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아기곰이 너무 강함-27화 (27/300)

EP.27 고미, 막둥이 되다

“제가 아는 사람이요?”

이상하네, 나 친구 별로 없는데.

원래 친구가 적은 편은 아니었지만, 대학원에 다니면서 대부분의 인간관계가 끊어졌다.

매일 공부에 실습에 수업에 연구에 일까지, 하루 4시간이나 자면 다행이었을 때니까. 옆에 사람이 남을 리가 있나.

그나마 남아있던 친구도 부모님 병원비 댄다고 일만 하느라 거의 다 떨어져 나갔다.

대신 진짜 ‘내 사람’들이 남았고, 그 사람들이 얼마나 소중한지 알게 됐지.

“아, 서로 안다는 의미는 아니고요. 수하 씨는 알 거라는 뜻이에요.”

호기심 돋네. 대체 누구길래.

“누군데요?”

“한유진 씨요.”

회장의 이름을 듣는 순간, 저도 모르게 목소리가 커졌다.

“네? 한유진이요?”

드래곤 라이더, ‘용 세 마리가 한집에 있어’의 주인공, ‘그’ S급 헌터 한유진?

“설마 용왕 길드 길드장 한유진 말씀하시는 거 아니죠?”

“맞습니다.”

“그 사람이 왜······.”

“테이머스 창립자가 그분이에요.”

어······. 조금 의외다.

티비에서 본 이미지는 굉장히 무서운 사람이었는데.

“그분이 절 어떻게 알아요?”

“아, 이번 모임에서 수하 씨 얘기를 했는데, 때마침 인터넷에 뜬 고미 사진을 보고는 한 번만 만나보고 싶다고 아주 난리를 피우시더라고요.”

하아······. 망할 인터넷 강국 같으니.

곰트라이더의 여파가 이런 식으로 올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왜 이렇게 한숨을 쉬냐고?

이강혁에 한유진 정도 거물하고 엮이면 주목을 안 받을래야 안 받을 수가 없으니까.

차라리 내가 S급이면 사람들도 그냥 새로운 S급 하나 나왔구나 하고 말겠지. 최소한 무서워서라도 건드리지 못할 거다.

하지만 F급이 국내 최대 길드 중 하나인 저스티스의 수장인 이강혁과 용왕의 수장인 한유진과 친분 있다고 하면······. 누가 봐도 이상하지 않을까?

이러면 뒷조사 들어온다고요······.

“일단 좀 생각해보고 연락 드려도 될까요? 제가 부모님이 좀 편찮으셨는데, 오늘 막 퇴원을 하셔서 정신이 없거든요.”

게다가 한유진이면 분명히 용 데리고 올 텐데, 고미랑 용이랑 마주치게 놔둬도 되는 걸까?

순간 대웅전에 전시되어 있던 쓰······. 아니, 조각상의 모습이 머리를 스쳤다.

‘용 세 마리 때려눕히면 진짜 평온한 나날은 영원히 안녕일 텐데······.’

“네, 그럼 한번 생각해 보시고 연락 주세요.”

임성한과 통화를 마친 나는 곧바로 부모님이 계신 병실로 돌아갔다.

* * *

이후 우리는 봉식이의 차를 타고 임성한 씨가 알려준 고깃집으로 향했다. 메뉴는 아버지가 결정했다. 고기가 그렇게 땡기신다고 노래를 하셔서······.

처음에는 죽이나 위에 부담이 가지 않는 음식을 먹을까 했지만, 의사의 말로는 2년을 움직이지 않았는데도 체력이 조금 떨어진 것 외에는 몸에는 큰 이상이 없다고 했다.

그 말을 들은 고미는 뿌듯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며

「후후후, 그것이 바로 웅기조식(熊氣調息)의 효과이니라. 이제 산삼만 먹이면 완전히 회복할 것이다.」

라고 말했다.

“오오오! 봉식이라 하였느냐? 네 녀석은 버스를 몰 줄 아는 것이냐?”

봉식이가 운전대를 잡자, 고미가 잔뜩 흥분한 목소리로 눈을 빛내며 외쳤다.

물론 봉식이 차는 버스가 아니다. 그냥 6인승 SUV.

하지만 고미는 모든 차를 큰 버스와 작은 버스로 분류한다.

“어······. 버스는 아니고요.”

고미의 질문에 봉식이가 약간 우물쭈물하며 답했다.

와······. 인간 흉기, 살육 전차 민봉식이가 겁을 먹다니.

10년 만에 처음 본다.

저 물건은 고등학교 때 10 대 1로 싸울 때도 눈 하나 깜빡 않던 놈이다. 하긴 그때 192cm에 110kg인가 그랬으니까······. 오히려 상대방이 공포에 떨었지.

지금은 더욱 강력해져서 195cm에 120kg 조금 넘는다. 각성까지 하면서 진정한 살육전차로 거듭났지.

참고로 내가 지리산에서 철갑개미 잡을 때 말했던 ‘몬스터보다 더한 흉기’가 바로 이놈이다.

“뭣이?! 이것은 작은 버스가 아니냐?”

“아, 아뇨. 맞습니다.”

고미의 질문에 봉식이가 자신의 차종을 버스로 바꿔버렸다.

“흥, 덩치는 커다란 놈이 좀스러운 버스를 타는구나! 그래도 택시라는 작은 버스보다는 크니 마음에 든다!”

아이처럼 재잘대는 고미의 모습에 엄마와 아빠의 입가에도 흐뭇한 미소가 걸렸다. 두 분은 원래 아이도 좋아하고 동물도 좋아하니 고미는 완전히 취향저격이겠지.

“우리 작은 아들이 그새 다 커서 차도 샀네. 듬직해라.”

어미니의 말에 봉식이의 입가에도 환한 미소가 번졌다.

“제가 어머니 아버지 깨어나면 모시고 여행 가려고 일부러 큰 걸로 뽑았어요. 이제 아들 돈 잘 벌어요. 제가 호강 시켜 드릴게요.”

“아이고, 말만 들어도 고맙지.”

“응? 저 녀석은 저렇게 큰데 왜 작은아들인 것이냐? 작은아들은 수하가 아니더냐?”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던 고미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물었다.

“우리 작은 아들은 나중에 아들 됐으니까 작은 아들이지.”

“오오, 저 녀석이 너보다 어린 것이냐?”

고미는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나와 봉식이를 번갈아 바라봤다.

우리 부모님은 원래 사람이 좋다. 정 많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럽지. 덕분에 가정환경이 불우하거나 부모님이 안 계신 사람 중에 우리 부모님을 친부모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봉식이도 그중 하나고.

‘물론, 이놈은 좀 특별하지. 부모님도 이놈을 친아들처럼 생각하니까.’

고미의 질문에 나도 부모님도 봉식이가 친자식이 아니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상처가 될지도 모르니까.

하지만 정작 봉식이는 아주 행복한 표정으로 우리의 관계를 설명해주었다.

“가슴으로 낳은 자식이라 그래요.”

“응? 인간은 가슴으로 아이를 낳지 않는다! 내가 그것도 모를 줄 아느냐!”

······.

이거, 꽤 감동적인 대사인 것 같았는데 말이야.

“하하하, 그런 뜻은 아니고요. 핏줄이 이어지지 않았어도 가족이 될 수 있다는 소리예요.”

봉식이의 말을 들은 고미는 답지 않게 깊은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한참 후, 부모님을 바라보며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어렵게 입을 열었다.

“그, 그럼 나도 가족이 될 수 있는 것이냐?”

“으응? 우리 고미도 엄마 아빠 갖고 싶니?”

엄마의 순수한 질문에 고미는 한참을 망설이다가 서글픈 표정으로 답했다.

“나, 나는 처음부터 가족이 없다. 위, 위대한 존재는 본래 외로운 법이다. 게, 게다가 인간과 곰이 어떻게······.”

“안 될 게 어딨어요, 우리 고미는 막내 하면 되겠네.”

어머니가 머리를 쓰다듬으며 그렇게 말하자, 고미의 눈에서 갑자기 구슬 같은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예상치 못한 고미의 반응에 어머니와 아버지는 적잖이 놀란 표정을 지었지만, 금세 따뜻하게 녀석을 달래주기 시작했다.

“우리 막내가 왜 울까?”

“수하 네가 애기 잘 챙겨라. 애가 마음이 여리네.”

부모님의 따뜻한 말에 코를 훌쩍거리던 고미는 환히 웃으며 금세 자신감을 디찾았다.

“후후후! 알겠다! 이제 내가 막내님이니 수하를 잘 보살피도록 하겠다! 이 몸만 믿거라!”

음······. 순식간에 가족이 늘었군.

그런데 큰아들이 막내의 제자면 뭔가 족보가 심하게 꼬인 거 아닌가.

“봉식이!”

“네, 네?”

고미의 한마디에 봉식이가 화들짝 놀라며 답했다.

“너도 이제 가족이니 이 몸이 보살펴주마!”

“어, 네!”

쫄아서 맞춰주지 마······.

“아이구, 우리 고미가 지켜준다니까 엄마 아빠가 너무 든든하다.”

엄마는 벌써 고미에게 폭 빠졌는지 아예 녀석을 꼭 끌어안고 계신다.

바로 그때······.

< 메인 퀘스트가 개방됩니다. >

또?

< 메인 퀘스트 : 고미에게 가족의 소중함을 알려주세요 >

- 고미는 단 한 번도 가족을 가져본 적이 없습니다. 외로운 고미에게 가족의 소중함을 알려주세요.

달성 조건 1. 고미를 가족으로 받아주세요. (완료)

달성 조건 2. 가족 포인트 획득 (10 / 100 )

달성 보······

하지만 나는 거기까지만 보고 상태창을 닫아버렸다.

보상이 뭔지 보면, 욕심이 생길 것 같았으니까.

고미는 나와의 약속을 지켰고, 부모님을 구해줬다.

이제 내가 고미를 더 행복하게 해줄 차례다.

저걸 이용하면 더 쉽게 강해지겠지만, 그러고 싶지 않다.

그건 내가 더 노력하면 될 일이다.

‘퀘스트인지 지랄인지 관심 없어.’

그러나 나의 마음과는 무관하게, 시스템은 또다시 보상을 보내왔다.

< 축하합니다. 히든 퀘스트를 완료했습니다. >

< 히든 퀘스트 : 고미를 아껴주세요! (2) >

< 달성 조건 >

시스템 보상을 보지 않고 고미에게 잘해주기.

< 달성 보상 >

하급 스킬 강화 (+2)

< 강화할 스킬을 선택해 주세요. >

심지어 이번에는 상태창이 닫히지도 않는다.

‘보류.’

나는 보류를 선택한 뒤 조용히 오랜만에 찾아온 소란스러움을 즐겼다. 스킬 선택이니 퀘스트니 하는 것은 잊고, 지금은 그냥 이 평화를 즐기고 싶다.

* * *

임성한이 소개해 준 고깃집은 한눈에 보기에도 고급스러운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곳이었다.

하긴, 그 사람도 돈이 아쉬울 리는 없겠지. 공무 헌터 하기 전까지 몇억은 벌었을 거고, B급 정도면 공무 헌터라고 해도 어지간한 대기업 중간 관리자급은 버니까.

“아들, 여기 너무 비싸지 않을까?”

아니나 다를까, 어머니는 곧바로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고,

“그냥 다른 데 가자 아들. 아빠도 이런 데는 부담스러워서 싫다.”

병원비가 얼마나 들었는지 말씀은 안 드렸지만, 대충 큰돈이 들었을 거라는 건 짐작 하시겠지.

“아, 어머니 아버지 왜 그래요. 아들 돈 많이 번다니까? 한 달에 천만 원 벌어 천만 원. 이런 데서 고기 먹어도 돼.”

그러자 나 대신 봉식이가 나서서 부모님의 팔목을 잡아끌었다.

“그래도······.”

“아이참, 아 몰라, 나 여기서 먹고 싶어. 내가 먹고 싶어서 그러니까 얼른 가요.”

결국 부모님은 봉식이의 성화에 못 이겨 고깃집으로 발을 들였다.

안으로 들어가자, 깔끔하게 차려입은 남자 하나가 다가와 정중하게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안녕하십니까. 임성한 님 소개로 오신 김수하 님, 맞으신 가요?”

“어······. 네.”

“안쪽으로 모시겠습니다.”

남자가 안내해 준 방은 가게의 가장 안쪽에 있는 크고 깨끗한 방이었다.

방의 크기로 보나 안쪽에 비치된 장식품으로 보나 이 가게에서 가장 좋은 방이라는 것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조금 부담스럽네.’

이어서 고급 한정식집에서나 나올법한 것들이 밑반찬으로 깔리고, 옅은 분홍색을 띤 싱싱한 소고기가 상 위에 올라왔다.

“고기는 구워 드릴까요? 따로 할 얘기가 있으시다면 저희는 나가 있도록 하겠습니다.”

음식을 가져다준 직원이 친절하게 웃으며 물었다.

헌터 중에는 자기들끼리 하는 얘기를 누군가가 듣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들이 많다.

던전에서 뒤통수 맞으면 바로 황천길 가는 바닥에서 굴러먹다 보니 의심이 많아지는 건 지극히 정상적인 일이었다.

임성한 씨 소개로 왔으니 우리도 그런 사람 중 하나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음, 네. 저희가 알아서 할게요. 감사합니다.”

내 대답을 들은 직원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인 뒤 조용히 물러났다.

“고미, 혹시 누가 우리 얘기 엿듣는지 확인 좀 해줘.”

그리고 나도 그 헌터들처럼 의심이 많은 사람 중 하나였다.

모두를 의심하고, 아무도 못 믿는 사람은 아니지만, 누구나 믿을 만큼 순진하지도 않은 사람.

특히 이제 가족이 된 고미를 지키기 위해서는 더욱 신중해질 필요가 있었다.

“아무도 없느니라. 만일 우리 이야기를 몰래 훔쳐 듣는 자가 있다면 이 몸이 혼쭐을 내주마!”

“알았어, 믿을게.”

이후 나는 고미를 처음 만났던 날부터 시작해 지리산에 가서 영약을 구하기까지 있었던 일을 하나도 빠짐없이 가족들에게 이야기했다.

앞으로 고미와 함께 지내려면 다들 알고 있어야 할 것 같아서.

그리고 부모님을 살리기 위해 열심히 뛰어다닌 고미의 노고를, 적어도 우리는 알고 있어야 하니까.

이야기를 마쳤을 무렵에는 방 안에 잠시 정적이 깔렸다.

“어, 엄마는 조금 믿기가 힘들구나.”

어머니가 고미를 꼭 끌어안은 채 말했다.

이미 완전히 늦둥이 취급이다.

그리고 아버지의 반응은, 상당히 의외였다.

“음, 나는 고미의 정체를 알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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