, 아니, 곰생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요소들을 잊고 살아왔다는 이야기니까.

고미가 그런 소소한 즐거움을 알아간다는 게, 나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즐거움이었다.

“내가 밥해 줄 테니까 쪼끔만 먹고 엄마 아빠 오면 또 먹을까?”

나의 절충안에 고미는 굉장한 것을 깨달았다는 듯 눈을 크게 뜨며 고개를 끄덕였다.

녀석의 털은 어느새 눈처럼 새하얀 색에서 평소와 같은 초콜릿 색으로 돌아와 있었다.

음, 북극곰 버전도 귀여웠지만, 역시 이 모습이 제일 귀엽지.

“그렇군! 배가 부를 때까지 먹지 않는다면 엄마 아빠와 또 밥을 먹을 수 있겠구나!”

으이그, 귀여운 녀석 같으니.

피식 웃으며 주방으로 향하려는 순간, 나의 자존심에 커다란 스크래치를 남기는 말이 귓등을 때렸다.

“그런데, 수하 네가 닭도리탕 같은 훌륭한 음식을 만들 수 있단 말이냐?”

“고미, 지금 날 못 믿는 거야?”

“흐음, 물론 라면이라는 요리도 맛이 좋았지만, 엄마가 만든 요리와 비교하면 맛이 떨어지는 것이 사실 아니더냐?”

나를 바라보는 고미의 눈빛에는 의심이 가득했다.

확실히 엄마가 만든 밥과 비교하면 좀 부족한 구석이 있긴 하지.

“그, 그건 그렇지. 그래도 나도 나름대로 요리 잘한다고.”

“호오······. 좋다. 그럼 이 몸이 오늘 너의 요리가 얼마나 위대한지 확인해 보겠다!”

위, 위대하다고 표현할 정도의 맛은 아닌데.

그래도 왠지 오기가 든다.

좋아, 비장의 치즈 김치볶음밥으로 떨어진 나의 위상을 회복해주마.

하지만 냉장고를 여는 순간, 한가지 심각한 문제에 직면하고 말았다.

‘치즈가 없구나.’

그렇다, 핵심은 치즈인데. 냉장고에 치즈가 없다.

“고미, 치즈 사러 가자.”

“치즈?”

아, 이 녀석이 치즈를 알 리가 없지. 어떻게 설명하면 되려나······. 발효니 어쩌고 하는 설명을 해봤자 이해 못할 것 같은데.

“뿌리면 모든 음식이 맛있어지는 마법의 식재료야. 내가 그걸로 김치볶음밥 만들어줄게.”

“호오······. 그런 놀라운 음식이 있단 말이더냐?”

고미는 흥미롭다는 듯 고개를 가볍게 끄덕이고는 곧바로 나의 어깨에 올라탔다.

“그럼 가보자꾸나.”

음, 생각해 보니까 요즘 거의 이 상태로 다니는 것 같은데.

무게도 얼마 안 나가니 딱히 힘들지도 않고, 불만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 조금 걱정이 된다.

‘매일 단것만 먹고 갈수록 운동은 안 하는데, 이러다가 비만 곰이 되는 건 아니겠지?’

치킨 먹었을 때 배가 빵빵해졌던 거로 봐서는 소화기관도 슈퍼 먼치킨은 아닌 것 같은데, 며칠 새에 제법 묵직해진 것 같기도 하고.

“응? 어서 가지 않고 뭘 하느냐?”

고미의 재촉에 나는 잽싸게 몸을 일으켜 문을 열었다.

오랜만에 마트 가서 고미랑 장이나 봐야겠다.

제대로 된 김치볶음밥을 만들려면 김치랑 치즈만 가지고는 부족하니까.

* * *

마트에 가는 길, 나는 우선 봉식이에게 깨톡을 보냈다.

└ 야, 어딜 나가서 안 들어오냐. 고미랑 밥먹게 빨리 들어와. 그리고 오늘 한유진 만나서 김춘식 문제 적당히 해결했다.

그리고는 이강혁씨에게도 밥 먹자는 내용을 제외하고 비슷한 내용의 깨톡을 보냈다.

뒤에는 ‘김춘식 문제는 적당히 해결될 것 같으니까, 섣불리 손쓰지 말고 기다려보죠.’라는 말을 덧붙여서.

자, 이제 대충 할 일도 다 했겠다. 전음 문제나 해결해볼까.

“아 참, 고미. 전음은 어떻게 하는 거야? 무협지 보면 어지간한 무사들은 다 쓰던데.”

나는 시치미를 뚝 떼고 고미에게 전음을 가르쳐 달라고 말했다.

[ 이제 막 축기를 시작한 녀석이 전음부터 쓰려고 하는 것이냐? ]

응, 사실 전부터 쓸 수 있었어. 스킬 있거든······.

갑자기 쓰면 이상하게 여길까 봐 안 썼던 거지.

“그래도 알려줘, 사람들 있는 곳에서 둘이 대화하려면 전음 정도는 할 줄 아는 게 편하지 않겠어?”

[ 흠, 그것도 그렇구나. 매번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는 나 혼자만 말을 하고 너는 답을 하지 못하니 여간 답답했던 것이 아니다. ]

이어진 고미의 설명에 따르면, 목소리에 기를 실어서 원하는 곳으로 보낸다고 생각하면 전음이 가능하다고 했다.

나는 그 이야기를 새겨듣는 척하며 곧바로 스킬을 활성화했다.

<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F)가 활성화됩니다. >

[ 이렇게 하는 건가? ]

[ 우, 우웃! ]

단번에 전음에 성공하자, 깜짝 놀란 고미의 손에 힘이 들어가며 머리털을 쥐어뜯기고 말았다.

[ 아, 아! 고미, 머리, 머리! ]

[ 앗! 미, 미안하다! 그런데 대체 어떻게 이렇게 쉽게 전음을 사용할 수 있는 것이냐? ]

[ 그냥 하니까 되는데? ]

[ 굉장하구나! 너는 위대한 이 몸조차 예상하지 못한 속도로 성장하고 있다. ]

음, 뭔가 양심에 찔리네. 그래도 당분간은 비밀로 하는 게 좋겠지. 그래도 언젠가는 말을 해야 할 텐데······. 차라리 이번 기회에 말해버릴까?

띠리링- 띠리링-

그때, 주머니 속에 넣어둔 핸드폰이 울렸다.

발신자는 봉식이였다. 반응 한 번 빠르네.

“야, 김수하! 일 났다!”

전화를 받기 무섭게 잔뜩 흥분한 목소리가 세차게 고막을 때렸다.

“뭔 소리야 갑자기 전화해서, 빨리 들어와. 고미랑 저녁 먹게.”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야!”

“가족의 평화로운 저녁 식사보다 중요한 게 어딨어.”

“지금 패왕 길드 건물에 한유진이 용 몰고 와서 시위 중이라고! 분위기 장난 아니야! 너 한유진이랑 무슨 얘기를 하고 온 거야!”

“뭐!?”

아니, 나랑 있을 때는 그렇게 냉정하고 차분해 보이더니 이게 무슨 개망나니 짓이야!

[ 호오, 말을 하자마자 이렇게 행동에 들어가다니, 삼룡 어멈은 갈수록 마음에 드는구나. ]

그런 행동이 어지간히 마음에 들었는지, 한유진의 호칭이 살쾡이에서 삼룡 어멈으로 변했다.

마음에 든 거 맞나. 차라리 살쾡이가 나은 것 같은데······.

아, 아니지, 지금 이건 잘하고 있는 게 아니라고!

어디 이름도 못 들어본 듣보잡 하나 건드렸다고 한국 최고 능력자로 손꼽히는 사람이 직접 용 몰고 가서 불 뿜었다고 하면 평화로운 생활은 끝이야!

게다가 이렇게 판이 커지면 김춘식이 문제가 아니잖아!

“지금 당장 갈게! 기다려!”

* * *

택시를 잡아타고 패왕 길드로 가는 길, 심장이 미친 듯이 두근거렸다.

디저트 카페에서 얘기할 때 표정을 확인해 보니 거짓말이 아니어서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다. 그런데, ‘해결’의 방식이 이런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

[ 후후, 뭘 그리 놀라느냐 수하? 참으로 시원한 해결 방식이 아니더냐? 사실 이 몸은 그리 훌륭한 음식을 대접할 때 이미 삼룡 어멈이 제법 쓸만한 녀석이라는 것을 알아봤다. ]

기분이 좋아진 고미가 연신 싱글벙글 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으아, 미치겠다. 이상한 이유로 한유진한테 호감 느끼지 말라고. 지금 이게 잘하고 있는 게 아니야.

나는 초조함을 이기지 못하고 봉식이에게 다시 전화를 걸었다.

“봉식아, 상황 어떻게 돌아가냐? 설마 벌써 불 뿜고 난리 난 거 아니지?”

“아니, 뭔가 좀 흐름이 이상한데.”

“응?”

“몰라, 용 몰고 와서 금방이라도 싸울 것처럼 굴더니, 얌전히 건물 안으로 들어간 지 좀 됐다. 딱히 싸우는 것 같지도 않고.”

큰 싸움으로 번지지 않았다는 소리에 저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이 새어 나왔다.

김춘식이 나를 귀찮게 하는 건 사실이지만, 그런 양아치 하나 잡자고 애먼 사람들까지 휘말려서 죽고 다치는 건 싫다.

용왕하고 패왕하고 정면으로 맞붙으면 사람 한둘 죽는 거로는 안 끝날 게 뻔하고.

“근데 넌 왜 거기 가 있냐?”

마음이 조금 안정을 찾자, 그제야 봉식이가 왜 패왕 길드 건물에 가 있는지에 생각이 미쳤다.

“어, 강혁이 형이랑 김춘식 감시하러 왔지. 뭐 여건 봐서 몰래 잡아갈 수 있으면 더 좋고.”

이놈이 또 내 문제라고 발 벗고 나섰네. 어쩐지 치킨 먹으면서 김춘식 얘기할 때 노발대발 안 하고 가만히 있더라니, 벌써 속으로는 잡아 족칠 생각 하고 있었고만.

“야! 말렸어야지! 갑자기 납치를 해버리면 문제가 더 꼬이잖아!”

“인마, 걸릴 것 같으면 안 하지. 우리도 자신 있으니까 온 거야. 강혁이 형이 패왕 길드에 쁘락치 심어놨단다. 마침 오늘 김춘식이 일 있어서 혼자 어디 나간다고 했고. 그래서 적당히 간 보다가 잡아갈 수 있으면 잡아가고, 아니면 미행이나 해보려고 했지.”

답답한 마음에 이강혁 씨를 바꿔보라고 하려던 찰나, 수화기 너머에서 경악에 찬 봉식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 야, 이거 뭐야. 일이 왜 이렇게 돌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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