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아기곰이 너무 강함-53화 (53/300)

EP.53 갓-고미님의 연기력

싸늘하다.

가슴에 비수가······. - 삑, 표절입니다. -

하지만 걱정하지 말자.

고미는 이게 틀림없이 성공할거라고 했으니까.

“끼이잉······.”

고미가 억울하다는 듯 한 번 더 끙끙 앓는 소리를 내며 내 품에 머리를 부벼대자,

“이유찬!”

한유진이 빽하고 소리를 지르며 도끼 눈을 뜬 채 이유찬을 노려봤다.

그러나 그는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같은 말을 반복했다.

“다시 한번 묻죠. 이 곰, 정말 아픈 게 맞습니까?”

이 냉혈한 같으니······. 고미의 귀여움이 먹히지 않는 첫 번째 상대를 여기서 만날 줄이야.

‘설마 고미의 상태를 알아볼 수 있는 건가?’

드래곤은 여러모로 특별하다고 알려져 있으니, 꾀병 따위에 속아 넘어가지 않는다던가······.

아니야, 그럼 고미가 처음부터 ‘깨꼬닥 작전’을 허락하지 않았겠지.

설마 저 녀석이 고미의 예상보다 더 강한 건 아니겠지?

바로 그때,

추욱-

“응?!”

고미가 혀를 내밀며 힘없이 옆으로 고개를 떨궜다.

이어서 나를 붙잡고 있던 통통한 앞발이 옆으로 축 늘어지고, 금방이라도 죽을 것처럼 숨이 잦아들며 몸이 뻣뻣하게 굳어갔다.

급기야는 체온까지 떨어지는 것이 느껴진다.

‘이, 이거 연기 맞아?’

갑작스러운 변화에 ‘깨꼬닥 작전’을 제시한 나조차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고, 고미! 괜찮아!? 고미!”

“제르보나!”

한유진의 다급한 부름에 커피를 마시던 붉은 머리의 여자가 자리에서 일어나 터벅터벅 걸어왔다.

“열매.”

그리고는 무덤덤한 표정으로 나에게 손을 내밀었다.

열매를 넘겨주자, 태양초 열매를 손에 든 제르보나가 새빨간 입술을 살짝 벌리고는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화륵-

그녀의 숨결은 새빨간 불길로 변해 빠르게 태양초 열매를 불살랐다.

“자.”

제르보나는 귀찮다는 듯 손에 들린 열매를 나에게 넘겨주고 곧바로 몸을 돌렸다.

[ 후훗, 수하. 어떠하냐!? 이것이 바로 도마뱀의 눈으로는 결코 간파할 수 없는 진정한 깨꼬닥이니라! ]

열매를 넘겨받는 순간, 고미의 전음이 머릿속에 울렸다.

‘휴, 역시 진짜 죽은 게 아니었구나.’

그럴 리는 없지만, 연기가 하도 리얼해서 진짜로 몸에 이상이 생긴 건 아닌가 걱정했다.

‘깨꼬닥 작전 대성공! 이제 열매를 가지고 돌아가기만 하면 돼!’

하고 속으로 쾌재를 부르고 있을 때,

테이블로 돌아가려던 제르보나가 발걸음을 우뚝 멈춰서며 다시 나를 바라봤다.

그 타는 듯한 붉은 눈동자를 마주하는 순간,가슴이 덜컥 내려앉으며 다리에 힘이 풀렸다.

호랑이나 사자를 코앞에서 마주치면 이런 느낌일까 싶을 정도로 오싹한 눈빛.

“하······. 귀찮아.”

이어서 제르보나의 머리에서 갑자기 황금색의 뿔이 돋아나기 시작하더니, 그녀의 몸이 거대한 레드 드래곤으로 변화했다.

“타.”

작열하는 불꽃처럼 새빨간 몸을 가진 레드 드래곤이 꼬리로 자신의 등을 가리키며 말했다.

“네?”

“그 솜뭉치, 가만두면 곧 죽을 것 같은데. 타라고.”

“아, 역시 제르보나야! 이유찬! 넌 나중에 봐!”

한유진이 나보다 앞서 레드 드래곤의 등 위에 올라타며 말했다.

그녀의 날카로운 시선을 받은 이유찬은 말없이 한숨을 푹 내쉬며 가볍게 어깨를 으쓱였다.

“제르날. 이따 얘기 좀 해.”

레드 드래곤으로 변한 제르보나가 거대해진 눈동자로 이유찬을 쏘아보며 말했다.

‘제르날? 이유찬? 왜 부르는 이름이 다르지?’

속으로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한유진이 나에게 손을 내밀며 외쳤다.

“뭐해요, 얼른 안타고!”

그녀의 손에는 어느새 눈부시게 빛으로 만들어진 고삐가 쥐어져 있었다.

“아, 네!”

나는 고미를 품에 안고 레드 드래곤의 등에 올라타며 한유진에게 스마트폰을 내밀었다.

“여기로 가주시면 돼요.”

“가자!”

말을 마치기 무섭게 제르보나의 붉은 날개가 펄럭이며 거대한 몸이 하늘로 솟구쳤다.

* * *

레드 드래곤의 등에 올라 도착한 곳은 우리 집에서 30분 정도 떨어진 거리에 있는 펫 병원이었다.

한유진의 집에서 차를 타고 가도 한 시간은 걸리는 거리였지만, 드래곤을 타고 가니 10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펫 병원이 있는 건물 상공에 도착하자, 드래곤이 빙글빙글 선회하며 착륙 지점을 찾기 시작했다.

하지만 병원 근처의 길은 하나같이 좁고 낡아 아무리 둘러봐도 드래곤이 내려 앉을만한 장소 따위는 없었다.

당연하지, 그래서 이곳을 선택한 거니까.

‘모든 게 계산대로군.’

속으로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을 때, 한유진이 잔뜩 미간을 찌푸린 채 입을 열었다.

“이······. 동네가 뭐가 이렇게 좁아!”

“죄, 죄송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약을 만들고 있어서······. 다른 곳으로 가면 다시 처음부터 약을 만들어야 할 거예요.”

“알았어요. 잠깐만 기다려요. 곧 내려줄게요.”

다급해진 한유진은 계속해서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내릴 곳을 찾았고, 나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먼저 입을 열었다.

“저, 그냥 여기서 뛰어내릴게요.”

“뭐라고요?”

“지, 지금 고미 상태도 너무 안 좋고, 저도 일단 헌터니까 몸은 튼튼해요. 그리고 하, 한유진 씨는 매지션이잖아요. 마법 같은 걸로 어떻게든······.”

나는 잔뜩 겁을 집어먹은 척 온몸을 덜덜 떨며 준비한 대사를 읊었다.

“진짜 괜찮겠어요? 나 비행 마법 잘 못써요. 내 몸에 쓰는 거라면 모를까 남의 몸에는 자신 없는데.”

‘아니까 빨리 내려줘라.’

나는 속으로 그렇게 중얼거리며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한유진의 능력은 마법과 드래곤 테이밍이다.

그래서 '마녀'라는 별명이 붙는거고.

하지만 공격 계열 마법을 제외하면 다른 마법은 조금 서툰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겉보기랑 다르게 꽤 용감하네요. 알았어요. 최대한 낮은 곳까지 가서 내려줄게요.”

한유진이 싱긋 웃으며 제르보나에게 신호를 보내자, 거대한 드래곤의 몸뚱이가 아래로 하강했다.

“으아아아아!”

그리고 나는 적당한 타이밍을 잡아 일부러 비명을 지르며 아래로 몸을 날렸다.

후우웅-

그리고 지상을 십 미터 남겨 두었을 때, 부드러운 바람이 온몸을 감싸며 낙하 속도가 떨어지더니,

쿵, 하는 소리와 함께 바닥에 발이 닿았다.

“으으으······.”

진짜 서툴긴 하네. 그래도 일단 오케이. 작전대로야.

[ 수하! 어서 들어가서 작전을 마무리하자! 시간이 없다! ]

그 순간, 줄곧 죽은 척을 하고 있던 고미가 반짝 눈을 뜨며 나에게 전음을 보냈다.

그래, 시간이 없다. 저 여자가 내려오기 전에 얼른 병원으로 들어가야지.

그래도 뭔가 싱숭생숭하네.

내 사기꾼 기질이 고미한테 옮겨간건 아닐까 걱정도 되고...

“선생님!”

나는 병원으로 들어가자마자 대기하고 있던 깡마른 사내에게 열매를 넘긴 뒤 수의사에게 달려갔다.

“감사합니다.”

사내는 그대로 태양초 열매를 가방 속에 넣고는 바람처럼 펫 병원을 빠져나갔다.

[ 후후후! 신난다! 참으로 재미있구나! ]

임무가 마무리되자, 잔뜩 신이 난 고미가 연신 키득거리며 들뜬 목소리로 전음을 보내왔다.

음, 불가피하게 ‘깨꼬닥 작전’을 사용하기는 했지만, 역시 고미에게 나쁜 물(?)을 들인 것 같은 느낌이······.

[ 그럼 마무리를 부탁한다 수하! ]

말을 마친 고미는 곧바로 수의사의 품에 안겨 진료실로 들어갔고, 그것과 거의 동시에 한유진이 병원의 문을 벌컥 열고 들어왔다.

“김수하 씨! 고미는 괜찮아요?”

괜찮지. 애초에 아프지도 않았으니까.

아차, 방심은 금물이지.

자자, 몰입, 몰입.

“일단 진료실에 들여보내기는 했는데······. 선생님이 바로 약 만들어서 치료 들어간다고 했으니까, 큰일은 없을 거예요.”

“정말 괜찮은 거 맞아요? 여기 병원 의사는 믿을 만 해요? 병원이 너무 작은데.”

한유진이 불안함을 감추지 못하고 입술을 질근질근 씹어대며 중얼거렸다.

음······. 이 정도까지 걱정을 하니 속인 게 좀 미안해지네.

게다가 의사는 믿을 만 하냐는 말은 작게 하는 걸로 봐서 생각보다 무례한 사람은 아닌 것 같다.

‘그냥 귀여운 거 보면 눈 돌아가는 사람이구나.’

역시, 소문은 믿을 게 못 된다더니, ‘공포의 마녀’니 ‘용을 탄 폭군’이니 하는 별명은 조금 과장이 섞인 이야기인 모양이다.

진료실 앞에 앉아 기다리기를 십여 분.

문이 열리고, 고미를 품에 안은 의사 선생님이 나에게 다가와 온화하게 웃음을 지었다.

“다행입니다. 제때 약을 만들어서 무사히 넘어갔네요. 몇 시간만 늦었어도 큰일이 날 뻔 했습니다.”

오, 이분도 연기 좀 하네. 이강혁 씨 섭외력 좋구만.

“감사합니다 선생님. 저는 정말 고미가 어떻게 되는 줄 알고······.”

그렇게 말하며 고미를 받아들자, 나보다 한유진의 입에서 먼저 안도의 한숨이 새어 나왔다.

“휴······. 다행이네요.”

하지만 한가지 마음에 걸리는 게 있었으니,

‘왜 또 저렇게 쳐다보냐 무섭게······.’

뒤에 있던 제르보나의 눈초리가 심상치 않다.

아니, 아까는 발 벗고 나서서 도와줘 놓고 왜 저렇게 싸늘하게 쳐다봐······.

“김수하.”

제르보나가 차갑게 굳은 얼굴로 내 눈을 똑바로 응시하며 말했다.

“네······.”

으, 봉식아. 저거 진짜 회전목마 맞냐. 눈만 마주쳐도 식은땀이 죽죽 새어 나오는데?

“며칠 동안 연락도 없다가 사정이 급하다고 이렇게 찾아오는 건 좀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하지 않나?”

“죄, 죄송합니다······. 고미가 아파서 상태가 좋아지면 연락을 드리려고 했는데······.”

“뭐, 됐다. 차림새를 보니 병원비 낼 돈도 없을 것 같은데. 태양초만 해도 값이 꽤 나가지 않나?”

응?

병원까지 데려다줄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해서 밑 준비를 해놓기는 했는데, 설마 이 정도로 잘해줄 거라고는······.

“아, 그건 제 적금을 깨서······.”

“선생님! 병원비 얼마나 나왔어요?”

제르보나에 이어 한유진이 나 대신 병원비를 내줄 기세로 나섰다.

“아······.”

예상치 못한 애드립에 선생님의 얼굴에 처음으로 당황한 기색이 떠오른다.

“사실 핵심적인 재료는 수하 씨가 다 가져오셔서······. 파, 팔십 만원 정도······.”

으으, 안돼. 버텨. 버텨. 여기가 마지막 고비라고!

“생각보다 얼마 안 나왔네요?”

다행히도 한유진은 아무런 의심 없이 카드를 내밀었고, 그렇게 상황이 일단락되는 듯 싶었다.

“아니에요. 저 돈 있어요. 그 정도는 제가 낼 수 있어요.”

내가 앞을 막아서자, 한유진의 입가에 묘한 미소가 번졌다.

“이거 공짜 아닌데요?”

“네?”

“테이머스, 성한 오빠한테 얘기 들었죠?”

“아, 네. 그런데 그 얘기가 여기서 왜······.”

“가입해요. 고미도 구해줬고, 병원비도 내줬고. 솔직히 이 정도 해줬으면 미안해서라도 가입해야지.”

이 여자······. 뭐가 이렇게 마이 페이스야.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인데, 헌터로 영입하는 거 아니에요. 용왕 길드랑 테이머스는 아무 상관도 없으니까. 이쪽은 헌터 일하고는 아무 상관도 없고, 내가 남아도는 돈으로 귀여운 펫들 맛있는 거 사주고 아프면 병원비 대주고, 가끔 같이 여행도 가고 그런 조직이에요.”

······.

시, 신종 호구! 신종 호구다!

심지어 이강혁처럼 매운맛(?)을 본 것도 아닌데 알아서 호구가 되버렸어.

‘설마 고미에게서 사람을 홀리는 괴전파라도 흘러나오는 건가······.’

“빨리요. 가입할 거죠? 그쵸? 설마 이대로 그냥 가는 건 아니죠? 진짜 그건 너무 한 거죠?”

내가 아무런 답도 하지 않자, 한유진이 계속해서 나에게 다가오며 가입을 강요(?)했다.

으으, 예쁘다. 가까이서 보니까 더 예쁘다. 그런데 부담스럽다. 이 사람 무서워. 스토커 스타일이다.

“아, 알겠습니다. 우선 고미가 좀 안정되면, 다시 찾아뵐게요.”

결국 원하는 답을 얻어낸 한유진은 어린애처럼 해맑게 웃으며 곧바로 몸을 돌렸다.

“그럼 고미 만지는 건 다음으로 미룰게요! 아플 때 만지면 애가 스트레스 받을지도 모르니까! 그럼 이제 집까지 데려다 드릴게요!”

난감하군. 집주소 알려주면 매일 찾아올까 겁나는데······.

“어······. 아니에요. 친구가 차타고 데리러 올거라, 그냥 돌아가셔도 될 것 같아요.”

“그래요? 고미랑 더 있고 싶은데······.”

한유진은 서운하다는 듯 나와 고미를 번갈아 바라보다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요. 그럼, 조만간 꼭 연락주세요!”

멀어지는 한유진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있을 때, 머릿속에 제르보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김수하, 일단은 그냥 넘어가지만, 앞으로도 계속 주시하겠다. ]

자, 잠깐, 뭐라고?

[ 하나 경고하지. 그 곰에게서 결코 눈을 떼지 마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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