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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기곰이 너무 강함-18화 (18/300)

EP.18 고미, 패배하다

나는 동굴을 나서자마자 쓰지 않고 남겨둔 보너스 스킬 포인트와 스탯 포인트를 사용했다.

‘상태창’

+3의 보너스 스탯은 모두 민첩에 올인.

무기와 도라지 차로 올라간 능력치는 힘과 체력, 마력 뿐이니 민첩을 올려 밸런스를 맞추기 위해서였다.

스킬은 지구력 강화를 선택했다.

이제부터는 쉴 새 없이 움직여야 할 테니까.

< 스킬 레벨이 상승합니다. 호랑이와는 다르다 F -> E >

스킬도 전부 E급으로 맞춰졌고, 스탯도 제법 괜찮으니 어지간한 E급 정도는 될 거다.

공격 스킬이 없다는 게 조금 아쉽지만, 강철주걱이 있으니 부족한 공격력도 보강될 거고.

‘참······.’

스킬과 스탯 분배를 모두 마치고 나니 저도 모르게 헛웃음이 나왔다.

싸움 한번 안 하고 고미랑 놀아주고 마트나 돌아다니고 맛있는 거나 먹이다가 E급이 되다니, 다른 헌터들이 알면 뒤집어질 일이네.

“고미, 최대한 빨리 처리하자. 사람들 몰려들기 전에.”

“꽤 강행군이 될 텐데, 견딜 수 있겠느냐?”

“걱정 마.”

“좋다. 그럼 우선 가장 가까운 개미굴부터 가보자.”

고미는 짜리몽땅한 다리를 움직여 한걸음에 수 미터 씩 앞으로 나아갔고, 나도 녀석의 뒤를 따라 열심히 달리기 시작했다.

‘저렇게 짧은 다리로 어떻게 저렇게 빨리 이동하지?’

그래도 민첩이 올라가고 지구력도 더 좋아진 덕에 고미의 뒤를 따라붙는 게 이전만큼 어렵지는 않았다.

“하루 새에 제법 잘 따라오는구나.”

고미는 기특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골짜기 깊은 곳으로 향했다.

그렇게 토실토실한 엉덩이를 따라 달리기를 10여 분,

크르륵-, 크륵-

앞쪽에서 철갑 개미의 울음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조심스레 앞으로 나아가자, 어지간한 대형견과 맞먹는 크기의 시커먼 개미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퍽, 퍼벅!

그리고 이어지는 둔탁한 타격음.

고개를 돌려보니 십여 마리의 철갑 개미 중 한 마리를 뺀 나머지가 모조리 쓰러져 있었다.

“자, 이 녀석과 싸워 보거라. 첫 번째 실전 훈련이다.”

말을 마치기 무섭게 눈앞에 있는 데도 있다는 것을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고미의 존재감이 흐릿해졌다.

‘역시, 대단하네.’

고미의 기척이 사라지자, 철갑 개미가 톱날 같은 주둥이를 딱딱 맞부딪히며 내 쪽으로 머리를 돌렸다.

갑자기 동료들이 죽어서 놀랐기 때문인지, 바짝 긴장했으면서도 함부로 달려들지는 않는다.

잡부 시절부터 몬스터야 지겹도록 봤지만, 이렇게 직접 상대하려니 조금 긴장이 된다.

‘괜찮아. 고미가 있잖아. 무슨 일이 있어도 죽지는 않을 거야. 긴장하지 말자.’

그렇게 마인드 컨트롤을 하자, 굳어있던 팔다리가 조금은 유연하게 돌아가는 것이 느껴졌다.

방패가 있으니 굳이 선공을 할 필요는 없다.

그보다는 철갑 개미의 힘이 어느 정도인지 확인해보고, 약점을 노리는 게 나을 거다.

탕탕!

“이리 와! 덤벼!”

터진 찐빵과 강철주걱을 두드려 시선을 끌자, 철갑 개미의 다리에 힘이 들어가는 것이 보였다.

자, 하나, 둘. 온다!

쾅!

방패를 타고 묵직한 충격이 전해진다. 하지만 그럭저럭 버틸만한 수준.

‘생각보다 약해.’

침착하게 오른손에 들린 철퇴를 휘둘러 녀석의 머리를 때리자, 암반을 두드린 것 같은 감촉이 손끝을 타고 흘러들었다.

‘그래도 방어력은 상당하네.’

머리를 얻어맞은 개미는 잠시 뒤로 물러났다가 더욱 거칠게 돌진해 거대한 턱으로 방패를 물어뜯었다.

생각보다 머리가 좋다.

그런데, 나도 머리는 좋거든. 적어도 개미보다는 말이야.

뻐억!

나는 적당히 힘을 실어 녀석의 머리와 가슴을 연결하는 부위를 내리쳤다.

세게 때리는 것보다는 정확하게 때리는데 집중한 일격.

방패를 물고 있는 탓에 팔을 끌어당기니 생각보다 쉽게 녀석의 약점을 때릴 수 있었다.

모든 게 의도대로 흘러갔다.

본래대로라면 큰 타격을 주기는 어려운 공격일 터.

하지만 ‘강철 주걱’의 특수 옵션 덕에 크리티컬이 터졌다.

- 크, 크륵!

“호오······.”

그 순간, 고미가 흡족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 시야에 들어왔다.

하지만 감탄하기는 아직 이르지.

당황하고 있는 철갑 개미의 등에 올라타 온 힘을 다해 약점을 내리치자,

콰드드득!

암반이 깨지는 듯한 소리와 함께 녀석이 균형을 잃고 무너졌다.

-끄륵!

쓰러진 철갑 개미는 파르르 몸을 떨며 이내 축 늘어지고 말았다.

“오오, 수하, 상대의 수를 읽고 약점을 공격하다니, 의외로 싸움의 기본을 알고 있구나. 훌륭하다!”

고미가 조금 놀랐다는 듯 손뼉을 치며 말했다.

뭐, 사실 진짜 몬스터를 상대로 한 건 처음이지만, 구경은 워낙에 많이 했으니까.

일 많이 했던 걸로 치면 잡부들 중 수위를 다툴 정도였고, 사람 관찰하는 건 대학원 때부터 이골이 났으니, 몬스터를 상대하는 법도 머릿속으로는 어느 정도 정리가 되어 있었다.

게다가 몬스터 못지않은 인간 흉기를 상대에게 배운 것도 좀 있고······.

“네가 준 무기 덕이지.”

씨익 웃으며 그렇게 말하자, 고미의 어깨에 잔뜩 힘이 들어갔다.

“그렇지! 역시 이 몸의 무기는 굉장하지 않느냐?”

“응, 옵션이 아주 마음에 들어. 약점을 공격하면 데미지가 두 배 이상이라니.”

“그, 그렇지! 야, 약점을 공격하면 더욱 강해지는 효과를 부여해 두었지!”

하지만 옵션 이야기를 꺼내자마자 갑자기 동공에 지진이 일어나며 눈이 초점을 잃는다.

잠깐, 이거 반응이 왜 이래.

너, 설마 몰랐냐······.

“그런데 방패에는 무슨 효과 넣었어?”

슬쩍 떠보자,

“흥! 그, 그것은 직접 알아보거라! 뭐든지 나에게 의지하려 들어서는 가, 강해질 수 없느니라!”

바로 반응이 나온다.

모르고 했구나…….

하지만 내가 가진 스킬은 모두 고미도 가지고 있는 것 아니었나?

고미도 ‘곰정사의 눈’을 가지고 있다면······.

이건 칭호 때문에 생기는 효과지 아이템 자체에 붙는 효과는 아니라 그런 건가?

아니면 내 스킬이 고미의 스킬과 완전히 똑같은 건 아니라던가.

‘이거 확실히 해둘 필요가 있겠네.’

그렇게 속으로 생각을 정리하고 있을 때, 고미가 평소보다 높아진 목소리로 한마디를 덧붙였다.

“어, 어쨌든, 크흠! 생각보다 후, 훌륭했다! 글만 읽던 서생이라 싸움은 형편없을 줄 알았더니!”

으이구, 이 순수한 영혼아. 그렇게 거짓말을 못해서 어디다 쓰겠냐.

하긴, 친구가 없으니 거짓말을 할 이유도 없었고, 배울 수도 없었겠지. 거짓말이라는 건 결국 속일 사람이 있어야 하는 거니까.

“자, 그럼 이제 가볼까? 첫 번째 봉인을 없애야지. 아니면 훈련 더 할까?”

고미는 잠시 고민하다가 몇 번 더 실력을 확인해보자고 했고, 나는 두세 번 정도 깔끔하게 철갑 개미를 잡고 마정석까지 채취했다.

‘쩝, 보상 진짜 짜네.’

고미가 잡은 것까지 합치면 이미 30마리 이상의 철갑 개미를 잡았는데 아이템 큐브는 단 하나도 떨어지지 않았다. 기껏 얻은 거라곤 순도도 낮고 크기도 작은 E급 마정석 몇 개.

왜 헌터들이 철갑 개미를 싫어하는지 실감이 나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순조롭게 전진하다 보니 저 멀리 거대한 토굴 하나가 보였다.

“흐음, 그럼 너는 여기서 잠시 쉬거라.”

고미는 토굴 근처의 바위에 나를 숨겨두고 ‘살곰살곰’을 사용해 굴 안으로 들어갔다가 3분도 채 지나지 않아 다시 굴 밖으로 나왔다.

“자, 첫 번째 봉인은 내가 파괴했느니라.”

“벌써?”

“어차피 봉인을 모두 파괴하면 이계로 돌아갈 녀석들이다. 괜히 소동을 일으켜 모조리 죽일 필요는 없지 않느냐. 어서 다음 개미굴로 가보자.”

말을 마친 고미는 손을 내밀어 회백색의 알 같은 것을 내밀었다.

“자, 이것의 냄새를 기억해라.”

“왜?”

냄새를 기억하라니, 어쩐지 불길한 느낌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두 번째는 네가 파괴해야지. 이 냄새를 따라가면 근처에서 봉인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이번에는 잠행술을 연습해보는 것이다!”

저······. 선생님······.

아무리 생각해봐도 몇 단계 건너뛰고 있는 것 같은데요.

그리고 저는 살곰살곰 없는데요.

개미굴 들어가면 저만 걸려서 포위당할 것 같은데요.

“고미, 갑자기 진도가 너무 빨리 나가는 거 아니야?”

“하잘것없는 놈들을 상대로 똑같은 짓을 반복해봐야 강해질 수 없다.”

“그런데 나는 잠행술을 못하잖아.”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였다.

고미가 이런 걸 모를 리도 없을 테고.

“그럼 너는 남아있거라. 나 혼자 처리하고 오마!”

지금 고미의 행동은 이상할 정도로 급해 보였다.

평소라면 '걱정 말거라. 이몸은...'하면서 느긋하게 굴었을 텐데.

게다가 기다렸다는 듯 답하는 게 꼭 저 말을 하려고 밑밥을 깐 것 같은 느낌.

‘탕약이 식기 전에 돌아가겠다.’라는 말 때문에 이러는 것 같다는 합리적인 의심이 든다.

이 녀석, 자기가 한 말은 꼭 지키려고 하니까.

“고미, 혹시 탕약이 식기 전에 돌아간다고 한 것 때문에 수행 대충 하는 건 아니지?”

아니나 다를까, 옆구리를 찔러보자, 곧바로 고개를 떨군다.

“미, 미안하다. 전에 동이에게 들은 이야기인데··· 제법 멋있다고 생각하여 따라 해 보았다······. 말을 해놓고 보니 신의를 지켜야 할 것 같아서······.”

고미가 도톰한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더듬더듬 답했다.

이 성실한 곰이 정말······.

그때, 문득 그 ‘신의’라는 두 글자의 용도가 아주 다양할 거라는데 생각이 미쳤다.

“그럼 나랑 한 약속은?”

“미, 미안하다.”

“이래도 되는 거야? 내가 꿀도 사주고 과자도 사주고, 초코바도 사주고 그랬는데. 넌 신의를 아는 곰이라며?”

계속되는 추궁(?)에 고미의 두 귀가 보기 드물게 축 처졌다.

“그, 그렇지. 하지만 상황이 상황인지라······.”

급기야 늘 자신만만하게 바짝 힘이 들어가 있던 짤막한 꼬리도 힘없이 아래로 늘어졌다.

“탕약이 식기 전에 돌아간다는 말만 안 했어도 되는 거잖아.”

“하지만···그 말을 꼭 해보고 싶었단 말이다.”

마지막으로 한번 더 몰아세우자, 표정이 시무룩하게 변하며 눈물까지 글썽인다.

꼭 엄마랑 약속 어기고 혼나는 어린아이가 할 것 같은 변명과 표정.

큭큭, 아, 이러면 안 되는데······.

이 녀석이 변명하는 게 너무 귀엽다.

그만 몰아세워야지.

물론, 공짜는 아니다.

이렇게 좋은 기회가 왔는데 그냥 넘어갈 수는 없지.

“좋아. 그럴 수도 있지. 대신 나랑 약속 어긴 거니까 제자 시켜줘.”

“앗! 그, 그건!”

제자라는 두 글자에 고미는 구슬 같은 눈을 대록대록 굴려대며 대답을 하지 못했다.

“설마 위대한 곰이 멋있는 말 한번 해보고 싶어서 부하와의 약속을 어기는 건 아니겠지?”

“······.”

훗, 이미 거의 다 무너졌군.

“이거 너무한데? 나는 약속 다 지켰잖아. 맛있는 거 사준다는 약속도 지켰지, 1급 허가증 받아서 재밌는데 데려가 준다는 약속도 지켰지. 마트에서 드리프트도 가르쳐 줬고. 인간인 나도 이렇게 약속을 잘 지키는데 위대한 곰이 거짓말을 하면 되겠어?”

그렇게 따박따박 따지고 들어가자, 결국 고미가 바닥에 털썩 주저앉으며 항복을 선언했다.

“크, 크훕. 알겠다! 널 내 제자로 받아주마! 대신 탕약이 식기 전에 돌아가게 해다오! 식기 전에 돌아가야 멋있단 말이다!”

그리고 고미의 수락(?)을 받아내기 무섭게 기다리던 보상이 도착했다.

< 축하합니다. 메인 퀘스트(1)를 완료했습니다. >

< 새로운 칭호를 획득했습니다. >

< 보상이 정산됩니다. >

< 새로운 스킬을 선택해 주십시오. >

< 상승시킬 능력치를 선택해 주십시오. >

< 축하합니다. 히든 퀘스트(3)를 완료했습니다. >

'응? 히든 퀘스트? 이건 또 뭐야.'

그것도 보너스까지 얹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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