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아기곰이 너무 강함-30화 (30/300)

EP.30 수하의 능력

‘내일, 내일이라······.’

거래를 취소할까도 생각해봤지만, 그게 더 의심을 살 일이다.

최악의 경우 순순히 거래를 하려던 사람에게 강탈을 고려하게 만들지도 모르고.

게다가 무조건 피한다고 이강혁의 속내를 알아낼 수는 없다.

‘정말 회귀자인가?’

사실 그가 회귀라는 이점을 살려 한국 최고의 길드를 만들든, 세계 최고의 길드를 만들든, 내가 알 바는 아니다.

내 목표는 그냥 워라벨 챙기면서 우리 가족 – 아버지, 어머니, 나에 봉식이, 그리고 고미까지 - 행복하게 오순도순 사는 거고.

그건 꼭 최강이나 최고라는 거창한 수식어가 붙지 않아도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다.

힘은 나와 내 가족을 지킬 정도면 충분하다.

갖고 싶은 것은 오직 높은 드립력과 여가의 질 뿐이니······.

내가 걱정하는 것은 그가 어떤 이유에서든 우리의 행복하고 소소한 일상을 깨뜨리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이제야 겨우 가족이 다시 뭉쳤는데, 무슨 이유가 됐든, 누가 됐든, 그것을 깨뜨리게 둘 수는 없다.

‘우선 이강혁이 회귀자인지, 나에게 왜 접근한 건지부터 확실히 해야 해. 항아리 말고 다른 목적이 있을지도 모르니까.’

가장 위험한 상황은 지리산 일로 내가 회귀자는 아닐까 의심해 제거하려 하는 것, 내가 그쪽을 회귀자로 의심하듯이, 그쪽도 나를 회귀자라고 의심할지도 모르니까.

또는 고미를 빼앗으려 하는 것 정도, 그 외에는 뭐, 딱히 관심 없다.

고미를 포함한 우리 가족을 건드리지만 않으면 ‘돈 많이 버시고 무병장수하세요.’같은 덕담도 해줄 수 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뭘까?’

열심히 뛰어다니며 방안을 정리하는 봉식이와 어머니 품에 안겨 뒹굴거리는 고미, 그 옆에서 은근슬쩍 녀석의 복슬복슬한 털을 만져보는 아버지.

나는 그 평화로운 광경을 지켜보며 이 소소한 행복을 지키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지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에 빠졌다.

‘당장 내일 이강혁과 싸울 정도로 강해지는 건 죽었다 깨어나도 안 되지.’

물론 먼 미래에는 가능한 얘기일지도 모르겠지만, 지금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게 뭔지 찾아야 한다. 거래는 내일이니까.

일단 가진 것들을 확인해 보자.

현재 남은 스킬 강화 포인트는 두 개.

가지고 있는 스킬은 살곰살곰, 감각 강화에 지구력 강화, 약점 간파였나.

아, 전음도 추가됐구나.

상태창을 확인해야겠네. 밀린 보상도 확인할 겸.

어디 보자······.

< 진행 중인 퀘스트 >

< 메인 퀘스트 : 제자라고 다 같은 제자가 아니야 >

< 달성 조건 >

1. 호감도 100 이상 (85 / 100)

2. 참 잘했어요 포인트 (17 / 50)

< 퀘스트 보상 >

중급 권능 (택1), 스킬 강화 (택1), 능력치 상승(+7), 칭호 효과 상승

‘무시한 사이에 뭐가 이렇게 쌓였지······.’

호감도도 엄청 올랐네. 엄마 아빠가 고미에게 잘해준 게 ‘첫 번째 가족’ 칭호 효과 때문에 합산된 건가?

< 메인 퀘스트 : 고미에게 가족의 소중함을 알려주세요 >

< 달성 조건 >

1. 고미를 가족으로 받아주세요. (완료)

2. 가족 포인트 획득 (30 / 100)

< 퀘스트 보상 >

중급 권능 (택1), 스킬 강화 (택1), 능력치 상승 (+10), 특수 스킬 개방.

가족 퀘스트도 모르는 새에 제법 완료가 되어 있었다.

하루 새에 저렇게까지 가족 포인트가 쌓인 걸 보니 다행이다.

말로만 가족이라고 해놓고 고미가 그렇게 느끼지 못하면 아무 의미가 없으니까.

< 퀘스트 보상 >

하급 스킬 강화 (+2)

‘역시 당장 쓸 수 있는 건 하급 스킬 강화 포인트 두 개 뿐인가······.’

그렇다고 한들 내 계획에는 큰 지장이 없다.

난 가지고 있지도 않은 것이나 기대를 계산에 포함하는 사람이 아니니까.

“봉식아, 컴퓨터 좀 쓴다. 급하게 확인해 볼 게 있어서.”

“어어 그래.”

나는 곧바로 컴퓨터로 가서 다시는 확인해 보고 싶지 않았던 나의 논문 데이터가 저장되어 있는 클라우드 폴더를 열었다.

“어디 보자······.”

논문 양식······. 참고 문헌······. 아, SPSS도 AMOS도 없으니까 내 데이터는 열어볼 수가 없네.

아, 여태 생각하기 싫어서 말 안 했는데, 내 전공은 심리학이다.

세부 전공은 임상심리학. 심리 검사와 치료를 주로 하지만, 실습 경력도 쌓고 논문도 쓰고 연구도 해야 자격증과 학위가 나오는 골때리는 전공이다. 이밖에도 시험보고 학회활동까지 해야 하고.

그렇다고 큰 돈 버는 것도 아니니 극악의 가성비라고 할 수 있지.

고미의 그림을 알아본 건 실습할 때 애기들 그림 검사하는 걸 자주 봐서였다.

던전에서 신입 헌터 치료해줬던 건 공황 상태에 빠진 환자에게 할 수 있는 응급처치 기법의 하나였고.

고미를 제법 잘 받아줄 수 있는 것도 아마 전공 때문일 거다. 아니, 애초에 그런 사람이라 그런 전공을 택한 건가.

지금 그걸 왜 얘기하냐고?

< 강화할 스킬을 선택합니다. >

개보다 낫다 E ->D -> C

내 연구 분야가 이강혁이 어떤 인간인지 알아보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으니까.

공부하면 다 쓸 때가 있다고 하더니, 정작 대학원 다닐 때는 하나도 쓸모가 없다고 느꼈던 지식들이 내 가족을 지키는 데 도움이 될 줄은 몰랐다.

논문 보는 것도 싫고, 연구니, 실험이니 하는 것들은 더더욱 생각하기 싫지만, 할 수 없지.

오랜만에 실험 스타트다.

* * *

다음 날 아침, 나는 날이 밝자마자 조용히 고미를 깨웠다.

잠을 안 자도 상관없다고 말했을 때는 언제고, 녀석은 가족 중 그 누구보다 껌딱지처럼 바닥에 들러붙어 아주 꿀잠을 자고 있었다.

‘어쩌면 이 녀석이 잠을 자지 않았던 건 누구도 자기를 지켜주지 않고, 누구도 곁에 없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지켜주는 사람 하나 없이 몬스터 소굴에 던져지면, 잠을 잘 수 있을리가 없을테니까.

하지만 이제는 가족이 있으니 이렇게 잘 수 있는 거겠지.

뭐, 진실은 다를지도 모르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고미, 고미.”

보드라운 털이 가득한 고미의 보름달 같은 엉덩이를 톡톡 두드리자,

“우웅, 이, 이놈들······. 꿀을 내놓아라······.”

침까지 질질 흘리며 잠꼬대를 해댔다.

“고미, 초코바 사러 가자.”

움찔.

초코바라는 말에 고미의 귀가 움찔거리더니 녀석의 눈에서 반짝하고 빛이 새어 나왔다.

“오오, 어서 가자. 마침 초코바가 다 떨어졌느니라. 엄마 아빠와 나눠 먹었더니 그만······.”

녀석은 그렇게 말하고는 짧고 통통한 팔로 바닥을 짚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엄마 아빠랑 나눠 먹느라 다 먹어버린 거였어?”

“그렇다. 아빠는 욕심쟁이였다. 마지막 초코바를 아껴두었는데, 아빠가 덥석 먹어버렸다.”

고미가 아쉽다는 듯 입술을 할짝대며 말했다.

내 입맛은 아빠를 닮았다.

즉, 아빠도 단 음식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굳이 마지막 초코바를 먹었다는 건······.

‘애 놀리려고 그랬구만.’

아빠의 장난기에 저도 모르게 입에서 한숨이 새어 나왔다.

2년이나 잠들어있다가 어제 막 깨어난 사람의 상태라는 게 도저히 믿기지가 않는다.

그냥 자는 척 했던 거 아니야?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자, 서늘한 아침 공기가 기분 좋게 뺨을 스치고 지나갔다.

[ 아침 바람이 아주 선선하구나. ]

“우리 뛰어서 가볼까?”

나는 그 상쾌한 공기를 만끽하며 고미를 어깨 위에 올렸다.

[ 오옷! 수하! 이것은 무엇이냐? 갑자기 거인이 된 기분이다! ]

하늘을 날 수 있는 녀석이 고작 무등 따위에 즐거워한다는 사실이 조금 웃기기는 하지만, 역시 어린애는 이런 걸 좋아하는 법이지.

“가자!”

고미를 어깨에 올려놓고 전력으로 달리기 시작하자, 잔뜩 흥분한 녀석의 목소리가 머릿속에 시끄럽게 울려댔다.

[ 오오오! 수하! 굉장하다! 가자! 이대로 초코바를 파는 곳까지 진격하는 것이다! 달려라, 달려! ]

“고, 고미, 머리카락은 잡지 마. 아파.”

[ 아앗, 미안하다······. ]

우리는 그렇게 시원한 아침 바람을 맞으며 순식간에 편의점에 도착했다.

딸랑- 하는 종소리가 기분 좋게 울리고, 고미가 좋아하는 초코바가 잔뜩 늘어선 진열대가 우리를 맞이했다.

“어, 엄마야!”

덤으로 화들짝 놀란 알바생의 반응까지.

나는 빠르게 고미가 가장 좋아하는 프리타임과 스니커를 모두 집은 후에 덤으로 초코빵과 초코우유까지 계산대에 올려두었다.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그리고는 놀란 토끼 눈을 하고 있는 알바생을 뒤로하고 밖으로 나가 근처의 한적한 공원으로 걸음을 옮겼다.

[ 이것들은 무엇이냐? 처음 보는 음식이구나. 하지만 냄새가 심상치 않다. 벌써 입에 침이 고이는구나. ]

고미가 초코빵과 초코우유를 연신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그것도 네 거야. 다 먹어.”

그렇게 말하며 빨대를 꽂은 초코우유를 건네자,

[ 이것은 또 무엇이냐? ]

“원래 초코우유는 빨대 꽂아 먹어야 더 맛있어.”

고미는 신기하다는 듯 구슬 같은 눈을 반짝이며 손에 들린 초코우유를 이리보고 저리보다가 빨대에 입을 가져다 댔다.

언제나처럼 놀라는 반응, 사소한 것에 호들갑을 떨어대고, 입가에 뭐가 묻었는지도 모른 채 허겁지겁 초코빵을 먹어대는 모습까지.

평온한 일상을 그림으로 그려놓는다면 이런 걸까.

나는 그런 고미를 바라보며 한참을 망설이다가 어렵게 입을 열었다.

“고미······. 부탁 하나만 해도 될까?”

초코빵의 달콤함을 음미하던 고미가 눈을 깜빡이며 나를 바라봤다. 저 눈을 보니 괜스레 미안한 마음이 들어 더 말을 못 꺼내겠다.

“그······. 오늘 이강혁을 만나러 가기로 했거든.”

[ 오호, 그 허약한 칼잡이 말이더냐? 그래, 어서 가서 꿀을 내놓으라고 하자꾸나. 어제 엄마 아빠와 나눠 먹어 벌써 반밖에 남지 않았다. ]

허, 허약하다니. 나랑 봉식이 둘이서 가면 죽을까 봐 어렵게 말을 꺼내고 있는데······.

결국 나는 한참을 망설이다가 고미에게 어제 봉식이와 나눴던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그래서······. 네가 좀 지켜줬으면 해. 절대 죽이지는 말고.”

그러자 고미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코웃음을 치며 거만하게 턱을 치켜들었다.

[ 흥, 그런데 왜 그 이야기를 그렇게 어렵게 하는 것이냐? ]

‘그래도 너는 아기고, 난 너한테 별로 싸움을 시키고 싶지 않아. 가족이 싸움을 잘한다고 여기저기 끌고 다니며 싸움시키고 싶은 사람이 어딨겠어.’

라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왜인지 말을 꺼내기가 어려워,

“그래도 위험한 일에 널 끌어들이는 거나 마찬가지잖아.”

하고 줄이고 줄여서 말해버렸다.

하지만 나의 대답을 들은 고미는 피식 웃음을 지었다.

[ 훗, 나는 위대한 곰이니라. 그런 허수아비만도 못한 칼잡이 하나를 상대하는데 어째서 위험한 일이 생긴다는 것이냐? 설마 나를 그렇게 얕보고 있는 것이냐? ]

“아, 아니 그런 건 아니지만······.”

[ 가자, 수하. 그 누구도 내 가족에게 손을 댈 수는 없다. 그놈이 헛수작을 부린다면 이 막내님의 위대함을 몸소 체험하게 해줄 것이다. ]

말을 마친 고미는 초코바가 들어 있는 비닐봉지와 초코우유를 손에 든 채 나의 어깨 위로 폴짝 뛰어올랐다.

[ 대신 집에 갈 때도 이렇게 가자. 몹시 기분이 좋구나. ]

“그래! 가자!”

[ 후훗! 가자! 어서 가서 엄마 아빠와 맛있는 것을 잔뜩 먹고, 그 약골 칼잡이에게 꿀을 받아내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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