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아기곰이 너무 강함-22화 (22/300)

EP.22 공포의 고미 특급

보라 찐빵은 지금 내 스킬로는 감정이 불가능한 물건이다.

그래서 무슨 기능이 있는지도 모르고 써왔고.

그저 확실한 것은 힘과 체력을 상승시켜준다는 것 정도.

‘이거 대체 뭐야.’

그런데 지금 보니 뭔가 이상한 스킬이 붙어있는 모양이었다.

‘하긴, E급인 주걱에 약점 공격 시 크리티컬이 붙어있는데 그것보다 등급이 높은 아이템에 능력치 상승밖에 안 붙어 있는 게 이상하지.’

기억을 더듬어봐도 어쩌다 그런 일이 벌어졌는지 영문을 알 수 없었다. 그냥 엉겁결에 막았더니 말벌 3이 폭사해 버렸다.

‘어······. 고미한테 물어볼까?’

아니지, 저 녀석은 자기가 만들어 놓고 아무것도 모르고 있지.

하여간 재주도 좋다. 뭔지도 모르고 방패에 폭탄을 달아놨냐.

그런 생각을 하며 고미가 있는 곳으로 시선을 돌리자, 말벌 떼를 모두 처리한 녀석이 그대로 자리에 앉아 ‘검은 왕만두’를 만지작거리고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고미! 뭐해?”

평소와는 다른 패턴이다.

이런 일이 벌어졌으면 나보다 더 놀라서는 눈을 반짝거리며 ‘오오오······.’ 혹은 ‘호오······.’ 하는 소리를 내거나, 최소한 ‘후훗, 위대한 이 몸이 만든 어쩌구’ 하면서 잘난 척이라도 해야 하는데.

“쉿! 조용히 하거라.”

“응?”

“조용!”

고미는 지금까지 한 번도 본 적 없는 신중한 표정으로 어딘가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아, 안 돼!”

그리곤 갑자기 화들짝 놀라며 귀를 쫑긋 세우고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수, 수하! 어서 가자!”

“으응?”

말을 마치기 무섭게 고미의 몸이 수미터 밖으로 순간 이동하듯 사라졌다가 다시 내 눈앞에 나타났다.

녀석의 손에는 작은 말벌 - 굳이 따지자면 작은 것은 아니고, 평범한 말벌보다 조금 큰 정도 – 몇 마리가 들려 있었다.

“그건 뭐야?”

“설명할 시간이 없다!”

아, 아니, 그거 내려놓고 얘기해. 왜 벌을 집어오고 그래, 무섭게.

이어서 고미는 무슨 마술이라도 부리듯 왕만두에 손가락으로 작은 구멍을 뚫어 말벌들을 그 안에 집어넣고는 슥슥 문질러 구멍을 막아버렸다.

“뭐, 뭐 하는 거야 고미.”

어지간히도 급했는지, 고미는 그 말에 대답조차 하지 않고 나의 손목을 잡고 그대로 달리기 시작했다.

“어억!”

눈앞에 뿌옇게 흙먼지가 일고, 불어오는 바람에 눈조차 제대로 뜰 수가 없다.

나는 그제야 깨달았다.

지금까지 고미가 얼마나 내 수준에 맞춰 움직여줬는지······.

녀석이 제대로 뛰기 시작하자, 주위의 풍경이 순식간에 휙휙 변하고 있다는 것 외에는 도통 아무것도 알 수가 없었다.

“으어어어어어!”

* * *

그렇게 고미 손에 붙잡혀 얼마나 이동했을까.

녀석이 나를 놓아줬을 때는 이미 정신이 혼미해져 제대로 걷는 것조차 어려웠다.

고미는 그런 나를 내버려 두고 엄청난 속도로 말벌들을 정리한 뒤 나를 봉인석 앞으로 질질질 끌고 갔다.

“자, 수하! 어서 봉인석을 깨거라!”

“어어······?”

“어서!”

눈앞이 빙글빙글 돌아 정신이 없지만, 나는 비틀거리며 일어나 봉인석을 부쉈다.

‘아, 안돼. 어쨌든 할 일은 해야지.’

간만에 내 안의 노예근성이 눈을 떴다. 대학원 시절에는 반수면 상태에서 깨어나 보니 보고서 초안이 완성되어 있기도 했었지······. 그때에 비하면 아직 멀쩡한 상태인 것 같다.

그 사이 고미는 또 부리나케 어딘가로 사라졌다가 다시 내 앞에 나타났다.

‘이 녀석이 갑자기 왜 이러지?’

평소에는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여유가 있는 녀석이 왜 이렇게 분주해진 거지? 라는 생각이 머리를 스치는 찰나,

‘잠깐, 이거 탕약 때문인가?’

“고미 혹시 탕······. 으아아악!”

* * *

그 후로 마지막 봉인석을 부술 때까지 걸린 시간은 5분 남짓.

말벌집 세 개, 대충 수백 마리는 되어 보이는 장군 말벌들을 정리하는데 1분 정도.

“자, 수하! 어서 마지막 봉인을 부수거라!”

누가 그랬냐, 곰이 느리고 둔하다고.

이건 빨라도 너무 빠르잖아······.

그 와중에 나를 버리고 가지 않은 것만으로도 고맙다고 해야 하나.

말을 마친 고미는 내가 봉인석을 부수는 사이 말벌집 근처를 기웃거리며 무언가를 찾았다.

깡!

마침내 마지막 봉인석이 부서지고, 정체를 알 수 없는 붉은 기운이 하늘 위로 흩날렸다.

“이, 이제 끝난 것 같아 고미······. 우욱······.”

결국 나는 참지 못하고 속을 게워냈다.

혹시 엄청 위험하고 빠른 놀이기구 좋아하는 사람 있으면 연락해라.

롤러코스터 같은 건 생각도 안 나게 만들어 줄 테니까.

* * *

토하는 것을 보고 조금 미안해졌는지, 고미는 발을 동동 구르면서도 내 발로 이동하는 것을 허락해줬다.

어, 그러니까······.

조금 멀리 돌아온 것 같은데, 이 시점이 바로 프롤로그의 그 부분이다.

혹시 기억 안 날까 싶은 사람 있어 짚어주자면, 잔뜩 신경이 예민해진 고미가 ‘뭣이!? 용장 밑에 약졸 없고······.’

응, 그 부분.

이 무렵 ‘고미 특급’ 두 번으로 반쯤 탈진한 나는 이미 평지도 네발로 기어 다녀야 하는 상태가 되어 있었고, 결국 몬스터를 잡을 때나 쓰던 귀한 산신령의 영약까지 먹은 끝에 간신히 수다르의 폭포가 보이는 곳까지 귀환하는 데 성공했다.

“수하! 여기부터는 알아서 오거라!”

말을 마친 고미가 내 눈앞에서 자취를 감추는 것과 거의 동시에 저 멀리 폭포가 갈라지며 물줄기가 튀는 것이 보였다.

‘아, 아까 그것도 내 사정 생각해서 천천히 움직인 거구나······.’

그렇게 혼잣말을 중얼거리고 있을 때, 돌연 머리가 맑아지며 울렁이던 속이 편안해지고 온몸에 맑은 기운이 넘쳐흐르기 시작했다.

“응? 이게 무슨 냄새지?”

그제야 완전히 정신을 차린 나는 수다르의 폭포에서부터 정체를 알 수 없는 진한 약 향이 흘러나오고 있음을 알아차렸다.

‘설마 고미는 이 냄새를 맡고 탕약이 완성되는 걸 알아차린 건가?’

산봉우리 두 개를 넘어서 약 냄새를 맡고, D급 몬스터 수백 마리를 쓸어버리고 귀환하는데 15분 컷.

그나마도 나한테 맞춰서 천천히 움직인 게 이 정도라니.

새삼 내 상태창에 쓰인 Gomi급이라는 게 어느 정도인지 실감이 나는 순간이었다.

약 향을 따라 폭포로 걸어가는 발걸음에 저도 모르게 힘이 붙었다.

드디어, 드디어 부모님을 깨울 영약이 완성됐다.

“고미!”

폭포를 지나 동굴로 들어가자, 짐짓 여유로운 척 꿀 도라지 차를 마시고 있는 고미의 뒤통수가 시야에 들어왔다.

“오, 왔느냐. 조금 더 천천히 와도 됐을 텐데. 탕약이 식기는커녕 완성되기도 전에 돌아와 버렸지 무엇이냐?”

“그래?”

하지만 아까부터 약 향이 더 이상 강해지지도 약해지지도 않는 것 같았는데······. 원래 한약이라는 게 그런 건가. 잘 모르겠다. 이런 쪽은 통 문외한이라.

그런 생각을 하며 고개를 갸웃거리다 눈이 마주치자, 3미터에 달하는 거대 수달이 나를 바라보며 한쪽 눈을 살짝 찡긋거렸다.

뭐야 영감님, 설마 탕약 완성됐는데 고미 기분 상하지 말라고 달이는 척하고 있는 거 아니지?

“후후후······. 어떠냐 수다르, 정말로 탕약이 식기 전에 돌아오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하지 않았느냐?”

고미가 짤막한 꼬리를 신나게 흔들어대며 물었다.

‘어서 빨리 대단하다고 말해라!’라고 말하는 듯한 몸짓.

뭐, 앞쪽에 있는 수다르는 고미의 꼬리가 얼마나 열심히 움직이고 있는지 보지 못하겠지만.

녀석의 질문에 수다르의 입꼬리가 미묘하게 씰룩거리다가 이내 초승달처럼 휘어졌다.

“허허, 전능하신 고미님께서 허언을 하시지는 않으리라 믿었지만, 그래도 이리 빨리 돌아오실 줄은 몰랐습니다. 이 수다르 8세, 지리산의 정기를 모두 끌어모아 정성껏 탕약을 조제했건만, 결국 고미님보다 늦어지고 말았군요. 송구스럽습니다.”

게다가 묘하게 말이 긴 걸 보니 거짓말이 확실하다.

이 양반, 진짜 사회생활 잘하네.

정말 산신령 맞아?

“자, 수하. 수고했다. 영약이 완성되는 사이에 내가 너에게 선물을 하나 주마. 이번 수행을 훌륭히 따라온 노고에 대한 치하의 의미라고나 할까.”

고미가 넝쿨로 동여맨 검은 왕만두를 손으로 통통 두드리며 말했다.

그러자, 그 안에서 ‘우우웅’하며 말벌들이 날아오르는 소리가 들렸다.

“뭐야 그거, 설마 꿀이라도 만들고 있는 거야?”

나의 질문에 고미보다 수다르가 먼저 반응을 보였다.

“아, 아니 고미님 그것은 설마······.”

“후후, 이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느냐?”

“저의 조부이신 수다르 6세께서 이야기해 주신 적이 있습니다. 제 짐작이 맞다면 그것은 왕유(王乳)가 아닐런지요?”

“왕유?”

내가 그렇게 되묻자, 수다르는 감격한 표정으로 탄성을 내질렀다.

“아아, 위대한 고미님의 제자시여. 경하드리옵니다. 왕유는 인간들이 불로장생의 영약이라 칭송하는 진정한 보물 중의 보물입니다. 설마 이 귀물을 눈앞에서 보게 될 줄이야. 이 수다르 8세,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습니다.”

수다르의 반응에 저도 모르게 심장이 쿵쿵 뛰기 시작했다.

원래 아부가 좀 심한 수달이기는 하지만, 표정으로 미루어 보건대 지금 저 칭찬은 절대로 고미의 기분을 맞춰주기 위해 내뱉는 말이 아니었다.

그때, 동굴 안을 가득 채우던 탕약의 향기가 돌연 두 배는 진해지며 수다르의 탕약기에서 새하얀 연기가 뭉게뭉게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오오, 드디어 영약이 완성되었군요.”

영약이 완성되었다는 말에 고미는 한쪽 입꼬리를 말아올리며 거만하게 턱을 치켜들었다.

“훗, 미안하다 수하. 내가 너무 빨리 돌아와 버리는 바람에 조금 기다려야 했구나.”

······.

와, 산신령 완급 조절 보소.

역시 내 예상이 맞았다. 소설 같은 거 보면 이런 게 완성될 때는 뭔가 특이한 현상이 벌어지던데 아무 일도 없어서 이상하다 했다.

고미가 눈치챌까 봐 일부러 늦게 완성한 게 틀림없다.

좋게 말하면 순진하고, 나쁘게 말하면 조금 맹한 구석이 있는 고미는 거기에 깜빡 속아넘어가 콧대가 하늘을 뚫기 직전이고.

“자, 그럼 탕약을 담아 드리겠습니다.”

말을 마친 산신령은 곧바로 탕약기를 들어 그 안에 담긴 내용물을 옥으로 만든 고급스러워 보이는 호리병에 옮겨담기 시작했다.

“이것을 입안에 흘려 넣으면 금세 건강을 되찾으실 것입니다. 다만······.”

산신령이 말꼬리를 흐리자, 꿀 도라지 차를 홀짝거리던 고미의 손이 우뚝 멈췄다.

그리고는 잠시 동굴 안에 무거운 정적이 내려앉았다.

“알고 있다. 내 존재가 조금 더 빨리 드러나겠지.”

“위대한 수호자시여······.”

“걱정하지 말거라.”

뭐야. 대체 뭔데. 전에도 이러더니, 나도 좀 알려달라고!

그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수다르는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나와 고미를 번갈아 가며 바라보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알겠습니다. 그럼 이 물건을 받아 주시지요.”

말을 마친 산신령은 사람의 그것을 연상케 하는 손가락에 끼워져 있던 반지를 뺐다.

그것을 양손에 꼭 붙잡고 기도를 하는 듯한 자세를 취하자, 동굴 안에 가득 늘어선 항아리와 바위가 신비한 빛을 뿜어냈다.

“이것이 바로 산신령의 보물입니다. 앞으로 일어날 일들에 반드시 도움이 될 것입니다.”

수다르가 반지를 나에게 건네며 말했다.

3미터짜리 수달의 손에 끼워져있던 물건인 만큼 본래는 상당히 커다란 물건이었지만, 반지의 크기는 어느새 내 손가락에 딱 맞게 줄어들어 있었다.

그리고 반지의 표면에는 조금 전까지만 해도 없었던 신비한 문양이 가득 새겨져 있었다.

“허허, 실은 봉인석을 부숴준 인간에게 신령한 항아리와 영약 하나 정도를 보물이라 하고 돌려보내려 했습니다만.”

이, 이 양반이. 설마 퀘스트 보상가지고 사기까지 칠 생각이었어?

아니지, 이 사람, 아니, 수달이라면 고미에게 잘 보이기 위해 거짓말을 하는 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이것을 드십시오.”

속으로 그런 생각을 하며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을 때, 수다르가 나에게 팔각형의 단약 하나를 내밀었다.

“호오, 수다르. 이것은······. 정말 고맙구나.”

그러자 반지를 받을 때도 반응을 보이지 않던 고미가 찻잔을 내려놓으며 수다르에게 감사의 말을 건넸다.

‘이 약이 대체 뭐길래.’

내 손바닥 위에서는 팔각형의 단약이 은은한 녹색 빛과 함께 가슴이 뻥 뚫리는 시원한 향을 뿜어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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