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아기곰이 너무 강함-34화 (34/300)

EP.34 고미에게도 평범한 곰이던 시절은 있었다

“고! 고미!”

고미는 나의 애처로운 부름을 무시한 채 짤막한 꼬리를 달랑달랑 흔들며 걸어갔다. 그리고는······. 말릴 새도 없이 확인사살(?)을 시작했다.

치이이익······.

“와아······.”

연기가 피어오르며 단단한 쇳덩이가 녹아내리는 모습에 봉식이와 이강혁의 입에서 감탄사가 새어 나왔다.

그래, 처음 보면 놀랍기도 하겠지.

하지만 결과물은 더욱 놀랍단다.

미리 사과나 하자.

‘죄송합니다. 고의는 아니었어요. 고미도 나쁜 뜻이 있는 건 아닙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시선을 돌려보자, ‘ 〉 ’ 모양으로 꺾인 쇳덩이가 눈에 들어왔다.

심지어 접붙인 부위가 혹처럼 부풀어 올라 있어 이미 검의 원형을 완전히 잃은 상태······.

이강혁과 봉식이는 그 기괴한 형상에 혼이 빠져버리고 말았다.

하지만 고미는 언제나처럼 자신만만한 얼굴로 이강혁에게 검을 내밀었다.

“자! 이제 너의 허약한 검이 나의 권능으로 더욱 강력해졌다. 한 번 검의 위력을 시험해 보거라!”

“제가 지금까지 보지 못한 형태의 검이군요······.”

검을 모르는 사람이라도 저런 물건이 제구실을 할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을거다.

하지만 이강혁은 고미가 그런 모양의 검을 만든 데에는 다 그럴만한 뜻이 있다고 믿는 듯, 혹 덩이가 불룩 솟아난 칼날을 천천히 훑어보았다.

자세를 잡고 검을 휘두르자,

부웅-, 부웅-

칼날이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아니라 몽둥이를 휘두르는 소리가 났다.

심지어 그 대단한 검성조차 검의 궤적을 어떻게 통제하지 못하고 조금씩 자세가 무너지고 있었다.

아니, 무너진 건 자세가 아니라 멘탈인가.

“으음······.”

당황한 이강혁이 침음을 흘리자, 고미가 답답하다는 듯 손을 내밀었다.

“흥, 참으로 한심하구나! 어찌 이런 좋은 물건을 만들어줘도 제대로 쓰지를 못하느냐!”

이강혁에게 검을 빼앗은 고미는 곧장 짤막한 팔을 힘차게 휘두르기 시작했다.

“헐······.”

그러자 부메랑처럼 휘어진 검이 종잡을 수 없이 휘어지고 꺾어지며 한 번도 본 적 없는 기이한 형태의 잔광을 남겼다.

하지만 한 가지 의심스러운 정황이 나의 눈에 포착됐으니...

“이익!”

그렇다. 고미는 지금 상당히 당황하고 있었다.

게다가 저건 검술도 뭣도 아니다. 그냥 어거지로 휘두르고 있는 거지.

표정을 보니 이강혁 역시 그 사실을 눈치챈 듯싶었다.

“자, 이제 알겠느냐!?”

시연을 마친 고미가 태연한 척 검을 건네주자, 이강혁의 입가에 어색한 웃음이 번졌다.

검을 받아 반사적으로 납검을 하려던 이강혁은 옅은 한숨을 내쉬고는 그대로 검을 손에 든 채 인사를 했다.

“돌아가서 곰 선생님이 만들어주신 검에 담긴 의미를 이해해 보겠습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표정을 관찰해보니, 역시나 거짓말이다.

아니, 솔직히 감각 강화까지 써가며 관찰할 필요도 없었다.

봉식이마저 그게 거짓말인 걸 눈치채고 측은한 눈으로 이강혁을 바라볼 정도였으니까.

자리에서 오직 한 명, 고미만이 이강혁의 표정을 읽지 못하고 흐뭇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음, 어린애의 사고 구조라는 건 참 편리하군.’

사기(?)를 당한 이강혁은 어깨가 축 처져 죄송하다는 말과 감사하다는 말을 반복하다가 항아리를 끌어안고 홀연히 사라졌다.

그의 뒷모습이 왠지 슬퍼 보인다면, 내 착각이겠지?

잠시 멀어지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나는 미안함과 측은한 마음을 가득 담아 고미의 마음을 돌릴 ‘근사한 계획’을 문자로 보내주었다.

‘이 정도면 제자는 무리여도 조언 몇 마디 정도는 들을 수 있겠지······. 죄송합니다. 변상하라고 소송은 걸지 말아주세요.’

* * *

“후후후! 어떠냐! 이 몸의 활약으로 모든 것이 무사히 끝났다!”

차를 타고 돌아가는 길, 잔뜩 기가 산 고미가 초코바를 검 삼아 휘둘러대며 말했다.

“그러게요. 정말 대단하네요. 어떻게 하면 그렇게 강한 거예요?”

검성한테는 반말을 찍찍하던 봉식이지만, 고미한테는 언제나 조심스러운 태도를 유지한다.

덩치로 보면 옆으로도 위로도 봉식이가 세 배 가까이 되는데, 비주얼적으로 정말 이해할 수 없는 괴상망측한 광경이다.

특히 봉식이를 누구보다 잘 아는 내 입장에서는, 이 녀석이 이렇게 저자세라는 게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봉식이의 성격은 강강약약. 쎈 놈한테 쎄고 약한 놈한테 약하다.

‘이강혁한테 반말하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지.’

그런데 왜 이렇게 고미를 무서워하는 걸까?

내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사이, 고미가 초코바를 한입 깨물며 자못 상념에 잠긴 있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흐음······. 사실 이 몸도 한때는 평범한 곰이었다.”

“응? 너한테 그런 시절이 있었어?”

도저히 믿을 수가 없는 이야기네.

“그렇다. 뼈를 깎는 처절한 사투를 거쳐 지금처럼 위대한 곰이 될 수 있었지.”

말도 안 돼. 무슨 싸움을 했든 곰이 이렇게 될 수는 없지.

강해지는 건 둘째치고 말을 하는 건 확실히 이상하다고.

“후······. 과거에는 와이번 같이 되다 만 도마뱀 한 마리를 상대할 때도 상처를 입곤 했으니, 하루하루가 고달픔의 연속이었다.”

······.

이어지는 고미의 이야기에 봉식이와 나는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도통 감을 잡지 못했다.

“가끔은 도마뱀 놈들의 브레스에 데이기도 하고, 뇌수종(雷獸種)에게 벼락을 맞아 전신의 털이 빳빳하게 곤두선 채 동굴에서 혼자 잠들곤 했다.”

전혀 안 평범해. 브레스를 맞고도 안 죽고, 벼락 맞고도 무사한 시점에 이미 평범한 곰이 아니라고.

하지만 평범함의 개념이 엇나가 있다는 사실과는 별개로 고미가 얼마나 쓸쓸하고 힘들었을지 생각하니 왠지 모르게 안쓰럽다는 마음이 들었다.

아기곰 혼자 드래곤이니 뇌수종이니 하는 것들과 싸우는 게 그리 녹록지만은 않았을 테니까.

빨리 집에 가서 맛있는 거 먹여야지.

* * *

집으로 돌아가자, 매콤한 닭도리탕의 향기가 방안을 가득 채우며 식욕을 자극했다.

“아들들 왔어? 얼른 밥 먹자.”

어머니가 나물을 무치며 말했다.

아버지는 옆에서 열심히 닭도리탕의 맛을 보고 있었다.

음, 오늘의 메인 요리는 아빠가 만든 건가.

참고로 우리 집은 어머니 아버지가 둘 다 요리를 잘한다.

직원 없이 두 분이 20년 가까이 가게를 꾸려온 덕에 손발도 척척 맞고.

“호오오······. 앳취!”

코를 킁킁거리던 고미는 고춧가루의 냄새를 맡고는 곧바로 재채기를 해댔다.

‘아, 고미 생각을 못 했네. 차라리 찜닭같이 단 걸 해달라고 할걸.’

재채기를 하는 고미의 모습에 메뉴 선정에 약간의 실수가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고, 이 엄마가 우리 막내님 생각을 못 했네. 기다려, 고미 먹을 거 따로 만들게.”

엄마 역시 그 소리를 들었는지 곧바로 냉장고를 뒤적이기 시작했다.

“아니다! 설마 엄마는 위대한 이 몸이 매운 것을 못 먹으리라 생각하는 것이냐!”

그 모습을 본 고미는 뾰로통한 표정으로 뺨을 부풀리며 나에게 시선을 돌렸다.

“자, 수하! 말해보거라! 이 몸이 얼마나 매운 것을 잘 먹는지! 너는 지리산에서 다 보지 않았느냐!”

그래, 봤지. 콧물 훌쩍거리면서 안 매운 척하는 거.

우리의 대화를 듣고 있던 어머니와 아버지는 피식 웃으며 설탕 봉지를 흔들어 보였다.

‘조금 달게 만들어도 되지?’하는 사인.

“엄마, 괜찮아. 맵게 만들어도 돼. 고미 매운 거 잘 먹어.”

그렇게 말하며 살짝 고개를 끄덕이자, 아버지가 몰래 끓어가는 닭도리탕에 설탕을 투하했다.

“고미, 손발 씻고, 초코바 그만 먹고. 밥 먹기 전에 군것질하는 거 아니에요.”

엄마의 말에 고미는 제꺽 고개를 끄덕인 뒤 초코바를 나에게 맡긴 뒤 쪼르르 달려가 손발을 씻고 나왔다.

저럴 때 보면 꼭 곰이 아니라 사람 같다.

차이점이 있다면 수건을 쓰지 않고 생체건조(?)가 가능하다는 점 정도랄까.

“자, 이제 밥 먹자.”

빨갛게 익은 닭도리탕에 시원한 콩나물국, 나물 몇가지에 흰쌀밥. 김치가 마트에서 사 온 것이라는 걸 제외하면 나머지는 완벽한 집밥 구성이다.

지난 2년간 그렇게 먹고 싶어도 못 먹던 그 집밥.

누구나 공감하겠지만, 세상 그 어떤 진수성찬도 집밥을 이기지 못한다.

더군다나 우리 부모님은, 자식이라서가 아니라, 객관적으로 정말 요리를 잘한다.

그러니까 20년이나 음식 장사를 해서 생계를 이어갔겠지.

작은 가게였지만 인근에서는 나름 검증된 맛집에 단골도 많았고.

큼지막한 닭고기를 하나 집어 들고 덥석 베어 물자,

“으음······.”

적당히 매콤하고 달콤한 양념과 닭고기의 맛이 환상적으로 어우러진 절묘한 맛에 나도 모르게 감탄사가 새어 나왔다.

“에헴! 그럼 이 몸도 엄마의 요리를 맛보겠다! 이 요리의 이름은 무엇이냐!”

엄마가 닭 다리 하나를 집어 앞접시에 놓아주자, 고미가 침을 꼴딱꼴딱 집어삼키며 물었다.

“닭도리탕이라고 하는 음식입니다.”

봉식이의 대답에 고미는 대단한 예술품을 감상하듯 닭 다리를 지그시 바라보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 닭도리탕이라······. 참으로 훌륭한 이름이다. 그럼 이제 맛을······.”

하지만 고미가 막 닭 다리를 집으려는 순간, 엄마가 녀석의 손목을 덥석 붙잡았다.

“맨손으로는 안 돼요.”

“하지만 봉식이도 수하도 모두 손으로 먹지 않느냐!”

고미가 억울하다는 듯 우리를 가리키며 외쳤다.

“고미 손은 털이 복슬복슬해서 고기에 털 묻어요.”

오······. 누구도 생각하지 못 했지만 매우 중요한 문제.

역시 엄마다.

“하, 하지만······.”

그때, 아버지가 기다렸다는 듯 비닐봉지 하나를 내밀었다.

실로 완벽한 타이밍.

“자, 우리 고미는 이거 손에 씌우고 먹으면 돼요.”

그리고는 친절하게 고미의 손에 비닐봉지를 씌워주고, 손목에 고무줄을 감아 완벽하게 마무리까지.

비닐장갑이면 더 좋았겠지만, 모양도 크기도 고미에게 맞는 게 없다.

“오오오! 이제 나도 손으로 먹을 수 있는 것이냐!”

“응, 이제 먹어요. 우리 고미.”

엄마의 다정한 한마디에 고미는 신이 나서 엉덩이를 좌우로 씰룩거리며 닭고기를 베어 물었다.

“우, 우웃······.”

마침내 닭 다리를 베어 무는 순간, 고미의 몸이 돌덩이처럼 딱딱하게 굳어버렸다.

“고, 고미? 왜 그러니? 혹시 너무 매워?”

어머니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질문을 던져보았지만, 고미는 미동조차 하지 않고 그대로 굳어 있었다.

“고미야?”

아버지가 녀석의 눈앞에서 손을 흔들자, 녀석은 그제야 정신을 차린 듯 눈을 깜빡였다.

“이, 이런 맛은 처음이니라······. 어, 엄마는 굉장하구나. 아빠보다 더 훌륭하다.”

“큭큭큭!”

너무나 귀여운 고미의 반응에 아빠가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고, 그것을 신호로 우리 가족은 먹는 것조차 잊고 한바탕 웃음을 터뜨렸다.

“어떠냐! 이 몸은 매운 음식도 아주 잘 먹지 않느냐!?”

자기를 위해 설탕을 더 넣은 것도 모르고 고미는 신이 나서 어깨에 잔뜩 힘이 들어간 채 엄마와 아빠를 바라봤다.

“그래그래, 우리 고미는 매운 것도 잘 먹네.”

“흥! 그렇다! 나는 어떤 요리든 다 먹을 수 있느니라! 위대한 곰은 못 먹는 음식이 없으니까 말이다!”

그렇게 고미의 귀여운 반응을 반찬 삼아 즐거운 한때를 보내고 있을 때, 기다리던 메시지가 도착했다.

└ 이강혁입니다. 산삼값과 항아리값을 송금했습니다. 일러주신 물건도 모두 준비했는데, 언제부터 계획에 착수하면 좋을지 알려주시겠습니까?

빠르네...어지간히 마음이 급한 모양이다.

당장 내일이라도 거사(?)를 시작해야겠군.

'어디보자, 산삼 값은 얼마나 하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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