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9 고미 패밀리의 서열은
“요즘 이강혁에 대해 좀 이상한 소문이 돈다. 그놈이 감추고 있는 스킬이 있고, 그걸 이용해서 은밀히 뭔가를 꾸미고 있다고.”
이강혁에 관해 이야기하는 봉식이의 얼굴은 무표정하기 짝이 없었다.
이 녀석이 진짜로 심각하거나 진지할 때만 짓는 표정.
오히려 인상을 쓰는 것은 상황이 그렇게까지 대단하지 않다는 사인에 가깝다.
“무슨 소문인데.”
“너도 알다시피, 이강혁의 능력치는 그렇게 대단하지 않아. 스킬도 뭐, 그냥저냥 기공계열에 검술 조합. 진짜 대단한 건······.”
“경험과 센스, 기술. 그런 거 아니야? 상황에 딱딱 맞게 대응하는.”
“나도 그렇게 생각했지. 그런데 그놈하고 싸워본 적 있는 헌터들이 이상한 소리를 하더라고.”
말을 이어나가는 봉식이의 입에서 깊은 한숨이 새어 나왔다.
“한 번도 남들 앞에서 안 쓴 스킬의 약점을 귀신같이 치고 들어오더란다. 그런데 또 일본에서 온 A급 능력자하고 붙었을 때는 능력치가 저만 못한 놈인데도 애를 먹은 적이 있거든.”
“그냥 상성이 안 좋은 게 아니고?”
나의 질문에 봉식이가 천천히 고개를 가로저으며 답했다.
“의심할 이유야 그것 말고도 널렸지. 우선 그놈은 이상할 정도로 남의 길드 사정에 빠삭해. 게다가 저스티스 길드 단독으로 한국 던전 히든 피스나 히든 퀘스트의 50%를 먹었어. 말이 되냐? 다른 던전이나 아이템 점유율은 안 그런데, 딱 히든 피스 점유율만 그래.”
듣고 보니 확실히 이상한 일이었다.
순간 이강혁을 처음 봤던 날의 기억이 섬광처럼 머리를 스쳤다.
“그러고 보니 지리산 때도 히든 퀘스트가 뭔지 이미 알고 움직이고 있었어. 심지어 보상이 뭔지도 정확히 알고 있었고.”
나의 말에 봉식이의 표정에 어린 의심이 더욱 짙어졌다.
남들은 모르는 퀘스트나 보상을 꿰고 있고, 처음보는 사람의 감춰진 스킬까지 알고 있다. 게다가 타길드의 은밀한 정보들을 알고 있고, 그리 유명하지 않은 동급의 헌터와 붙었을 때는 그 대단하다던 대인전 능력이 발휘되지 않는다.
결론은 거의 하나로 귀결됐다.
“그런 일이 가능한 것은 이강혁이 회귀자나 예언자이기 때문이다?”
봉식이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언 능력자는 희귀하긴 해도 이미 존재가 밝혀졌다.
반면 회귀자는 여태 단 한명도 나타나지 않았다.
하지만 상당수의 헌터들은 회귀자가 존재하지만, 말을 하지 않는 것이라고 믿고 있다.
회귀자의 성장 방식은 정보 우위를 바탕으로 중요한 아이템이나 보상 같은 것을 선점하는 거니까.
제 입으로 회귀자라고 밝히는 순간 그 우위를 잃게 될 가능성이 너무 크다.
물론 이 모든게 단순한 억측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웹 소설이 낳은 의심의 씨앗이랄까.
그래도 회귀자가 없다는 걸 그 누가 장담할 수 있을까?
‘당장 내 옆에만 해도 S급 몬스터를 한방에 박살 내는 아기곰이 있는 판에 말이지. 누가 상상이나 했겠어, 고미 같은 존재가 있을 거라고.’
솔직히 고미를 본 이상 이제 뭐가 나와도 놀라지 않을 것 같다.
“난 회귀 쪽이 가능성이 높다고 봐.”
“왜?”
“이강혁은 퀘스트 개방 조건뿐만 아니라 보상까지 알고 있었어. 그런데 산신령이 고미 때문에 원래 주려던 보상이 아니라 다른 걸 줬거든.”
나는 그렇게 말하며 봉식이에게 반지를 보여줬다.
“이게 진짜 보상이야. 다른 사람이 갔다면 항아리를 줬을 거고. 그런데 이강혁은 항아리를 사려고 하더라고.”
“예언 능력이면 그 보상이 반지라고 생각했을 거다?”
“그렇지. 몇 번을 회귀했을지는 몰라도 고미와 내가 산신령의 반지를 받아 간 게 한 번도 없었던 사건이라면?”
“말 되네.”
확실히 여기까지는 말이 된다.
하지만 고미와 내가 나타난 게 완전히 예상 밖의 사건이라면, 왜 날 죽이거나 항아리를 강탈하지 않고 거래를 선택했을까?
그때, 저 멀리서 무언가가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응?’
정신을 집중하자, 조막만 한 청설모 한 마리가 후다닥 달아나는 것이 시야에 들어왔다.
“왜 그래?”
“아니야. 신경 쓰지 마. 청설모야.”
그렇게 말하며 봉식이의 얼굴을 바라보는 순간, 섬광 같은 아이디어 하나가 머리를 스쳤다.
“야 봉식아, 너 웃어봐.”
“뭐?”
“빨리, 웃어보라고.”
“뭐라는 거야 이놈이. 하, 하, 하. 됐냐?”
잠깐, 이거 어쩌면······.
“너 이강혁 만날 때 나랑 같이 좀 가자.”
“갈 수는 있는데, 싸움 나면 못 지켜준다. 아니, 내 목숨도 건사 못해. 같이 죽어는 줄게.”
“괜찮아. 그것 때문에 같이 가자는 거 아니야. 그리고 난 너 죽으면 도망갈 건데?”
“역시 베프네. 생각 똑같은 거 보소.”
* * *
이후 대화를 마친 우리는 엄마와 아빠, 고미를 차에 태우고 봉식이의 집으로 향했다.
「야, 어머니 아버지가 너 그런 데서 사는 거 알면 얼마나 가슴 아프시겠냐. 게다가 원룸이라 넷이서 같이 자면 발도 못 뻗잖아. 그냥 우리 집에서 자고 가라. 너 원룸이라 같이 자기 좁다고 하고.」
라는 봉식이의 의견을 참고해서 내린 결정이었다.
집에 도착하자, 널려있는 빨래와 쓰레기를 본 어머니의 입에서 깊은 한숨이 새어 나왔다.
“우리 작은 아들, 엄마가 깨끗하게 하고 살라고 했어 안 했어? 이게 집이야 쓰레기장이야.”
하지만 엄마의 잔소리에 봉식이는 기쁜 듯 웃으며 널려있는 쓰레기들을 치우기 시작했다.
“헤헤, 내가 오랜만에 우리 어머니 잔소리 좀 듣고 싶어서 일부러 이래놨지.”
그때, 엄마의 품에 안겨 있던 고미가 돌연 고개를 빳빳하게 치켜들며 외쳤다.
“봉식이! 감히 엄마 말에 토를 다는 것이냐!”
고미의 호통에 봉식이의 안색이 곧바로 새파랗게 질려버렸다.
“네, 네······. 죄송합니다. 빨리 치울게요.”
“후훗. 그런데 엄마는 알고 있느냐? 수하의 거처도 이것 못지 않다!"
그리고 이어지는 예상 밖의 공격. 악의는 없겠지만, 소소한 데미지가 들어오는군.
“아들, 아들 방도 엄마가 한 번 치워줄게.”
“아, 아니야. 원룸이라 혼자서도 치울 수 있어, 여기서 멀기도 멀고.”
“그런 것보다 우리 일자리부터 알아봐야지 여보. 몸도 괜찮은데 애들 벌어 놓은 돈 까먹고 살 수는 없잖아.”
불쌍하다는 표정으로 나와 봉식이를 바라보던 아버지가 은근슬쩍 지원사격을 했지만,
“일은 내일부터 구하면 되고. 잔머리 굴리지 마요.”
어머니의 따끔한 일침에 곧장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우웃, 이 가족에서는 엄마가 가장 강한 것이구나!”
그 모습을 바라보던 고미는 무언가 깨달았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리며 우리 집안 서열에 확실히 쐐기를 박아버렸다.
가만 보면 이놈, 꽤 예리하단 말이지.
“고미도 앞으로 엄마 말 안 들으면 혼나요.”
“걱정 말거라! 이 몸은 신의를 아는 곰이다! 엄마와 약속을 하면 반드시 지킬 것이다!”
어느새 바닥에 내려온 고미가 걱정하지 말라는 듯 고개를 치켜들고 솜방망이로 자신의 가슴을 두드리며 말했다.
너, 그 말 후회할걸.
하는 생각을 마치기도 전에 어머니의 반가운 잔소리가 이어졌다.
2년 동안 듣고 싶어도 못 듣던 그 잔소리······. 이긴 하지만 사실 그래도 그 말 다 지키고 살기는 좀 어렵단 말이지.
“그럼 외출했으니까 손발부터 씻어요.”
“아, 알았다!”
반사적으로 어머니의 말에 대답한 고미는 어찌할 줄 모르고 사방을 두리번거리다가 다급한 목소리로 전음을 보냈다.
[ 수, 수하! 큰일이다! ]
시스템 창에 메시지를 써넣어 대화를 시도하려던 순간, 내 눈에 기묘한 것이 들어왔다.
< 새로운 칭호를 획득했습니다. >
< 위대한 고미님의 첫 번째 가족. (Gomi) >
- 고미는 한 번도 가족을 가져본 적이 없습니다. 위대한 곰의 가족이 된다는 것은 더할 나위 없는 영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 가족 구성원이 획득한 모든 포인트가 김수하 님에게 적용됩니다.
- 고미와 더 원활하게 대화를 나눌 수 있도록 전용 스킬이 부여됩니다.
<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 (F) >
- 진정한 가족은 마음으로 대화를 나눌 수 있습니다. 이제부터 위대한 곰과 당신은 마음으로 소통할 수 있습니다.
‘응?’
고미도 고미지만, 정말 이 시스템 창의 퀘스트도, 칭호도, 스킬도, 도통 종잡을 수가 없다.
왜 이렇게 뜬금없이 뭘 밀어 넣는 걸까?
하지만 갑자기 전음을 사용하면 이상하니 일단은 평소대로 시스템 창으로 대화를 하는게 좋을 것 같다.
[ 왜 그래? ]
[ 소, 손발을 어디서 씻는지 모르겠다! ]
고미의 고개가 진자처럼 좌우로 흔들리고, 갈피를 잃은 시선이 집안 곳곳을 훑었다.
엄마한테 물어보기에는 위대한 곰의 체면이 상한다고 생각한 나머지 나에게 전음을 보낸 것 같았다.
[ 저기, 정면에 그 문. 기다려 내가 같이 갈게. ]
혼자 화장실에 들어가면 변기 물로 씻을지도 모르니까 내가 따라 들어가야지. 이 녀석은 아직 현대 문물에 익숙하지가 않으니까.
함께 화장실에 들어가자, 아니나 다를까, 고미의 발걸음이 변기로 향했다.
“고미, 그거 아니야.”
“이것이 우물이 아니더냐?”
“절대 아니야. 너 거기에 손 넣으면 진짜 큰일 난다. 그거 측간이야.”
“츠, 측간에 왜 물을 담아 놓는 것이냐?”
고미가 나와 변기를 번갈아 바라보며 물었다.
말없이 변기의 물 내림 버튼을 꾹 누르자
“오오오오!”
한참 동안 내려가는 변기 물에서 눈을 떼지 못하던 고미가 질 수 없다는 듯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하지만 사이즈가 조금 작구나. 이 몸은 훨씬 더 큰 소용돌이를 만들 수 있다!”
음······. 변기하고 싸워서 뭐 하게······.
“알겠어, 일단 이리 와. 손발 씻어야지.”
그리고 세면대의 수도꼭지를 돌리자,
쏴아아-
“이, 이럴 수가······.”
고미는 상당히 충격을 받은 듯 멍한 표정을 지으며 세면대 위로 폴짝 뛰어올라 물줄기에 손을 가져다 댔다.
"안돼 고미. 그 위에 올라가는 거 아니야. 위험해."
세면대에 올라서지 말라는 말에 고미의 몸이 풍선처럼 둥실둥실 떠올랐다.
여러가지 의미로 할말이 없는 세면 방식이군.
“굉장하구나. 이것은······. 마력이 느껴지지 않는데 어째서 물 마법을 쓸 수 있는 것이냐?”
“음······. 마법이 아니라, 저장되어 있는 물을 가져다 쓰는 거야.”
나의 말에 고미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맑은 눈을 데록데록 굴려댔다.
“으음······.”
그래, 이해가 안 가겠지. 솔직히 나도 물을 틀면 물이 나오는 건 아는데, 정확한 원리는 모른다. 문과거든.
잠시 생각에 잠겨있던 고미는 결국 생각하는 것을 포기한 듯 해맑게 웃으며 흐르는 물줄기에 손을 가져다 댄 뒤에 다시 발을 가져다 댔다.
고양이 세수도 이거보다는 낫겠네······. 그건 씻는 게 아니잖아.
“고미······. 그렇게 대충 씻으면 안 돼.”
이거야 원, 싸우는 거 외에는 완전히 어린애나 다름이 없으니 하나부터 열까지 챙겨줘야 하네.
하지만 이 녀석을 챙겨줄 수 있다는 게 영 싫지는 않았다.
아이나 동물을 키워본 적은 없지만, 내가 일일이 챙겨줘야 하는 존재가 있다는 게 퍽 기분 좋은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하긴, 그래서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들이 있는 거겠지.
“이렇게, 이렇게.”
내가 먼저 시범을 보이자, 고미는 나와 똑같이 손발을 씻고는 무언가 대단한 일을 해낸 듯 씨익 웃음을 지었다.
“자, 이제 수건으로······.”
라고 말하며 수건을 내미는 순간, 고미의 팔다리에서 모락모락 김이 피어오르더니 축축하게 젖어있던 털이 순식간에 뽀송뽀송하게 말랐다.
“자! 다 씻고! 깨끗하게 물기도 닦아냈느니라!”
괴, 굉장하긴 한데, 왜 이렇게 소박한 일에 그런 능력을 쓰는 거냐······.
“다음번에는 이 몸의 위대한 마법을 보여주겠다! 저 녀석과, 저 녀석보다 내가 훨씬 더 잘할 수 있다!”
순식간에 뽀송뽀송해진 고미가 변기와 수도꼭지를 가리키며 말했다.
“엄마! 약속을 다 지켰느니라! 보아라!”
“어머, 우리 고미는 씻는 것도 잘하네.”
“후훗! 이 몸은 못하는 것이 없느니라!”
자랑스럽게 손발을 내미는 고미의 동굴 동글한 뒤통수를 바라보고 있자니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우웅, 우웅.
그때, 주머니에 있던 핸드폰이 부르르 몸을 떨었다.
화면을 확인해보니 낯익은 번호에서 문자가 와 있었다.
‘이강혁입니다. 내일 만날 수 있겠습니까? 약속한 물건들을 가지고 오시면 바로 돈을 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