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6 깨어나다(2)
우우웅-
우웅-
부모님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빛이 점점 더 밝아지며 이내 두 개의 작은 태양이 떠오른 것처럼 병실 안이 환해졌다.
“어, 어······.”
갑자기 일어난 기현상에 봉식이는 멍한 얼굴로 나와 부모님과 고미를 번갈아 바라봤다.
그러던 어느 순간, 부모님의 몸에서 시커먼 안개 같은 것이 빠져나와 사람 모양으로 뭉치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이내 두 개의 검은 안개에서 한 쌍의 붉은 눈이 생겨났다.
“크크큭, 우리를 끄집어내다니, 네놈들이 무슨 짓······.”
“김수하! 피해!”
봉식이가 번개처럼 안개들을 향해 주먹을 내지르며 외쳤다.
부웅-
하지만 녀석의 주먹은 마치 연기를 친 것처럼 허무하게 검은 안개를 통과하고 말았다.
“헛수고다 인간. 너희 같은 하등생물은 감히 우리의 몸에 손조차 댈 수 없다.”
유령이 손톱으로 칠판을 긁는듯한 섬뜩한 목소리로 봉식이를 조롱하고 있을 때,
“이 더러운 해충 같은 놈들.”
분노에 찬 고미의 목소리가 병실에 울려 퍼졌다.
고개를 돌려보니 고미가 바닥에 손을 짚은 채 날카로운 눈으로 녀석들을 노려보고 있었다.
“아니, 너, 넌! 어떻게 네가!”
고미를 발견하는 순간, 경멸로 가득했던 놈들의 눈빛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공포에 질린 두 마리의 유령은 그대로 뒤도 돌아보지 않고 벽을 향해 돌진했다.
하지만······.
쿵!
“아, 안돼!”
······.
뭐야, 통과 못 하네. 왜 벽으로 돌진한 거냐.
나와 봉식이가 덜떨어진 유령 둘을 바라보며 넋을 놓고 있을 때,
“고미류 봉인술, 불곰덫!”
날카로운 외침과 함께 병실의 벽과 바닥에서 기이한 문자들이 흘러나와 녀석들을 칭칭 옭아맸다.
“사라져라. 더러운 놈들.”
가볍게 발을 구르자, 고미의 몸이 화염을 내뿜듯 붉게 타오르며 놈들을 묶고 있던 사슬에 불이 옮겨붙였다.
“끄, 끄으으으······!”
그리고는 두 유령의 몸이 눈 깜짝할 새에 불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과연, 불+곰+덫이라 불곰덫인거구만······.
“수, 수하야. 저 곰돌이 대체 뭐냐?”
봉식이가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잔뜩 겁을 집어먹은 표정으로 나에게 다가와 속삭였다.
“으으······.”
그리고 내가 봉식이에게 고미를 소개하기도 전에, 엄마와 아빠가 긴 잠에서 깨어났다.
* * *
“아빠, 아빠?”
그런데, 부모님이 눈을 뜨자마자 한 가지 소소한 문제가 발생했다.
아빠가 ···죽은 척을 한다······.
“아빠. 일어나.”
“어머나!”
엄마는 고미를 보고 깜짝 놀라 경기를 일으켰다.
“아빠, 죽은 척하지 말라고. 창피하게 왜 이래. 진짜.”
너무 오랜만이라 잊고 있었는데, 아버지는 원래 좀 엉뚱한 구석이 있다.
평소에는 똑똑한 분인데, 가끔··· 좀 저러신다.
엄마는······.
“어머, 귀여워라. 곰돌아, 이리 온.”
어느새 적응해서 저러고 있고.
어머니는 아버지보다는 평범한데, 적응력이 아주 비범하신 분이다.
“하아······.”
안전(?)을 확인한 아버지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한숨을 내쉬었다.
나도 한숨이 나온다. 다른 의미로.
감동적인 가족 상봉이라든가, 다 같이 얼싸안고 눈물을 흘린다든가, 뭐 그런 건 없는 거냐.
하긴, 이것도 우리 가족다워서 좋네.
“어흐흑! 아부지! 어무니!”
내가 눈물을 흘리기도 전에 봉식이가 먼저 왈칵 눈물을 쏟으며 부모님을 와락 끌어안았다.
완전히 타이밍 놓쳤다. 역시 선즙필승이네.
“어이구, 우리 작은 아들, 왜 그래?”
아버지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면서도 봉식이의 등을 토닥거려주었다.
* * *
아버지와 어머니가 평범한 분이 아닌 건 사실이지만, 이렇게까지 기묘한 반응을 하게 된 이유는 간단했다.
기억을 못 하신다고.
게이트가 열린 것까지는 기억하는데, 그 후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전혀 기억이 안 나신다고 했다.
그 와중에 아버지는 ‘눈을 떠보니 낯선 천장이었다.’라며 드립을 치셨다.
어찌 보면 대단한 정신력이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내가 급박한 상황에서도 드립력을 잃지 않는 건 아버지를 닮은 탓인 것 같다.
[ 후후후, 이것이 가족이냐? 참으로 재미있구나. ]
그 모습을 본 고미는 즐겁다는 듯 웃음을 흘렸다.
“고미, 이 사람들 앞에서는 말해도 돼.”
[ 정말이냐? ]
고미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되물었다.
[ 하지만 여태 사람들 앞에서는 말을 하지 말라고 신신당부하지 않았느냐? ]
“가족하고 진짜 친구 앞에서는 예외야.”
부모님과 봉식이가 내가 머리를 다친 것은 아닌지 걱정하는 눈길을 보냈다.
세 사람의 눈에는 내가 곰을 상대로 혼잣말을 중얼거리고 있는 것처럼 보일 테니까.
하지만 정말로 고미가 말을 하기 시작하자,
“후훗, 건강한 모습을 보니 기분이 좋구나. 어떠하냐? 이 몸의 위대함이 느껴지느냐?”
······.
병실 안에 묘한 정적이 맴돌았다.
귀신에 홀린 듯 자신을 바라보는 세 사람의 모습에 한껏 우쭐해진 고미는 뒷짐을 진 채 배를 쭉 내밀며 말을 이어나갔다.
“이런, 너희들도 내 위대함을 알아보는 것이냐? 이 몸이 바로 고미이니라. 한 번쯤은 들어본 적이 있겠지?”
그러나 이어지는 자기소개에 세 사람 중 누구도 답을 하지 못했다.
이렇게 보니 고미를 처음 본 날 ‘누구세요?’, ‘모르겠는데요.’라고 했던 나도 정상은 아니었구나 싶다.
“어, 세 사람 다 너무 놀라지 말고 들어.”
내가 입을 열자, 세 사람은 그제야 현실로 돌아온 듯 반응을 보였다.
“어떻게 안 놀래? 네가 말한 그, 아니, 뭐야. 하여간. 그게 저거야?”
“수하야, 너 뭘 데리고 다니는 거니?”
“내가 아직 병상에 누워있어야 하는 것 같다, 아들.”
“수하! 이 녀석들이 나를 무시한다!”
이어서 고미까지 빽빽 소리를 질러댔다.
어이구 머리야. 병원에서 이렇게 시끄럽게 굴면······.
응?
바로 그때, 잊고 있던 사실 하나가 떠올랐다.
‘아까 그 빛, 병실에서 그렇게 엄청난 빛이 뿜어져 나갔는데 왜 아무도 안 달려오지?’
나의 시선이 자연스레 고미에게 향했다.
아까 고미류 봉인술 어쩌고 했었지.
“고미, 네가 봉인술로 빛이 새어 나가는 걸 막은 거야?”
그러자 고미가 평소보다 몇 배는 더 거만한 표정으로 턱을 괴며 말했다.
“영혼 수확자들은 숙주가 죽거나 강제로 숙주와 분리되면 안개로 변해 달아난다. 평범한 방법으로는 놈들을 잡을 수 없지. 그래서 봉인술로 이곳과 외부를 분리한 뒤 이 몸의 권능을 사용해 불태워 버렸느니라.”
음, 그런 걸 생각하고 한 행동은 아니구나.
뭐, 됐다. 결과가 좋으면 다 좋은 거지.
“곰돌아, 아니, 이름이 고미라고 했니? 사람 말은 어디서 배웠어?”
가장 먼저 이 사태(?)에 적응한 것은 역시나 어머니였다.
“어, 어머니······.”
반면 봉식이는 여전히 파랗게 질린 채 고미에게 다가가지도 못하고 있었다. 저놈은 헌터니까 고미가 얼마나 강력한 존재인지 대충 감을 잡은 모양이었다.
“여보, 조심해. 아니, 만져보고 안전하면 알려줘. 나도 만져보게.”
아버지는 저러고 있고.
“이 몸의 위대함을 몸소 느껴보고 싶은 것이냐? 좋다. 특별히 허락하마. 너는 내 제자의 어머니이니 허락해 주는 것이다.”
고미가 뭔가 대단한 은혜라도 베푸는 듯 말했다.
평소에도 건방지지만, 사람들의 이목이 쏠리니 점점 더 자뻑 증상이 심해지고 있다.
인터넷에 자기 사진 올라간 거 절대 알려주면 안 되겠다.
“어머, 어쩜 이렇게 털이 부드럽니?”
조금 걱정을 하기는 했지만, 표정을 보니 어머니가 만져주는 게 기분이 좋은 모양이다.
꼬리도 살랑살랑 흔들고, 귀까지 눕히는 게 확실히 기분 좋을 때 반응이다.
“일단 여기 계속 있기도 뭐하니까, 가서 퇴원 수속하고 올게. 나가서 얘기해 나가서, 병원에서 이러지 말고.”
“야 김수하, 어머니 아버지 이제 막 깨어나셨는데 좀 더 감동해도 되지 않냐? 하여간 저 물건은 정이 없어. 정이.”
봉식이의 핀잔을 뒤로하고 병실 문을 나서자, 천천히 모든 것이 정상으로 돌아왔다는 실감이 들었다.
그리고 한걸음, 한걸음, 걸음을 뗄 때마다 가슴이 울렁이더니,
“흑······.”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다.
왜 뒤늦게 눈물이 터진 걸까.
모르겠다.
딱히 부모님을 안심시키려 애썼던 것도 아니고, 억지로 눈물을 참지도 않았다.
하지만 그냥 그랬다.
2년,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이었다.
매일 이 터널의 끝에는 뭐가 있을까 고민하고 고통스러워하다가, 어느 순간부터는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았다. 아니, 아무 생각도 할 수가 없었다.
눈을 뜨면 일을 해야 했고, 돈을 벌어 병원비와 약값을 대고 나면 텅 빈 통장을 보며 허탈감에 빠졌다가, 또다시 일터로 나가기를 반복했다.
한푼이라도 벌어야 작은 희망이라도 있었으니까.
하지만 오늘, 마침내 그 어둡고 긴 터널이 끝난 것이다. 단순히 부모님이 깨어나서가 아니라, 그 동안 ‘살기 위해’ 애써 억눌러왔던 모든 감정이 일시에 터져나온 것이리라.
그렇게 누가 볼까 창피해하며 잠시 벽에 기대어 눈물을 흘리고 있을 때, 저 멀리서 아기곰 한 마리가 아장아장 걸어왔다.
[ 후훗, 숨어서 울고 있었느냐? 나약한 녀석! ]
“아니야, 그런 거.”
뭐가 그리 즐거운지, 고미는 훌쩍거리는 나를 보며 헤실헤실 웃음을 흘려댔다.
[ 너를 보니 가족이 어떤 존재인지 조금은 실감이 나는구나. 참으로 따뜻하다. 그래, 꼭 전기장판 같구나. 아무것도 안 하고 누워있어도 온몸이 따뜻해지는 기분이다. ]
전기장판이라······.
고미의 엉뚱한 표현력에 저도 모르게 픽, 하고 웃음이 새어 나왔다.
그래, 가족은 어쩌면 전기장판 같은 걸지도 모르겠네.
이어서 봉식이가 따라와 나의 어깨에 턱, 하고 솥뚜껑 같은 손을 올렸다.
“다 울었냐?”
“안 울었어 임마.”
“안 울기는, 콧물이나 닦아라. 더럽다.”
어느새 녀석의 손에는 휴지가 들려있었다. 마치 내가 병실 밖을 나가자마자 울 거라는 걸 미리 알기라도 했다는 듯이.
나도 내가 울지 몰랐는데 말이다.
“매정한 놈이라고 욕할 때는 언제고.”
민망한 마음에 쏘아붙인 말에 봉식이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번졌다.
“진짜로 매정한 새끼가 깨어날지 아닐지도 모르는 부모님 살린다고 2년을 밤낮없이 일만 하겠냐.”
“시끄러, 퇴원 수속하러 가야 돼. 앞으로 할 일이 태산이다. 병원비 대느라 전세도 빼서 부모님 지낼 곳도 없고, 당장 입은 늘었는데 돈도 없고. 부모님이랑 셋이 반지하에서 손가락 빨고 살 수는 없잖아.”
내 말을 들은 봉식이의 입가에 묘한 미소가 번졌다.
“하여간 겁나게 현실적이야. 에라이 메마른 새끼야. 이런 날 정도는 좀 놀고, 맛있는 것도 먹고 그래야지.”
“닥쳐, 그것도 생각해 놨어. 고미도 데리고 맛있는 거 먹으러 갈 거야. 넌 엄마 아빠랑 있어 일단.”
‘맛있는 거’라는 말에 고미는 눈을 빛내며 나에게 바짝 붙었다.
[오오, 수하! 그래! 역시 너는 신의를 아는 녀석이구나! 무엇을 사줄 것이냐? 꿀이냐? 초코바냐? 이 몸은 준비가 되었다! ]
* * *
퇴원 수속을 하러 가니 병원이 발칵 뒤집혔다.
부모님의 주치의는 역시 던전 아이템이 해법이었다면서 기뻐했고, 어머니와 아버지의 건강 상태를 확인해보고 이상이 없으면 일단은 퇴원해도 된다고 말했다.
단, 워낙에 희귀한 케이스이니 주기적으로 검사는 받는 게 좋을 것 같다고.
대략적인 절차를 마친 나는 지갑을 뒤져 며칠 전 받아두었던 명함을 꺼내 들었다.
“어······. 임성한 씨, 저 김수하입니다.”
“어, 수하 씨! 반가워요!”
수화기 너머로 친절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나는 간단한 안부 인사를 건넨 뒤 곧바로 용건을 꺼냈다.
“혹시 고미 데리고 갈만한 식당이 있을까요? 룸으로 되어있는 곳으로요.”
“아, 네, 제가 바로 좋은 곳 몇 군데 보내 드릴게요. 그리고 말씀드릴 게 있는데······.”
“네, 편히 말씀하세요.”
임성한은 이 대목에서 잠시 뜸을 들이다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저희 회장님이 꼭 좀 뵙고 싶다고 하시는데, 혹시 시간 좀 내주실 수 있을까요?”
“전에 말한 그 테이머스 회장님인가요?”
“네, 아마 수하 씨도 아시는 분일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