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아기곰이 너무 강함-28화 (28/300)

EP.28 수하, 배신당하다

치이이익-

아빠의 뜬금없는 소리에 불판 위에서 고기가 익어가는 소리만이 방안을 가득 채웠다.

“서, 설마 아빠는 그런 것을 알 수 있는 것이냐!?”

고미가 흠칫 놀라 귀를 움찔거리며 물었다.

응, 몰라. 그럴 리가 없지.

아버지는 원래 엉뚱한 소리 하기를 좋아하신다.

책 읽는 걸 좋아하고 호기심도 많으셔서 상당히 박학다식하지만, 방대한 지식을 바탕으로 엉뚱한 결론을 내놓는 헛다리의 대가라고나 할까.

“어때 고미, 이 아빠가 고미의 정체를 맞춰볼까?”

아버지와 눈이 마주치자, 고미가 안절부절못하며 팔다리를 꼬물거렸다.

“그, 그럴 리가 없다. 제아무리 아빠라고 해도 이 몸의 정체를 알 수는 없다.”

대화의 흐름이 묘하게 이상하다.

고미의 머릿속에서 아빠는 대단한 능력을 가진 존재인 걸까?

“또, 또. 애 데리고 무슨 이상한 얘기 하려고.”

아버지가 의미심장한 웃음을 흘리자, 어머니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그사이 나는 이 조금은 쓸데없지만 즐거운 대화를 조용히 감상하며 고기를 굽기 시작했다.

나도 어릴 때는 아버지의 저런 엉뚱한 이야기에 속아 넘어가서 이상한 상상을 하곤 했었던 게 생각난다.

“자, 아빠가 맞춰볼게. 고미는 아기 신인 거야. 맞지?”

······.

‘적당히 좀 합시다, 김 사장님’이라는 말이 목구멍 밖으로 튀어나오려는 찰나,

고미가 씨익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틀렸다! 아빠는 엉터리였다!”

그렇겠지. 이번에도 아버지는 헛다리를 짚으셨다.

아기 신이라니, 무슨 되지도 않는 소릴.

어쨌든, 고미는 거짓말을 못 하니 이걸로 신이 아닌 건 확정이네.

다행이다. 솔직히 신을 키우는 건 좀 부담스럽거든.

하지만 이어지는 아빠의 말에 자신만만하게 웃던 고미의 표정이 상당히 묘하게 변했다.

“이상하다, 고대에는 곰을 신으로 모시는 민족이 많았는데 말이지.”

“아, 아빠는 그것을 알고 있느냐!?”

처음 듣는 얘기인데. 흥미롭긴 하네.

“아빠는 훌륭하다! 요즘 인간들은 곰의 위대함을 모르는 것 같아서 괘씸해 하고 있었느니라!”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 사이, 첫 번째 고기가 익었다.

크······. 이 향긋한 고기 냄새.

생각해보니 나도 고기 먹은 지가 언젠지 기억도 안 난다.

그렇게 집게를 든 채 고기를 보며 마른 침을 삼키고 있을 때,

“야, 집게 넘겨.”

봉식이가 내 손에 들린 집게를 낚아챘다.

“넌 고기 못 구워서 안 돼. 비싼 고기인데 너한테 맡기기 불안하다.”

말은 그렇게 하지만, 부모님과 내가 편하게 먹으라고 배려하고 있다는 것을 모두가 알고 있었다.

“어, 그래. 안 타게 잘 구워라.”

“너보다는 잘 굽는다. 걱정하지 말고 먹기나 해라.”

적당히 핏기가 남은 고기가 입안으로 들어가는 순간,

“오, 음······.”

나도 모르게 고미처럼 ‘오오오오!’를 할 뻔했다.

돈도 돈이지만, 지난 2년간 눈코 뜰 새 없이 바빠서 고기처럼 먹는 데 시간이 걸리는 음식은 거의 먹어볼 생각도 못 했으니까.

아니구나, 대학원 때도 별반 다르지는 않았네.

“역시 엄마는 우리 아들 먹는 거 볼 때가 제일 좋더라.”

어머니는 흐뭇하게 웃으며 나를 바라봤고, 아버지는······.

“여보, 얼른 먹어. 이야, 이게 고기가 보통 부드러운 게 아니네.”

이미 폭풍먹방을 시전 중이었다.

“자, 우리 막내도 고기 먹을까? 고기 먹을 수 있어?”

반면 어머니는 자기 입으로 들어가는 것보다 고미부터 신경을 쓰고 있었다.

“후후후······. 사실 고기는 처음이지만, 이 위대한 몸이 못 먹는 음식이 있을 리 없지! 어서 다오! 나에게 처음 고기를 선물할 수 있는 자격을 엄마에게 주겠다!”

“아이구, 고마워요. 우리 고미님!”

< 가족애 포인트가······. >

< 호감도가······. >

고미의 입에 소고기가 들어가기 무섭게 메시지가 떠올랐지만, 나는 그것을 무시하고 고기의 맛에 집중했다.

2년 만의 가족 회식에서 분위기 깨지 마라. 짜증 나니까.

이거 아예 끄는 건 안 되나?

“오오오오!”

처음 고기 맛을 본 고미는 경탄과 감동이 가득한 표정으로 입을 벌리며 어쩔 줄을 몰라 했다.

“오구오구, 맛있어요?”

“괴, 굉장하니라! 이, 이것은······. 가, 감히 꿀과 비교해도······.”

고미의 반응에 덩달아 기분이 좋아진 어머니의 눈이 반달 모양으로 변했다.

“엄마도 좀 먹어. 의사가 괜찮다고 했어도 일단 잘 먹어야지.”

“알았어, 걱정하지 마.”

“그래, 엄마도 먹거라! 나는 혼자서도 잘 먹을 수 있다! 위대한 이 몸이 엄마에게만 의지할 수는 없지!”

생전 처음 소고기의 맛을 보고 흥분한 고미가 곧장 맨손으로 고기를 집으려 하자,

“고미! 맨손으로 그러면 안 돼요!”

엄마가 고미의 손목을 덥석 붙잡았다.

“아앗, 미, 미안하다. 이 몸이 잠시 체통을 잃었다. 어서 젓가락을 다오.”

그리고는 젓가락을 받아 아주 조심스럽게 고기를 집었다.

“어머, 우리 고미는 젓가락질도 잘하네?”

“자, 이것은 엄마에게 하사하겠다. 엄마도 먹거라.”

“고맙습니다.”

엄마랑 고미는 상당히 궁합이 좋구나······.

“옴뇸뇸······. 아빠는 이 몸의 위대한 이야기를 어디까지 알고 있느냐?”

잠시 고기에 정신이 팔려있던 고미가 소고기를 오물오물 씹어먹으며 물었다.

아, 안 돼. 아빠한테 저런 이야기를 하면! 관심을 줘서는 안 된다고! 다시 먹을 거에 집중해 고미!

“곰은 세계 곳곳에서 신이나 신과 인간을 연결하는 존재로 추앙받아왔지. 러시아, 독일, 프랑스, 일본, 한국, 아이누족이나 한티족, 우데게족은 아직도 곰을 신성하고 위대한 존재로 여기고 있고. ”

안 돼, 이미 시작해 버렸다.

“우리나라만 해도 웅녀 설화가 있고, 고맙습니다의 어원이 곰과 관련이 있지. 감사하다는 말이 곰과 관련이 있다는 것은 우리 민족도 그만큼 곰을 신성시했다는 의미지.”

“오, 오오! 아빠는 역시 대단하구나! 어쩜 그렇게 곰의 위대함에 대해 잘 알고 있느냐?”

고미, 제발 반응 하지 마.

“세계의 많은 도시 이름이 곰에서 비롯된 건 알고 있니?”

“아앗······. 아빠! 얕본 것을 사과하마! 잠시만 기다리거라. 내가 선물을 주어야겠다!”

말을 마친 고미는 황급히 나에게 달려오더니 ‘산신령의 보물’을 문지르기 시작했고, 아버지는 지식 자랑에 흠뻑 빠져 설명을 이어나갔다.

“공주의 옛 이름인 곰주, 웅주는 모두 곰에서 비롯됐지. 베른과 베를린, 마드리드의 지명도 곰에서 유래했어. 곰이 전 세계에서 위대한 힘을 가진 신의 대리자, 혹은 신 그 자체로 여겨졌다는 증거지. 루마니아에서는 아직도······.”

아아, 안 돼.

“아, 아빠, 알았으니까 제발 그만.”

“아직도 많은데······. 능력, 권능의 능(能) 자는 본래 곰을 상징하던 말이고, 그것이 변형된게 웅(熊)자지. 아기곰을 뜻하는 말인 능소니는 능의 자손이라는 의미고. 즉, 곰이라는 말 자체가 힘, 능력, 권능의 상징인 거지. 그래서 이 아빠는 생각했다. 고미는 틀림없이 아기 신일 거라고 말이지.”

다행히 아버지의 설명은 거기서 끝이었다.

아버지가 이야기를 마치는 순간, 고미가 아장아장 걸어가 사뭇 비장하게 무언가를 내밀었다.

“이 몸은 감동받았다! 위대한 곰의 멋진 전설에 대해 제법 많이 알고 있구나. 자, 이것은 내가 주는 상이다! 특별히 나의 보물 창고에서 보물을 꺼내왔느니라!”

고미의 손에는 수다르의 동굴에서 숙성 중이던 커다란 산삼 두 뿌리와 초코바가 들려 있었다.

“꿀!?”

산삼하고 초코바는 그렇다 치고, 꿀을 준다고?

그렇게 좋았던 거냐? 아빠가 곰에 대해 알고 있었던 게?

‘고미, 네가 어, 어떻게······.’

알 수 없는 배신감과 패배감이 가슴을 휘몰아친다.

대체 뭐냐, 우리 나름대로 생사고락을 함께한 사이 아니었어? 나한테는 초코바 하나 건넨 적 없으면서 아빠한테는 바로 꿀을?

이어서 내 입지가 더욱 줄어드는 것은 아닐까 하는 불안감이 엄습했다.

이런 식이면 결국 저기서 존재감 없이 리액션만 하면서 고기나 굽고 있는 봉식이 꼴이 되고 말 거다.

“엄마와 아빠가 몸이 좋지 않다 하여 수하와 함께 산삼을 캤다. 밤새 온몸이 흙투성이가 되어서 산삼을 캐더구나. 참으로 보기가 좋았다.”

한 손에 다 들어가지도 않는 산삼의 크기에 어머니와 아버지는 놀란 듯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제법 맛이 쓸 테니 이 몸이 특별히 꿀과 초코바까지 곁들였다. 남기지 말고 모두 먹어야 몸이 완전히 회복될 것이다.”

고미에게 있어 꿀은 그야말로 보물 0호다. 1호도 아니고, 0호.

오죽하면 수다르에게 내줄 때도 차마 바로 내주지 못하고 시원하게 원샷을 때렸겠나.

그런데 그런 보물을 저렇게 흔쾌히 내주다니······.

“혹시 먹고 나서 쓰다면 꿀과 초코바를 먹거라. 우리는 이제 가, 가족이니까······. 특별히 주, 주는 것이다.”

꿀과 초코바를 내미는 고미의 손이 바르르 떨리고, 눈동자가 초점을 잃는 것이 보였다.

‘역시, 흔쾌히는 못 내주는 거구나.’

하지만 아까운 마음에 손을 떨면서도 부모님에게 자신의 보물을 내주는 고미의 모습에 나도 모르게 마음이 뭉클해졌다.

부모님 역시 고미의 마음에 감동한 것인지 아들이 밤새 흙 뒤집어 써가며 산삼을 캤다는 이야기에 감격한 것인지 눈물을 글썽이며 산삼을 씹어 드셨다.

모양이 조금 이상하기는 한데, - 아버지 말로는 - 산삼은 원래 그렇게 먹는 거라고 한다.

* * *

그렇게 식사가 끝나갈 무렵, 봉식이가 손짓으로 나를 불러냈다.

밖으로 따라 나가자, 봉식이가 심각한 표정으로 팔짱을 낀 채 입을 열었다.

“너 아까 그 반지, 엄청 귀한 물건인 건 알지?”

“응, 대충.”

산신령의 반지는 사실상 다른 공간과 연결된 인벤토리 역할도 겸하고 있다.

인벤토리는 크기와 용적, 부피와 무게 감소에 따라 가격이 결정되니 사실 산신령의 보물은 부르는 게 값인 물건이나 마찬가지.

거기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내가 쓸 때는 포션도 받을 수 있고 약재도 받을 수 있으니 그 가치는 이루 말로 다 할 수가 없을 정도다.

“그럼 네 상황 위험한 건 너도 알겠네.”

“잘 알지.”

“몸조심해라. 고미의 힘이 밝혀지면 고미가 아니라 널 노릴 게 뻔하니까.”

봉식이가 잔뜩 인상을 찌푸린 채 말했다. 이 녀석도 그 바닥에서 굴러먹은 지 2년이니, 앞으로 벌어질 일들에 대해 나보다 더 걱정이 되는 모양이었다.

“알아. 그 얘기 하려고 부른 거냐?”

“아니, 그건 아니고. 앞으로 어떻게 할 거냐?”

“뭘.”

“당장 살 집도 없잖아. 원룸에서 고미까지 넷이 부대끼고 살기에는 너무 좁고. 부모님 가게도 정리했고. 앞으로 어떻게 할 거냐고.”

“일단 산삼 남은 게 좀 있다. 그거 팔아서 돈 좀 마련하고, 그거 외에도 한 1억 들어올 거 있어. 다 합치면 그래도 2억은 되지 않을까. 넘을지도 모르고. 산삼 시세를 잘 몰라서.”

2억이라는 말에 봉식이의 눈이 휘둥그렇게 변했다.

“2억? 갑자기 그 큰돈이 어디서 났어.”

“누구한테 아이템 좀 팔았다. 산삼 팔라고 심부름도 좀 시켰고.”

“너 위험한 짓 한 거 알지?”

나도 안다. 이강혁이 먼저 찾아오지 않았다면 그런 거래를 하지는 않았을 거다. F급이 여태 퀘스트 개방 조건도 안 알려진 지리산 던전 클리어 보상 가지고 있다는 거 자체가 의심 사기 딱 좋은 일이니까.

“믿을만한 인간하고 거래한 거냐?”

“이강혁.”

“검성?”

“응.”

상대가 검성 이강혁이라는 것을 듣자, 봉식이의 얼굴에 더욱 짙은 그늘이 드리웠다.

“네가 나보다 머리 좋고 사람 보는 눈 있는 건 아는데, 정말 괜찮겠냐?”

“상황이 어쩔 수가 없었어. 그리고 이강혁 평판 좋잖아. 그날 태도도 깔끔했고. 다른 사람보다야 믿을 만 하지.”

‘물론 영 걸리는 게 없는 건 아니지만······.’

속으로 그렇게 혼잣말을 중얼거리고 있을 때, 봉식이가 인상을 찌푸리며 다시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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