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아기곰이 너무 강함-44화 (44/300)

EP.44 곰손 치료사

‘일단 이강혁 씨한테 연락을 해봐야겠네.’

└ 이강혁 씨, 부탁 좀 드려도 될까요?

└ 얼마든지 말씀하세요.

└ D급 마정석 열 개랑, D급 마력철 좀 구해주실 수 있을까요?

└ 네, 최대한 빨리 다시 연락 드리겠습니다.

“수하! 지금 허수아비와 필담을 나누고 있는 것이냐?”

통화를 마치고 내 스마트폰 화면을 바라보던 고미가 눈을 빛내며 물었다.

“응, 깨톡이라고. 이게 있으면 전화를 안 해도 글자로 얘기를 나눌 수 있어.”

“오오! 그것은 어떻게 쓰는 것이냐! 나에게도 알려다오!”

“음······. 기다려 봐.”

나는 고미의 꿀폰에 깨톡을 설치해준 뒤 사용법을 일러주었다.

“그러니까 이 복주머니 같은 것을 누른 다음······. 으음, 어렵구나.”

고미는 손에 터치펜을 든 채 아주 느린 속도로 한 글자 한 글자 정성스럽게 메시지를 입력했다.

└ 에헴허수아비어디있느냐

생각보다 배우는 게 빠르기는 한데, 아직 띄어쓰기나 특수 기호를 쓸 줄 모르는 탓에 문장을 읽기가 조금 어려웠다.

└ 곰 선생님이십니까? 핸드폰을 사셨군요. 먼저 연락을 주시다니, 영광입니다.

대단하군. 이것만 보고 고미라는 걸 알아차리네······.

└ 내일수하를만날때나와했던약속은당연히지키겠지

“자, 이걸 누르면 띄어쓰기가 되고, 이걸 누르면 이렇게 느낌표랑 물음표 같은 걸 넣을 수 있어.”

특수기호 사용법을 배운 고미는 전에 없이 진중한 표정으로 글자를 고쳐나갔다.

그런데 어째 고치는 폼이······.

터치펜을 눕히지 않고 수직으로 꼿꼿하게 세운 것 하며, 허리를 곧게 펴고 팔 전체를 띄워 글을 쓰는 것까지, 영락없이 붓을 든 양반같은 자세다.

대체 누구한테 글자를 배운 걸까?

그렇게 터치펜을 붓처럼 든 고미는 한 자 한 자 정성스레 글자를 찍어나갔고,

└ 내일 수하를 만날 때 나와 했던 약속은 당연히 지키겠지?

문장이 완성되자 흐뭇한 표정으로 꿀폰을 들어 나에게 보여주었다.

“후후, 완벽하지 않느냐? 참으로 편리하구나. 사실 이 몸이 서예에는 조금 조예가 부족한데, 아주 보기 좋은 모양으로 잘 써진다.”

음, 서예에는 조예가 없는 걸까, 서예에도 조예가 없는 걸까.

항상 느끼는 거지만, 고미는 지나칠 정도로 자신감이 넘친다.

아이러니하게도, 그게 매력 포인트이기는 하지.

└ 네, 염려 마십시오. 곰 선생님께서 아주 좋아하실만한 물건으로 준비하겠습니다.

확답을 받은 고미는 흡족한 표정으로 화면을 끈 뒤 나에게 시선을 돌렸다.

“자, 이제 문 앞에 가서 엄마를 기다리자꾸나.”

개나리 가지를 든 고미가 문 앞으로 걸어가자, 미리 합이라도 맞춘 것처럼 정확한 타이밍에 문이 열렸다.

강아지들은 발소리만 듣고도 누구인지 안다는데, 고미도 발소리로 엄마를 구분할 수 있는 모양이다.

하긴, 이 녀석 청각이면 그걸 못 하는 게 이상하지.

“어머! 우리 막내가 엄마 주려고 꽃을 가져왔네?”

엄마의 입가에 환한 미소가 번지자, 개나리를 든 고미의 어깨에 한껏 힘이 들어갔다.

“후훗, 마음에 드느냐? 이 몸이 밖에 나가 직접 구해온 진귀한 꽃이다!”

“그러게, 어쩜 이렇게 귀한 걸 구해왔을까?”

개나리가 귀한 건 아니지만, 어머니는 정말 세상에 둘도 없는 보물을 받았다는 듯 기뻐하셨다.

고사리 손으로 정성껏 준비한 선물이니, 그게 뭐든 그저 예쁘게만 보이겠지.

“흠흠, 그런데 막내가 아빠 줄 선물은 안 챙겨왔네? 조금 서운한데······?”

아버지가 던진 장난스런 한마디에 잔뜩 흥분한 채 뱅글뱅글 돌아가던 고미의 꼬리가 우뚝 멈춰 섰다.

“그, 그것은······!”

아빠는 왜 저렇게 고미를 놀리는 걸 좋아하는 걸까?

생각해보니 내가 어릴 때도 저런 시도를 많이 하셨던 것 같기는 하다.

[ 고미, 초콜릿, 초콜릿. ]

시스템 창에 메시지를 써넣어 힌트를 주자,

“기, 기다리거라! 아빠를 위해서도 선물을 준비했다!”

고미는 후다닥 방안으로 뛰어갔다.

“아빠, 적당히 해. 왜 그렇게 애를 놀려.”

살짝 핀잔을 줘 봤지만, 아버지는 절대 이 즐거움(?)을 포기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안돼. 요즘 아빠가 고미 보는 맛에 산다. 너는 어릴 때부터 애가 좀 심드렁해서 놀려도 재미가 없었거든. 봉식이야 처음 봤을 때 이미 놀릴 나이가 아니었으니까.”

“아, 아빠! 이것이 아빠를 위한 선물이니라!”

고개를 돌려보니 방안에서 커다란 초콜릿 상자 하나가 걸어오는 것이 보였다.

고미의 키가 원체 작은 데다가 선물 세트 크기가 상당하다 보니, 상반신 전체가 초콜릿 상자에 가려져 귀와 다리만 보이는 수준.

“아빠는 맛을 아는 자이니, 특별히 아주 귀한 물건으로 준비했다!”

아, 미래가 보인다.

“그럼 우리 막내님이 하사한 초콜릿 맛 좀 볼까?”

뚜껑을 여는 순간, 아버지의 눈이 먹이를 노리는 독수리의 그것처럼 날카롭게 빛났다.

“응? 왜 두 개가 비어있지?”

이강혁과 맹약을 나눈다고 하나씩 나눠 먹었으니까, 두 개가 빈다.

아빠가 이걸 놓칠 리 없지.

“설마 선물이라고 해놓고······.”

짝!

하지만 타이밍 좋게 날아든 등짝 스매싱 한방에 아빠는 날개를 펴보지도 못하고 추락하고 말았다.

“애 그만 놀리고 들어가서 밥 먹어요!”

[ 수, 수하! 엄마는 역시 조금 무서운 것 같다······. ]

그렇게 엄마의 일격으로 집 안에는 다시 평화가 찾아왔고, 저녁 식사를 마친 후 모두 잠자리에 들었다.

* * *

다음 날 아침, 자리에서 일어나니 어제의 전투 때문인지 온몸 곳곳에서 근육통이 느껴졌다.

‘음, 대웅전에서 잤을 때는 개운했는데.’

집보다 대웅전이 좋은 건 아니지만, 새삼 고미의 능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실감이 났다.

아침 식사를 마친 후 두 분은 또다시 일자리를 구하러 나갔고, 결국 가게 이야기는 꺼내 보지도 못했다.

첫째로는 이강혁 씨가 아직 확실히 얘기해 준 게 없기 때문이고, 둘째로는 부모님이 가게를 내준다는 말에 어떻게 반응할지가 눈에 선했기 때문이다.

‘보나 마나 2년 동안 병원비 대느라 고생했을 텐데 모아둔 돈이 있으면 너희나 쓰라고 하겠지.’

두 분의 성격상 봉식이가 말하든 내가 말하든 그리 쉽게 아들 돈을 받을 리가 없다.

‘일단 이 문제는 어느 정도 확실히 정해지고 나면 말을 꺼내는 게 낫겠지. 우선 내 할 일에나 집중하자.’

생각을 마친 나는 장판과 혼연일체가 되어 꿀잠을 자고 있는 고미를 두고 ‘준비물’을 사기 위해 밖으로 나갔다.

* * *

준비물을 사기 위해 이동하는 길, 오랜만에 상태창을 열어 퀘스트 진척도를 확인했다.

‘수제자’ 퀘스트는 어느새 거의 완료가 되어 있었다.

호감도는 100을 넘어 127까지 초과 달성, ‘참 잘했어요’ 포인트도 목표치인 50에 거의 근접해 46이나 쌓여 있다.

‘음······. 그동안 상태창을 너무 안보긴 했네.’

뭔가 가족과의 시간을 방해받는 기분도 들고, 고미를 속이는 것 같아 일부러 펴보지 않았다.

하지만 몇 년 이내에 한국이 붕괴하고 어쩌고 하는 얘기를 들은 판에 언제까지 그런 것에만 집착할 수는 없다.

‘그래도 요 며칠간 엄청 즐거웠던 모양이네.’

가장 기쁜 것은, 가족 포인트가 벌써 83까지 올랐다는 사실이었다.

일주일도 안 돼서 50 이상 올랐고, 호감도 포인트도 엄청나게 올랐다. 시스템 창이 가짜가 아닌 이상, 고미가 행복하다는 건 확실한 것 같다.

‘일단 실험이 성공하면 퀘스트는 조금 미뤄도 될 테고, 아니면 수제자 퀘스트를 완료하고 나서 다시 실험을 해봐야지. 스킬 포인트는 최대한 아끼는 게 좋으니까.’

그렇게 생각을 정리하고 있을 때,

깨톡. 깨톡.

└ 말씀해주신 물건 전부 준비됐습니다.

└ 네, 돈은 얼마나 보내드리면 되죠?

└ 처음 만났던 카페에서 뵙겠습니다.

여, 여보세요?

이 사람 가격을 묻는데 왜 답을 안 하고 장소만 말하는 거야······.

설마 돈 안 받으려고 이러는 건가?

└ 이강혁 씨? 가격을 말씀해 주셔야 송금을 해드리죠.

└ 마실 것은 뭐로 하시겠습니까? 먼저 가 있을 테니 출발할 때 말씀해 주십시오.

안 되겠다. 만나서 다시 얘기해보자.

* * *

실험을 위해 필요한 물건을 모두 구매한 뒤 집으로 돌아오니, 바닥에 들러붙어 꿀잠을 자고 있는 고미의 토실토실한 엉덩이가 보였다.

“고미, 고미. 일어나. 이강혁 씨 만나러 가자.”

“우웅······. 싫다, 이 몸은 더 잘 것이다. 허수아비더러 오라고 하거라.”

'이 몸은 자지 않아도 된다'고 말한 지 한 달도 안 된 것 같은데······.

“이강혁 씨가 맛있는 거 사 왔을 텐데?”

“우웅, 가지고 오라고 하면 되지 않느냐······.”

음, 오늘따라 협조를 안 하는군.

“안 돼, 꼭 너랑 같이 가야 한단 말이야. 이강혁 씨가 전에 그 초콜릿보다 더 맛있는 거 사 왔대.”

“흐아아암······.”

더 맛있는 걸 사 왔다는 말에 고미는 뭉그적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나 나의 어깨에 올라탔다.

“그러엄······. 이대로 가자······. 음냐······.”

결국 나는 잠투정을 하는 고미를 업은 채 이강혁 씨가 기다리고 있는 카페로 향했다.

* * *

“오셨습니까?”

카페에 도착하자, 정말로 내가 마실 커피에 스무디까지 시켜놓고 기다리고 있는 이강혁의 모습이 보였다.

그의 발치에는 커다란 검은 색 가방 하나가 놓여있었다.

“곰 선생님께서는 오늘 피곤하신 모양이군요. 여기, 말씀해주신 물건입니다.”

이강혁이 검은색 가방을 내밀며 말했다.

“그러게요, 이상하네요. 평소에는 잘 일어나는데······.”

말을 마치기 무섭게 고미가 눈을 반짝이며 등에서 폴짝 뛰어내렸다.

“좋은 냄새가 나는구나. 이것은 무엇이냐?”

음, 못 일어난 게 아니라 안 일어난 거였군.

고미를 깨운 것은 이강혁이 시켜둔 스무디의 ‘향기’였다.

“초코 스무디입니다. 한번 드셔보십시오. 곰 선생님의 입맛에 딱 맞을 것입니다.”

“으, 으음······.”

말을 마치기도 전에 스무디 잔을 낚아챈 고미는 엄청난 속도로 한잔을 끝장내 버렸다.

‘스, 스무디 원샷!’

머리 안 띵한가? 꿀 원샷만큼이나 충격적이군.

“흠, 나쁘지 않구나. 한잔 더 내올 수 있겠느냐?”

그리고 이어지는 리필 요구.

“네, 이번에는 다른 맛으로 한번 시켜보겠습니다.”

“호오······. 좋다. 너의 안목을 믿어보지 허수아비.”

“감사합니다.”

아, 안돼. 이것들 페이스에 말려서 할일을 못하게 생겼잖아.

이강혁이 주문을 마치고 돌아오자, 나는 두 사람에게 더 이상 딴 얘기를 할 틈을 주지 않고 곧바로 이야기를 진행해 나갔다.

“고미, 이강혁 씨가 가지고 온 재료로 새 무기를 만들어 줄 수 있어?”

“새 무기? 너에게는 이미 훌륭한 무기가 있지 않느냐.”

“다른 상황에 쓸만한 다른 무기도 하나 만들어 보려고. 네 말대로 난 약하니까, 상황에 맞는 무기를 하나쯤 더 만들어 두는 편이 좋지 않을까 싶어서.”

“호오, 그래? 어떤 무기를 만들고 싶은 것이냐?”

고미는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몸을 풀며 이강혁 씨가 가지고 온 가방을 열어젖혔다.

이에 나는 이강혁 씨의 검을 가리키며 아침에 사 온 ‘준비물’을 꺼내 들었다.

“검.”

이전에 나는 검을 포기하고 ‘주걱’을 선택했다.

하지만 검술 스킬이 생긴 지금은 당연히 검을 사용하는 편이 전투력을 높이는데 도움이 된다.

고미의 손재주로 검을 만들 수 있냐고?

걱정 마라. 다 방법이 있으니까.

와라, 고미. 너의 곰손을 치료해 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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