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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기곰이 너무 강함-46화 (46/300)

EP.46 약을 먹을 때는 몸에 맞는지 따져봐야 한다

“뭐든지 말씀하시죠.”

이강혁은 언제나 그렇듯 순순히 나의 제안에 응했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복병이 있었으니······.

“아직 내 작품에 손을 댄 이유를 해명하지 않은 것 같은데? 설마 먹을 것을 주고 대충 무마하려는 것은 아니겠지? 너는 분명히 해명을 하겠다고 약속했다!”

고미의 볼은 평소보다 두 배는 부풀어 있었고, 눈매도 날카롭게 변해 있었다.

빳빳하게 곤두선 털로 보나, 각지게 서있는 귀로 보나, 아직 화가 풀리지 않은 모양이다.

“어서 말해 보거라! 왜 나의 완벽한 작품에 손을 대었느냐!”

하긴, 열심히 만들어줬는데 갑자기 예고도 없이 칼질을 해버리면 화가 날만도 하지······.

어, 어떡하지? 그렇다고 시스템이랑 스킬 얘기를 할 수도 없고······.

“어, 어······. 너, 너무 완벽한 게 문제야!”

에라, 모르겠다. 가자 김수하! 일단 질러보는 거야!

이런 변명 한두번 해보냐!

“흥! 완벽한 것이 어째서 문제란 말이냐!”

“생각해 봐! 나처럼 비실비실한 놈이 그렇게 완벽하고 위대하고, 위엄이 넘치는 검을 들고 다니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걸 탐내고 빼앗으려 들겠어!”

오호······. 괜찮은데? 나 순발력 좀 쩌는 듯.

내 변명을 들은 고미가 눈을 가늘게 뜬 채 못마땅한 표정으로 답했다.

“그런 놈들은 모조리 내가 혼쭐을 내줄 것이다!”

“네가 검을 만들었다는 걸 알게 된 놈들이 우리 가족들을 쫓아다니면서 검 한 자루만 만들어 달라고 애원하면 어떻게 하려고?!”

“그, 그것은······. 조금 곤란하구나.”

고미의 동공이 순간적으로 흔들린다.

먹혔어. 먹히고 있다.

“협박을 하면 혼을 내주면 되지만, 맛있는 걸 싸들고 와서 부탁하는 사람들을 혼내줄 수는 없잖아. 엄마 아빠처럼 마음이 약한 분들이 얼마나 곤란하겠어!”

나는 그렇게 말하며 이강혁을 팔꿈치로 쿡쿡 찔렀다.

구경만 하지 말고, 뭐라도 보태보라고 좀!

“그, 그렇습니다. 저도 곰 선생님이 만들어 주신 검을 메고 다닌 이후로 매일 사람들에게 시달리고 있습니다.”

“정말이냐?”

고미의 눈이 조금 부드럽게 변하자, 이강혁이 황급히 설명을 덧붙였다.

“네! 사람들이 매일 같이 그 굉장한 검을 누가 만들어줬는지 물어대는 통에 잠도 못잘 지경입니다.”

“흠, 흠······. 그, 그렇단 말이지? 너도 참으로 고생이 많구나. 그저 이 몸을 흠모하는 마음에 검을 가지고 다니고 있을 뿐인데······.”

“그래, 나도 이강혁 씨한테 그 얘기를 듣고 도와달라고 부탁한 거야. 사람들이 너무 귀찮게 굴면, 가족 회식도 못하게 될지도 모르잖아.”

가족회식이라는 말에 고미의 눈에 2차로 지진이 일어난다.

됐어, 이 여세를 몰아 마무리다.

“물론 모양은 조금 망가졌지만, 너무 완벽해서 검술을 할 줄 모르는 나도 제법 자세가 나오게 됐잖아. 모두 네 검 때문이야.”

“크흠······. 그렇군. 확실히 그 녀석은 내가 만든 것 중에도 제법 쓸만한 검이지.”

기분이 좋아진 고미가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바나나 스무디를 손에 들었다.

“그럼 이번 한번만 용서해주마. 대신, 다음 번에는 반드시 나에게 말을 하고 손을 대거라.”

“용서해줘서 고마워, 고미. 오늘 저녁에는 감사의 뜻으로 맛있는 거 해줄게.”

마지막 멘트에 고미는 흐뭇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마무리는 언제나 먹을 걸로.

고미를 상대하는 첫 번째 원칙이다.

휴······. 일단 어떻게든 넘어갔군.

가슴을 쓸어내리며 이강혁을 바라보자, 그의 눈동자에 깃든 감정이 책처럼 읽혔다.

동정 반, 존경 반.

안타까움 반, 감탄 반.

그렇게 보지 말라고······. 당신도 같이 했잖아.

어쨌든, 이제 한고비 넘어갔으니 본론으로 들어가자.

“이강혁 씨, 전에 저에게 주려고 했던 단약, 던전에서 나온 아이템이죠?”

일단 물어보기는 했지만, 사실 그것이 던전에서 나온 아이템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누군가가 만든 약이라면 그렇게 귀하게 여길 필요가 없다. 돈 주고 사면 그만이니까.

그리고 항아리를 구한 건, 약효를 끌어올릴 방법이 그것밖에 없기 때문이겠지.

그게 아니라면 저렇게 지갑도 빵빵하고 인맥도 넓은 사람이 굳이 그런 번거로운 방법을 택하지는 않았을 거다.

즉, 하나밖에 구할 수 없고, 어떻게든 그것의 효과를 키우고 싶을 만큼 귀한 물건이라는 소리.

‘저런 걸 냉큼 내주려고 하다니, 확실히 호구 끼가 있어.’

속으로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네, 그렇습니다. 혹시 마음이 바뀌셨습니까?”

이강혁이 인벤토리에서 단약을 꺼내 나에게 내밀며 말했다.

이거 봐라. 호구 끼 있는 거. 대체 내 뭘 보고 이 귀한 걸 덥석덥석 내주려고 하는 걸까?

“아뇨, 그런 의도로 물어본 게 아니에요. 혹시 그 단약의 효과를 올릴 방법이 있지 않을까 싶어서요.”

“그래서 지금 단약을 항아리에 넣어둔 상태입니다.”

“그거 말고 다른 방법이 있지 않을까 싶어서요.”

이강혁은 생각할 필요도 없다는 듯 곧장 답을 내놓았다.

“다른 방법은 없습니다.”

그렇겠지.

“비슷한 약을 만든다던가, 구하는 것도 불가능한 거죠?”

“그런 방법을 알고 있다면 굳이 수하 씨에게 이 약을 넘기려고 하지 않았을 겁니다.”

하지만, 나는 이강혁의 답이 100% 정답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반대로 내 생각에 100% 확신을 갖고 있지도 않다.

그냥, 확인을 해보고 싶다.

대학원 때와는 달리 실험하다 날 새는 것도 아니고, 결과 안 나온다고 졸업을 못 하는 것도 아니니까. 반대로 내 생각이 맞다면 대박나는거고.

그의 이야기를 들은 후, 내 마음 속에는 줄곧 한 가지 의문이 남아 있었다.

왜 한국의 붕괴는 늘 산신령의 죽음으로 시작됐을까?

초월자의 침공과 게이트, 던전의 출현을 이계의 존재들과 인간의 전쟁이라고 하면, 승리를 위해 가장 먼저 제거해야 할 인물을 정하는 건 아주 중요한 문제다.

「산신령은 반드시 지켜야 할 존재입니다. 회귀 전, 한국의 붕괴는 항상 산신령의 죽음으로 시작됐으니까요.」

그리고 이강혁의 말에 따르면, 적어도 한국에서는 그게 산신령, 수다르 8세였다.

그렇다면, 타깃을 정하는 기준은 뭘까?

나라면, ‘중요도’와 ‘난이도’로 우선순위를 정할 거다.

당연히 1순위는 ‘가장 중요하면서’ , ‘가장 죽이기 쉬운’ 존재.

그리고 수다르는 명색이 산신령이면서 D급 몬스터 소굴에 있는 봉인도 스스로 부수지 못할 정도로 전투력이 형편없다.

즉, 수다르는 ‘매우 중요하면서’, ‘죽이기는 쉬운’ 존재다.

‘꼭 전투력이 있는 이능력자만 중요한 건 아니지.’

그런 거라면 아이템이나 포션 제조 능력자를 영입하기 위해 길드 간에 암투가 벌어지지도 않을 거다.

그리고 산신령의 민트사탕과 홍삼 캔디를 맛본 나이기에 알 수 있는 사실이 있었다.

그 집, 아니, 그 수달, 약 잘한다.

산신령의 가호는 둘째치고, 홍삼캔디는 왕유를 먹은 내게 딱 맞는 약이었다.

부모님을 깨어나게 만들어 준 약도 그 자리에서 바로 만들었고.

그런걸 바로 내준다는 건, 약의 바리에이션이 상당하단 소리지.

요약하자면, 나의 결론은 이랬다.

최고의 단약사, 최고의 포션 제조자.

그게 수다르의 역할이 아닐까?

심지어 ‘산신령의 진짜 가호’처럼 능력치를 끌어 올려주는 단약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최고의 단약사라면, 그 가치는 두말하면 입이 아플 정도일 터.

“그럼 그 단약을 잠깐만 저에게 맡겨주실 수 있을까요? 한번 확인해 보고 싶은 게 있어서요.”

“알겠습니다. 뭔가 생각이 있으신 듯하군요.”

이강혁의 동의를 얻은 나는 곧바로 단약을 고미에게 넘겨주었다.

“고미, 이걸 수다르에게 가져다줘. 그리고 이것과 비슷한 단약을 만들거나, 효과를 더 끌어올릴 방법은 없는지 한 번 물어봐 줘.”

“흐음······. 알겠느니라.”

고미가 남아있는 바나나 스무디를 깨끗하게 비운 뒤 곁에 있던 딸기 스무디를 집어 들며 말했다.

산신령의 보물을 문지르자, 수다르의 동굴로 향하는 공간 통로가 열렸다.

“그럼 잠시만 기다리거라.”

딸기 스무디를 마시며 공간 통로로 사라지는 고미의 모습에 이강혁은 귀신에 홀린 듯 멍한 표정을 지었다.

“곰 선생님의 능력은 정말 대단하군요.”

그렇게 5분 정도 지났을까,

고미가 우리가 있는 곳으로 돌아왔다.

‘응?’

그런데, 그 뒤에 낯선 생물 하나가 서 있었다.

“수달?”

이강혁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중얼거렸다.

“고미? 그건 누구야? 수다르 9세야?”

고미와 함께 나타난 것은 아주 작은 수달이었다.

굳이 따지자면, 저게 일반적인 수달의 크기이기는 한데, 3미터짜리 거대수달을 보고 나서 그런지, 평범한 수달이 아기처럼 느껴졌다.

“허허허, 수하님, 반갑습니다. 이렇게 바깥세상에서 다시 만나 뵙게 될 줄이야. 참으로 기분이 좋군요.”

“응?”

하지만 목소리나 말투로 보아 그 작은 수달의 정체는 틀림없이 수다르 8세였다.

“산신령님? 왜 이렇게 작아진 거죠?”

“허허, 지리산의 영기를 받지 못하는 곳에서는 크기도 그만큼 작아질 수밖에 없지요. 저는 산신령이니까요.”

“산신령님!”

이강혁이 놀란 듯 눈을 치켜뜨며 외쳤다.

이전 세상에서 결국 수다르의 죽음을 막지 못했다고 했으니, 실제로 보는 건 처음이겠지.

“허허, 이분은 누구십니까?”

수다르가 이강혁을 바라보며 묻자, 고미가 딸기 스무디를 마시며 답했다.

“나에게 간식을 사주는 기특한 녀석이다. 대신 이런저런 가르침을 좀 주고 있지.”

음, 아직 별다른 가르침을 준 것 같지는 않은데······.

“만나 봬서 영광입니다.”

“눈이 맑고 몸에서 흐르는 기운이 범상치 않은 것이 아주 훌륭한 분인 것 같군요. 오랜만에 만난 속세의 인간이 이런 사람이라니, 참으로 기분이 좋습니다.”

이야, 역시 사회생활 만렙이다.

덩치는 작아졌지만, 캐릭터는 변함이 없는 모양이다.

“이 단약의 주인이 이분입니까?”

“이강혁이라고 합니다.”

“허허, 그렇군요. 귀한 물건이 귀인을 만났으니, 그야말로 아름다운 인연이군요.”

멘트 찰진거 보소.

“그런데 왜 직접 오신 거예요?”

“이 천도환(天道丸)은 사람에 따라 섭취하는 방식을 달리 해야 합니다. 그리고 약효를 제대로 보려면 제가 직접 흡수할 사람을 만나보는 편이 좋지요.”

수다르가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손에 든 단약을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그렇군요······. 처음 듣는 이야기입니다.”

수다르의 설명을 들은 이강혁의 눈이 동그랗게 변했다.

“허허, 그 사실을 아는 자들은 아마 천하를 다 뒤져봐도 다섯이 채 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보다, 맥을 한번 짚어봐도 되겠습니까?”

뭐야, 맥도 짚을 줄 알아?

단약사인 줄 알았는데, 한의사였나.

“흐음······. 소양에 토기(土氣)가 강하니, 신의가 깊고 온후한 성품을 가지셨군요. 하지만 마음에 울화와 슬픔이 가득하고, 이것이 자신에 대한 의심과 회의로 변해 마음의 병이 깊은 상태입니다.”

강아지 발바닥만큼 작아진 손으로 맥을 짚어보던 수다르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이강혁을 바라보며 말했다.

음······. 상당히 정확하게 짚어내네. 부전공으로 심리학을 하셨나 보다.

“수하님과 고미님과는 상당히 궁합이 좋군요. 이분과 함께라면 토대가 단단해져 반드시 좋은 결실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다만 천도환(天道丸)과는 궁합이 좋지 않으니, 제가 약간 손을 본 뒤에 단약을 복용하시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궁합까지 보시네. 게다가 정확도도 높고······. 하산하시면 돈 좀 만지시겠는데.

어쨌든, 내 추측이 얼추 맞은 것 같다.

“그럼 산신령님께 약을 맡겨도 될까요?”

나의 질문에 수다르는 온화하게 웃으며 손가락 두 개를 들어 보였다.

“저에게 맡기신다면, 약의 효과를 두 배는 끌어 올릴 수 있습니다.”

“정말이십니까?”

이강혁의 눈이 튀어나올 듯이 커졌다.

천도환의 약효가 어느 정도인지는 모르겠지만,

‘이 정도면 이강혁 씨한테 부탁하려고 했던 것들의 조건을 좀 높여도 되겠는데······.’ 하는 생각이 절로 드는 수치였다.

그때, 수다르가 어두운 표정으로 다시 입을 열었다.

“하지만 한가지 중대한 문제가 있습니다.”

“무슨 문제죠?”

이어지는 나의 질문에 수다르가 턱을 매만지며 곤란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말해보거라, 수다르.”

뒤쪽에 앉아 딸기 스무디를 쪽쪽 빨아 먹던 고미가 잔뜩 인상을 찌푸린 채 말했다.

'고미도 뭔가 알고 있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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