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56 이래서 눈치 빠른 드래곤은...
“어이, 꼬맹이. 네가 김수하냐?”
양복 차림의 떡대 하나가 건들거리며 물었다.
나는 굳이 그 말에 답하지 않고 주위를 살폈다.
아무리 봐도 고미를 보고 반해서 초코바라도 사주러 온 것 같은 분위기는 아니니까.
‘도망쳐야 하나.’
고미가 나선다면 눈 깜짝할 새에 상황이 정리되겠지만, 이렇게 보는 눈이 많은 곳에서 힘을 쓰게 할 수는 없다.
도주로를 찾기 위해 시선을 돌리자, 이삼십 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 반투명한 검은 벽이 세워져 있는 것이 보였다.
‘이능? 결계인가?’
당연히 한방에 깰 수 있는 수준은 아니겠지. 도망은 무리인가.
“하, 이 건방진 새끼 보소. 사람이 묻는데 대답이 없네. 도망갈 생각하지 말고.”
떡대가 나에게 한걸음 성큼 다가오며 말했다.
“누구세요?”
“그건 알 거 없고, 나랑 어디 같이 좀 가자. 널 보고 싶어 하시는 분이 계신다.”
떡대의 말에 머릿속에 한 사람의 얼굴이 스쳤다.
“김춘식?”
나는 그렇게 물으며 곧바로 감각 강화를 사용했다.
“그건 알 거 없고.”
거짓말이네.
“맞네. 김춘식.”
생각이 짧았다. 내가 김춘식이 한유진의 집에 찾아간 걸 이상하게 여겼듯이, 상대도 그럴 수 있는 건데.
그렇다고 해도 이렇게 바로 사람을 보내나.
‘아무리 양아치 길드라도 이건 선을 넘는 것 같은데.’
하지만 이걸로 한 가지 확실해진 게 있다.
김춘식이 한유진을 찾아간 이유가, 절대로 사소한 게 아니라는 것.
아마 아주 중요한 문제로 한유진을 찾았을 거고, 이렇게 무서운 아저씨들을 보낸 걸 보면, 나도 자신과 비슷하게 뭔가 중요한 일로 한유진을 만났을 거라고 생각한 거겠지.
사람은 자연스럽게 자기 입장에서 타인의 행동을 유추하니까.
‘무슨 요청을 했는지는 몰라도, 거절 당했겠지.’
이유찬의 태도를 보면 알 수 있다. 협력 관계에 있는 사람을 그렇게 대할 리는 없을 테니까.
‘설마 내가 거래를 망쳤다고 생각하는 건가?’
가장 가능성이 높은 건 역시 그쪽이겠지.
그게 아니라면 굳이 내 뒤를 캐서 사람을 보내지는 않았을 거다.
평소라면 커피라도 한잔하면서 대화로 풀어보고 싶지만, 이분들 분위기로 봐서는 커피를 코로 마시게 될 것 같으니 패스.
하지만 여전히 한 가지 의문이 남았다.
‘왜 이런 놈들을 동원했지?’
고미의 가호 때문이기는 하지만, 어제 김춘식은 나에게 밀려났다.
그러니 내 실력이 자기보다 위라고 판단했겠지.
그런데, 자기만도 못한 놈들을 보냈다······?
“김춘식이가 길드장 몰래 뭔가 일을 꾸몄구나?”
내 한마디에 눈앞에 있던 떡대의 인상이 험악하게 일그러졌다.
‘역시.’
길드장의 명령을 받아 진행한 일이라면, 나에게 방해를 받았다고 보고하고 패왕의 상위 랭커를 끌고 왔겠지. 이런 허접들이 아니라.
그렇지 않고 자기보다 아랫선만 동원했다는 건, 독단으로 움직였다가 일을 망쳤다는 소리다. 그걸 윗선에 보고하기는 싫은 거고.
‘이강혁 씨가 말한 안에서 좀 먹는다는 게 무슨 뜻인지 이해가 가네.’
“근데 일이 안 풀려서 날 잡으러 온 거야. 맞지?”
“얘들아. 이 새끼 그냥 손 봐주는 걸로는 안 되겠다.”
떡대가 품 안에서 몽둥이를 꺼내며 말했다.
나 역시 인벤토리에서 무기를 꺼내 들었다.
대화가 통할 상대가 아닌 건 분명하니까.
[ 수하, 상대할 수 있겠느냐? ]
고미가 담담한 말투로 물었다.
“걱정 마.”
나름대로 계산이 있어 나온 대답이었다.
손을 봐준다고 말하는 동시에 여덟 중에 다섯이 무기를 꺼내 들었고, 조금 뒤쪽에 있던 셋이 나에게 바짝 다가왔다.
이 행동이 의미하는 바는 명백했다.
‘전부 근접 공격 계열이야. 원거리 공격이 가능하면 거리를 벌렸겠지.’
단순한 백병전이라면 나도 자신이 있다.
벼락치기로 배운 거긴 해도, 대인전 능력은 한국에서 세 손가락 안에 꼽는다는 이강혁의 검술을 베꼈으니까.
여차하면······. 해피 곰 포인트를 믿어야지.
“뭐해 덩어리, 빨리 안 오고.”
나의 도발에 떡대는 곧바로 몽둥이를 휘두르며 달려들었다.
“이 건방진 새끼가!”
깡!
방패를 통해 전해지는 힘이 예사롭지 않다.
그래도 C급은 되겠는데······.
쐐애액!
정신을 차릴 새도 없이 왼쪽, 오른쪽 할 것 없이 몽둥이가 날아든다.
그렇게 방패로 공격을 막고 핵빠따를 휘둘러 반격하기를 대여섯 번,
“이, 이 새끼 뭐야!”
나의 애검(?) 핵빠따에서 눈 부신 빛이 뿜어져 나오는 것을 발견한 세 놈이 거리를 벌리며 외쳤다.
쾅!
“크윽!”
그러나 셋 중 가장 앞에 튀어나와 있던 한 놈이 끝내 핵 빠따의 폭발에 휘말려 바닥을 나뒹굴었다.
“이 새끼가!”
분노한 떡대는 곧바로 인벤토리에서 자신의 키만 한 대검 한 자루를 꺼내 들었고, 나머지도 하나둘 몽둥이가 아닌 제대로 된 무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더욱 나쁜 것은, 이전과 달리 섣불리 다가오지 않고 천천히 호흡을 맞춰 포위망을 좁히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어려워졌네.’
몽둥이 꺼내길래 죽이지 말라고 한 줄 알았는데, 팔다리 정도는 잘라도 된다는 명령이었나보다.
하지만 고미에게 도움을 청할 수는 없다. 패왕 길드의 헌터들을 상대로 힘을 쓰면, 그다음부터는 일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질 거니까.
‘할 수 없군.’
[ 수하, 이것을 먹어라. ]
해피 곰 포인트를 사용하려던 순간, 줄곧 내 어깨에 올라타 있던 고미가 전음을 보내왔다.
지금 고미는 거의 깃털 수준으로 가벼워져 있어서, 어깨 위에 목말을 태운 채로 싸워도 전혀 방해가 되지 않았다.
모양이 좀 빠지기는 하지만, 그런 건 포기한 지 오래다.
중요한 건 외모가 아니라 마음이라고 생각하자.
“응?”
고미의 젤리 위에는 내 손바닥 절반 크기 정도의 푸른 빛 덩어리가 놓여 있었다.
[ 스틸 맨을 보고 만들어낸 이 몸의 새로운 기공술, 웅왕청심환(熊王淸心丸)이다. 이것을 먹고 싸워라. ]
이, 이게 새로운 기술이라고?
먹는 거였어?
‘고미’가
‘만든’,
‘먹을 것’.
이 무시무시한 세 단어의 결합에 저도 모르게 등 뒤에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잘못하면 싸워보지도 못하고 전투 불능 상태에······.
텁.
잠시 망설이고 있을 때, 고미가 강제로 빛 덩어리를 내 입에 욱여넣었다.
‘억!’
어머니, 아버지 불효자는 먼저······.
‘응?’
하지만 의외로 맛은 안정적이었다.
정확히는, 아무런 맛도 나지 않았다.
문제는 효과가 뭔지도 모르겠다는 거지.
“이 새끼, 아까부터 대체 뭐야!”
청심환을 삼키기 무섭게 떡대의 눈이 나의 가슴 언저리로 향했다.
그 시선을 따라 아래로 눈을 내려보자,
‘왜 내 가슴에 이런 게······.’
명치 근처에서 고미의 젤리 모양을 똑 닮은 푸른색 빛 덩어리가 은은한 빛을 내뿜고 있는 것이 보였다.
[ 후훗, 그것은 이 몸의 기다. 일시적이지만 그것을 사용해 너의 신체 능력을 극대화할 수 있느니라. ]
뭐야, 이런 게 가능해? 왜? 어째서?
기라는 게 원래 이렇게 쓸 수도 있는 거야?
셀 수 없이 많은 의문이 머릿속을 떠다녔지만, 단 한 가지만은 확실했다.
‘이 젤리 원자로의 동력이 다할 때까지는 강해진다는 거잖아.’
[ 이제 그 기운을 원하는 곳으로 흘려보낸다고 생각해 보거라. 왕유를 먹었으니 축기를 하지 않았어도 그 정도는 가능할 것이다. ]
< 고미류 기공술 (입문)이 활성화됩니다. >
먼저 스킬을 켜고, 고미의 지시에 따라 젤리 원자로의 에너지를 다리로 흘려보내자, 가볍게 발을 내디뎠을 뿐인데 눈앞의 풍경이 순식간에 뒤바뀌었다.
“뭐, 뭐야! 이 새끼!”
뒤쪽에서 ‘떡대’의 경악에 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려보니, 내 몸이 어느새 포위망을 뚫고 결계 언저리까지 달려와 있었다.
‘뭐가 이렇게 빨라.’
급격하게 올라간 속도에 내가 내 몸을 통제할 수가 없다.
이 정도로 멀리 오려던 게 아니었는데······.
“고미, 이거 얼마나 쓸 수 있어?”
[ 네가 얼마나 기를 빨리 쓰는지에 따라 다르다. 조금 전처럼 움직인다면 5분이 한계일 것이다. ]
“다 쓰면?”
[ 한동안은 쓰지 못한다. 빌려 쓴 기라도, 결국 네 기맥을 타고 이동하는 것이니 말이다. 너무 많은 기를 한 번에 사용하려다가 기맥이 터지는 수가 있다. ]
5분······. 애매하네.
하지만 저놈들 두들겨 패주기에는 충분한 시간이지.
거기에 보너스로 김춘식 씨한테 정성스레 포장한 엿을 보내볼까?
< 능력치가 상승합니다. >
힘 : 15 -> 22 (+1)
나는 곧바로 모든 보너스 포인트를 힘에 투자했다.
상황이 상황이니, 가능하면 한 방에 한 명씩 눕혀야 한다.
달아나는 게 더 나다운 선택이기는 하지만, 그러면 다음번에는 숫자를 늘리든, 더 센 놈들을 보내든 하겠지.
하지만 이 사람들이 반병신이 되어 돌아간다면, 김춘식의 입장이 어떻게 될까?
‘길드 내에 소문이 돌고, 왜 나를 잡아 오라고 사람을 보냈는지 궁금해하는 사람들도 생기겠지.’
길드장의 허가 없이 무려 한유진을 상대로 거래를 시도했다가 실패했다.
거기에 더해 부하들을 빼돌려 뭔가 일을 하려다가 아무런 성과 없이 여덟 명이나 되는 헌터들이 반병신이 돼서 돌아왔다.
물론, 적당한 양념이 곁들여지지 않으면 더 매운맛이 돼서 돌아올 수도 있지만.
‘음식집 아들이 양념 하나 못 칠까.’
생각을 마치는 것과 동시에 나는 발끝에 모든 기를 집중했다.
탓,
깃털처럼 가벼워진 몸이 순식간에 십 미터에 가까운 거리를 날아가듯 이동하고,
“커헉!”
묵직한 감촉과 함께 한 놈이 피를 토하며 바닥을 나뒹굴었다.
하나 잡았고.
“뭐야! 갑자기 왜 이렇게 세졌어!”
“아까 처먹은 게 무슨 버프 아이템 같은 거 아니야?”
“시간 끌어, 시간, 억!”
둘.
두 놈을 때려잡은 뒤, 나는 잠시 숨을 고르며 놈들을 향해 붉게 달아오른 ‘빠따’를 겨누었다.
자, 손님, 양념 나갑니다.
“김춘식이가 내 실력 모르고 너네 보낸 것 같아?”
“이 새끼가 뭐라는 거야!”
“그 새끼, 내 실력 알면서 너네 보낸 거야. 못 믿겠으면 사이코 매트리나 마인드 리딩 능력 가진 능력자 하나 섭외해서 확인해 보든가.”
말을 마친 나는 곧바로 몸을 날려 두 놈을 더 날려 보냈다.
이제 넷.
이 정도면 공포감은 충분히 심어줬고.
“뭐야, 설마 왜 나를 잡아 오라고 했는지 제대로 말 안 해준 건 아니지?”
한 놈을 더 두들겨주며 그렇게 묻자, 마지막 남은 두 놈의 낯빛이 의심과 당혹감으로 물들었다.
‘설마 진짜 말도 안 해줬을 줄이야.’
반쯤은 감으로 넘겨짚은 건데, 월척이네.
“이유도 말 안 해주고, 안 될 거 알면서 보낸 이유가 뭐겠냐? 너희가 맞아서 병신 되거나, 나한테 죽기라도 하면 그걸 명분으로 날 압박하려고 했겠지. 너네는 버리는 말이라고. 알겠냐?”
적당한 양념이 곁들여진 몽둥이찜질에 남은 두 놈은 더이상 나에게 달려들지 않고 서로의 얼굴을 멀뚱멀뚱 바라봤다.
“알겠으면 꺼져. 내가 너네 둘 못 잡아서 말로 하고 있겠냐?”
마지막 한마디에 마지막 떡대 둘이 나란히 무기를 집어넣고 의심이 가득한 눈으로 뒷걸음질을 치기 시작했다.
이제 저놈들이 가서 김춘식의 입장을 알아서 난처하게 만들겠지.
‘대학원에서 선배들 정치질 하는 거 보면서 배운 게 이렇게 쓸모가 있네.’
역시, 세상에 쓸모없는 경험은 없는 모양이다.
그렇게 생각하며 무기를 집어넣고 있을 때, 누군가의 따가운 시선이 등 뒤에 꽂히는 것이 느껴졌다.
[ 김수하 씨, 당신 진짜 얼마 전에 각성한 거 맞아요? ]
이어서 들려오는 낭랑한 목소리.
[ 전에 게이트 때도 그렇고, 아무리 봐도 뭔가 수상한데. ]
고개를 돌려보니 멀리서 의심이 가득한 눈초리로 나를 바라보고 있는 한유진의 얼굴이 보였다.
이어지는 마지막 한마디에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 고미는 진짜 아무 능력도 없는 거 맞고요? ]
설마 용들한테 뭔가 이상한 얘기라도 들은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