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41 예상 밖의 난관
“후후후, 드디어 이 몸도 네가 매일 가지고 다니던 그 핸드폰이라는 것을 손에 넣을 수 있게 되었구나.”
고미가 문을 열며 흡족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새 문 여는 법도 배웠고, 제법 현대문명에 적응한 것 같다.
물론 키가 작아서 문을 열 때마다 기를 사용하거나 날아올라야 한다는 작은 문제(?)가 있기는 하지만.
“응, 좋은 거로 사줄게.”
“이 몸에게 어울리는 큰 것으로 사다오. 네 것은 너무 작다.”
이 녀석, 정말 핸드폰의 용도를 이해하고는 있는 걸까.
마이패드나 갤럭스 탭도 있기는 하지만, 들고 다니기가 영 불편하다.
고미의 사이즈를 생각해보면 더욱 그렇고.
이 녀석 키에 그런 걸 사주면 책가방처럼 등에 메고 다녀야 할 거다.
‘귀엽긴 하겠네.’
하지만 귀엽다고 등에 메고 다녀야 할 물건을 사줄 수는 없지.
봉식이는 집에서 쉬고 싶다고 말한 관계로, 핸드폰을 사러 가는 건 고미와 둘이 하기로 했다.
직접 몬스터를 잡은 것도 아니고 그냥 던전 따라다니고 소풍 좀 갔다 온 것뿐인데, 그런 것치고는 지나치게 피곤해한다.
아마 고미와 있는 것 자체가 상당히 심리적인 압박이 되는 모양이었다.
‘고미를 싫어하는 게 아닌 건 분명한데, 대체 왜 저러지?’
앞으로 계속 같이 지내야 할 텐데, 고미와 봉식이가 조금 더 편하게 지낼 방법도 생각해봐야 할 것 같다.
* * *
고미와 함께 핸드폰 대리점에 들어가자,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집중됐다.
“어어······?”
“응?”
“고, 고객님. 고, 곰······.”
신기해하거나 귀여워하는 사람도 있지만, 여자 직원 중 하나가 완전히 얼어붙어서 어찌할 바를 몰라 했다.
아마 동물을 무서워하는 모양이다.
“아, 죄송합니다. 저하고 꼭 붙어 다녀야 해서요.”
일단 양해를 구한 뒤 헌터 등록증과 1급 펫 등록증을 내밀자, 얼어있던 직원 대신 다른 여직원이 다가와 친절하게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저희 매장을 방문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고객님.”
능숙한 접대용 웃음. 친절해 보이는 목소리.
하지만 나는 몇 번의 경험을 통해 알고 있다.
나같은 기계치, 첨단 문명과 동떨어진 인간에게 그곳은 '마구니 소굴'이라는 것을.
핸드폰 뿐 아니라 기계를 살 때는 바가지 쓰는게 일상 같은 인간이 바로 나니까.
거기에 대학원 이후로 현대 문명과 단절되어 살았으니 그런 증상은 더욱 심화된 상태.
한마디로 전형적인 호갱님이다 이거지.
그러나, 지금 나에게는 이능이 있나니.
신이시여 나의 능력을 이런 곳에 사용하는 것을 용서하소서.
‘좋아. 시작해 볼까.’
나는 정신을 집중해 곧바로 감각 강화를 사용했다.
“고객님, 어떤 용무로 저희 대리점을 찾아주셨는지 말씀해 주실 수 있을까요?”
“아, 핸드폰 하나 더 개통하려고요.”
“신규회선 개설이십니까? 직접 사용하시려고요?”
“네.”
빠른 속도로 전개되는 대화에 고미는 내 옆에 앉은 채 입을 헤 벌리고 흥미롭다는 듯 귀를 기울였다.
“현재 통신사는 어떤 곳 사용하고 계십니까?”
“XKT 사용 중이에요.”
“고객님 지금 통신사를 변경하시면······.”
시작됐다.
이후 직원은 통신사 변경 시 어떤 혜택이 주어지고 위약금이 어쩌고 하며 긴 설명을 늘어놓았으나, 나는 말의 내용보다 그 사람의 표정에 집중했다.
“음, 복잡하네요. 그럼 통신사 이동하는 게 더 유리한 건가요?”
“네, 그렇습니다.”
말을 하며 유독 내 눈을 똑바로 본다.
정상적인 대화에서 사람들은 남의 눈을 똑바로 보지 않는다.
문화권마다 다르기는 하지만, 적어도 한국에서는 사람의 눈을 똑바로 보는 게 아니라 미간이나 눈언저리를 본다.
그리고 눈을 똑바로 보는 건 상대의 반응을 살피기 위해 나타나는 본능적인 행동이다.
특히 평상시에 안 그러던 사람이 유독 눈을 똑바로 보면, 거짓말일 확률이 높다.
거기에 순간적으로 턱 아래쪽의 근육이 움직이고, 안륜근은 움직이지 않는데 입꼬리만 과도하게 올라간다.
가짜 웃음. 거짓말이네.
배짱도 좋다. 아무리 F급이라고는 해도 헌터인데, 거짓말을 하네.
F급에 테이머니까 정신 계열 능력은 없을 거라고 생각하는 건가.
“아니에요. 그냥 원래대로 할게요.”
“통신사 이동하시면······.”
“원래대로 할게요.”
말 허리를 자르며 눈을 똑바로 바라보자, 순간적으로 눈둘레근이 긴장되고, 동공이 확장된다.
흔히들 눈은 거짓말을 못한다고 하는데, 보다 엄밀히 말하면 눈이 아니라 동공과 눈 근처의 표정근이 거짓말을 못 한다.
영 점 몇 초 이내에 불수의적으로 반응하는 근육에 의해 눈이 커 보이거나 작아 보이고, 여러 가지 감정이 드러나니까.
‘당황하셨네.’
하긴, 내가 좀 호구 같아 보이기는 하지.
덩치가 그렇게 좋은 것도 아니고 환자들 대하면서 말투나 행동도 차분하고 나긋나긋하게 변해버렸으니까.
‘쩝, 봉식이 데려왔으면 이럴 일 없을 텐데.’
이럴 때는 봉식이가 그립다.
그놈이랑 다니면 세상이 그렇게 평화로울 수가 없는데.
부모님 가게에서 술 취해서 진상 부리던 손님들, 심지어 건달들 - 이유는 모르겠는데, 횟집에는 조폭이나 건달들이 자주 온다 - 마저 갑자기 청학동에서 예절 교육받고 온 사람처럼 변해버리거든.
내가 기계살 때 유일하게 덤터기를 쓰지 않은 것도 봉식이랑 사러 갔을 때다.
딱히 따지고 들어간 것도 아닌데, 알아서 잘 맞춰주는 마법같은 일이 있었지.
'하지만 지금은 내 힘으로, 드디어!'
그렇게 소소한 승리의 기쁨을 만끽하며 핸드폰을 고르기 시작하자, 맹한 표정으로 앉아있던 고미가 마침내 꼬리를 흔들며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
[ 수하! 저것! 저것을 사다오! ]
아니나 다를까, 고미가 가리킨 것은 마이패드와 갤럭스탭 이었다.
기능 같은 건 모르겠고, 일단 큰 게 좋다. 전형적인 어린애의 사고방식이다.
[ 안 돼. ]
시스템 창에 메시지를 써넣자,
[ 어, 어째서? 역시 너무 비싼 것이냐? 크기가 큰 만큼 가격도 비싼 것이구나······. ]
고미에게 나는 여전히 가난뱅이인가보다. 조금 슬프네.
이제 탭이고 패드고 얼마든지 사줄 수 있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런 걸 사주면 등에 메고 다녀야 할 거란 말이지.
하지만 고미에게 말하면 뒷일은 생각도 안 하고 무조건 큰 걸 사달라고 할 거다.
[ 저건 다른데 쓰는 거야. 핸드폰처럼 생겼지만, 부모님이랑 통화는 못해. 나랑도. ]
이어지는 나의 설명에 고미는 조금 아쉽다는 듯 한숨을 내쉬며 고민하다가 다른 물건을 가리켰다.
[ 그럼...저것으로 하겠다. ]
고미가 가리킨 것은 마이폰XS 골드.
‘꿀색’이라 고른 거구나. 선택의 이유가 분명해서 좋네.
[ 알겠어. ]
“이걸로 주세요. 약정은 됐고, 기기 가격은 일시불로 할게요.”
이후 나는 고미가 쓰기 적당해 보이는 요금제 하나를 고른 후에 대리점을 나서 집으로 돌아갔다.
사실 약정을 하든 뭘 하든 지금의 내게는 큰돈도 아니지만, 속으면 왠지 기분 나쁘잖아.
* * *
집에 오는 내내 고미는 자신의 스마트폰을 무슨 대단한 보물이라도 되는 것처럼 꼭 쥐고 있었다.
이제 꿀이 아니라 이게 보물 1호가 되는 건가.
그리고 집에 도착하자,
“어서 엄마에게 전화하는 법을 알려다오!”
곧바로 엄마에게 전화하는 법을 알려달라고 아우성이었다.
새로운 난관이다.
이 녀석에게 스마트폰 사용법을 가르치는 게 쉬운 일은 아닐 것 같은데.
게다가 나는 기계치에 새로운 기계에 적응하는 게 싫어 어지간하면 핸드폰을 바꾸지 않는 편이라 더 어렵게 느껴졌다.
마이폰은 써본 적이 없어서 더 낯설고.
“자, 우선 여길 누르면······.”
홈버튼을 누르자, 어둡던 액정에 환하게 불이 들어왔다.
[ 오오, 굉장하구나. ]
“내가 먼저 가족들 번호 저장해줄게.”
나는 먼저 나와 부모님, 봉식이의 전화번호를 저장하고, 마지막으로 이강혁 씨의 전화번호를 저장했다.
“그다음에는 이걸 누르고 화면을 눌러서 이렇게 이렇게······.”
고미는 말없이 눈을 반짝이며 나의 설명에 귀를 기울였다.
띠리리-
이어서 내 핸드폰이 울리자, 나는 고미에게 ‘꿀폰’을 건네주었다.
“자, 이제 말해 봐.”
“수하! 위대한 이 몸의 목소리가 들리느냐!”
“아아, 잘 들립니다.”
핸드폰에서 나오는 내 소리에 고미의 눈이 두 배는 커지며 초승달처럼 휘어졌다.
“굉장하다!”
“기분이 좋으십니까?”
“후후후, 최고구나!”
나는 일단 전화를 끊은 뒤 고미에게 엄마에게 전화를 해보라고 시켰다.
하지만 실습에 들어가자마자 미처 예상하지 못한 일이 발생했으니······.
고미가 스크린을 터치할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
“수하! 뭔가가 이상하다!”
손을 댈 때마다 여러 개가 눌린다.
털도 털이지만, 손가락이 짧고 굵어서 액정을 터치할 수가 없다. 손톱으로 누를 수 있는 건 버튼뿐. 환장하겠군.
“수, 수하!”
고미의 눈에 그렁그렁 눈물이 맺혔다.
음, 귀엽기도 하고 웃기기도 하고, 딱하기도 하고. 상당히 복잡미묘한 기분이네.
어쨌든, 이래서야 계획에 차질이 생긴다.
앞으로 이걸로 가족들과 연락도 해야하고, 여러모로 쓰임이 많을텐데, 어떻게든 고미가 스마트폰을 쓸 수 있게 해주어야 한다.
그때,
< 긴급 퀘스트 발생 >
응?
< 고미를 도와줘! >
- 고미가 도움을 필요로 합니다. 위대한 곰이 도움을 요청하는 것은 매우 드문 일입니다. 빠르게 고미의 고민을 해결해 주세요.
오랜만에 시스템 창이 퀘스트를 보내왔다.
< 달성 조건 >
- 1시간 이내로 고미의 고민을 해결해 주세요.
남은 시간 59분.
< 달성 보상 >
- 능력치 강화 (+5), 히든 칭호 획득 (위대한 고미의 쓸만한 조력자)
항상 느끼는 거지만, 왜 퀘스트가 항상 이렇게 소박할까.
가족을 만들어 주세요, 친구를 만들어 주세요, 친해지세요, 진심으로 아껴주세요 등등······.
어? 잠깐.
이렇게 정리해 놓고 보니 이거······.
'가족을 만들어 주세요'를 제외하면 상당히 익숙한 내용이다.
“고미, 잠깐만!”
나는 황급히 핸드폰을 꺼내 지금까지 진행했던 퀘스트를 도식으로 만들어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보았다.
관계 형성, 애정 주기, 관계 확장, 도움 주기, 새로운 기술 가르쳐 주기······.
'전부 부모 교육할 때 들어가는 내용이잖아.'
나는 아동 심리나 교육 전공은 아니지만, 관련된 내용의 기초 정도는 알고 있다.
그리고 지금까지 나에게 주어진 퀘스트는 이상할 정도로 어린아이가 성장해 나가는 과정에서 부모가 해주어야 하는 역할이나 올바른 양육법과 관련성이 높은 것들이었다.
‘설마······.’
아동의 놀이에 담긴 의미나 그림, 글, 두서없는 말들을 이해해 주는 건 아동과의 관계 형성에서 아주 중요한 요소다. 실제로 그림 치료나 놀이 치료 같은 건 아동의 심리 상태를 파악하는데 많이 쓰이기도 하고.
‘그런 맥락에서 보면 벽화랑 조각상을 보고 뭔지 이해하는 게 고미의 마음을 이해하는 과정이었던 건가.’
적절하게 이야기를 들어주고 욕구를 해소해주는 것, 그러면서도 아이가 사회적 룰을 무시하는 사람으로 자라지 않게 하도록 적정한 선을 정해주고, 때로는 좌절을 주는 것.
‘고미하고 말싸움을 해서 이긴 건 여기 해당하는 건가?’
가족과 친해지면 또래 관계를 만들어 주고, 그 속에서 사회적 관계를 확대하고 대인관계의 원리를 이해하게 만드는 것.
‘이강혁 씨와의 관계를 정리하면 오해, 갈등, 대화, 이해였지.’
순서나 방식에 약간의 차이가 있을 뿐, 모두 이론에 딱 들어맞는 퀘스트들이잖아.
이거 대체 뭐지?
“수하? 왜 그러느냐? 설마 나는 엄마와 전화를 할 수 없는 것이냐?”
귓가에 들려오는 고미의 목소리가 생각에 빠져있던 나의 정신을 현실로 돌려놨다.
“으응, 아니야, 걱정하지 마. 내가 해결해 줄게.”
일단 이 문제가 뭔지는 퀘스트를 해결하고 생각해보자.
한 시간이면 충분하고도 남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