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아기곰이 너무 강함-35화 (35/300)

EP.35 왕유(王乳), 완성

“켁!”

통장 잔고를 확인해 본 나는 너무 놀란 나머지 사레가 들리고 말았다.

통장에 찍힌 금액은 2억 8천.

항아리가 1억이니까······.

산삼 다섯 개에 1억 8천이나 한다고?

생전 처음 보는 거금에 나도 모르게 심장이 벌렁거리고 온몸에서 땀이 비죽비죽 솟아났다.

‘일단 진정하자, 지금 돈 들어갈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니야. 물론 큰돈이지만, 천천히 계획적으로 써야 해.’

이만한 돈이 일시불로 통장에 꽂히는 일은 평범한 사람에게는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평생 놀고 먹을만큼 큰돈이 아닌 것도 엄연한 사실이니까.

└ 내일 다시 연락 드릴게요. 감사합니다.

└ 아닙니다. 그럼 내일 뵙겠습니다.

그렇게 밥을 먹으며 내일 있을 ‘작전’에 대해 고민하고 있을 때, 무언가 이상한 소리가 내 생각을 끊었다.

오도독······. 오독.

‘자, 잠깐.’

고개를 돌려보니 고미의 손에 반 토막이 난 닭 다리가 들려있는 게 보였다.

그런데, 뭔가 마땅히 있어야 할 게 없다.

내가 알던 닭 다리는 먹고 나면 뭔가가 남아야 하는데······.

뼈!

“고, 고미야!”

“고미!”

나와 어머니가 거의 동시에 고미의 손을 붙잡았다.

“응? 왜 그러느냐?”

“뼈는 먹으면 안 돼!”

“?”

하지만 고미는 구슬처럼 맑은 눈으로 우리를 빤히 바라보면서 계속해서 뼈를 씹어댔다.

“어, 얼른 뼈 뱉어!”

꿀꺽.

그리고는 말릴 새도 없이 부서진 닭 뼈를 삼켜버렸다.

“엄마가 이 몸을 위해 만들어준 요리를 남길 수는 없다. 그것은 예의에 어긋나는 것이니라.”

순간 수다르가 준 입에도 맞지 않는 차를 꾸역꾸역 먹으려 애쓰던 고미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때도 남의 성의를 거절하는 게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해서 억지로 먹으려고 했던 거구나.

아무리 그래도 닭 뼈를 씹어먹다니······.

“고미, 그래도 닭 뼈는 위험해서 안 돼. 절대로 먹지 마. 알았지?”

나의 말에 고미의 한쪽 입꼬리가 낚싯바늘처럼 휘어졌다.

“흥, 가소로운 소리. 이 몸의 이빨은 도마뱀의 비늘이나 뼈조차 한입에 부숴버릴 수 있느니라!”

말을 마친 고미는 ‘왕’하고 위협적인 표정을 지으며 입을 벌려 자신의 이빨을 보여주었지만, 크기가 너무 앙증맞아 썩 믿음이 가지는 않았다.

“그래도 앞으로 뼈는 먹으면 안 돼요, 몸에 안 좋아요. 알았어요?”

엄마가 또박또박 그렇게 말하며 위협적인 눈빛을 보내자, 고미의 귀가 힘없이 아래로 쳐졌다.

[ 수, 수하, 엄마는 조금 무서운 것 같다. ]

이후 고미는 순순히 뼈를 남기고 닭도리탕을 먹었고, 감자도, 당근도, 가리지 않고 맛을 보았다.

하지만 역시 야채는 입에 맞지 않는지 나물 종류에는 거의 손을 대지 않았다.

닭도리탕도 설탕 안 넣었으면 맵다고 코를 찔찔댔을 걸 생각하니, 딱 애기 입맛이라고 보면 될 듯하다.

그렇게 식사가 끝나고, 다 같이 상을 치우기 시작하자, 고미도 자리에서 일어나 그릇을 집어 들고 우리의 뒤를 따라왔다.

그리고는 손에 그릇을 든 채 싱크대 아래에 서서 나에게 전음을 보냈다.

[ 수하. 손이 닿지 않는다······. ]

‘음······. 평소 같으면 날든지 기를 이용해서 그릇을 올려놓든지 했을 텐데, 왜 이러고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하며 고미를 관찰해보자, 녀석이 연신 부모님의 눈치를 살피고 있는 것이 보였다.

아마 자신이 날거나 이능을 사용하면 부모님이 놀랄까 봐 걱정하는 것 같았다.

뼈를 씹어먹거나 자기 입으로 위대한 이 몸 어쩌고 하는 대목에서 이미 충분히 자기 능력을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래도 제 나름대로 배려를 한다고 하는 모습이 못내 귀엽게 느껴진다.

“이리 줘.”

이럴 때는 슈퍼 곰이 아니라 늦둥이가 생긴 것 같아서 좋다. 슈퍼 곰이 아니라도 가족은 될 수 있으니까.

“엄마, 아빠 쉬어. 설거지는 내가 할게.”

“으응, 알았어. 고마워 아들.”

내가 설거지를 하는 사이, 부모님과 봉식이는 자연스럽게 소파에 앉아 TV를 보기 시작했다.

하지만 고미는 부모님을 따라가지 않고 싱크대 아래에 서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왜 그래 고미?”

“이 몸도 할 수 있다!”

음, 이게 뭔지는 알고 할 수 있다고 하는 걸까.

“내가 뭐 하는지는 알아?”

“엄마 아빠를 도와주고 있는 것이 아니냐? 이 몸도 도와줄 수 있다.”

마음은 기특하지만, 불안하다. 그릇을 깨뜨리는 건 둘째치고, 냄비까지 죄다 고물로 만들지나 않으면 다행이지.

그렇다고 매몰차게 거절하면 또 자신의 능력을 보여준다며 난리를 칠 테고······.

“아니야 고미, 이건 내 임무야. 너에게는 비밀 임무를 줄게.”

목소리를 낮춰 그렇게 말하자, 고미의 눈이 호기심과 기대로 반짝반짝 빛났다.

이유는 모르겠는데, 애들은 ‘비밀’이라는 두 글자를 참 좋아하는 것 같다.

개미 굴에 갔을 때도 비밀임무니, 뭐니 하면서 엄청 즐거워했고.

[ 비, 비밀 임무 말이냐? ]

“엄마 아빠는 이제부터 티비를 볼 거야. 너도 가서 그 옆에 있어. 엄마 무릎에 올라가 있으면 엄마가 아주 좋아할 거야.”

[ 그럼 정말로 엄마가 좋아하는 것이냐? ]

고미가 미심쩍은 눈빛으로 나를 훑어보며 되물었다.

“응, 봉식이나 내 덩치를 봐. 우리는 엄마 무릎에 못 올라가. 이건 너만 할 수 있는 임무야.”

[ 호오······. ]

나의 논리적인(?) 답변이 먹혔는지, 고미는 이내 의심스러운 눈빛을 거두고 어머니의 무릎에 안착했다.

그렇게 네 사람이 평화롭게 티비를 보는 사이, 나는 조용히 생각을 정리했다.

‘집도 구해야 하고, 가게도 구해야 하고······. 이강혁 씨랑 일도 잘 마무리해야 하는데.’

내가 보기에 이강혁은 상당히 집념이 강한 사람이다.

저런 사람은 거절을 당하면 포기를 하는 게 아니라 더욱 강하게 매달릴 테니, 문제만 복잡해진다.

게다가 이대로 손 놓고 구경만 하다가 이강혁 씨가 죽고 4대 길드가 하나씩 무너지면 평화로운 생활은 영원히 안녕이고.

덤으로 찝찝해서 매일 밤잠 설치겠지.

‘휴······. 복잡하네, 복잡해.’

무엇보다 세상 구해보겠다고 저렇게 이리 뛰고 저리 뛰는 사람을 ‘나의 소소한 행복을 방해하지 말라.’는 이유로 버려두는 건, 인간적으로 좀 아니잖아?

그 세상에 나도 살고 있는데.

설거지를 마친 나는 조용히 방 안에 들어가 앞으로의 일들에 대한 계획을 세웠다.

* * *

다음 날 아침.

아침 식사를 마친 부모님은 일자리를 알아보겠다며 이른 아침부터 밖으로 나가셨다.

봉식이와 나는 며칠만 더 쉬라고 말씀드렸지만,

「몸도 멀쩡한데 언제까지 자식들 등골 빨아먹고 살 수는 없잖니. 말은 안 해도 2년 동안 너희들이 얼마나 고생했을지 뻔히 아는데 어떻게 쉬어. 가만히 집에 있는 게 더 불편하다.」

하는 어머니의 말씀에 그만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결국 어머니와 아버지를 먼저 내보내고, 나는 고미와 봉식이를 데리고 본격적인 ‘트레이닝’에 들어가기로 했다.

오늘이 바로 ‘왕유’가 완성되는 날이고, 고미의 말에 따르면 왕유를 먹으면 곧바로 몸을 움직여줘야 한다고 했다.

말을 마친 고미는 잠시 산신령의 동굴로 사라졌고, 그사이 나는 봉식이와 앞으로의 일에 대해 상의하기 시작했다.

“봉식아. 너 길드 들어가는 거 어떠냐?”

“길드? 갑자기? 지금 내 수준에 길드 들어가면 애매하게 이용만 당한다. 내 스킬도 그렇고.”

확실히, 봉식이의 스킬은 동료 잘못 만나면 이용당하기 딱 좋다.

그렇지만 등급이 높아질수록 뜨내기 헌터로 지내는 게 더 위험하다. 위로 갈수록 경쟁도 치열하고, 몬스터 뿐만 아니라 헌터 중에도 위험한 인간들 투성이니까.

“됐다. 애매하게 못 믿을 인간들하고 손잡느니 혼자가 낫다. 그래도 당장 먹고사는 데 문제는 없잖아.”

“생각해 봐. 이강혁 씨 얘기 들어보면 앞으로 점점 더 강한 놈들이 나타날 것 같은데, 우리가 감당할 수 없는 몬스터가 절대 안 나타난다고 장담할 수 있어?”

“그거야 그렇지만······.”

봉식이는 썩 내키지 않는다는 듯 말꼬리를 흐렸다.

원래도 사람을 잘 믿지 않는데, 던전 들어가서 통수 맞은 경험이 쌓이며 그런 성격이 더욱 굳어져 버렸다.

하지만 언제까지 혼자 지낼 수는 없다. 이 녀석도 그 사실을 알고는 있지만, 선뜻 결정을 못 내리는 것뿐이다.

그래서 이번 기회에 저스티스에 가입시키자는 것이 내 생각이었다.

의심이 많으면 정신 건강에 좋지 않으니, 이번 기회에 봉식이의 마음의 병(?)도 치료해 보자는 생각도 좀 있었고.

“아니면, 일 터질 때마다 고미한테 맡기게? 고미도 이제 우리 가족이잖아. 아무리 세다고 해도, 난 고미한테 싸움시키고 구경이나 하는 가족이 되고 싶지는 않다. 지켜주지는 못해도, 최소한 걸림돌은 되지 말아야지.”

이어지는 나의 말에 봉식이는 잠시 말없이 생각에 잠겼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건 그렇네······. 그렇다고 네가 길드에 들어가면 너무 눈에 띌 테고. 그러니까 내가 들어가라. 뭐 이런 얘기군.”

“너한테 떠넘······.”

“알아, 그런 거 아닌 거. 확실히 너보다는 내가 들어가는 게 맞긴 하지.”

봉식이는 각성한 지 2년이 다 되어가고, 같은 등급 내에서는 늘 주목받는 헌터였다.

하지만 여태 소속이 없어 제법 괜찮은 길드에서도 눈독을 들이고 있는 상태.

즉, 며칠 전에 각성한 나보다는 이 녀석이 저스티스에 들어가는 게 훨씬 자연스럽다.

“이강혁이라면 고미에 대해 쓸데없이 떠들고 다니지도 않을테고, 너나 내가 강해지는 데도 도움이 되겠지.”

“그거야 그렇지.”

봉식이에게 해가 될 것 같으면 나도 이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을 거다.

이강혁도 봉식이의 잠재력을 잘 알고 있으니 다른 어떤 길드장 보다도 이 녀석을 밀어줄 거고. 사도가 되어서 강한 게 아니라, 애초에 잠재력이 높기 때문에 사도가 될 수 있는 거니까.

“겸사겸사 이강혁이 고미한테 나쁜 짓 하려고 하는 거 아닌가 감시도 하고, 너랑 만날 때 수상해 보이지 않게 들러리도 좀 서줘라. 뭐 이런 얘기네.”

굳이 긴 말을 하지 않아도 봉식이는 내 계획의 핵심을 정확히 꿰뚫고 있었다.

“역시 민봉식이네.”

“하여간 옛날부터 짱구는 잘 돌아가요. 공부나 계속하지 그러냐? 내가 뒷바라지 확실히 해줄게.”

“이놈이 이강혁이랑 끈 만들어줬더니 은혜를 원수로 갚으려고 하네? 내가 군대는 두 번 가도 대학원은 두 번 안가.”

그렇게 봉식이와 투닥거리고 있을 때,

공간 통로가 열리며 검은 왕만두를 손에 든 고미가 방 안에 나타났다.

녀석의 손에 들린 검은 왕만두에서는 더이상 벌이 날아다니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고, 대신 형광색의 은은한 광채가 새어 나오고 있었다.

······.

야광 왕만두?

그 범상치 않은 생김새에 봉식이는 무언가 본능적인 공포를 느낀 듯 뒤쪽으로 물러났다.

“자, 너를 위한 이 몸의 특제 영약이 완성되었느니라!”

고미가 손에 들린 검은 왕만두를 트로피처럼 높이 치켜들며 외쳤다.

“고미류 양봉술······.”

그리고 왕만두에 ‘뽕’하고 구멍을 내자,

“왕유(王乳), 로열젤리!”

생전 처음 맡아보는 냄새가 코끝을 자극하며 헛구역질이 올라왔다.

‘서, 설마 이걸 먹어야 하는 건가? 아무리 봐도 숙성된게 아니라 썩어버린 거 같은데.’

그러나 고미는 내 반응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 자신만만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이것을 맛보면 완전히 새로운 세계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그 새로운 세계가……. 저 세상은 아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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