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4 슈퍼스타 고미
검성, 이강혁.
‘어떻게 검성이 이곳을 알고 있지? 아니, 알고 있었다면 왜 진작 안 오고 이제야······.’
[ 저자를 아느냐? ]
고미가 금방이라도 뛰쳐나갈 듯한 자세를 한 채 물었다.
[ 응, 알아. ]
당연히 안다.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헌터 중 하나니까.
A급 스킬 달랑 하나에 A급 평균 수준의 능력치로 S급 헌터들과 정면으로 붙어도 밀리지 않는 엄청난 검술, 무엇보다······.
「보상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건 보상이 아니라 제가 한 일로 얼마나 많은 사람을 지켰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강혁이 인터뷰에서 했던 말이다.
말이야 누가 못하겠냐만, 그는 행동으로 그걸 증명하는 사람이었다.
잘생긴 얼굴에 뛰어난 실력, 스탯과 스킬이 전부가 아님을 증명해내는 실력에 책에나 나올 듯 정의로운 성격까지.
유명하고 인기가 많아지지 않는 게 이상할 정도의 캐릭터지.
하지만 TV에서 보던 것과는 180도 다른, 섬뜩하고 살기가 가득한 얼굴.
클리어 보상을 얻지 못해서 화가 난 건가?
그럴 사람은 아닌 것 같았는데······.
[ 고미, 기다려. 우릴 공격하지 않는 이상 먼저 공격하지는 말자. ]
물론 저게 저 사람의 맨 얼굴이고, 그간 보여온 행보는 이미지 메이킹이었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진실이 어느 쪽이든, 고미에게 사람을 죽이게 하고 싶지는 않다.
무르다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나에게 고미는 조금······ 은 아니고, 많이 힘이 쎈 어린아이 같은 존재다. 당연히 아이에게 살인을 시킬 수는 없다.
[ 으음······. 알겠다. 하지만 저 녀석이 수다르를 해치려 한다면, 나도 가만히 있을 수는 없다. ]
[ 알겠어. 일단 지켜보자. ]
< 고미의 가호로 인해 ‘살곰살곰’의 효과가 대폭 상승합니다. 당신의 기척이 완벽하게 감춰집니다. >
그렇게 동굴 주위에 있는 바위틈에 숨어 잠시 상황을 지켜보고 있는 사이, 이강혁이 빠른 속도로 폭포 앞까지 달려왔다.
손에는 이미 장검까지 뽑아 든 상태.
그러나 수다르의 동굴을 확인한 순간, 살기로 가득했던 그의 표정이 돌연 부드럽게 풀어졌다.
“후······. 아니군.”
‘아니야? 뭐가 아니라는 거지?’
그리고는 안도한 듯 가슴을 쓸어내리며 한숨까지 내쉬더니, 장검을 집어넣고 주위를 둘러보기 시작했다.
무언가 깊은 생각에 잠긴 표정.
이강혁 정도의 능력자라면 바위틈에 숨어있는 우릴 발견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마음을 졸였지만,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이게 진짜 살곰살곰이구나. 이렇게 가까운 거리에서 A급을 속일 수 있을 정도라니······.’
이후 이강혁은 그대로 멈춰서서 주위를 이리저리 훑어보다가 피식 웃음을 짓고는 그대로 폭포를 벗어나 사라졌다.
[ 저자는 누구이냐? ]
이강혁이 사라지고 조금 후, 고미가 나를 바라보며 물었다.
“한국에서 제일 유명한 검술 계열 헌터야.”
“흠, 고작 저 정도가? 문제가 많구나.”
무, 문제가 많다니······. 물론 고미라면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있는 것 같기는 한데, 그래도 평가가 너무 박하잖아.
“그래? 네가 보기에는 어떤데?”
“재능도, 경험도 부족하다. 게다가 훌륭한 스승을 만나지 못해 그 부족한 재능마저 제대로 꽃피우지 못한 애송이다.”
그렇게 이강혁을 애송이라고 일축한 고미는 그의 기척이 완전히 사라지기를 기다렸다가 살곰살곰을 해제했다.
“혹시 모르니 수다르에게 동굴을 다른 곳으로 옮기라고 전음을 보내두었다. 이제 가자.”
* * *
고미와 나는 곧바로 하산하지 않고 다시 한번 산을 올랐다.
왜냐고?
다른 헌터들은 눈 뒤집혀서 이곳저곳 쑤시고 다니는데, 아기곰하고 웬 듣보잡 하나가 한가롭게 아래로 내려가면 너무 눈에 띄잖아.
혹시 누가 나랑 고미가 폭포에서 나오는 걸 보지는 않았는지도 확인해 봐야 했고.
“어떤 새끼가 홀랑 집어먹고 튄 거야!”
“대형길드에서 자기들끼리만 정보 공유하고 있던 거 아니야?”
“무슨 수로? 여태 아무것도 알려진 게 없는데.”
“게다가 여기 온 놈들 중에 진짜 거물은 없는 것 같은데.”
“거물이 없기는. 아까 이강혁 왔던데?”
“이강혁? 그 인간이 왔다고? 진짜로?”
"점잖은 척 해놓고 능력치 보상이 탐났겠지. 그래봤자 능력치는 평범한 수준이잖아."
“그런데 그 산신령의 가호랑 보물이라는 게 뭔데?”
“모르지, 클리어한 놈이 누군지도 모르고, 산신령인지 뭔지 만난 놈도 없는데.”
“하······. 우리 길드에서는 지리산 던전 공략한다고 급하게 다섯 팀이나 꾸려 보냈는데, 헛물켰군.”
정신을 집중해 주위의 헌터들이 떠드는 소리를 엿들어보니 예상대로 한바탕 소동이 일어났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역시 한 번 올라갔다 내려가길 잘했네.’
나는 그렇게 누구도 우리를 보지 못했다는 확신을 얻은 후에야 다른 헌터들과 섞여 자연스럽게 지리산에서 내려갔다.
* * *
언덕이 끝나고, 평지가 나타나기 시작했을 무렵.
깨톡, 깨톡. 깨톡. 깨톡······.
줄곧 통화권 이탈이라 울리지 않던 핸드폰이 미친 듯이 울리기 시작했다.
‘대체 누가 이렇게 깨톡을 보내 놓은 거야.’
일이라면 이렇게까지 오지는 않았을 텐데, 딱히 연락 올 사람이 많은 것도 아니고.
깨톡 메시지를 확인하려고 보니 부재중 전화도 수십 통이 와있다.
대체 누가······.
부재중 목록을 확인해보니 전화를 한 것은 모두 한 사람.
띠리링, 띠리링-
그리고 통화 버튼을 누르기도 전에 또다시 전화가 걸려왔다.
“어, 왜 이렇게 전화를 많······.”
“야, 김수하! 이 새끼 너 각성했어?”
이윽고 전화기 너머로 잔뜩 화가 난 목소리가 들려왔다.
전화가 온 것은 민봉식.
이름만 들으면 내 아버지뻘은 될 것 같지만, 그 이름으로 20대의 삶을 살고 있는 내 절친이다.
아니, 친구라고 말하기도 뭐하다. 이 정도면 거의 가족이지 뭐.
“응. 어떻게 알았냐?”
“어떻게 알고 나발이고, 각성을 했으면 나한테 말을 하든가!”
“그거 말해서 뭐 해.”
“야! 그래도 내가 D급, 아니지. C급 됐는데, 너 끌고 같이 던전이라도 돌 수 있잖아.”
“오, 축하.”
축하한다는 말에 봉식이는 헛수작 부리지 말라는 듯 콧방귀를 꼈다.
“지금 내가 축하받자고 전화했냐, 말 돌리지 마라.”
“됐다. F급 데리고 던전 돌면 너도 손해잖아.”
“아, 그런다고 죽냐?”
“감사하지만 사양합니다.”
“이 새끼는 매번! 왜 그렇게 도와준 데도 거절하는 건데!”
“야, 너 같으면 내가 목숨 걸고 번 돈으로 너희 부모님 병원비 보태주면······.”
“아이고 감사합니다 주인님, 하고 받을 건데? 치킨값도 부쳐달라고 할 건데? 그래서 껍질만 먹고 버릴 건데?”
“까고 있네. 요새 껍질 튀김도 판다. 이 시대에 뒤떨어진 놈아.”
대화의 흐름으로 보아 대충 짐작하겠지만, 이놈은 꼬박 2년째 병원비를 보태주고 있다.
솔직하게 말해서 이놈 아니었으면 나는 이미 사채를 쓰든 장기를 하나 꺼내서 비상금으로 쓰든 했겠지. 한 달에 천만 원이 작은 돈은 아니니까.
요약하자면, 가장 가까운 친구이자, 좋은 녀석이란 소리다. 그래서 더 손을 벌리기 싫은 거고.
게다가 잡부일 하면서 헌터들 얼마나 고생하는지 매일 봤는데 그 돈을 낼름낼름 받아 먹을만큼 낯짝이 두껍지는 못하다.
“미안하다. 정말 정신없어서 그랬어. 나중에 얘기해줄게. 들어도 믿을지는 모르겠다만.”
“하, 또 사과는 칼같이 해요. 사람 할 말 없게.”
“그보다, 나 각성한 건 어떻게 알았는데?”
“누가 시대에 뒤떨어진 지 모르겠다. 슈퍼스타님아. 닭 껍질 튀김보다 네 신상 정보나 잘 관리하세요. 대체 어디 처박혀 있었길래 전화도 안 받고 본인이 슈퍼스타 되신지도 모르고 계셨어요 선생님?”
슈퍼스타? 이건 또 뭔 소리야.
“무슨 소리야.”
“너님 지금 슈퍼스타예요.아주 인터넷에 난리가 나셨어요. 테이머 김수하 선생님.”
깨톡.
말을 마치기 무섭게 깨톡으로 인터넷 링크 하나가 날아왔다.
링크를 클릭하는 순간, 무언가 서늘한 기운이 가슴을 후비고 들어왔다.
봉식이가 보내준 것은 한 인터넷 커뮤니티에 올라온 화제글이었다. 제목은······.
<< 진격의 곰트라이더.jpg >>
스크롤을 아래로 내리자, 고미를 태우고 마트를 모는 익숙한 츄리닝 차림의 남자의 사진이 보였다.
그리고는 아장아장 걸어 다니며 카트를 모는 아기곰 한 마리의 사진과 녀석이 드리프트를 하는 움짤이 이어졌다.
‘아······.’
망치로 뒤통수를 맞은 듯한 충격.
‘조, 조회수는 얼마나 되지?’
조회수는 무려 만 단위. 댓글만 수백 개가 달렸다.
└ 이거 진짜 곰임?
└ 펫 아닐까?
└ 너 펫 본 적 없지? 펫이 지구에 사는 생물이랑 똑같이 생긴 거 봤냐?
└ 펫이든 진짜 곰이든 졸귀. 한 마리만 분양 좀.
└ ㅇㅈ. 이 정도 귀여움이면 댕댕이 떼껄룩 다 설 자리가 없어질 듯.
└ 이제 곰의 시대야.
└ 나도 곰 키우고 싶다.
└ 저거 커지면 너님은 바로 비상식량행.
└ 근데 아무리 펫이라도 곰 데리고 마트 오는 건 좀.
└ 1급 허가증 있으면 아무 문제 없잖아.
└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고 문제가 없는 거냐?
└ 그거야 한유진이 꼬장놔서 그런거고. 솔직히 좀 아니지.
└ 뇌피셜 가지고 막 뱉지 마라. 한유진이 그랬다는 증거 있어?
└ 네, 다음 한빠.
······.
환장하겠네.
댓글 중 대부분은 고미가 귀엽다, 나도 곰 키우고 싶다 같은 내용이지만, 이 정도 조회수 뽑은 글이면 다른 커뮤니티에도 전부 올라갔을 테고, 그럼 사실상 수십만 명이 봤다는 소리인데······.
바로 그때,
“네 이놈! 누구인데 얼굴도 보이지 않고 기척을 숨긴 채 이 몸의 제자에게 험한 말을 하는 것이냐!”
고미가 수화기를 향해 빽하고 소리를 질렀다.
······.
망했네.
“응? 김수하, 너 누구랑 있냐? 웬 애기 목소리가······.”
“어어, 야. 깨톡으로 해 깨톡으로.”
뚝.
나는 민첩 13의 능력을 최대한으로 활용해 번개처럼 전화를 끊었지만,
“이 무엄한 놈! 수하! 가자! 내가 직접 혼쭐을 내주마!”
흥분한 고미는 길길이 날뛰며 봉식이를 잡아 오라고 난리를 쳐댔다.
하······. 미치겠구만 진짜.
“고미, 그런 거 아니야.”
“아니긴 무엇이 아니냐! 이놈이 아까부터 무례한 말을 해대지 않았더냐!”
친구가 없었던 탓에 고미는 대화의 뉘앙스라는 것을 잘 모른다. 당연히 진짜 친한 사이에는 늘 이런 대화가 오고 간다는 것도 이해하지 못할 테고.
“아니야, 이 친구가 나를 정말 많이 도와줬어. 그리고 진짜 친한 사이에는 이런 나쁜 말도 막 하고 그런 거야.”
“정말이냐?”
의심스럽다는 듯 눈을 가늘게 뜬 채 한참 동안 나를 훑어보던 고미는 갑자기 무언가가 떠오른 듯 씨익 웃으며 입을 열었다.
“이 약한 놈! 비실비실한 놈! 모리배!”
······.
대체 내 말을 어떻게 알아들으면 이런 결과가 나오는 걸까.
여하튼 날 친하게 생각해주니 고맙기는 하네.
게다가 나름 애정표현을 잘 했다고 생각하는지 신이 나서 눈을 빛내며 웃어대기까지 한다.
나는 그런 고미를 놔두고 일단 봉식이에게 깨톡을 보냈다.
└ 서울 도착하면 설명할게.
└ 지금 어딘데.
└ 지리산.
└ 지리산? 네가 거길 왜 가? 거기 지금 난리던데.
└ 그런 게 있어. 병원 가 있어. 부모님 곧 깨어나실 테니까.
└ 그건 또 무슨 소리야.
봉식이의 카톡에 막 답을 하려던 그때, 돌연 고미가 나의 팔을 잡아당기며 어딘가를 가리켰다.
[ 수하, 아까 그 녀석이 다가오고 있다. ]
고개를 들어보자, 저 멀리서 이강혁이 우리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 천천히 걸어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