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49 핵빠따 워리어
“뭐, 뭐야 이거······.”
놀란 건 나뿐만이 아니었다.
고미와 수다르는 한과를 먹는 것마저 잊고 커다란 바위 위에 엎드려 목을 쑥 내민 채 나를 바라보고 있었고, 이강혁 역시 놀란 토끼 눈을 하고 홀린 듯 나의 ‘빠따’를 주목하고 있었다.
왜냐고?
지금 내 빠따가 불타고 있거든.
아니, 정확히 말하면 불 속에 넣어놓은 부지깽이처럼 붉게 달아올라 있는데, 뜨겁지는 않다.
‘당황스럽네.’
‘진짜 불타고 있는 건가’하는 생각에 혀를 내민 채 축 늘어져 있는 시체청소부를 쿡쿡 찔러 보았지만, 불이 붙거나 하지는 않는다.
음, 불을 뿜는 빠따가 아닌 건 확실하군.
화염 빠따라면 정말 멋졌을 텐데.
그런데······.
‘이번에는 또 왜 이래.’
빠따가, 식고 있다.
‘고미, 대체 뭘 만들어 놓은 거야······.’
“수하! 다시 해보거라! 다시!”
고미가 마술이라도 본 어린아이처럼 잔뜩 흥분해 팔을 붕붕 돌리며 외쳤다.
그래, 이번에도 자기가 뭘 했는지 모르는구나······.
정작 만들어 놓은 본인이 잔뜩 흥분해서 나보고 다시 해보라고 하는 판이니, 고미한테 물어봐야 답이 나올 것 같지는 않다.
- 크르르!
빠따가 식어가자, 잔뜩 경계하고 있던 놈 중 하나가 나를 향해 달려들었다.
가볍게 주걱을 휘둘러 녀석을 쳐낸 다음,
빡!
빠따로 정수리를 내리치자,
-켕!
녀석이 짤막한 비명을 내지르며 뒤쪽으로 물러났다.
그와 동시에 식어가던 빠따가 다시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잠깐, 이거······. 공격하면 불타는 건가?’
아까 쓰러져 있던 놈을 계속 두들겨 주니까 빨갛게 변했지?
혹시나 하는 마음에 쓰러진 놈의 엉덩이를 후려치자, 빠따의 붉은 빛이 한층 강해졌다.
그렇다. 고미가 나에게 만들어 준 것은 충전식 ‘불빠따’였다. 때리면 때릴수록 에너지가 충전되는······.
“자, 와봐.”
빠따를 흔들어 녀석들을 도발해 봤지만, 달려들질 않는다.
위압 효과라도 붙어있나. 아니면 단순히 불타니까 무서워서?
나는 망설임 없이 녀석들을 향해 뛰어들었다.
이러나저러나 두들겨 봐야 알 수 있으니까.
팔다리가 잘 돌아간다. 내 몸이 맞나 싶을 정도로.
검의 달인 + 왕유 조합 덕인가.
스킬 등급이 낮아도 왕유로 신체 능력이 향상되고, 감각 강화로 제대로 보고 따라 하니 효과는 배 이상. 개꿀이네.
퍽! 퍼벅!
나는 양 떼 사이에 뛰어든 늑대처럼 시체 청소부들을 공격해 나갔다.
그러던 어느 순간,
우웅-, 우우우우웅-
나의 빠따가 울부짖기 시작했다.
“오오오! 수하! 굉장하구나! 가라!”
오케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간다!
‘필살 불빠따 스윙!’
콰앙!
“엄마야!”
내가 휘둘러 놓고, 내가 놀랐다.
그도 그럴 게······.
빠따에 깃들어있던 붉은 기운이 한순간에 방출되며 대폭발을 일으켰거든.
‘부, 불빠따가 아니라 핵빠따였어!’
뭣도 모르고 휘두른 핵빠따에서 뿜어져 나온 정체불명의 에너지에 얻어맞은 세 마리는 빈사 상태에 빠져 바닥을 나뒹굴었고, 나머지 두 놈은 꼬리를 말고 달아나기 시작했다.
“오오오! 수하! 멋지구나!”
흥분을 참지 못한 고미가 바위 위에서 몸을 날려 나의 곁에 착지하며 외쳤다.
“방금 사용한 기술은 무엇이냐? 위대한 이 몸이 보기에도 제법 멋졌다! 위력은 강하지 않지만, 뭔가 웅장한 느낌이 드는 일격이구나!”
고미는 너무 흥분한 나머지 내 주위를 빙글빙글 돌며 정신없이 꼬리를 흔들어댔다.
이럴 때 보면 곰이 아니라 강아지 같단 말이지.
댕댕이+곰이니까······. 곰댕이? 곰탱이랑 발음이 비슷하군.
“역시, 이 몸이 만들어 준 위대한 검을 사용하니 그런 필살기도 사용할 수 있게 된 것이냐!?”
대체 이 녀석의 맹함과 자뻑의 끝은 어디일까
그래도 귀여우니 넘어가자. 뭐, 이 녀석이 만들어 준 무기인 것도 사실이고.
하지만 예상치 못한 부작용이 있었으니······.
“음음······. 곰 선생님께서 만들어 준 무기에 이런 비밀이 담겨 있을 줄이야. 저도 제 무기를 좀 더 연구해 봐야겠습니다.”
고미의 제자이기 때문에 부여된 효과를 보고 이강혁이 그 ‘부메랑’에도 엄청난 옵션이 있을 거라고 착각하고 있다.
“제 무기는 부메랑처럼 생겼으니 기를 담아 날리면 폭풍이 몰아치거나 회오리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요?”
······.
진지한 표정으로 그런 말 하지 마, 그런 거 없어.
그리고 왜 그렇게 쓸데없이 디테일한 상상을 하는 건데, 회귀자의 마음에도 동심은 남아있다, 뭐 이런 거냐.
“게다가 이제 막 검을 잡은 녀석이 이도류라니, 생각보다 재능이 있는 녀석이구나!”
고미가 계속해서 손뼉을 쳐대며 칭찬을 하는 사이,
< 축하합니다. 메인 퀘스트를 완료했습니다. >
< 제자라고 다 같은 제자가 아니야 (완료) >
< 달성 조건 >
1. 호감도 100 이상. (150 / 100)
2. 참 잘했어요 포인트. (55 / 50)
< 호감도 50% 초과 달성으로 인한 추가 보상이 지급됩니다. >
‘헐······.’
호감도는 또 언제 저렇게 올랐대.
원래 130 언저리 아니었나······.
한과 세트에 차 조합, 피크닉이 결합한 효과인가?
신경 안 쓴 사이에 엄청나게 올랐구나.
게다가 추가 보상이라니, 이런 건 미리 말 좀 해줘라.
뜬금없이 이러는 게 하루이틀 일은 아니지만...볼 때마다 싱숭생숭하다.
가장 반가운 것은, 칭호 효과 상승이었다.
< 제법 훌륭한 안목을 가진 고미님의 수제자 (D+ / F~Gomi) >
- 제법 훌륭한 안목을 가진 고미님의 수제자입니다. 고미님의 권능을 더욱 잘 이해하고, 활용할 수 있습니다.
< 칭호 변화로 인해 스킬 레벨이 조정됩니다. >
< 날카로운 곰정사의 눈 (E -> D) >
< 새로운 스킬을 선택해 주십시오. >
< 강화할 스킬을 선택해 주십시오. >
< 강화할 능력치를 선택해 주십시오. (+7) >
정신이 하나도 없다. 뭐가 이렇게 많아.
스킬은 나중에 선택하고, 일단 능력치나 찍자.
< 능력치가 상승합니다. >
힘 8 -> 15 (+1) / 민첩 13 (+1) / 체력 10 (+1) / 마력 : 6 (+1)
산악 지형이면 여기에 +10%, 아이템 옵션까지 합치면 힘은 30에 가깝고, 나머지 능력치도 꽤 상승하니까.
음······. 훌륭하다.
능력치는 C급에 약간 못 미치지만, 스킬과 아이템 조합까지 고려하면 실제 전투력은 C급 평균보다는 위일거다.
‘후후, 이제 곧 민봉식이 내 발밑인 건가.’
평생 봉식이를 이길 거라고는 생각도 못 해봤다.
그건 비각성자 시절부터 살아있는 흉기였으니까.
하지만 이제 곧 그 괴물이 내 발밑이다. 우하하하하!
이제 더는 라면 한 젓가락을 반강제로 내주는 수모를 당하지 않겠군! 아니, 어쩌면 뺏어 먹을 수 있게 될지도······.
“수하? 왜 그러느냐?”
내가 혼자서 기분 나쁜 웃음을 짓고 있자, 고미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나를 빤히 바라봤다.
“아, 미안. 별거 아니야. 가자. 영약 효과 떨어지기 전에 더 움직여야지.”
짧은 재정비를 마친 후, 나는 이강혁의 검을 빌려 ‘주걱+빠따 이도류’가 하향 조정을 받는지 확인해 보았다.
아쉽게도 이강혁의 검과 핵빠따를 들었을 때보다 한 손에 주걱을 들었을 때 조금은 움직임이 둔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역시 세상일이라는 게 그렇게 맘대로 풀리지는 않는 모양이다.
이후 우리는 1시간을 꼬박 채울 때까지 던전을 돌았고, 영약의 효과에 힘입어 추가로 힘을 2나 올릴 수 있었다.
* * *
“휴, 수하 씨는 정말 성장이 빠르군요. 저희 길드에 영입하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드네요. 다른 길드에 뺏겼다면 분해서 잠도 못 잤겠습니다.”
던전 밖으로 나오자, 이강혁이 웃으며 나를 칭찬해 주었다.
“후훗, 위대한 이 몸의 제자라면 이 정도는 당연한 것이지!”
나에 대한 칭찬에 나보다 고미가 더 기뻐하며 통통한 배를 쭉 내밀고 거만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나는 조금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협지에 보면 외문 제자, 내문 제자, 직전 제자 어쩌구 하면서 계속 등급이 올라가던데, 제자 퀘스트는 이걸로 끝인가.’
새로운 퀘스트가 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럼 이전처럼 빠르게 성장하기는 어려울 것 같은데······.
솔직히 그냥 먹고 사는 문제라면, C급에 만족하고 즐겁게 살아가는 게 나라는 인간이다.
하지만 내 소소한 일상이 언제 초월자들에 의해 짓밟힐지 모른다고 생각하니 불안한 마음을 떨칠 수가 없었다.
‘음, 워라벨 지키면서 소소하게 살려면 초월자를 물리치라니······. 이게 무슨 먼치킨 주인공이 커피집 운영하는 소리냐.’
공무원이든, 식당 주인이든, 카페 주인이든, 바리에이션은 다양하지만, 결론은 하나지.
소소한 일상을 살아가기 위해 넘어야 할 산이 엄청나게 크다는 거.
차이가 있다면, 나는 그런 소설의 주인공들과는 달리 슈퍼 먼치킨이 아니라는 거?
‘그래도 오늘 할 일은 잘 마무리 했으니까 저녁에는 가족들이랑 밥이라도 먹으면서 편하게 쉬자.’
워라벨의 핵심은 무엇이냐.
일과 여가의 조화다.
일만 있는 것도, 여가만 있는 것도, 워라벨이 아니다.
보람찬 하루 일을 끝마치고 주어지는 달콤한 휴식.
오늘도 무언가 가치 있는 일을 해냈다는 보람을 느끼고, 돌아가면 소소한 일상을 즐기는, 그게 내가 원하는 삶이거든.
그러니까, 오늘은 셔터 내리고 쉬련다.
내일은 용 세마리 키우는 무서운 여자 만나러 가야하니까.
* * *
이후 나는 이강혁 씨에게 부탁해 곧바로 봉식이의 집으로 향하지 않고 며칠간 비워둔 나의 원룸으로 향했다.
꼭 가져가야 할 소중한 ‘아이템’이 이곳에 남아있거든.
나머지 살림살이야 뭐······.
꼬질꼬질한 이불과 베개는······. 버리자. 이제 와서 보니 잘도 이런 걸 덮고 잤구나 싶다.
전기장판은 회수. 옷이야 몇 개 있지도 않으니 한 박스면 충분히 다 담을 수 있을 거고.
마지막으로 노트북 정도 챙기면 사실상 살림살이가 거의 없다.
필요한 짐을 모두 챙긴 후, 나는 곧바로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 아빠. 오늘 저녁에 먹고 싶은 거 있는데, 만들어 줄 수 있어?”
“아들이 먹고 싶다는 거 있다는데 해줘야지. 뭐 해줄까?”
“사실 고미 말고 새 손님이 하나 있거든. 놀라지 마.”
“누군데? 산신령이라도 돼?”
정답. 이걸 어떻게 맞췄지?
“어떻게 알았어?”
“정말 산신령님이 우리 집에 온다고?”
아버지가 놀란 목소리로 되묻는다.
뭐야, 농담이었어? 우리 아버지지만,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건지 궁금할 때가 한두번이 아니다.
“그런데 산신령님이······. 수달이거든.”
“그게 무슨 소리야.”
“그러니까, 고미처럼 동물이라고. 말하는 수달.”
“······. 굉장하네. 그래서 메뉴는?”
* * *
“정말 안 가시게요?”
“네, 저는 집에 가서 고미님이 만들어 주신 무기를 좀 연구해 보겠습니다. 태양초도 가져와야 하고, 그 밖에도 할 일이 좀 쌓여 있어서······. 아 참, 부모님 가게 문제는 곧 해결될 것 같으니 그때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이강혁은 나와 고미, 수다르를 집까지 바래다준 후 밥도 먹지 않고 곧바로 돌아가겠다고 말했다.
요 며칠 고미와 나를 쫓아다니느라 일이 좀 밀렸다고.
‘쩝, 그래도 밥은 먹고 가지.’ 하는 마음이 들었지만, 너무 권하는 것도 예의가 아닌 것 같아 결국 그냥 보내기로 했다.
그렇게 이강혁을 보내고 어깨에 고미를 올린 뒤 수다르를 안아 들고 집으로 향하는 길······.
사람들의 시선이 심상치 않다.
[ 허허허, 고미 님은 언제나 이렇게 이동하시는 것입니까? ]
[ 언젠가 한 번 이렇게 수하의 어깨 위에 탄 적이 있는데, 아주 기분이 좋더구나. 그 후로는 자주 이용하고 있다. ]
음······. 이미 완벽한 탈 것 취급을 당하고 있다.
그렇게 본의 아니게 사람들의 시선을 받으며 집으로 들어서자, 아버지가 준비한 ‘그것’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